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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고종대왕 일대기-47화 (47/530)

< 예상치 못한 승전(4) >

그제야 조선과 청 양국은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정작 전쟁을 치른 것은 조선과 청 양국이었음에도, 그들은 주도적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조차 용납받지 못했던 것이다.

김병국 김병학 형제는 이 사실에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이것이 조선의 현실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다.

"전하의 뜻은 변함없으십니다. 조선과 청 양국을 전쟁으로 몰고 간 노괴 김좌근은 역모를 꾀한 죄로 옥에 갇히게 되었으니, 청과는 이제 그만 화친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저희 조선이 청국의 침략을 받았으며, 또한 승리를 거둔 만큼, 화친의 조건으로서 청국과 부마 관계를 수립하고 몽고 시대의 심왕 작위를 돌려받고 싶습니다."

'아니, 형님 그것이 무슨 소리요? 하옥 대감께서 옥에 갇히셨다니! 그런 말씀은 없지 않았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우선은 전하의 심부름을 마무리 짓는 것이 우선이다.'

김병학의 돌발 발언에, 김병국은 경악했다. 그는 그동안 러시아에 머물고 있던지라, 조선이 청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소식은 들었어도 김좌근이 역모를 꾀하다가 옥에 갇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병학도 대답이 궁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도 김좌근이 끝내 붙잡혔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지, 한양을 떠난 이후 한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는 몰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우선 김병국에게 대답을 미루고서, 청의 응답을 기다렸다.

'허, 그 노괴가 옥에 갇혀? 놀랄 일이군. 조선왕은 단지 꼭두각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덕분에 명분이 섰다. 그자를 벌할 수 있다면 화친을 맺더라도 체면이 서.'

한편 공친왕은 내심 안도했다. 반정이 헛된 시도로 돌아간 이상, 그는 서태후를 확실히 몰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확실한 성과를 가지고서 북경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전범 김좌근의 체포는 그 성과에 걸맞은 것이었다. 어차피 전쟁을 일으킨 건 김좌근으로 알고 있던 청나라였다.

상국에 감히 역모를 일으킨 역적으로서 김좌근을 벌할 수 있다면 부족하게나마 금이 간 위신도 복구할 수 있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오. 태후께서도 조선과 부마 관계를 맺는 일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말씀하셨소. 만일 그 노괴를 우리 청국에서 벌할 수 있도록 양도해 준다면, 다이칭구룬은 기쁜 마음으로 조선과의 친교가 부활하였음을 축하할 수 있을 것이오."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그자는 청국의 역적일 뿐 아니라 저희 조선의 역적이기도 하옵니다. 그것은 전하께서 정하실 일이지, 저희들로서는 감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신만이라도 좋소. 시신을 토막 내 젓갈로 담가 각지에 나눠 보낸다면 역모를 꾀하는 간악한 자들에게 충분한 경고가 될 것이오. 조선과 청 양국을 위한 일이오. 부탁드리리다."

"전하께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전하께서 정하실 일이지 저희들이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김병학 김병국 형제는 그래도 그들의 친척이기도 한 김좌근의 시신을 청나라까지 팔아치운다는 생각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 소년 왕의 성정을 생각해 보건대, 만약 김좌근의 시체 토막을 팔아 화친을 얻어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터였다. 아니, 어쩌면 아예 살아 있는 채로 팔아치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건 김병학 김병국 형제로서는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일단은 명색이 집안의 큰 어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역적이 된 김좌근을 옹호했다가는 그들 또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을 뿐이었다.

"양국의 입장이 좁혀진 듯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가 빠진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그동안 두 나라의 대화를 관망하던 프랑스 공사 벨로네가 다시 끼어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러나, 김병학 김병국 형제로서는 달리 짚이는 부분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왜 조선과 청이 화친을 맺는 데에 불란서가 이리도 깊이 관여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도 안 될 일이었다. 벨로네 공사는 웃는 낯으로 태연히 말했다.

"제가 듣기로 심왕의 봉토는 심요 지역-즉, 남만주를 일컫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조선 정부에서 심요 지역을 통치하게 될 것이며 이번 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청이 얼마만큼의 배상금을 지불하여야 할지 또한 정해야지 않겠습니까? 꼭 전쟁에서 패해서가 아니더라도, 결혼 지참금으로서 봉토와 재화의 지불은 필수라고 사료 됩니다.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서는 늦어도 3년 안에 할양이 완료되어야 하며 전쟁배상금은 1000만 냥이 적당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서 당사자는 조선이니, 귀국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저희 프랑스 제국에서는 귀국 조선에서 너무 관대한 조건으로 침략자 청을 용서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뭐, 뭐요? 지금 그게 무슨 소리요! 지금 그게 가당키나 할 것 같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우리 다이칭구룬은 결사 항전을 택하겠소!"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그 경우, 저희 프랑스 제국에서는 제국의 호의를 거부하고 신앙의 형제 조선에 대한 침략행위를 계속할 것을 천명한 귀국에 어떤 식으로건 제재를 가하리라는 것만 기억해주십시오."

어투만 나긋나긋하지, 협박이었다. 청나라에서 이름뿐인 심왕 작위와 왕실혼인으로 '땡' 치고서 빠져나오는 꼴을 봐줄 수는 없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물론 조선을 위해서일 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온전히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서라기도 모호했다.

이건 프랑스 제국에 의한 청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조선을 독차지할 기회를 청에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으니, 그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자연히 청의 대표로 참가한 공친왕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반대로, 김병학 김병국 형제는 난처해졌다. 그들의 국왕이 요구한 것은 어디까지나 부마 관계를 수립하여 화친을 맺으라는 것이었지, 프랑스의 요구처럼 청의 허리를 부러뜨리라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김병학 김병국 형제가 우선 왕의 뜻을 물어야 한다며 대답을 미루면서, 협상을 지루하게 끌게 되었다.

이제 모든 결정권은 한양에 머물던 소년 왕에게 미루어졌다.

* * *

"불란서인들이 상당히 과격하게 나왔구만."

김병학, 김병국 형제에게서 긴급 서한을 건네받은 소년 왕 이형은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노림수는 일단 이름뿐인 심왕 작위를 받아낸 다음 차근차근 간도에 해방 노비들과 유랑민들을 대거 이주시켜 후일 영토를 주장할 정당한 명분을 쌓는 것이었지 지금 당장 심요 지역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포로 교환비 200만 냥을 포함하여 전쟁배상금은 1000만 냥은 어떠한가. 제2차 아편전쟁 이후 치러진 베이징 조약에서 청이 지불한 전쟁배상금이 은 800만 냥이었다.

아편 무역이 한창 성행할 시 중국에서 유출된 은이 3000만 냥이었다. 그 3분의 1이라고 하면 절대로 작지 않았다. 거기에 심요 지방은 어떠한가. 분명 조선의 오랜 비원이었던 약속의 땅임이 틀림없지만, 그와 동시에 만주족 애신각라 황실의 비원의 땅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쯤 되면 프랑스는 조선의 손을 빌려 청을 아예 죽이려고 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만일 조선에서 이 조건을 그대로 요구하여 다시 청에서 수용하게 된다면, 그날이 청이 공중분해 되는 순간일 터였다.

"전하, 어찌 망설이고 계십니까? 불란서의 황제라는 자가 조선에 힘을 보태겠노라 천명하였습니다. 지금이 바로 태조 대왕의 비원을 이룰 날입니다. 어서 요동으로 진출하여 옛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시고 더 나아가 칭제건원하여 중원의 천명을 이어받으셔야 합니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온 천지가 오랑캐 냄새가 고약한데, 오로지 저희 조선만이 소중화로서 공맹의 이치를 이어받고 있나이다. 작금의 세태가 이러할진대 어찌 조선이 진정한 중화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요동을 정벌하고 칭제건원하여 장차 애신각라 북적들을 몰아내고 북경을 수복하셔야 할 것입니다!"

"""대조선국 천세! 국왕 전하 천세! 천천세!"""

세도가문을 한차례 쓸어내고서 그 빈자리를 차지한 젊은 신진 관료들은 하나같이 고무된 모습이었다. 대부분이 지방에서 상경하여 실로 오랜만에 한양까지 진출한 향림 출신 관료들이었다. 경기권의 세도가문들이 100년간 중앙정치를 독점하고 있다 보니, 기껏 100여 년 만에 중앙정치로 진출한 향림출신 관료들은 현실감각을 상실하고 있었다.

중앙의 세도가문들이 비록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할지언정 최소한의 현실감각 정도는 있었다면, 지방에서 상경한 젊은 신진 관료들은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 개혁 의지는 충만했으나 실무에 있어서는 문외한들이 태반이었던 것이다.

'이것들이 진짜로 미쳤나….'

이형은 그들을 질린 듯한 시선으로 내려봤다. 그 또한 일단 생각나는 대로 지르고 보는 유형의 인간이기는 했지만, 최소한의 현실감각 정도는 탑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걸 받아들이는 순간 프랑스의 영향력에서 헤어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은 1000만 냥의 전쟁배상금, 심요 지역의 실질적인 할양. 어느 쪽이건 현재의 조선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사안들이었다.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프랑스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었다.

아니, 과연 프랑스만일까. 조선에서 여기까지 노골적으로 나온다면 러시아도 틀림없이 흑룡강 너머의 외만주까지는 확보하려고 들것이 분명했다. 그럼 졸지에 러시아와 1000km 길이의 국경선을 마주하게 대는 셈인데, 지금의 조선이 그 국경선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 리도 없으니 국방에 있어서도 프랑스에게 의존할 필요가 생긴다.

그럼 더 이상 보불전쟁 이후 프랑스와 손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조선은 근대화의 성과가 나올 때까지 프랑스와 일심동체로 가야만 했다.

'아니 뭐, 프랑스도 나쁜 건 아니긴 한데…. 그쯤 되면 그냥 프랑스 식민제국의 부품이고 보호국이지 자주국은 개뿔이.'

이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리수였다. 무엇보다 현 조선군의 대부분은 의병이었고, 그럼 봄이 되기 전까지는 저들을 고향으로 돌려줄 필요가 있었다. 방어전이라면 모를까 침공전이라면 의병들은 큰 힘이 될 수 없었다. 숫자만 채워주는 것이 고작이다.

그럼 결국 남는 건 속오군과 오군영을 합하여 3만 남짓한 병졸들인데, 이걸로 심요 지역을 공략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지금 만주 팔기군이 쓸려나가면서 만주가 텅텅 비었더라도 북경과 화북에는 여전히 녹영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녹영군이 요하를 넘는 날이 조선군 만주원정대 최후의 날이 될 터였다.

"어찌하는 것이 좋겠소, 섭정공?"

결국, 이형이 찾은 것은 흥선군 이하응이였다. 그 자신도 선선히 인정했듯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그 자신보다는 이하응의 판단이 더 믿을 만했다. 그것은 물론 연륜의 차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인 성향의 차이가 더 컸다. 이형에게 어울리는 곳은 말 안장 위였지 책상 앞이 아녔다.

이하응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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