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화되는 전투(2) >
"쏴라, 쏴라, 쏴! 오늘에야말로 저 낡아빠진 성벽을 무너뜨리자!"
퍼퍼펑-.
시작을 알린 것은 청의 화포부대였다. 동이 트는 동안 화포부대 전부를 다경문과 선요문 근방에 집중시킨 청의 화력은 실로 장관이었다. 비록 여전히 훈련도는 형편없어 대부분은 위로 스쳐 지나가거나 조금 낮게 조준하여 성벽에 닿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지만, 워낙에 한 번에 쏟아붓는 양이 많다 보니 그래도 적지 않은 숫자가 성벽에 꽂혔다.
물론 조선군이라고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청의 화포부대가 성벽까지 사거리가 닿는다는 건, 지리상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조선군 총통부대의 사거리 또한 청의 화포부대까지 닿는다는 것이었다. 조선군은 그 즉시 청의 화포부대를 향하여 포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콰콰쾅-.
"끄아아악, 내 팔! 내 팔! 내 팔이 없어! 빌어먹을, 어디 간거야아!"
"주, 죽고 싶지 않아! 이건 미친 짓이야. 어무이! 어무이이!"
"겁먹지 마라! 전군 돌격! 어떻게든 성을 넘는 것만을 생각해라! 다이칭 구룬 만세! 셍게린첸 친왕 전하 만만세!"
조선군 화포부대의 대응 포격이 청의 화포부대를 휩쓸었다. 시각적 충격은 대단했지만, 실상 대응 포격에 부서진 포대는 1곳에 지나지 않았다. 구식 화포의 형편없는 명중률도 명중률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조선군의 훈련도가 높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실제 파괴력은 대단치 않아도 시각적, 청각적 충격은 대단하다 보니 청군 화포부대에서는 즉각 동요가 터져 나오며 몇몇 병졸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청군 화포부대도 훈련도가 높지 않다 보니 순식간에 사기가 바닥을 친 것이다.
일시적으로 포병부대가 공황에 빠지면서 포격이 중단되자, 그 즉시 청군에게는 총돌격 명령이 떨어졌다. 후방으로 도망치려던 병졸들은 후방이 돌격하는 우군 병사들로 가득 차면서 밟혀 죽거나 아니면 대열에 다시 복귀해야만 했다. 물론, 다시금 포격이 시작되려면 우선 병졸들이 냉정함을 되찾은 다음이 될 터였다.
"전하께서 보고 계시다! 추태를 보여드려서 되겠느냐! 대조선국 천세! 국왕 전하 천천세!"
타타탕-.
그 즉시 성벽 위에 조선군으로부터도 총격과 궁시가 쏟아졌다. 이미 한차례 실전을 겪은 덕분인지, 첫날만 해도 어수선한 감이 없지 않아 있던 화망은 한층 촘촘했고 맹렬했다. 혹자는 미간에 맞아 즉사하였고, 혹자는 어깨에 맞아 휘청이다 뒤에 따라오던 우군에 부딪혀 쓰러진 뒤 우군에 짓밟혀 죽었다. 또 혹자는 화살에 목을 꿰뚫려 컥컥거리다가 숨이 끊어졌고, 혹자는 앞도 보지 못한 채 앞에 가던 병사가 맞은 총알에 덩달아 꿰뚫려 뒤에 오던 병사와 함께 3명이 나란히 이승을 떠났다.
전장에 죽음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익숙해진 것은 조선군만이 아니었다.
"당황하지 마라! 한 사람씩 차근차근 올라가면 된다! 모두 줄을 던져라!"
청군은 임시로 가죽을 꼬아 만든 줄을 갈고리 따위를 던져 성벽에 고정한 다음 그것을 타고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가죽의 재료는 청군이 입고 있던 방한 장비들이었다. 미리 준비한 사다리들이 줄줄이 망가져 버리면서, 급한 대로 공성 장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그나마 총사령관인 셍게린첸이 몸소 그가 아끼던 늑대 가죽옷을 내놓지 않았다면 무관들은 여기에 동참하지도 않았을 것일 뻔했다.
그리고 일단 무턱대고 성벽 위를 기어오르려 했던 첫날과는 달리, 몇몇 병사들은 후열에 남아 총과 활로 성벽 위에 조선군을 노리고 견제사격을 퍼부었다. 물론 성벽이 총탄 대부분과 화살을 막아준 덕분에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렇게 후열에서 청군이 견제사격을 가할수록 성벽 위의 조선군도 그 기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총알과 화살이 퍼부어지는 와중에 고개를 들고서 적병을 조준하자면 상당한 담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됐다! 바로 이 기세다! 이 기세를 타기만 한다면-."
퍼억-.
"돌이나 먹어라 이 빌어먹을 오랑캐 놈들아!"
그러나 성벽 위를 기어오른 청군을 반겨준 것은 조선군의 돌팔매질이었다. 앞장서서 성벽을 기어올랐던 용맹한 청군 무관은 고개를 내미는 즉시 그의 머리만 한 크기의 짱돌을 맞고서 나가떨어졌고, 두 번 다시 성벽을 기어오르지 못했다. 조선군이라고 어제 전투에서 근접전에서 우군이 맥을 못 쓰는 것을 뻔히 보고서도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을축년의 정월 대보름 석전은 다소 이르게 열렸다. 성벽 위에 올라온 청년들, 노인네들, 여인들, 어린이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석전으로 갈고 닦은 투석 솜씨를 뽐냈다. 청군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족족 짱돌에 맞아 성벽 아래로 떨어졌고, 그렇게 성벽 아래로 떨어진 이들은 두 번 다시 성벽을 기어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워낙 사람이 많았다. 평양에 있는 짱돌의 수보다 성벽을 기어오르려는 청군의 숫자가 많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기세 좋게 짱돌을 던져대던 석전꾼들은 점차 하나둘씩 지쳐 갔고, 그만큼 무사히 성벽을 기어오르는 병졸들도 늘어났다.
"이번에야말로 도륙을 내주마, 이 조선 놈들아!"
"어전이니라! 북적 야인 나부랭이가, 무엄하도다!"
챙강-.
그에 맞선 것은 편곤을 든 오군영 예하의 기병들이었다. 애초에는 전투 후 퇴각하는 청군을 뒤쫓기 위하여 후방에서 쉬며 기력을 남기려 한 이형이었지만, 워낙에 민병 중심의 조선군이 근접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 보니 참다못해 기병들을 하마 시켜서 성벽 위로 올려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효과는 확실했다. 성벽을 기어오르느라 창처럼 거추장스러운 무기들을 들지 못한 청군 병졸들은 편곤의 일격째에 환도가 부러지고 이격째에 두개골이 뭉개져 떨어져 나갔다. 썩어도 오군영이고 중앙군이라는 듯 기병들은 성벽을 기어오르느라 지친 청군을 올라오는 족족 베어 넘기거나 때려눕히며 수월히 성벽 위를 사수했고, 기병들의 기세에 눌려 잠시 주춤거리면 그 즉시 성벽 위의 포수들로부터 총격이 퍼부어졌다.
"방포! 방포! 방포하라! 어떻게든 성을 함락시켜야만 한다!"
그러자 다급해진 것은 청군이었다. 가까스로 전열을 정비한 청군 화포부대는 우군이 사선상에 있어도 개의치 않고서 마구 포탄을 퍼부어댔고, 그런 무자비한 포격의 성과로 성벽 위에 청군과 조선군이 한꺼번에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다만, 피해가 보다 컸던 것은 당연히 성벽을 기어오르던 와중인 청군이었다. 포탄이 성벽을 뒤흔들면서 그 충격으로 성벽에 고정되어있던 갈고리가 떨어지면서 그와 연결된 가죽 줄에 매달려있던 청군 십수 명이 줄줄이 이승을 하직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 직후 후열의 보병대를 타격하고 있던 성벽 위의 조선군 화포부대가 다시 청군 화포부대를 조준하여 포격을 퍼부었다. 여전히 명중률은 시원치 않아서 이번에는 단 1개의 포대도 부수지 못했지만, 시각적 청각적 효과는 여전히 굉장했다. 다시금 동요하기 시작한 청군 화포부대는 포대를 방치하고서 도망치거나 무리하게 포격속도를 끌어올렸고, 포대를 방치하고서 도망치려던 병졸들은 뒤에서 대기 중이던 청군 기병대의 손에 붙잡혀 죽거나 포기하고서 원대 복귀했다.
다만 공포에 질려 무리하게 포격속도를 끌어올린 이들의 결말은 좋지 않았다. 포구 안에 타고 남은 화약을 다 닦아내지도 않고서 무턱대고 포탄부터 쑤셔 넣다 보니, 아직 불씨가 남아있던 화약이 아직 포수가 불을 먹이지도 않았는데도 발화하여 포대가 폭발하는 경우가 속출한 것이다.
물론 이는 성벽 위의 조선군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양측 모두 훈련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대규모 화포부대를 운영한 결과였다. 그날 하루만 조선에서만 2개 포대, 청군에서 5개 포대가 기폭 했다. 그나마 조선군이 적었던 까닭은 그저 청군에 비해 동원할 수 있었던 화포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치이잇,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탄환은 얼마 없지만, 오랑캐들의 무기를 쓴다. 전군 방포!”
콰콰쾅-.
결국 견디다 못한 청군 포병대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지난 아편 전쟁 이후 청의 조정에서 되는 대로 구입하여 구비한 서역의 대포들이었다. 물론 서역 열강들이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한세대 가량 뒤쳐지고 있었으나, 그 화력과 정확도는 무시할 바가 못되었다.
청군 포병대의 비참하기 그지없는 훈련도에도 불과하고 서역의 후장식 대포들은 제 역할을 해냈고, 곧 성벽 위는 죽음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끄, 끄아아악! 어무이, 어무이! 내 팔, 내 팔이!"
"당황하지 마라! 전군 산개! 산개 하라! 오랑캐들의 화망에 걸려들어서는 안된다!"
"지금이다! 전군 돌격! 조선 놈들이 물러나는 틈을 타 사이로 파고든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도 변화가 발생했다. 구비한 포탄이 부족하여 비록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3차례에 걸친 일제사격은 성벽 위에 밀집되어 청군의 돌격을 저지하던 조선군 전열에 크나큰 틈을 만들어 버렸고, 앞선 전투로 어느 정도 죽음에 익숙해진 청군 무관들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곧 성벽 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나마 청군 병졸과 무관들의 숙련도 부족으로 돌격은 무산되었고, 혼란해 하는 와중에도 뒤에서 미는 아군 병졸 탓에 뒤로 물러날 수도 없던 조선군은 끝까지 전열을 사수해냈다.
조선의 하마 기병들 또한 성벽 위가 아수라장이 되는 와중에도 꿋꿋이 그들의 할 일을 다하였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성벽 위는 큰 변동 없이 양군 병졸들이 밀고 밀리는 양상이 반복 되었고, 이에 따라 청군의 공세도 활력을 잃어 무기력해졌다.
"후퇴! 후퇴하라! 날이 밝는 대로 내일 다시 공략한다!"
결국, 해가 저물 때까지 결판은 나지 않았다. 청군은 끝내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고, 조선군은 다시 한번 성을 지켜냈다.
노을이 질 무렵 청군은 후퇴를 알리는 징을 울렸고, 전날 살기 위하여 무질서하게 도망치던 모습이 무색하게도 이번에는 어설프긴 해도 무관들의 지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려는 시늉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도망치는 청군을 가만히 봐주고 있을 조선군도 아니었다. 그 즉시 짱돌과 총알과 화살이 그들 머리 위로 쏟아 부어졌고, 청군은 퇴각을 지원한 궁기병대의 견제사격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숫자의 병졸들을 잃고 물러나야만 했다.
성벽 위에는 조선군과 청군의 시신으로 뒤덮였고, 성벽 곳곳에는 청군 포병대의 탄흔이 고스란히 남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 중 서역의 후장식 포대는 3차례에 걸친 포격이 전부였음에도 성벽 구석구석에 주먹만한 크기의 구멍을 만들어 놓는 등 성벽을 지키는 조선군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이날 조선군의 손실은 2천여 명, 청군의 손실은 6천여 명이었다.
여전히 숫자만 따지자면 조선군의 우세로 보였지만, 전날에 비하면 5배 차에 이르던 교환비율이 3배 차로 줄어든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