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전자전 >
"모조리 하옥시켜라!"
"저, 전하! 제, 제발 자비를…!"
"""주상전하 천세! 대조선국 천세! 천천세!"""
소년 왕은 자비를 베풀지 않고서 궁에 있던 김좌근 일당 전부를 옥에 가두었다. 모조리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용서해줄 생각도 없었다. 저들에 대한 처벌은 앞으로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으로 미뤄도 충분했다.
온 한양 땅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 천세 소리는 한 시진이 지나도록 멈추지를 않았다. 한양의 백성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승전의 환희에 가득 찼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서 누구나 거리에 뛰쳐 나와 소년 왕을 칭송했다. 그 누가 보아도, 한양의 민심은 소년 왕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것은 곧 아직 주저하고 있던 이들의 망설임을 치워버리는 결정타였다. 차마 금군에게 직접 무기를 겨누지도 못하고 허둥지둥거리고만 있던 안동 김씨의 사병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서 투항했고, 오군영의 무관들은 스스로 몸을 포승줄로 묶은 채로 투항했다. 몇몇 마지막까지 단념하지 못하고서 항전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미 궁이 접수당하고 사방이 적인 채로 항전해봤자 오래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소년 왕이 한양성에 입궐하고서 불과 한 시진이 안되어 도성 내의 모든 반군 세력은 분쇄되었다. 세도세력의 이름난 고관 중 붙잡혀 고문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이들은 비상을 삼켰고, 그만한 담력이 없던 이들은 도망치려다 도성 백성들의 손에 붙잡혔다. 운 나쁘게도 멍석말이 중에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었다. 유별나게 평판이 좋지 않은 부패 관료들이었다.
"노비 문서를 모조리 불태워라! 여봐라, 역적들의 곳간을 열어 잔치를 치르자꾸나! 역적들의 술 창고를 싹쓸이해와라!"
"""주상 전하 천세! 대조선국 천세! 천천세!"""
소년 왕의 교시는 그런 한양의 들뜬 분위기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도성 내에 있던 세도가문들의 저택들은 금위영 기사들에 의하여 강제로 문을 열어젖혀야 했고, 소년 왕은 세도가문들이 그동안 쟁여두고 있던 곳간들을 깡그리 털어 한양의 민초들에게 대접했다. 세도가문의 고관들이 모아두었던 이름난 명주들 또한 줄줄이 뚜껑이 땋여 적당히 물을 타 양을 늘리고서는 승전을 축하하는 민초들에게 제공되었다.
그야말로 끝이 없는 재화들이었다.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마르는 일은 없을 듯했다. 도성의 궁인들은 그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총동원되어 이 잔치판에서 수발을 들어야 했다. 한양성 곳곳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음식을 조리하는 연기였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푸짐한 안주와 맛좋은 술의 향연에서 도성의 백성들은 금세 취해버렸고, 그들은 더더욱 소리높여 소년 왕을 칭송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좋아, 그렇다면 이 기회에 이 몸도 얼큰하게 한 병만―."
"안됩니다. 옥체를 생각해 주십시오! 아직 상흔도 다 나으시지 않으셨잖습니까. 이번에도 소신의 충언을 들어주시지 않으신다면 이제 그만 소신을 파면시켜주십시오!"
"에헤이, 이 사람이. 그냥 해본 소리요. 나 원 참, 사람이 쓸데없이 진지해서는. 에이잉."
그 틈을 타 안동 김씨 본가에서 슬쩍 해온 증류식 소주를 들이켜려 한 소년 왕의 야망은 금위대장 허계에 의하여 저지되었다. 만일 허계가 이렇게 충언을 듣지 않아 줄 바에야 차라리 자신을 파면해달라며 강하게 나오지 않았다면 필시 이번에도 들은 척도 안 했을 것이 뻔했다.
어쩔 수 없이 소주를 반납하면서도, 이형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실로 원통한 일이었다. 온 도성의 백성들이 얼큰하게 술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정작 그 술잔치를 일으킨 이형 그 자신은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하는 처지라니. 술에 살고 술에 죽었던 전생에 비추어 볼 때 이형의 마음속에서는 피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이후로 이것저것 유실된 전통주를 맛볼 절호의 기회! 심지어 그 안동 김씨 본가에서 슬쩍해온 명주 중 명주! 그것을 맛볼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서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실 수 있을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놈의 나이가 다 뭐라고! 이런 우라질 브라질 시베리아!'
이형은 분통을 참지 못하고 쿵쿵거리며 가슴을 두들겼다. 그 모습을 금위대장 허계는 어처구니가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15살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년 왕이 술을 못 마시게 했다는 이유로 저기까지 원통 해하다니.
150명의 기사들과 함께 당당하게 역적들이 장악한 한양성에 정문으로부터 입성한 그 위풍당당한 소년 왕과 정말로 동일인물이 맞는지 의심이 갈 지경이었다. 혹시 그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바꿔치기를 당한 건 아닐까 싶었다.
'정말이지 그릇이 광고하신 것인지 아니면 협소하신 것인지 분간이 되지를 않으니….'
허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유약하던 선왕 철종이 그립기도 했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유약하던 철종으로서는 지금의 소년 왕처럼 청과 전쟁을 벌여 대승을 거두고 그 길로 정문에서부터 당당히 개선하여 도성을 되찾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을 테니까.
허계는 이형의 장래를 한편으로는 걱정하면서도, 그에게 기대를 걸었다. 비록 성군이 될 수는 없겠지만, 패왕이 될 자질 하나만큼은 충분한 왕이였다. 그로서는 이 소년 왕이 바꿔나갈 조선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아쉽기만 할 따름이었다.
"끄어어억, 죽인다! 한 대접 더! 주모, 내 오늘 궁으로 안 돌아갈 거요!"
"안됩니다. 이제 그만 궁으로 돌아가시지요. 섭정공 합하께서 옥에 갇히셨다고 들었습니다. 마땅히 자식 된 자로서 구하러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쓰읍, 까다롭기도 하구만. 칫, 어음으로 달아두시오. 나중에 출세하여 사정이 나아지면 갚을 테니!"
술 대신 우물에서 퍼온 찬물이나 배 터지게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소년 왕을 타일러, 허계는 이형을 일으켜 세워 다시 궁으로 돌아가도록 독촉하였다. 벌써 달리 먹는 것도 없이 찬물만 3대접째 비우고 있던 소년 왕이였다. 주모는커녕 물을 퍼오던 궁녀는 그것을 두고 소년 왕의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뒤로 슬쩍 돌리고서 피식피식하며 웃었다.
그러나 허계가 보기에 그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술도 마시지 않고서 흥이 오르니까 무심코 평소의 버릇이 튀어나온 것에 불과했다.
'도대체 이분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던 건가? 흥선군이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이하응으로서는 기함할 오해를 품게 된 허계였다. 스스로의 행동이 의도치 않게 아버지(?)의 평을 깎아 먹은 지도 모른 채, 이형은 말 위에 올라 궁으로 향했다. 평양에서 한양으로 오는 중 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리며 의도적으로 느긋하게 내려온 덕분에, 왼쪽 어깨의 총상은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다만, 여전히 왼손이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탓에 이형은 오른손만으로 말을 타고 있었다. 다분히 위험한 승마술이었지만, 궁술에는 재능이 없었어도 마술만큼은 재능이 따랐던 소년 왕이였다.
기사들과 함께 적진을 누빈 이후로는 그 성취도 크게 늘어, 인제 와서는 오른손만으로 말을 타는 묘기 정도는 가벼이 흉내 낼 수 있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대비마마께서는 어떻게 되셨소? 섭정공 합하께서도 욕을 보실 지경이라면 대비마마께서도 성치는 않으실 터인데?"
"이미 도성을 빠져 나와 은신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도성이 안정되었으니, 필시 머지않아 도성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이형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돌아온 대답은 예상 그대로였다. 이하응이야 명색이 섭정공이고 한양의 분조를 이끌던 처지이다 보니 함부로 몸을 숨길 수도 없었지만, 이하응이 본격적으로 정면에 나서면서 후면으로 물러날 수 있게 된 대비였다.
자연히 김좌근이 이하응을 바라보는 경계수준과 대비를 대하는 경계수준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느슨한 경계를 이용해 도성에서 빠져 나왔던 것이다.
'역시 여걸은 여걸이구만.'
이형은 내심 그렇게 평하면서 궁으로 돌아왔다. 궁에 도착하니 이미 이하응은 옥에서 풀려나와 있었다. 딱히 모진 고문을 당하거나 했던 것은 아닌 듯, 그 모습은 이형이 도성을 막 떠날 때와 비교하여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일하게 한가지 다른 점은 눈빛이었다. 도성을 떠나기 전, 이하응이 이형을 향하던 시선은 의심과 무시가 뒤섞인 것이었다. 아직 어린 소년 왕의 역량에 대한 불신, 그리고 능숙히 감정을 숨기고 돌발행동을 삼가고 있는 그와 달리 매일같이 돌발행동을 일삼는 소년 왕의 행보에 대한 경멸.
그러나 지금은 그 의심과 무시는 자긍심과 씁쓸함으로 변해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그가 바라던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도 위대한 왕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과 끝끝내 바로 자신이 그런 위대한 왕이 될 수는 없었다는 씁쓸함이었다.
이형은 한눈에 그것은 눈치채고서도, 짐짓 모른 체하고서 말했다.
"그간 한성을 지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혹여나 역적들이 뭔가 해를 가하시지는 않으신 듯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답지 않은 진중한 어조였다. 그간 막무가내 소년 왕을 보필해온 허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무심코 이형을 바라봤다가, 이형이 그를 흘겨보자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이하응은 헛웃음을 지었다. 궁인들이 보고 있기에 짐짓 점잖은 척을 하고 있다기에는 이미 전적이 화려한 소년 왕이였다. 이하응은 소년 왕이 저 나름대로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러나 우습게도 화는 나오지 않았다. 이하응은 조용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모든 것이 전하의 은덕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비루한 노신에게도 마음을 써주시니, 참으로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한데 생각건대, 과인이 비록 아직 나이가 어리기는 하나 이제 몸소 국정을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합니다. 섭정공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마도, 이것이 본론일 터였다. 김좌근을 치워버린 김에, 이하응까지 한 번에 치워버리겠다는 이야기였다. 이하응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고작 13살이 되어가는 소년 왕이였다. 반대하고자 한다면 명분은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 승전과 역모의 진압으로 소년 왕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권력을 손에 넣어버렸다. 억지로 버티고자 한다면 부러질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신 말씀이십니다. 옛말에도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으나 말 위에서 천하를 통치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전하께서 배우셔야 할 것들이 많고 많습니다. 청컨대, 뜻을 물려주소서."
부러질 것을 안다고 해서 스스로 권력을 놓는 것은 이하응의 천성에 맞지 않았다. 설령 부러질 것을 알고서라도 끝까지 맞서는 것이 이하응이였다. 제아무리 광오한 소년 왕이라도 제 아비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도 부정할 수 없었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바라온 이하응이였다. 그런 이하응에게 고작 그의 혈육을 통한 대리만족만으로 모든 것을 없던 것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다. 친부로서의 정은 정이었고, 권력을 향한 갈망은 갈망이었다.
소년 왕이 이만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날 리가 없던 것이다.
"으흠, 그렇구려. 과인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하였소."
그제야 이형은 본색을 드러냈다. 노골적인 하대였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미소였다. 이하응은 얼굴이 절로 딱딱히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형이 이하응을 죽일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했다.
전장의 피를 뒤집어쓰고서 다시 나타난 소년 왕은 그가 알던 허세뿐이던 말썽꾸러기가 아니었다.
한번 입 밖으로 허세를 내뱉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이루고 마는 패왕의 씨앗이었다.
"뭐,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니구려. 과인에게 그런 좀스러운 일들은 어울리지 않소. 천성이 따르지 않고, 능력이 되지 않지. 아마 과인이 이대로 중후하게 나이가 든다 하여도 과인이 섭정공과 같아질 수 있을까 의문이구려."
"전하, 송구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도통…."
"과인은 앞으로도 계속 내달릴 작정이오. 일단 그 시작으로 이번 전쟁이 끝나고 나면 온 나라의 노비 문서를 모아 불태워버릴 작정이지. 어마어마한 반발이 예상되는데, 과인으로서는 이를 억지로 힘으로 찍어누르는 방법밖에는 모르겠소. 그러나, 섭정공은 다르시지 않소?"
허계가 필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서 이 대화를 듣지 못한 것으로 만드는 동안, 이하응과 이형 부자는 서로 시선을 부딪쳤다.
이형은 웃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하응도 웃고 있었다. 두 부자는 웃었다. 닮을 리 없음에도, 한없이 닮아있던 부자였다. 이제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쯤은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다.
즉, 이용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부족함을 선선히 인정하고서, 이하응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겠다는 뜻이었다.
이하응은 그제야 히죽 웃었다. 역시나 부자는 서로 닮는 모양이었다.
"오호, 그거 참으로 큰일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를 위하여서라면 필요한 일이기도 하겠지요. 배움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나라 조선이 유자의 나라를 자부하면서, 아직도 배움의 깊이가 아닌 피로서 귀천을 나누고 있으니 통탄할 따름입니다."
"역시나 섭정공께서는 아시는구려. 과인의 뜻도 실로 그렇소.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오. 과인은 이 나라의 모든 토지는 아니더라도, 농지만큼은 스스로 농사를 지으려 하는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오."
"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 경자유전의 도리를 유자로서 어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국초 이래로 논의되어올 뿐 실제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선비라 자부하기만 할 뿐 민초들의 피와 살을 쥐어짜 내어 게으름 피울 뿐인 선비라 자칭하는 돼지들의 탓이니, 그 배를 갈라 민초들을 살찌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많은 소작농들이 풀려나게 될 것이오. 이들은 필시 도시로 몰려들게 될 터이니, 과인은 이들로 하여금 기술을 배우도록 하고 상업에 종사하도록 하여 이 나라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 작정이오."
"하오나 전하, 그러자면 지금의 조선으로서는 도시에 사람은 많으나 일자리는 적어 크나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옵니다. 청컨대, 그들을 압록강 너머로 보내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농토를 개간토록 하고 개간한 농토는 그들의 것으로 인정한다면, 필시 그들도 기뻐할 것입니다."
"섭정공, 경은 참으로 과인의 마음을 잘 아시는구려."
"전하께서 참으로 이 보잘것없는 선비의 충언에 귀 기울여 주시니, 이대로 죽는다고 한들 더할 나위가 없사옵니다."
이형은 말했다. 향림들의 허리를 분질러 반대하는 목소리를 지우고, 경전을 거스르는 한이 있더라도 부국강병책을 밀어붙이겠다고. 강한 왕이 되기 위하여? 아니었다.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조선의 왕이 된 이유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하응은 답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평생에 걸쳐 바라왔던 것이라고. 조선을 강하게 만드는 것? 아니, 달랐다. 강한 왕, 강한 정부, 하나로 집중된 권력과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 그것이 그가 바라왔던 것이었다.
이형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이하응은 그것을 긍정했다.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각기 달랐으나, 지금은 아직 두 사람의 길은 일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허허허허허!""
'뭐어, 지금은 아직 쓸모가 있으니 남겨둘까. 그러나, 내 머리 위에 앉으려 드는 녀석을 언제까지 끌어안고 가기도 힘들겠지. 때가 온다면 기꺼이 양로원으로 보내주마.'
'이 피도 안 마른 것이 겁도 없구나. 오냐, 어울려주마. 오늘 이 몸을 쳐내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다. 상갓집 개소리를 들어가며 버텨온 이 몸이시다. 이제 와서 발닦개 노릇 조금 더 하는 것이 대수더냐?'
부자는 고약한 미소를 만면에 떠올렸다.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이 녀석부터 치워버리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참으로 닮지 않아도 될 부분만 골라서 닮은 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