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령강 전투 >
"쏴라, 쏴!"
타타타탕-!
한편, 대령강 하류.
그곳에서는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수적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뚫으려는 자-청군의 경우 족히 십수만이 넘는 병력을 밀어 넣고 있었던 반면, 거기에 맞서는 조선군은 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청군은 그 악명높던 팔기군이 주력이었던 반면, 조선군은 각각의 의복조차 통일되지 못하고 제각각인 것만 보아도 대부분이 정규군이기보다는 민병임을 시사했다.
누가 봐도 조선의 열세, 청의 우세로 보였지만-실상은 조금 달랐다.
청군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고, 조선군은 일방적으로 원거리에서 계속해서 조총을 쏘아대는 모양새였다. 개전 초기 조선군 총통부대의 포격으로 얼어붙은 강에 금이 가면서 청군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진 반면, 처음부터 강 너머에서 진을 치고 그들이 건너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조선군은 기세가 올라 마구 총포를 쏠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겁먹지 마라! 조선 놈들은 한 줌도 안 된다! 모두 돌격 앞으―."
풍덩!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오장들이 앞으로 나서보아도, 괜히 얼음이 깨져 물 아래로 빠지거나 조선군 포수들의 사냥감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이제 막 소설(小雪) 이 지나고 있던 초겨울에 아무리 북방이라고 해도 강이 꽁꽁 얼었을 리도 없었던 데다가 그 위로 포격까지 쏟아지니 얼음이 버틸 새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물에 빠진 오장들은 운이 좋으면 몸만은 건져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거운 갑옷이 물까지 먹다 보니 다시 떠오르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앞서서 설치던 오장들이 줄줄이 물귀신이 되어버리니 청군 병졸들은 더욱더 소극적으로 되었고, 강을 건너지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던 청군은 줄줄이 조선군 포수들의 사냥감이 되었다.
"빌어먹을, 안 되겠다! 지르갈랑, 3천의 기병을 줄 테니 상류에서부터 우회해서 측면에서 조선 놈들을 쳐라! 나는 이대로 저놈들의 시선을 끌겠다!"
"존명!"
결국, 견디다 못한 총사령관 보르지기트 셍게린첸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미 건너간 병사들은 그대로 계속 돌격하게 시켜 조선군의 시선을 끌어두고서, 별동대를 운영하여 측면에서부터 치는 전략이었다. 물론 조선군의 시선끌이용 미끼가 되어버린 병졸들은 그대로 물귀신이 되건 총에 맞아 죽건 어떻게 그 모든 역경을 뚫고 강을 건너가도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칼밥을 맞아 죽 건의 1택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따거-!"
"으흐흐, 나 혼자 죽을까 보냐. 이판사판이다. 같이 죽자 이 조선 놈들아!"
"말에서 내려라! 괜히 무거운 말 위에서 용쓰다간 물귀신 되기에 십상이다! 하마하라!"
타타탕!
셍게린첸의 몽골인 특유의 우수한 시력은 그의 병사들이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전의를 잃고서 셍게린첸이 퇴각명령을 내주기만을 바라면서 제자리에 주저앉아 울부짖고 있는 병사. 그리 좋지 않은 전황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잃지 않고 악에 받쳐 돌격하는 병사. 그리고 쩌억쩌억 갈라져 깨지고 있는 얼음 위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말을 버리고 두 발로 돌격하는 기병들까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아직 1각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전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후열까지 동요가 확산하여가고 있었다. 지금도 뒤에서 채찍을 휘둘러가며 도하를 서두르게 하는 무관들의 재촉이 없었다면, 병졸들은 더는 앞으로 내딛으려 하지 않을 터였다.
'그 여자의 아집만 아니었더라도 이토록 무의미하게 병사들을 잃을 일도 없었을 터인데!
셍게린첸은 이를 악물었다. 물론 강을 건너는데 기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계해야 했음에도 충분히 정찰하지 않은 건 그의 불찰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겨울이 끝나기 전에 전쟁을 끝내라는 서태후의 닦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고 은밀한 기동을 위해서는 5만의 기병이면 된다고 한 셍게린첸의 조언도 듣지 않고 무턱대고 16만에 달하는 대군을 떠맡긴 서태후였다. 덕분에 가뜩이나 부족했던 보급은 더더욱 부족해졌고, 겨울까지 끝내라는 시간제한은 더더욱 촉박해졌다.
말이 좋아서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이지, 충분한 군량을 챙겨오지도 못한 데다가 겨울이라 현지에서 보급품을 수탈하기도 어렵고 또 무리하게 너무 많은 대군을 끌고 온 탓에 1달에서 2달까지가 그들의 한계였다.
그 안에 조선의 항복을 받아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서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기습에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우선 하루라도 빨리 한양까지 내달려 조선의 왕을 사로잡고 항복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충분히 전략을 짤 시간도 없이 그대로 병자년의 침공 경로를 다습한 결과 조선군에게 그대로 침공 경로를 예측 당했고, 비단 이번 교전만이 유별날 것도 없이 청군은 침공 초기부터 셍게린첸이 예측 가능한 모든 방면에서 기습당하고 있었다.
"겁먹지 마라! 적들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보병이다! 우리 다이칭 구룬의 팔기군이 패할 이유가 없다! 다이칭 구룬 만세! 셍게린첸 친왕 전하 만만세!"
"막아라! 오랑캐들이 우군 포수들을 방해하게 둬서는 안 된다! 죽음을 각오하고 막아내라!"
그로부터 머지않아, 상류로부터 우회한 지르갈랑의 기병대가 강너머에서 일방적인 사격을 가하던 조선군의 측면으로 달려들었다. 뒤늦게 지르갈랑의 우회를 눈치챈 조선군 기병대가 달려들었지만, 수적으로 이미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서로를 향하여 일제히 화살을 주고받은 양군의 기병대는 각자 환도, 편곤, 장창, 부월 따위의 무기들을 손에 쥐고서 그대로 맞부딪혔고, 상류에서부터 우회해 내려오던 지르갈랑의 기병대는 위치적 이점을 살려 조선군 기병대를 밀어붙였다.
그러자 조선군 보병대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우측면에서 조선군 기병대와 청군 기병대의 교전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우열의 보병대가 방향을 틀어 그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우열의 이탈로 화력이 3분의 2로 줄면서 강 너머의 청군은 전열을 추스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이다! 전군 돌격! 오늘 안에 대령강을 건너야 한다. 죽을힘을 다하여 돌파하라!"
"""다이칭구룬 만세! 셍게린첸 친왕 전하 만만세-!"""
그리고 셍게린첸은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 즉시 셍게린첸은 전군 돌격을 명하면서 스스로도 말에 올라타 돌격하기 시작했고, 그에 고무된 청군은 조선군의 포격과 사격에도 상관하지 않고 돌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만큼 물에 빠지거나 조선군의 사격에 맞아 목숨을 잃는 병사들의 숫자도 늘어났지만, 워낙 수적으로 우위에 있던 청군이다 보니 한번 기세를 되찾고 돌격하기 시작하자 제법 많은 숫자가 도하에 성공하였다.
그렇게 도하에 성공한 병사들은 그대로 각자의 무기를 빼 들고 조선군 보병대를 향해 달려들었고, 백병전을 강요당한 조선군 총병들은 더는 강을 건너는 병사들에게 사격을 가하지 못하고 눈앞에 병졸들을 막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포망이 옅어지니 자연히 강을 건너는 병사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갔고, 애초부터 수적 열세에 있던 조선군은 빠르게 궁지에 몰려갔다.
"후퇴! 후퇴하라! 성으로 물러난다! 전군 철퇴!"
"으, 으아아아! 사람 살려! 아이고, 나 죽네!"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먼저 철퇴를 선택한 것은 조선군 쪽이었다. 역시나 민병의 근본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었던 듯, 철퇴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선군 병사들은 대열에서 이탈하여 무질서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나마 지방군 소속의 기병대와 총통부대의 경우 비교적 질서정연하게 철퇴 했으나, 그들도 겁에 질린 기색은 감출 도리가 없었다.
"추격하지 마라! 지금은 우선 도하에 전념한다! 먼저 도하한 병사들은 후열의 도하를 돕도록 해라!"
그러나 셍게린첸은 추격을 명하지 않았다. 당장의 전과를 올리기보다는, 그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한양까지 내달려 항복을 따내는 것이 더욱 중요했던 탓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일부 병사들은 끝까지 조선군을 추격하려 들었지만, 우선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추격을 멈추고 나무를 잘라 임시로 가교를 만들거나 위태위태하게 건너오는 병사들의 손을 잡아 쉽게 넘어 올 수 있도록 도왔다.
그 모습에 셍게린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역의 오랑캐들과도 일전을 겨뤄 승리를 거둔 적 있던 그였지만, 그런 그조차도 서태후가 일단 당장 출병할 수 있는 병력 전부를 끌어모아서 던져준 이 병사들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거기에 적들이 침공 경로조차 훤히 꿰뚫고 있는 판국에, 상대는 서역 오랑캐들도 아니고 조선이 아닌가. 겨울이 끝나기 전에 항복을 받아내라니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우군의 피해가 얼마나 되나?"
"그것이, 아직 파악 중이긴 하나…못해도 6천에 달하는 병사들을 잃고 그 배에 달하는 병사들이 부상을 당한 것 같습니다. …송구하옵니다."
부관의 보고는 그에게 아찔한 충격마저 가져다주었다. 물론 제법 상당한 숫자가 모였다고 하나, 상대는 어디까지나 민병이 아니던가. 그런 민병들을 상대로 개전 초기에 벌써 이런 피해를 입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만약 시간만 넉넉했더라도 얼마든지 대비하거나 회피할 수 있었던 기습이었다는 점이 그의 가슴을 더더욱 먹먹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다시 화북으로 돌아가 사교도 반군들이나 마저 처리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군.'
그러나 그렇게 후회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셍게린첸은 서둘러 마음을 다잡았다.
"행군을 서두른다. 어떻게 해서든 한양까지만 입성한다면 조선도 항복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다. 힘든 건 알고 있다만, 우국충정의 기세로 참고 견뎌내기를 기대하겠다."
"""존명!"""
마음을 다잡은 셍게린첸의 군세는 다시금 행군을 서둘렀다. 적어도 이틀 뒤에는 평양을 지나쳐야만 했다. 기병들은 모두 다시 말 위에 올랐고, 기병이 아닌 병사들도 군마의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말 위에 올라 행군을 서둘렀다. 미처 여분의 군마가 없어서 따라오지 못한 병사들은, 도보만으로라도 행군을 서둘러 기병들이 먼저 앞서가 한양을 포위하고 나면 그 뒤에 합류하여 본격적인 공성에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애초 16만에 달하던 군세를 둘로 나눠, 4만이 선행하고 12만이 뒤따르는 형국이 되었다. 그로서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들 전부를 말 위에 태울 군마를 준비하기에는 청도 이미 상당히 국력이 쇠한 와중이었다. 거기에 서태후가 원정을 닦달하여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못하고 출정했다 보니, 그 군마들의 질도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궁여지책이다만, 그래도 이대로 16만 전부가 굼뜨게 행군하다가는 오도가도 못하고 섬멸될 판국이다. 어떻게든 여기에서 승부수를 띄워야…!'
타타탕!
"빌어먹을, 또 기습인가! 어서 그 쥐새끼들의 위치를 파악해라!"
그러나 그렇게 그가 4만에 달하는 선봉을 직접 지휘하게 된 다음에도, 조선 민병들의 기습은 계속되었다. 물론 숫자가 대단치 않다 보니 대단한 피해는 없었지만,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계속해서 공격해오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게 마련이었다. 산도 많고 숲도 많고 개울도 많은 조선반도이다 보니 기습이 있을법한 곳은 얼마든지 있었고, 그가 기습을 예측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그곳에는 조선 민병들이 숨어있었다.
거기에 조선 포수들의 사격 실력은 무시할 바가 못 되었다. 어디에선가 홀연히 나타나서는 오장이나 초관들을 고꾸라뜨리고 사라지니, 사람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영락없이 인간 사냥꾼에게 사냥을 당하는 사냥감의 꼬락서니가 되어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나마 총지휘관인 그는 기분이 더러운 정도로 끝났지만, 휘하병졸들 사이에서는 점점 동요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사기가 높다고는 할 수 없는 오합지졸들의 집합이었다. 이래서야 한양에 다다르기도 전부터 탈영병들이 속출할 판국이었다.
"우군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가?"
"3명이 죽고 10여 명이 다친 정도로, 피해는 크지 않습니다. 하오나, 또다시 행군이 지체되어…."
"…젠장, 부상병들은 두고 간다. 한시라도 빨리 한양에 도착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다. 조선인들이 지난 전쟁에서도 민병을 꾸려 싸웠다는 것은 전해 들었지만, 이 정도로 극성이라고 하지는 않았었는데?'
문득, 셍게린첸에게는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조선 민병들의 존재야 이미 지난 전쟁에서도 전해 들었던 바이고, 조선 조정에서 지방 민병들의 육성을 독려하고 있다는 소식은 첩보를 통하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고려해도 민병들의 습격이 너무 자주 이뤄졌다. 처음에는 그저 조선인들이 극성이라고 여겼지만, 여기까지 자주 일어난다면 누군가 민병들의 습격을 지휘하는 이가 있거나 최소한 저 민병들이 저렇게 사력을 다해가며 싸워야 할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당최 셍게린첸으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하, 전선의 병졸들이 조선인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 조선의 왕이 전선에 나왔다는…."
"허튼소리. 조선의 왕은 아직 약관도 안된 어린아이다. 그런 갓난아이가 쉬이 나설 수 있을 만큼 전장은 온정이 있는 곳이 아니야."
그의 휘하 장수 지르갈랑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셍게린첸은 단칼에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지난 500여 년간 있었던 크고 작은 전쟁 중 시종일관 도망치기만 바빴던 조선왕이었다. 아직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은 어린 조선왕이 겁도 없이 이곳 전선까지 나와 있을 가능성은 없다시피 했다.
"뜬소문에 신경 쓰지 말고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한양에 도달하는 것만 생각하도록. 한양에 도달하여 조선왕을 사로잡으면 우리 다이칭구룬의 승리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좋아."
"…알겠습니다, 전하."
지르갈랑 또한 그냥 그런 소문이 있길래 셍게린첸에게 보고한 것뿐인 듯, 그 또한 셍게린첸이 딱 잘라 그 가능성을 부정하자 더는 이에 관하여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이만 물러났다.
그 뒤로 며칠 밤낮을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않고 달려왔을까. 족히 수십이 넘는 병졸들이 불귀의 객이 되었고, 족히 수백이 넘는 부상병들이 산속에 내팽개쳐진 채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저건 무엇이더냐?"
그러나 그들의 희생 끝에, 셍게린첸은 그를 가로막는 무수한 민병들의 방해를 뚫고서 마침내 평양성에 다다랐다. 그래, 다다랐다. 한양성이 아니라, 평양성에 말이다.
그것은 이상한 표현이었다. 평양성은 단지 통과지점일 뿐, 목표 지점이 아니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셍게린첸은 '다다랐다'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째서, 조선왕의 어기가 저 망루 위에서 펄럭이고 있느냔 말이다!"
그가 마주한 평양성 곳곳에서는, 조선왕의 어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것은 곧, 한양에 있어야만 할 조선왕이 평양성까지 친히 친정을 나왔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제1 목표는 더는 한양이 아니라 평양성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발이 느린 포병들을 뒤로 내팽개치고서 평양성까지 기병들만으로 내달려온 셍게린첸의 청군은, 성벽 곳곳에 화포가 늘어선 평양성을 공략할 방법이 없었다. 괜히 제대로 된 화기도 없는 기병들을 성벽에 가까이 대봤자 무의미한 죽음만 늘릴 따름이었다.
셍게린첸은, 그저 하루라도 빨리 보병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먼발치에서 멍하니 조선왕의 어기를 바라보는 수밖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