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와의 수교 >
"서역의 함대가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났다고?"
"그러하옵니다, 전하. 저들이 주장하기로는 전하께 초대를 받았다 하여…어찌할까요?"
'거 우라질 불란서 놈들 오지게도 시끄럽게 등장하시네.'
입동을 막 지나, 초겨울에 접어들었을 무렵.
초대했던 손님 중 하나가 등장했다. 초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뭐, 그래도 당초에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하게 등장하기는 했다. 강화도에 나타난 프랑스 함대는 딱히 약탈하거나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평화롭게 청나라의 화폐인 건륭통보로 값을 지불하여 생필품을 구매하였으며 베르뇌 주교를 통해 자신들이 조선의 천주교도들과 조선 국왕의 초대로 조선까지 왔다는 내용의 국서를 전달했다.
프랑스나 여타 열강 국가들이 함포 외교를 앞세워 비유럽국가들에 개항을 강요하던 모습들을 생각하면 이만하면 엄청나게 신사적인 첫 등장이었다. 강화부사가 올린 보고에도 딱히 부정적인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고, 대동한 함대의 규모도 3척 정도라고 했다. 그 3척 전부가 전함일 리도 없는 이상, 적어도 지금의 프랑스는 조선과의 무력충돌을 바라고 있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전하께서 저희 모르게 그런 안배를 해두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오히려 거슬리던 건 이때다 하면서 비아냥거리고 있는 김좌근과 그 일파들이었다. 어지간히도 내가 그들 몰래 프랑스와 접촉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불쾌해하는 듯했다. 하기야 대신들과 상의도 없이 일을 진행하는 것은 폭군 소리 듣기 딱 좋은 일이기도 했다. 그나마 내가 천주교에 유화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북적의 군세가 언제 밀어닥칠지 모르는데, 어찌 과인이라고 근심이 없을 수가 있겠소. 보잘것없는 재주로나마 꾀를 내 보았으나, 일이 이렇게 잘 풀리게 될 줄 미처 몰랐소이다. 이 모든 것이 과인을 대신하여 경들이 문무백관들을 잘 다독여준 덕분이니, 감사할 따름이라오."
간단하게 말하여 청나라 놈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판국에 너희들은 모여서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니까 답답해서 내가 직접 꾀를 내봤다-라는 대답이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전시라고는 믿을 수도 없을 만큼, 지금의 조선은 엉망진창이었다. 일단 당장 항전할지 항복할지에 대하여도 제대로 결정되지 않았을뿐더러, 전쟁준비는 다들 말뿐이고 각 지의 관청들이 얼마나 되는 전시물자를 준비 중인가 파악하지도 못했다. 아니, 그럴 의지도 없다는 것이 정확했다.
아마 보부상들을 내세워 각지의 지방세력가들을 두들겨 패면서 정보를 마구 끌어모으는 중인 흥선대원군의 경우에는 파악하고 있었겠지만, 흥선대원군은 대부분은 어전회의에 그가 알게 된 정보들을 제출하기는커녕 사적으로 이용했다. 겉으로는 세도 가문들을 완벽히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럼 아들인 나에게도 비밀로 해두고 있는 건 어째서일까. 그나마 무언가 비밀리에 조치를 꾸준히 취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영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세도 가문은 저들끼리도 죽어라 물어뜯고 지방의 유생이라는 것들은 중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칭제건원을 하라느니, 북경을 정복하고 오랑캐 천자를 젓갈로 담가 먹어야 한다느니, 조선이 천하를 통치해야 한다느니 등 과격한 상소만 올려대고, 친아버지라는 섭정공 이하응은 나에게도 비밀로 한 채 왕실의 내탕금까지 끌어쓰면서 끝없이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다. 이런 마당에 내가 조정의 대신들을 믿고서 일을 꾸미라고? 자기들이 그렇게 해보라지.
"어서 저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담판을 지어야 할 것입니다. 언제 북적이 군세를 일으킬지 모르니, 한시가 급합니다."
자기들도 뭔가 찔리는 게 있었던지, 그 뒤로 김좌근 패거리들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에 입을 연 것은 섭정공 이하응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내가 뭔가 수를 써뒀을 거라 짐작했던지, 놀란 기색도 당황한 기색도 아니었다. 나도 그가 너무나도 담담하게 프랑스인들을 궁까지 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일을 벌이면 그가 이렇게 나오리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만 섞였지 속 내용물은 조금도 물려받지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서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과인 또한 그렇게 생각하오."
나는 선선히 섭정공 이하응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그걸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이미 내가 막 즉위하던 무렵부터 이야기되어 온 서역과의 통상이었다. 청과의 전쟁위협으로 다소 앞당겨졌을지언정, 이미 서역과의 통상은 나에게 있어서건 조정의 문무백관들에게 있어서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조선 홀몸으로 청과의 전쟁에 대비하는 것도 무리였으니 말이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그 자리에서 프랑스인들의 상륙이 승인되었고, 그 즉시 파발이 강화도까지 내달려 이 사실을 전했다. 프랑스 함대는 그 이후 조선을 떠날 때까지 김포에 정박하게 되었고, 도승지 민치상을 필두로 한 환영인단이 김포까지 나아가 그들을 맞이하여 한양의 창덕궁까지 안내했다. 다만, 한양까지 들어오는 건 수행원들을 포함하여 스무 명 정도로 한정되었다. 그들이 언제 다른 마음을 품을지 몰랐던 것이다.
프랑스 측에서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나 스스로도 일이 이렇게 술술 풀려도 되나 싶어서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청나라 때문에 급한 조선은 차치하고서 프랑스가 여기까지 순순히 지시에 따라줄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여차하면 우리 프랑스를 무시하는 거냐고 깽판을 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것들 혹시 아편이라도 빨았나?'
문득 그런 의심마저 들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베르뇌 주교가 그만큼 조선에 대하여 잘 이야기해 주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혼란스러워하건 말건, 이미 프랑스인들은 도승지 민치상의 안내에 따라 궁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다시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전하. 소신 정경일, 하명하신대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돌아왔습니다."
사신단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일전에 만난바 있던 베르뇌 주교-한국명 정경일이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정경일을 필두로 한 프랑스 사신단은 나를 보고서도 천천히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할 뿐 엎드려 절을 올리지는 않았다. 일단 인원수를 제한하겠다는 정도는 따라주겠지만, 조선의 예절까지 따라줄 생각일랑 추호도 없다는 신호였다.
'그러면 그렇지.'
대동한 대신들과 궁인들의 얼굴이 일순간 딱딱해지는 가운데,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명색이 구라파 짱깨라는 오명을 가진 프랑스인데 적어도 이 정도는 저질러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절 문제는 이미 앞서 영길리 해적들이 청나라를 상대로 끝까지 싫다고 버틴 끝에 청나라에게 영국식 예법을 강요하는 데 성공한 선례가 있었다.
오히려 허리나마 숙여준 것이 나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감히-."
"허허허, 왜 이렇게 늦었소? 내 눈이 빠지라고 그대들이 오기만을 기다렸소. 조선에 온 것을 환영하오."
어느 고지식한 녀석이 뭐라 고래고래 고함을 치려는 걸 도중에 끊고서, 나는 어좌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며 악수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한순간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하나같이 경악과 당혹이 서린 시선들이었다. 턱이 빠질 듯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민치상은 물론이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김좌근,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이하응까지 내 돌발행동에 당황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프랑스 사신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그들도 앞서 청나라와 일본의 선례를 보았으니 설마하니 조선의 왕이라는 자가 손수 유럽의 예법에 따라 선선히 악수를 주고받아줄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나의 부탁에 따라 프랑스 사신단을 데려온 장영길 주교의 경우에는 아예 감동이라도 받은 듯 울먹거리고 있었다.
'흐흐흐, 뭘 그렇게 놀라시나?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혼돈과 경악과 당황이 뒤섞인 그 어색한 공간 속에서, 나는 나에게 쏟아져 오는 시선들을 즐기며 다시 어좌에 돌아가 그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뗐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일제히 크고 작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지긋지긋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었을 텐데,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고 나중에라도 철이 들면 고쳐질 거라고 기대하는 걸까.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대신들과 궁인들을 한번 쓱 하고 눈으로 훑고서, 다시 프랑스의 사신단을 바라보았다. 가장 비싸 보이는 정장을 입은 쪽이 이번 프랑스 사신단의 최고책임자일 터였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프랑스 제국 주청 프랑스 공사 벨로네라고 합니다. 전하의 뜻하지 않은 환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제야 뒤늦게 정신이 든 듯, 사신단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자가 앞으로 한걸음 내디디면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나 또한 들어본 적 있는 인물이었다. 본래 역사에서는 병인양요 당시 조선의 기독교 박해에 격분하여 나폴레옹 황제의 이름 아래 조선을 정복하겠다고 윽박질렀던 양반이었다.
그런 본래 역사에서의 행보를 알고 있다 보니, 나로서는 영 기분이 떨떠름해졌다. 괜히 환대해줬다는 후회가 문득 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그대들도 대강은 알고 있다시피, 지금 우리 조선은 청을 자칭하는 북적 오랑캐들과 전쟁에 준하는 사태에 돌입하였소. 그러나 지금의 조선으로서는 당장 저들과 맞서기에는 힘이 버겁소. 그러니, 귀국에서 우리 조선을 도와주었으면 하오."
나는 더는 말을 돌려가며 저들을 배려할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여, 대뜸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지금 급한 건 조선이었다. 다소 약점이 잡히더라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협상의 타결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을 터였다.
벨로네 공사의 눈빛이 한순간 빛나는 듯했다. 그도 이번 건수가 얼마나 큰일인지 대강 짐작한 것이다. 당황한 것은 여기까지 이야기가 커질 줄은 짐작하지 못한 듯한 정경일 주교뿐이었다.
"도움…이라면 어느 정도의 선에서 말씀하십니까?"
"무엇이라도 좋소. 함께 공투해준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으나, 그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건 과인 또한 알고 있소이다. 군사고문을 파견하여 주건, 신식화기를 판매해주건, 하여간 무엇이든 좋소. 그걸 위해서라면 기꺼이 부산, 원산, 인천. 이 3 항구를 개항하고 이 땅의 천주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줄 생각이오. 관세에서도 얼마든지 양보할 생각이 있소이다."
"아니, 전하. 그것은 다소 말씀이 지나치―."
"지금은 됐으니 잠자코 듣고 있어 주시오."
옆에서 뭐라 간섭하려 한 대신들의 입을 틀어막고서, 나는 우선 그렇게 승부수를 던졌다. 보잘것없었지만, 이것이 지금 당장 조선에서 저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당연히 대신들은 불만 어린 표정들이었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외국의 사신들이 보는 앞에서 왕인 내게 고함이라도 쳐보겠다는 건가?
한편 벨로네 공사를 비롯한 프랑스 사절단은 어딘가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분명 조선은 이번에 처음으로 서역인들과 교섭하는 것일 텐데, 왕이라는 자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점이 기이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자연히, 협상에 임하는 태도 또한 신중해졌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신다는 제안은 더 없이 감사합니다. 전하께서 이 땅의 천주교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신다면 저희 프랑스 제국에서는 기꺼이 조선을 지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청은 저희 프랑스 제국의 교역상대국이기도 한바. 직접적인 참전은 어려울 것입니다."
"알고 있었소. 지금은 월남에서의 일이 더 급할 테니. 그 정도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소. 대신, 무기의 판매와 군사고문단의 파견만큼은 서둘러주시오. 침공이 그리 머지않았소이다."
"…좋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 신앙을 퍼뜨리기 위한 일입니다. 어찌 지원을 아끼겠습니까? 저희 제국에서는 무상으로라도 조선을 도울 것입니다."
'무상은 개뿔이. 이 자식들 조선으로 청이랑 대리전쟁 치르고 이권 뜯어낼 작정인 거 같은데?'
프랑스 사신단에게서 조선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대신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냉소적이었다. 명색이 현 세계에서 영국 다음가는 식민열강인 프랑스가 고작 카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대출혈을 각오하고 생판 모르던 조선을 지원할까?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말뿐이라도 이런 식의 호의적 발언이 나왔다는 건 고무될 만한 성과였다. 그러나 이걸로는 아직 부족했다. 보다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서류로서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뒷말이 없을 터였다.
"흠,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어떻겠소? 정 안된다면 천주교도들의 신앙의 자유와 3개 항구의 개항, 그 조건으로 공사관 설치와 무기판매만이라도 명시해준다면 좋소. 한시가 급한 일이오."
"이렇게 전하께서 저희 프랑스와의 친교에 적극적이시니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게 해주신다면 더 없을 영광일 것입니다. 군사고문단에 관하여서는 제가 즉시 본국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신앙심이 깊으신 분이시니, 필시 가까운 시일 내에 윤허해주실 것입니다."
내가 먼저 오늘의 대화를 서류로써 남겨 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하자, 프랑스 사신단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나로서는 다소 의외인 결과였다. 적어도 한두 번은 자신은 급이 안 되어서 안 된다던가 아니면 본국의 연락을 받아야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튕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
물론 지금의 조선이 애초에 저들이 요구로 할 만한 조건들을 모두 수용하고서 바짝 엎드리면서 알아서 설설 기고 있기는 했다. 고문단 파견이건 공사관 설치건 개항이건 기독교 허용이건, 어느 쪽도 서구열강들이 개항을 요구할 때 단골 레퍼토리로 꺼내 드는 조항들이었다.
그걸 이미 지금의 조선에서는 청의 침공에서 서역의 지원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지 하고 수용해버렸으니, 프랑스로서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일이 이렇게 잘 풀릴 리가 없는데? 프랑스 놈들이 돌아가면 대신들이 뭐라 마구 물어뜯겠지만 그거야 각오한 거고,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그래서 의문이었다. 너무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프랑스는 너무나도 순순히 협상에 응해주고 있었고, 내주게 된 것은 작지 않았으나 그 대가로서 당장 전쟁에 필요한 것들은 약속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의문이었다. 매일같이 꼬이기만 하고 엉망진창 우당탕이던 와중에, 열강들과 직접 교섭이 가능해진 것만으로 여기까지 일이 술술 풀린다고?
어딘가 이상했다. 정경일 주교의 통역 아래 프랑스어와 조선어 두 가지 언어로 각각 써 내려 가고 있는 조약서를 보면서, 나는 그런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사실로 밝혀졌다.
"자, 이것으로 양국은 역사적인 첫걸음을―."
"전하! 전하, 계십니까!"
"웬 놈이냐! 무엄하도다!"
막 서류의 작성이 완료되고 각각 준비해온 도장으로 낙인을 찍어 협정에 비준할 무렵, 숨을 가쁘게 헐떡이고 있는 무관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즉시 대신들의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무관은 상관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서는 거의 통곡하는 목소리로,
"전하, 급보이옵니다! 북적 야인들의 대군이 압록강을 넘어 국경에서 우군과 교전 중이라는 소식이 옵니다!"
라고, 쩌렁쩌렁 소리쳤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떠올렸다.
주청 프랑스 공사가 몸소 조선과 협상하려 청을 떠나 조선으로 향하는걸, 청나라에서 모를 까닭이 없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