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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고종대왕 일대기-31화 (31/530)

< 총체적 난국 >

그 뒤로 양자 간의 충돌다운 충돌은 한동안 벌어지지 않았다. 청군은 조선왕을 말로 윽박질러서 항복을 받아낼 수는 없을 것임을 재확인한 만큼 봉화산에서 나무를 잘라다가 사다리를 만들며 공성전에 대비하기 시작했고, 조선군은 아직 청군이 숫자가 부족하여 4면이 포위당하기 전에 꽁꽁 얼어붙은 동강을 통해 필사적으로 수성전에 필요한 물자들을 추가로 보급했다.

이따금 청군의 기병들이 앞으로 나와 평양성의 조선군을 향하여 모욕적인 언사를 날리고는 했지만, 그때마다 소년 왕 이형이 친히 나서 주먹 감자로 맞상대하다가 나중에 고의로 이형을 괴롭힐 작정으로 번갈아 가면서 조롱에 나서니 아예 나오는 족족 궁사들이 활로 저격해버린 뒤로는 그런 욕설전조차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한동안 양군은 지금이 전시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나흘째로 끝이 났다. 마침내 청군 후속 보병대가 전장에 다다른 것이다. 그 숫자만 물경 12만. 모두 합하면 16만에 달하는 대군이 모였다. 거기에 맞서는 평양성의 조선군은 나흘 동안 성민들을 추가로 징병하고 황해도에서 도착한 지원군을 받아들인 결과 약 4만 4천 명이 되었다. 그 뒤로는 8만에 이르는 군세가 보름 안에 평양성까지 다다르기로 예정되어있어, 결과적으로 양군의 시간제한은 보름이 되었다.

즉, 보름 안에 수적으로 4배에 달하는 청군이 평양성을 깨트리는가, 아니면 보름 동안 난공불락의 평양성을 끼고 있는 조선군이 버텨내는가로 이번 전쟁의 승패가 결정 나게 된 것이다.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몸소 전장에 나선 그 용기, 높이 살만하다. 그러니, 이대로 숨을 거두기에는 너무나도 아깝도다. 하여, 제안하건대 만일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혓바닥이 길다 이 되놈들아! 왜, 휘둘리더냐? 졸보처럼 빌빌거리지 말고 어서 너의 애비 되시는 이 어르신께 목을 바치지 못할까!"

"…기필코 그 혓바닥 뿌리부터 뽑아가겠다. 내 맹세하마, 이 맹랑한 꼬맹이 자식."

청군에 의한 최후의 항복제의는 역시나 마찬가지로 이형의 주먹 감자와 함께 무산되었다. 청군은 그 즉시 평양성을 전방위에서 포위했고, 조선군 또한 성벽 위 불랑기포에 포탄을 장전하고 청군이 성벽을 기어오를 것에 대비하여 끓는 기름을 준비하였다. 그날 밤 성내에서는 청군이 포위망을 완성하기 전에 기병대를 이끌고 출진하여 야습을 가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이는 소년 왕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야습이라니, 경들은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오? 청군의 기병은 4만으로 우군을 크게 웃돌고 있소. 도대체 무슨 수로 야습을 가한단 말이오?"

"하오나, 전하. 만일 성공하게 된다면 적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지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저들은 이제 막 급히 평양성까지 내달려온지라 기력도 부족할 것이옵니다. 한 번쯤은 시도해봄 직합니다."

"말이야 그럴싸하오만, 그 전에 한 가지만 확인해도 괜찮겠소? …우군의 병졸들이 이 어둠을 틈타 적들을 야습하고서 시간에 늦지 않게 성안에 돌아올 만큼의 숙련도가 있는 것 맞소? 혹은, 그만한 용장이 있소이까? 솔직하게 대답해주시오. 지금 조선에 그런 인재들이 있소?"

대답은 당연히도 없었다. 결국, 그날 밤은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푹 재운 다음 다음 날 아침에 있는 적들의 대대적인 공격에 대비하기로 결정되었고, 이는 청나라 또한 사정은 비슷했다.

"전하, 조선 놈들의 야간경계가 허술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는 필시 성을 큰 피해 없이 함락시킬 절호의 기회입니다! 당장 병사들을 깨워 야습을 가합시다!"

"뜻이야 가상하다만…한 가지만 확인해두도록 할까. 확실한 야습을 위해서는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올라야 할 텐데, 이런 야밤 중에 저들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조용히 성벽을 기어오를만한 숙련도가 우군 병졸들에게 있는가? 여차하면 사다리에서 미끄러지거나 우군끼리 전투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혹은, 이런 야밤 중에 성벽을 정확히 맞출만한 숙련도를 갖춘 총통부대가 있는가?"

역시다 대답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날 밤 청군은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푹 재운 다음 다음 날 아침부터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여 단번에 성을 함락시키기로 정하였고, 양자 모두 비슷한 이유로 그날 밤은 전투를 회피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전투는 이튿날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다이칭구룬 만세! 셍게린첸 친왕 전하 만만세!"

"방포! 방포하라! 저 북적들이 얼씬도 못 하게 만들어라!"

먼저 시작을 알린 것은 청군의 궁기병대였다. 날쌘 기동력을 이용하여 요리조리 시선을 끌며, 우군 보병대가 무사히 사다리를 끌고서 성벽까지 도달하기를 돕는 역할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질서정연하게 내달리기 시작한 궁기병대가 가장 먼저 돌출되기 시작하자, 그 즉시 성벽 위에서도 조선군이 성벽 위에 불랑기포에 불을 먹이기 시작했다.

궁기병들이 성벽 가까이 다가와 화살을 쏘아대기 전에 요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피시식….

"…허?"

그중 제대로 방포된 불랑기포는 3할이 넘지 않았다. 하도 오랫동안 제대로 된 방포훈련도 하지 않고서 성벽 위에 방치해오다 보니, 포신이 아침 이슬을 먹어 물기가 찬지도 모르고 일단 화약부터 넣고 불을 먹였더니 화약이 물을 먹어 제대로 불이 붙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방포된 포탄들도 대부분은 힘없이 성벽 거의 바로 앞에 떨어졌고, 결과적으로 청군 궁기병대는 운 나쁘게 직격하여 사지가 찢겨 날아간 십수 명을 제외하고서는 어떠한 피해도 없이 성벽 바로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푸하하하핫! 어리석은 조선 놈들! 저런 꼴로 무슨 전쟁을 치른다는 거냐? 저 멍청한 조선 놈들에게 화살 밥을 먹여줘라!"

슈슈슉-.

그러나 조선군을 비웃으며 있는 힘껏 활을 당긴 청의 궁기병대도 한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백련교의 난 시절부터 실전을 위한 군대라기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군대라는 소리를 들었던 팔기군답게, 그들의 자랑거리였던 궁기병대에 보급된 활과 궁기병대를 구성하는 병졸들의 질조차 바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기는커녕 온갖 군납 비리로 더럽혀진 엉터리 활과 팔심조차 부족한 병졸들이 합쳐지자 화살은 본래 날아가야 할 절반도 날아가지 않았고, 결국 성벽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줄줄이 떨어졌다.

"아이고, 나 죽네…?"

그 중 운 좋게도 바람을 타고서 날아간 몇 발은 성벽을 넘어 성안의 조선 병졸들에게까지 닿았지만, 화살에 맞고서 엄살을 떨던 조선군 중 사상자는 드물었다. 막상 화살을 맞고서 보니, 화살촉이 돌이나 쇠로 된 것이 아니라 나무를 깎아 만들었던 것이다. 바람에 날려 살랑살랑 날라온 나무 화살촉은 사람의 살가죽을 뚫을 만큼 날카롭지도 위력적이지도 못했고, 운 나쁘게 눈, 코, 귀 같은 약점에 맞은 병사들을 제외하면 누구 하나 다친 사람이 없었다.

타타탕-.

"철퇴! 철퇴 하라! 철퇴! 제기랄, 이게 무슨 꼴이냐!"

거기에 궁기병대가 조총의 사거리까지 닿자, 그 즉시 성벽 위에서는 무자비한 사격이 쏟아 부어졌다. 조총으로 호랑이까지 때려잡는 조선 포수들이 주력이 된 조선 총병들의 사격은 귀신같이 말 위에 궁기병들을 꿰뚫었고, 그걸로 궁기병대는 사기가 바닥을 치면서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부터 줄줄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자연히 제 한 몸 살고자 등을 보이고서 궁기병대가 줄줄이 도망치면서 대열은 무너져 버렸고, 대열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후퇴했을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을 조총 사격에 노출되면서 성벽 아래에 청군 궁기병대의 시체가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청군 보병대의 사기도 덩달아 흔들렸음은 덤이었다.

"쏴라, 쏴라, 쏴! 전하의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더냐! 어서 쏴라!"

퍼퍼펑-.

그리고 그제야 급한 대로 입고 있던 면옷으로 불랑기포를 청소한 성벽 위에 조선군 총통부대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들 하나하나의 명중률은 형편없었으나, 그래도 상당한 숫자가 모여 포망을 이루자 그것도 상당한 진격의 위협이 되었다. 궁기병대가 패주하는 와중 포격까지 뒤집어쓰자 아직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청군 보병대에서는 탈영병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성을 끼고서 싸우고 있던 조선군과 달리 청군은 맨몸으로 요새로 달려드는 꼴이었으니 근본적인 의욕의 차이가 거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 살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꺼흐흐흑, 살려주세요. 따거!"

"시끄럽다! 어서 빨리 돌격하지 못할까! 후퇴하는 겁쟁이 놈들은 내 이 검으로 도륙을 내주겠다! 다이칭 구룬의 이름에 먹칠하지 마라!"

결국, 보다못한 청군 무관들이 나서서 도망치는 병졸들을 보이는 대로 베어 죽이고 난 다음에야 청군은 다시 진격할 수 있었다. 이미 사기는 바닥을 친 다음이었지만 그래도 16만에 이르는 숫자가 일제히 성벽에 몰려들다 보니 포격과 총격에 휩쓸리면서도 상당한 숫자가 성벽까지 몰려들었고, 그들은 곧 일제히 사다리를 성벽에 걸치고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어차피 조선 놈들은 우군에 비하면 한 줌도 되지 않는다! 성벽 위에 오르기만 하면 우군의 승리다!"

우지직-.

그러나 청군의 불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다리를 제대로 만들 줄도 모르는 병사들이 눈에 파묻혀있던 축축한 나무들을 베어 만든 사다리가 십수 명의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누구 보다 앞장서서 성벽을 기어오르던 하급 무관들이 가장 먼저 성벽 아래로 떨어졌고, 그 아래에서 성벽을 기어오르려 환도나 창 따위를 들고 있던 청군 병졸들의 대열 위로 떨어져 그대로 꿰뚫려 꼬치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운 좋게 부러지지 않은 사다리들은 2할이 넘지 못했다. 자연히 성벽 아래에서는 대혼란이 벌어지며 진격에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푸하하하, 오랑캐 놈들 저 몰골을 봐라! 이때다! 어서 끓는 물을 부어라!"

쩌저적-.

다만 조선군 역시 비웃을 처지는 되지 못했다. 기름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물을 끓여다가 가져다 부었더니, 날씨가 너무 추워서 끓는 물을 가져다 붓는 즉시 허공에서 얼어붙어 버리면서 돌을 던지는 것만 못한 꼴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힘없이 성벽 아래로 떨어진 얇은 얼음벽은 다소 따가웠을지언정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청군을 막아주지는 못했고, 상당한 숫자의 청군이 성벽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성벽 위로 올라온 청군은 뒤늦게 그들의 실수를 후회했다. 사람이 너무 무거워서 사다리가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일 작정으로 이런저런 짐들을 벗어 던지다 보니, 막상 성벽 위로 올라왔더니 영락없이 경무장이 되어 성벽 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조선군 민병들보다도 무장을 가볍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저 오랑캐 놈들은?"

"제기랄,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라! 우리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줘야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군에게 활로가 열린다!"

"으아아아! 주, 죽고 싶지 않아!"

졸지에 조선군 민병들 틈에 헐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꼴로 고립된 청군은 각오를 다지고서 각자의 무기를 들고서 조선군을 향하여 달려들었고, 원거리에서는 잘만 청군을 사냥하던 조선군은 청군의 시퍼런 날붙이들에 겁을 집어먹고서 패주하기 시작했다. 불과 십수 명도 되지 않는 청군 병졸들의 돌격에 기백이 넘는 조선군이 후퇴한 것이다. 모두가 근접전은 꺼리고 멀찍이에서 활이나 총 따위로 승부를 보는 것만 선호하던 조선군의 패착이었다.

그러나 정작 청군 병졸들의 영웅적인 활약은 전황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들 뒤로 따라서 성벽을 기어올라야 했을 후속 병력이 사다리들이 또다시 줄줄이 무너져내리면서 따라오지 못하였고, 그러면서 환도나 부월 따위를 들고서 십수 명의 청군이 제아무리 날뛰어봤자 성벽 위에서 고립된 꼴을 면치 못했던 것이었다.

"오냐, 내가 직접 도륙을 내주마, 이 오랑캐 놈들아! 모두 나를 따르라!"

결국, 뒤에서 보다 못한 조선군 무관들이 환도를 빼 들고 달려들어 성벽 위에 청군 병졸들의 맞상대를 시작하자 뒤늦게나마 사기를 되찾은 조선군 병졸들이 전선에 복귀하였고, 그들은 무관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멀찍이에서 조총으로 청군 병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저격하는 방식으로 청군의 침공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일 리는 없었다. 곧 보병대가 시간을 끄는 동안 사거리 내로 접근한 청군 포병대가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전군 방포! 방포하라! 저 낡아빠진 골동품 성 따위 단박에 깨부수고서, 먼저 간 동지들의 원수를 갚…!"

투쾅-.

자신 있게 고함을 치던 청군 무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오랫동안 정비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던 낡은 대포의 포문에 녹이 슬어 뻑뻑하게 변한 탓에, 화약이 안에서 터지고서도 포탄이 바깥으로 내쏘아지지 못하고 포문에 걸리면서 화약의 폭발이 대포 안에 갇혀 폭발해버린 것이다.

청군의 화포가 연달아 줄줄이 폭발하면서 후방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청군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후방이 습격당한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적습이다! 후방에서 조선 놈들이 공격해온다!"

"저리 비켜! 뒤에서 조선 놈들이 오고 있단 말이다! 어서 앞으로 가지 못해?"

"밀지 마, 이 멍청아! 앞에도 조선 놈들이라고!"

그러자 또 다른 난장판이 벌어졌다. 사다리조차 내팽개치고서, 청군 병사들이 전우들의 시체와 성벽 중간중간에 튀어나온 돌들을 디딤돌 삼아 성벽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포병대에게서 일어난 폭발을 적습으로 오인한 후열의 청군이 앞으로 도망치면서, 전열의 청군이 그 압력을 견디다 못해 어떻게든 억지로나마 앞으로 나아가려 한 결과였다.

이는 무모한 선택이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유일한 활로이기도 했다. 그 즉시 성벽 위에서는 성벽을 기어오르는 청군을 향하여 총격과 포격을 퍼부어 댔지만, 그런데도 뒤로 도망칠 수 없었던 청군은 끝없이 성벽 위를 기어올랐고 결국 끝내 몇몇은 성벽 위에 오르는 데 성공하였다.

"오랑캐들이다! 카, 칼! 아니면 창이나 몽둥이라도! 누구 들고 있는 사람 없나?"

"으아아악, 죽고 싶지 않아! 가, 가까이 오지 마라. 이 오랑캐 놈들아!"

"물러서지 마라! 죽을 힘을 다하여 맞서! 전하께서 보고 계시니라!"

그리고 또다시 청군 병졸들이 냉병기를 들고서 달려들기 시작하자, 조선군 진영에서는 그 즉시 동요가 터져 나왔다. 뒤에서 무관들이 어떻게든 전열을 유지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없었다. 이번에는 워낙에 기어 올라오는 청군 병졸들이 많았을뿐더러, 조선군은 근본적으로 근접전은 쥐약이었던 탓이었다. 결국, 또다시 수백에 이르는 조선군이 성벽 위에서 밀려났고, 그 빈틈을 청군이 메우기 시작했다.

"밀지 마, 이 얼간이 놈들아! 떨어진다고!"

"웃기지 마라! 나라고 해서 어디 갈 곳이 있는 줄 아냐! 너야말로 비켜 이 자식아!"

"어어어, 떠, 떨어진다! 누가 나 좀 잡아줘!"

그러나 뒤에서 일단 무턱대고 밀어댄 탓에 억지로 기어오른 청군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성벽 위에 오르기가 무섭게 거의 폭발할 듯한 기세로 뒤에서 밀어대는 전우들에게 떠밀려 앞으로 점점 밀려났고, 곧 성벽을 건너와서는 그 반대편 벽 아래로 떨어져 낙사한다는 비참한 말로에 직면하였다. 거기에 조선군 병졸들도 일단 물러나기는 했어도 성벽 위를 빼곡히 메운 전우들 탓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청군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도 없었다.

결국, 성벽 위로 기어 올라온 청군 병졸들은 좌우로는 조선군에게 끼이고 앞뒤로는 전우들이 밀어대는 통에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줄줄이 성벽 아래로 추락해 낙사해 갔고, 그렇게 족히 300여 명이 넘는 청군 병졸들이 낙사하거나 반병신이 되고 난 다음에야 압력이 줄어들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위로 뒤늦게 혼란을 수습하고 다시 방포하기 시작한 청군의 포탄 수발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성벽 위는 공포에 떠는 조선군과 허리 아래만 간신히 남은 청군 시체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뭔 개판이야?"

그걸 내성의 망루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화북으로 돌아가고 싶군."

그 꼴을 말 위에서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셍게린첸 또한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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