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왕의 고뇌-분량 조절 전 최신편 >
청과 조선에게 있어서, 최선의 경우는 역시나 청이 프랑스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배상금을 지불하고, 조선 또한 그것을 받고서 만족하며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최선의 경우는 물 건너가 버렸다. 북경의 조정에서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조선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찌하면 좋겠소."
창덕궁 부용지 동쪽 영화당.
박규수가 미국의 로버트 공사에게서 선물로 받아왔다는 미제 콜트 아미 권총을 이리저리 살피며, 이형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박규수에게 물었다.
김좌근이 옥에 갇힌 이후 김좌근을 대신하여 영의정의 자리를 제수받은 박규수였다. 본래 이형은 김좌근을 치우고 나면 영의정은 민치상에게 맡기려 했으나, 그 민치상이 역적 김좌근이 한양성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할 때 이에 맞서는 대신 쥐죽은 듯 조용히 있던 탓에 이형에게 밉보이면서 박규수에게 대신 맡기게 되었다.
'역시나 승정원은 나를 따르는 척하던 것뿐이었나.'
그걸 탓할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형은 그리 쉽게 민치상을 용서할 수 없었다. 평양에서 승전을 거두고서 당당히 개선한 다음이라면 모를까, 궁에서 그는 고작 해봤자 현실도 모르고 제멋대로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고 다니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런 소년 왕에게 진심 어린 충성을 바칠 수 있다면 그건 어지간히도 사람이 좋거나 멍청하거나 해야 하는데, 민치상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줄을 잘못 섰다. 어중간하게 줄을 선 덕분에 김좌근과 함께 숙청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저항하다 옥에 수감 되었던 흥선군과는 달리 김좌근의 역적 행위를 묵인하면서 출셋길은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형은 이미 마음속으로 민치상을 치워버리고 난 다음 누구에게 도승지 자리를 제수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고뇌하고 있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전쟁을 계속하는 것과 이대로 종전을 맞이하는 것.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좋겠느냔 말이오."
타앙-.
이형은 그대로 해머를 젖히고서 조금 전 궁의 병졸들이 설치해둔 과녁판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역시나, 이제 갓 13살이 된 어린 소년이 다룰만한 병기는 아니었다. 반동으로 총을 쥔 오른손이 크게 위로 튀면서, 총알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이형은 포기하지 않고서 그대로 오른손으로 권총을 쥔 채로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양손으로 권총을 고정시키고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명중이요!"
여전히 반동으로 조준이 위로 튕겼지만, 총탄은 이번에야말로 정확하게 과녁판을 꿰뚫었다.
"어깨의 총상은 이제 모두 나으셨습니까?"
"뭐, 보시는 바와 같소. 다만, 아직도 왼손 검지가 움직이지를 않더구려. 아무래도 신경을 잘못 건드린 모양이지. 되도 않는 객기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이만하면 값싸지 않소?"
이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고서는, 다시 과녁을 향하여 약실의 총탄이 텅 빌 때까지 연이어 방아쇠를 당겼다. 역시나 아직 아이의 근력으로는 온전히 다루기는 힘든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반동으로 조준이 달라졌지만, 이형의 목적은 애초에 과녁판을 맞추는 것이 아니었다.
도합 6발의 총탄을 모두 소비하고서, 이형은 신경질적으로 권총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형이 말한 신경이라는 건 뭔지 질문하려 했던 박규수는, 그 모습에 입을 다물고서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옥체를 생각하시지요, 전하. 병장기는 노기를 풀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노기를 가라앉히시려 하신다면, 조선의 선비로서 서예와 수묵화 같은 취미를 익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흠, 사양하겠소. 차라리 술을 들이켤지언정 서예나 수묵화 같은 답답한 거로는 괜히 화병이나 얻게 될 것 같구려. 내 마음 같아서는 그 태후인가 뭔가 하는 요괴를 저기 과녁판 대신 매달아두고 싶소만, 애꿎은 나무나 다치게 하고 있으니 원통할 따름이라오."
"…보아하니 협상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노하신 것은 아닌 듯합니다만."
이형은 박규수의 말에 답하는 대신 자신이 바닥에 내팽개친 권총을 주워들고서는 총탄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박규수는 작게 숨을 내뱉으면서도 잠자코 그의 소년 왕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간을 기다렸을까. 서투른 손놀림으로 리볼버 탄창에 종이 탄피 총탄을 모두 채워 넣고 권총을 재조립하고 난 다음에야, 이형은 다시 입을 열었다.
"포로들을 어찌하면 좋겠소."
"저들이 돌려받지 않겠다 한 이상, 노비로 부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2만의 포로들을 모두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하, 노비라. 조선의 노비들은 모두 해방시키는 대신 만주족 노비들을 부리자는 거요? 스스로 말하고서도 그건 너무하잖소."
"송구하옵니다. 소신이 생각이 짧았습니다."
타타타탕-.
박규수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였으나, 이형은 본체도 하지 않고서 다시금 과녁판을 향하여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6발의 탄환을 모두 퍼붓고 난 다음에도, 이형은 몇 번이고 달깍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렇게 십수 번을 당겨 총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음을 확인한 다음, 깊이 한숨을 내쉬면서 양팔에 힘을 빼고 좌우로 축 늘어뜨렸다.
"…그대가 생각하기에는 어떻소. 그대가 청의 태후라면, 그래도 저 포로 2만 명을 버리시겠소?"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들을 지키는 것이 위정자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뭐요? 역적 김좌근과 그 일당들은 도대체 뭐고? 청이고 조선이고, 도대체 왜 이렇게 제 나라의 백성들조차 책임지기 귀찮아하는 것들이 위정자 흉내를 내고 있냔 말이오."
이번에는 박규수도 대답이 궁했다. 이론적인 부분이라면 그도 질리도록 말할 수 있었다. 그 또한 조선의 선비였던 만큼, 경전에서 백성들을 위하라는 구절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고 또 스스로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왜 현실은 그와 다를까. 그렇게 죽어라 경전을 읽은 끝에 국가의 녹을 받아먹는 관료가 된 조선의 관료들이, 청의 관료들이, 왜 누구 하나 책임지기 싫어할까. 경전의 절반만큼이라도 행하고자 하는 이들이 드물까.
경전에서 위정자들의 자세라며 제시하는 사항 중 절반도 지키지 않는 저들을, 과연 정말로 위정자라고 불러줘도 괜찮은 걸까.
"마음 같아서는 다시 두정갑을 차려입고 만주로 말을 몰고 싶소."
이형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진심인 것이 분명했다. 박규수는 절로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 들었다.
"전하, 그것도 안 될 일이옵니다. 이 이상 청과 전쟁을 이어간다면 민생은 파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비록 내키지는 않더라도, 지금은 수그려야 할 때라 사료 되옵니다."
"알고 있소.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오. 그대가 과인을 말려줄 테니. 그래, 머리로는 알고 있소. 지금은 화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이오. 하나, 불란서에서도 우리 조선을 돕겠다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요동까지라면-."
"전하!"
"흐음, 열심히 잘하고 있구려. 그래, 바로 그 자세요. 앞으로도 과인을 잘 좀 말려주시오."
박규수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선에 나간 이후로 조금은 달라졌을 거라 기대했지만, 역시나 근본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왕은 충동적이었고, 격정적이었다.
그나마 본인이 그것을 알고 옆에서 말려주면 일단 듣는 시늉이라도 한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과인은 저들을 골탕 먹이고 싶소. 가능한 한 괴로운 방법으로. 가능한 한 저들이 원하지 않을 방법으로. 저들이 가장 싫어할 방법으로 골탕을 먹여주고 싶소이다."
이형은 오른손의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저마저도 그나마 지난 1년여간의 궁 생활로 순화한 표현임이 분명했다. 막 입궁했을 무렵의 이형이었다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머리통에 구멍을 내주고 싶다고 말했을 터였다.
박규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영토를 추가로 받아오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다못해 봉천 만이라도 무력 점거하여 받아온다면, 저들도 마냥 웃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쁘지 않구려. 그러나, 거부하겠소. 안 그래도 뜻하지 않게 괜한 영토만 늘리게 되었소. 여기에서 더 영토만 넓어진다고 해봤자 우리 조선이 지킬 수나 있겠소?"
"그 말씀대로 입니다. 그렇다면 불란서의 황제에게 원군을 청하여 이번 기회에 심양과 북경을 불바다로 만들어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그것도 좋구려. 다만, 그 경우 전쟁을 질질 끌게 되지 않소이까. 지금은 우선 나라를 쉬게 할 때요. 괜히 전쟁을 질질 끌고 싶지는 않소이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참으로 까다로운 왕이라고 박규수는 내심 생각했다.
그러나 이치에 어긋나는 말은 아니었다. 영토만 늘어봤자 지금의 조선으로서는 유지할 수 없을 게 분명했고, 전쟁을 이어간다면 그때는 그 스스로 말했다시피 민생이 파탄 난다.
격정적이고 감정적이었지만, 아주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왕은 아니었다. 그것을 알기에 박규수는 지금의 왕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전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흠, 그냥 저 포로 2만 명을 고스란히 만주에 풀어줄까 생각하고 있소만."
"아, 과연."
박규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포로 2만 명을 모두 풀어주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이미 북경의 조정에게 한 차례 버려진 포로들이었다. 오히려 그들을 포로로 잡은 조선에서 별다른 대가 없이 순순히 만주로 돌려보내 준다면 그들의 적의는 북경을 향할 것이 뻔했다.
안 그래도 전체 인구라고 해봤자 고작 100만 명 대에서 머물고 있는 만주족이였다. 만주족 포로 2만 명이면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한족들에게 동화되기를 거부하고서 반정주, 반 유목민 생활을 유지하면서 얻게 된 터무니 없는 수준의 인구 대비 동원 능력에 속기 쉽지만, 만주족은 한족을 기준으로 봐도 조선을 기준으로 봐도 소수 민족에 해당했다.
북경의 소집령에 급히 마을의 남자들이란 남자들은 모두 긁어모아서 조선으로 보냈더니 태반은 조선 땅에서 죽고 살아 돌아온 나머지들은 북경에서 포로 송환 비용을 거부했다고 하면, 만주에서 무슨 일이 날지는 보나마나였다. 화북의 한족들은 둘째치고서, 우선 만주의 만주족들부터 청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청의 천명이 다하였군요."
박규수는 새삼스럽게 말했다. 그의 어린 주군이 전쟁 전부터 반쯤 허세를 섞어서 거듭 반복해온 말이었다.
그 허세가 오늘날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가실현된 예언이었다.
"청의 천명이 다한 것이 아니오. 우리 조선이 저들의 천명을 다하게 만들고 있는 거지."
이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고서는 권총을 박규수에게 건넸다. 박규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 로버트가 함께 건네주었던 목재함에 담았다.
"그럼 이제 천명은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예?"
대뜸 이형은 되물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박규수는 뜻을 읽지 못하고서 눈을 껌뻑거릴 따름이었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서, 박규수는 대담하게 말하였다.
"물론 저희 조선이 아니겠습니까. 청의 천명을 다하게 하였으니, 마땅히 그 천명을 이어받는 것은 조선이 될 것입니다. 미리 경하드리옵니다, 전하. 머지않아 칭제하고 건원을 올릴 수 있게 될 것이옵니다."
"흐음, 듣기는 좋구려. 그러나, 과인의 생각은 조금 다르오."
"아니,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어느 나라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설마, 왜국이옵니까? 소신이 보건데 왜국은 천명을 이어 받을만한 그릇이 못 되었습니다. 아직도 나라가 둘로 나뉘어 으르렁거리고 있는 이들입니다. 감히 그들이 천명을 이어받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박규수는 다급하게 고했다. 그의 어린 소년 왕이 왜국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가 보고 온 왜국은 지금의 조선보다 한발 앞서 나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껏 천조질서에 제대로 속해본 적도 없는 그들이 천명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무엇보다 조선은 천명을 가지고 있던 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않았던가? 그러면 천명을 이어받는 것은 당연히 조선이 되어야 했을 터였다.
"아니, 다르오. 영길리요. 아니면 노서아겠지. 두 나라 중 하나가 천명을 이어받게 될 것이오."
그러나 소년 왕의 대답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아 박규수가 눈을 연달아 껌뻑이고 있자니, 소년 왕은 담담하게 뒤이어 말했다.
"애초에 천명이 무엇이오? 오랑캐로부터 천하를 지키는 것이지. 그동안 중원이 중원인 까닭은 천하의 중심이 그들이었기 때문이오. 그러나, 그대에게 묻겠소. 아직도 여전히 천하의 중심은 중원이라고 생각하시오?"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박규수가 아마도, 라고 대답한 까닭은 그 또한 직접 서역의 번영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선통신사로 조선을 떠난 동안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만으로 박규수는 알게 되었다.
천하의 중심은 더 이상 중원이 아니었고, 서역의 오랑캐들이야말로 새로운 천하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박규수는 소년 왕의 말뜻을 알았다.
"이제 오랑캐가 바로 우리 조선이고, 왜국이고, 중원이오. 그렇다면 천명을 이어받은 것은 우리들과 같은 오랑캐들로부터 천하를 수호하는 나라이겠지."
소년 왕은 소매에서 두루마리 종이를 꺼내 펼쳤다. 천주교도들이 청으로부터 몰래 들여왔다는 작금의 세계지도였다.
박규수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그 다이칭구룬도, 조선도, 왜국도.
대륙 북방의 동토 전부를 발아래에 두고 있는 러시아 제국과 인도를 시작으로 오대양과 육대주 곳곳에 그 거대한 촉수를 뻗고 있는 대영제국에 비하면 너무나도 자그마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대도 알다시피 천명을 이어받는 것은 언제나 하나요. 그렇다면 이 둘 중 하나는 감히 천명에 도전하는 오랑캐이고, 하나는 오랑캐로부터 천하를 수호하는 제국일 터."
이형은 세계지도를 바르게 세웠다. 정위치의 세계지도에서, 조선반도는 중원과 만주를 향하여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었다.
이형은 세계지도를 뒤집었다. 거꾸로 된 세계지도에서, 조선반도는 대양을 향하여 뻗어 나가고 있는 창이었다.
박규수는 한눈에 그 뜻을 깨달았다. 정위치의 세계지도는 지금의 천하였다. 그건 즉 지금의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건 영국이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거꾸로 된 세계지도의 의미 또한 뻔했다.
역천(逆天).
그건 즉, 러시아야말로 작금의 천명에 도전하는 도전자라는 의미였다.
"경은 과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나, 과인도 잘은 모르오. 과인이 언제 왜국이건 중원이건 가봤어야 뭘 알지 않겠소? 그러니, 조금이라도 저들을 엿보고 온 그대에게 묻겠소.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겠소?"
이형의 질문에, 잠시간 박규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 또한 모두를 보고 온 것이 아닌 만큼, 대답이 궁할 수밖에는 없었다.
하물며 그가 직접 만나고 온건 미국이었다. 러시아는 잠시 들렀을 뿐이고, 영국은 로버트 공사가 찾아가 봐야겠다고 언급한 걸 들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박규수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건 역시 직접 서역의 나라들을 목도한 이들이나 답할 수 있겠지요."
이형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역시나 이번 전쟁이 끝나고 나면 우리 모두 견문을 넓히는 일부터 시작해야겠구려. 영불러미 4개국에 유학생을 파견할 예정이니, 미리 관료들 중에서 생각이 좀 트여있어 보이는 이들을 골라 선별해두시오. 성균관의 학생들도 좋소이다. 여하튼 간에 장차 나라를 바꾸는 일에 협력할 만한 이들은 모두 보내는 편이 좋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박규수는 고개를 숙였고, 그 길로 이형의 명에 따라 영불러미 4개국에 보낼 유학생들을 선별하기 시작하였다.
이형은 그 길로 편지를 두 장 썼다. 하나는 김병학에게 보내는 것이었고, 하나는 홍우길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김병학, 김병국 형제는 이형의 친서를 받아 북경의 역제안을 받아들였고 평안 관찰사 홍우길은 그 길로 평양성에 수감되어 있던 만주족 포로들을 만주로 송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