< 난관 >
"전하, 옥체 강녕하소서. 소신 박 아무개, 기필코 전하의 대업을 위한 이 일보를 성사시키고 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어허, 이 사람이. 꼭 성사시키지 못한다고 해도 좋다고 하였소.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박 대감만큼은 무사히 돌아와 주시오. 아시겠소?"
"전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소신 박 아무개, 기필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에헤이, 그러니까 이 사람이 진짜."
그로부터 보름 후, 정사 박규수를 필두로 한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출발했다. 왜관을 통하여 일단 통신사가 방문할 것이란 기별은 넣어뒀지만, 일본에서는 혼란스러운 듯한 반응이었다. 거의 반백 년만의 통신사가 재개되는 것도 재개되는 것이었지만, 지금 일본은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었다.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에도 막부와 고메이 덴노의 쿄토 조정이 그 둘이었다.
이 와중 조선에서 다시금 통신사를 재개하자 청한 것이다. 이는 막부에게 있어서는 반색할만한 일이었고, 쿄의 조정에서는 그리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조금 퇴색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조선통신사의 방문과 교류는 기본적으로 쇼군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하여 에도막부의 주관으로 이뤄지던 국가행사였다.
정이대장군에게는 조선통신사를 통해 개항으로 깎인 권위를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을 테니 호재였고, 쿄의 조정에게는 조선통신사로 정이대장군의 권위가 되살아난다면 그만큼 자신들은 궁지에 몰리게 될 테니 악재였던 셈이다.
'뭐, 애초에 그걸 바라고서 통신사를 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도 별로 좋은 놈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도요토미나 메이지 각료들에 비하면 조선에 호의적이야. 조금이라도 더 버텨주거나 아예 막부를 중심으로 뭉쳐준다면 더 바랄 것도 없지.'
따악-.
"관중이오!"
'애미야, 지랄이 짜구나.'
되지도 않는 과녁판을 보던 무관의 아부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요동 정벌 이야기가 나오고 온 나라가 비상시국에 돌입한 이래 꾸준히 기마술을 연습한 지 어언 반년 가까이. 슬슬 말 타는 폼은 잡히고 있었지만, 여전히 활로 과녁을 맞히기란 버거웠다. 지금도 말이 좋아서 관중이지 표적판의 붉은 점을 맞히기는커녕 한참 벗어난 표적판 모서리에 꽂혀있었다. 그나마도 많이 발전한 것이 이 정도였다.
낙마할 뻔한 건 기본이요, 실수로 과녁을 보던 궁인을 맞힐 뻔한 이후로는 궁인들이 아무도 자청하지 않아 무사들을 뽑아와 세워둬야 했다. 아예 흥선군이 작정하고 시범을 보일 무관들을 붙여준 이후로는 역시 어린 몸이라 적응력이 좋아서 그런지 말 타는 폼은 나날이 개선되었지만, 표적을 맞히는 명중률만큼은 처음과 비교하여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기마술이야 체력도 체력이지만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한 반면, 궁술은 일단 기본적인 근력이 받쳐줘야 하는 만큼 아직 성장기 어린아이의 몸에 반년도 안 되어 궁술에 능통해지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우라질, 이래서야 차라리 기마총술이나 연마하는 게 낫겠군. 아니, 화약이 모자라서 총병들 훈련도 사치라고 했던가? 제기랄, 이놈의 나라. 무엇 하나 멀쩡한 게 없구만."
손에 쥐고 있던 국궁을 내팽개치고서, 나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결국, 모든 건 돈, 돈, 그놈의 돈이었다. 오랜 기간 이렇다 할 변란 한번 없이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가다 보니 화약은 전쟁을 치른다고 해도 1달 동안이나 쓸 수 있으면 다행인 지경밖에 남아 있지 않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습기를 듬뿍 먹은 저질 중에도 저질이었다. 차라리 호랑이 사냥꾼들이 사사로이 보관 중인 화약이 나라에서 병졸들에게 지급하는 화약보다야 정상적이었다.
당연히 이렇다 보니 총병들의 훈련조차 쉽지 않았다. 그나마 흥선군이 밀어붙이고 김좌근을 비롯한 세도가가 선선히 협력하면서 온 나라의 화약을 긁어모으고, 화약이 부족한 와중에도 오군영 병졸들의 훈련만이라도 집중적으로 행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했다. 애초에 화약 제조에 필요한 유황부터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염초 생산을 아무리 독려해봤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뿐이랴. 훈련은 둘째치고 전시에 병사들에게 나눠 줄 군량미도 부족했다. 건국 초기부터 적게 거둬서 적게 쓰는 것이 신조이던 조선이다 보니 일단 근본적으로 군량미를 저장하는 것부터가 넉넉지 않았고, 세도가의 오랜 전횡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군량미들도 세도가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낭비되고 지금 창고에 들어가 있는 건 모래와 돌 따위로 가득 채워 적당히 무게만 맞춰둔 녀석들이었다.
그 와중에 무관들 대다수는 세도가에게 돈 주고 벼슬을 산 낙하산들이고, 병졸들은 굶주려 영양 상태가 바닥을 치는 데다가 군관들이 시시때때로 사적인 일에 부려먹다 보니 군관들의 사노비들이나 다름없다. 이런 와중에 서류상 존재하는 병사 중 몇이나 진짜로 존재하는 병사들인지에 대하여까지 들어가면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괜히 조선은 이미 망하고 조선을 자칭하는 껍데기만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따위 꼬락서니로 청과 전쟁하는 건 무리수야. …지금이라도 때려치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도 엉망진창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최소한 병사들은 실제로 존재했다. 군관들이나 병졸들의 질적 수준이야 말할 것도 없다지만, 아무튼, 존재는 하고 머릿수 채우기라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예 서류상의 병사들 대다수가 존재하지조차 않는 조선에 비하면 이건 꽤 상당한 격차다.
조선이 10만 대군이라고 하면 그 10분의 1인 1만 명조차 확실하게 존재하는지 모호하지만, 청은 그 질적 수준이야 눈 뜨고 봐줄 수 없어도 40만 대군이라고 하면 못해도 20만 대군은 존재했다. 겉으로 보이는 수적 차이는 4배지만, 실제로는 20배인 셈이다. 똑같이 형편없더라도 실전경험까지 이야기하자면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짧고 몽땅한 내 몸에 맞춰 준비해 준 갈색 조랑말이 제 주인의 동요를 눈치챘는지 푸 히힝 하고 울고서 내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이 어딘가 귀엽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여,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마음을 바로잡았다.
"그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 와서 김좌근이랑 그 김가네 놈들의 목으로 봐달라고 하면 그 청나라 놈들이 퍽이나 들어주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금은 들이박고 보는 수밖에."
"…오늘따라 유달리 안 보이시더니 꽤 흉흉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구려."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섭정공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서 있었다. 마치 벌레를 씹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안 들었어도 되는 발언을 괜히 들었다고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아도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말 위에서 내리지도 않고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이거야, 원. 또 어찌 알고 오셨소? 정말이지 왕이란 사사로이 쓸 수 있는 시간도 없는 모양이구려. 뭐, 오셨으니 마침 잘되었구려. 거기 떨어진 활이라도 주워 주시겠소? 여기서는 팔이 안 닿아서 말이오."
"제가 전하께서 부리시는 종이라도 되시는 줄 아십니까? 말에서 내려와 직접 하시지요."
"에잉, 좀생이 같으니라고. 고작 그것도 못 해주면서 나중에 늙고서 고깃국이라도 받아먹겠소? 됐소. 내 직접 하리다."
엿 차-하고 말에서 내려와 활을 줍자니, 멀리에서 활을 주워주려고 달려오던 궁인과 그걸 기록하던 사관과 연달아 눈이 마주쳤다. 하나같이 뭐 이런 인간말종이 다 있냐는 표정들이었다. 연상일뿐더러 제 친아비이기까지 한 흥선군에게 활 좀 주워달라고 시켰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나에게 뭐라 잔소리를 하는 일도 없었다. 높은 사람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담력을 가진 위인이라면 이 세도 가문의 시대에 궁까지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그들은 이 자리에서 나에게 잔소리가 가능한 유일한 인물인 흥선군의 눈치를 보는 수밖에 없었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패륜 따위는 상관도 하지 않는 흥선군은 슬슬 익숙해진 듯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들을 향하여 한번 방긋하고 웃어준 다음, 다시 말 위에 뛰어올라 과녁을 향하여 활을 당겼다.
"그래, 일은 좀 어떻소? 슬슬 익숙해지셨습니까?"
"익숙해졌냐, 라. 허허, 주상. 참으로 무심하십니다. 제가 본래 이 대업들 모두를 끝내는데 몇 년을 잡고 있었던 줄 알고나 계십니까? 장장 10년입니다. 10년에 거쳐 진행할 일들을 1년 안에 끝내야 하는데 몸이 남아나겠습니까?"
따악-.
"관중이오!"
또다시 성의 없이 울려 퍼지는 무관의 아첨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슬쩍 대원군의 안색을 살피니, 요 몇 달간 수십 년은 늙은 듯 보이는 김좌근과 안동 김씨 일가만큼은 아니더라도 이하응도 만만치 않게 지쳐 보였다. 눈 밑에는 그림자가 짙었고, 밤에 잠도 못 잤는지 수염은 지저분하고 볼살도 크게 빠져 광대뼈가 도드라졌다. 그의 말마따나 어지간히도 고생 중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뭐, 지금 개혁을 하려고 하는 의지를 분명히 가진 건 흥선군 정도밖에는 없으니.'
만일 이하응이 조금이라도 쉬고자 한다면 온 나라가 멈춰버릴 터였다. 나는 아직 어려서 실무경험이 일천하니 실무에서는 도움이 안 되고, 세도 가문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협력해주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놀려둔다면 그대로 거북이처럼 바닥에 눌어붙을 작자들이었다. 뜻있는 선비들은 초야에 파묻혀있고, 조정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건 제 한 몸의 부귀영화만 생각하는 개나리들이니 세도가가 멈추면 자연히 전부 게으름 피울 것이다.
결국, 이하응이 죽으라고 구르지 않으면 조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셈이다.
"뭐,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오. 일이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래서, 어떻소? 내년 초까지 얼마나 진행될 것 같소이까?"
"진행은 개뿔이. 전부 다 억지요. 당장 지방에서 사병까지 모을 수 있게 한 판국에 중앙에서 이래라저래라 해봐야 귓구멍 간지럽다고밖에 더 하겠소? 그나마 광산개발이나 제대로 진행되고 나머지는 경기도까지라도 시행되고 있기는 한지도 의문이오. 내 빌어먹을 서원이나마 병졸들 끌고 직접 행차해서는 다 때려 부쉈으니 망정이지, 이런 우라질!"
어지간히도 화가 난 듯, 이하응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서는 씩씩거렸다. 하기야, 그가 진행한 개혁들은 모조리 지방향림들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내용이었다. 지방에서 반발이 없었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그나마 경기도까지라도 제대로 개혁이 집행되는 것조차 이하응이 필사적으로 발로 뛰면서 얻어낸 성과일 터였다.
그나저나 병졸들이라. 나는 분명 군권까지 이하응에게 내주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결국, 지금 실권을 쥐고 있는 건 이하응과 김좌근 두 사람이다. 내가 괜히 지적해봤자 들은 체도 안 할 게 뻔했다.
김좌근이야 이미 나와 운명공동체이니 어쩔 수 없이 내 왕좌를 인정해주고 있지만, 이하응은 내가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면 제 자식이고 나발이고 치워버릴 작자였다. 지금은 모른 체하고 넘어가는 편이 내 신상에도 좋았다.
"흐음, 그럼 보부상들을 써보는 건 어떻겠소?"
"보부상? 그 상놈들이 어떻다는 거요?"
나는 모르는 척 이야기를 돌렸다. 이하응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왜 하필이면 지금 보부상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그로서도 이해가 어려운 탓이 가장 컸을 것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뭐, 간단한 이야기요. 보부상들은 조선 팔도 곳곳을 꿰고 있고, 또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타다 보니 몸도 제법 좋소. 거기에 천것들이 제 살기 위하여 똘똘 뭉치다 보니 조직력도 꽤 좋은 편이오. 그들에게 적당히 사례하고서 지방의 사정에 대하여 전해달라고 하면 괜찮지 않겠소? 혹은 아예 관청을 새로 두어 그 천것들의 활동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것도 좋겠구려."
내가 말한 것은 실제 역사에서도 등장한 보부상들의 사용법이었다. 실제 조선에서는 병인양요 이후 보부상 조직에 관심을 두고서 보부청을 두어 그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면서 또 활동을 지원하였고, 이러한 보부상들은 충실한 조정의 개로서 동학농민운동 때에는 토벌군과 함께 싸우고 이후로는 고종의 명에 따라 정치깡패로 활동하면서 독립협회를 해산시키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내 제안은 보부상들을 조금 더 일찍 정치깡패로서 부리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행정은 무너지고 중앙의 권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 말로 해서는 더는 지방에서 들은 체도 안 하니까, 두들겨 패서라도 말을 듣게 하자는 것이다.
어차피 의병장 한 사람당 100명에 한 가문당 의병장 5명씩으로 한정 지었지만, 실제로 100명, 더 넘어서 500명까지 채울 수 있을 만한 집안은 몇 되지도 않는다. 대부분은 기껏해야 노비들까지 총동원하여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일 터. 그 정도면 보부상들이 완장 차고 몰려가서 깽판 몇 번 쳐주면 기를 죽이기란 어렵지 않았다.
왜 옛말에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이렇게 하면 법이 직접 내려와서 주먹으로 패는 격이니 법도 가까워지고 주먹도 가까워지고 일거양득이었다.
"…그게 지금 이 나라의 주상께서 하실 말씀이요? 천것들이 법 위에서 놀게 하자니, 제정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소만."
대원군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나라에서 직접 나서서 위법을 저지르자는 이야기니, 그럴 만도 하기는 했다. 특히나 20세기의 광기를 알지 못하는 전근대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20세기 개발 독재자들에 대하여 설명할 자신도, 설명하여 납득 시킬 자신도 없었던 나는 그에게 대꾸했다.
"그럼 어쩌겠소? 저들이 생각하기에는 이미 이 나라 조선은 망하고 없는 나라요. 그런 자들에게 아직 이 나라 조선도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려면 주먹으로 직접 두들겨 패서 깨워주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바로 이렇게."
나는 원투, 하고 권투의 시늉을 보였다. 이하응은 그런 나를 질린 듯이 바라보다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함께 그의 눈빛도 바뀌었다. 영락없는 승냥이의 눈빛이었다. 역시나, 입으로는 그 폐해를 지적해도 머리로는 이미 그렇게 함으로써 얻게 될 이익에 대하여 깨달은 것이다.
'뭐, 보나 마나 보부상들을 부려서 날 꼭두각시로 만들고 지가 왕인 양 행세할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거겠지만.'
그와 지낸 시간도 이제 반년이 넘고 1년이 다가오다 보니 직접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친부자도 아닌데도 기이할 정도로 닮은 사고방식 덕분인지도 몰랐다.
'이렇게 보면 부자간의 신의 하나는 두텁구만. 피차 방심하면 통수칠 거라고 확신을 하고서 서로를 대하고 있으니 참 사이좋은 부자야.'
그렇게 생각하고서 다시 활을 당기려 과녁 쪽을 바라보니, 그 옆으로 허내관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었다. 내가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구려. 과인은 이만 돌아가 보겠소. 천천히들 오시오. 이랴!"
"아니, 저저저…. 거 참 잠깐-!"
푸히힝-.
조랑말은 제가 군마라도 되는 줄 아는 듯 우렁차게 울부짖으며 내달렸다. 뒤에서 이하응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 주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