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50화 (50/530)

< 봉천조약-금일신규편 >

서력 1865년 3월 1일.

봉천에서 조선과 청 양국은 영미불러 4개 열강이 보는 앞에서 역사적인 첫 번째 근대적 국제조약을 체결하였다. 그것이 양국의 우호를 다지는 내용이 아닌 유혈로 얼룩진 종전조약이 되었던 것은 역사의 비극이었지만,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일도 못 되었다.

조약은 다음의 조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 一 조, 조선국과 청국은 자주독립국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이 1조는 사실상 프랑스와 열강들의 강압으로 청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조항이었다. 열강들로서는 앞으로 조선과의 통상을 위해서는 우선 청으로부터의 영향력을 배제할 필요가 있던 만큼, 누구보다도 이 제1조를 삽입하는데 열성적이었다.

사실 이는 조선 또한 바라마지 않았던 일이었다. 청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는 것은 곧 조선이 황제국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선 대표단은 열강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가장 먼저 이 제 1조를 종전조약에 삽입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제 二 조, 조선국과 청국은 다가오는 단옷날 왕실 혼을 가진다. 이때 신랑은 조선왕 이형이며, 신부는 청국 고륜공주 영수이다. 신부는 지참금으로서 은화 600만 냥을 대동하도록 한다. 이때, 청국은 조선왕을 심왕에 봉하도록 한다.

◎제 三 조, 청국은 은화 200만 냥의 전쟁 배상금 대신으로서 조선명 간도, 청명 지린성을 할양한다. 이때 할양은 3년의 여유를 가진다.

◎제 四 조, 조선국은 이번 조청전쟁의 전범 김좌근의 형을 집행한 후 시신을 온전히 청국에 양도하도록 한다.

제 2조에서 제 4조까지의 3개 조항은 사실상 한 묶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 2조에서 은화 600만 냥은 지참금이라고 명시되었으며, 그 뒤 제 3조에서는 전쟁 배상금 200만 냥을 따로 언급하며 은화 600만 냥은 어디까지나 지참금일 뿐 배상금과는 다르다고 항변하고 있었다. 물론, 청의 요청에 의한 부분 수정이었다.

제 4조 또한 그러했다. 본래 역적의 형이 집행되고 나면 시신 훼손과 그를 통한 잠재적인 역도들에 대한 경고가 당연시되었던 만큼, 조선이 형을 집행한 이후 온전히 청에 양도한다는 것은 시신 훼손은 전적으로 청에 양보하겠다는 뜻이 되었다.

이로써 청은 비록 전쟁은 졌으나 협상장에서는 상국의 위엄을 세웠다고 자기 위로를 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사실 조선에 있어서 보다 중요했던 것은 다음의 조항들이었다.

◎제 五 조, 톈진, 칭다오, 난징, 광저우, 상하이 5개 항구를 개항하여 조선국 백성이 오가면서 통상하도록 허가한다. 개항 시기는 체결 당일을 기준으로 6개월 후로 정한다.

◎제 六 조, 피차의 백성들은 각자 임의로 무역하며 양국 관리들은 조금도 간섭할 수 없고 또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도 없다. 양국 상인들이 값을 속여 팔거나 값을 물지 않는 등의 일이 있으면 양국 관리는 포탈한 해당 상인을 엄히 잡아서 부채를 갚게 한다. 단 양국 정부는 대신 상환하지 못한다.

◎제 七 조, 별도로 통상 장정을 제정하여 양국 상인들을 편리하게 한다. 또 현재 논의하여 제정한 각 조관 가운데 다시 세목을 보충해서 적용 조건에 편리하게 한다. 지금부터 6개월 안에 양국은 따로 위원을 파견하여 청국의 톈진이나 혹은 봉천에 모여 상의하여 결정한다.

◎제 八 조, 조선국 백성들은 지정된 항구에서 관세를 적용받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이후 청국 항구에 거주하는 조선 백성은 양미와 잡곡을 수출, 수입할 수 있다.

◎제 九 조, 조선국 백성이 지정한 항구에서 죄를 범하였을 경우 청국에 교섭하여 백성은 모두 조선국에 돌려보내 심리하여 판결하고, 청국 백성이 죄를 범하였을 경우 조선국에 교섭하여 백성은 모두 청 관청에 넘겨 조사 판결하되 각각 그 나라의 법률에 근거하여 심문하고 판결하며, 조금이라도 엄호하거나 비호함이 없이 공평하고 정당하게 처리한다.

◎제 十 조, 청국 연해의 도서와 암초는 종전에 자세히 조사한 것이 없어 극히 위험하므로 조선국 항해자들이 수시로 해안을 측량하여 위치와 깊이를 재고 도지를 제작하여 양국의 배와 사람들이 위험한 곳을 피하고 안전한 데로 다닐 수 있도록 한다.

◎제 十一 조, 조선국 백성은 조선명 간도, 만주, 심요 지역에 자유로이 이주할 수 있으며 청국의 형법을 적용받지 아니하고 조선국의 공권력에 의하여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불평등 조약들이었다. 제 5조에서 제7조까지는 조공무역의 폐지와 자유무역을 암시하고 있었으며, 제 8조는 조선의 상인들이 무관세로 청의 항구에서 상행할 권리와 미곡을 수입할 권리까지 획득하였다.

제 9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치외법권이었고, 제 10조는 해역을 측량할 권리, 제 11조는 만주 일대에 대한 자유로운 이주를 보장했다.

이건 서구 열강들의 요구가 아니었다. 조선 국왕 이형이 반드시 삽입하라고 엄명하여 봉천의 조선 대표단에서 추가로 삽입한 부분들이었다. 청국 또한 그동안 서구 열강들에게 당하던 것이 있다 보니 이상의 조항들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보는 즉시 깨닫고 노발대발했지만, 은화 200만 냥의 대신으로서 황무지나 다름없는 간도 땅은 너무한 거 아니냐는 조선 측의 대꾸에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이는 영불미러 4개 열강들에게도 의아한 일이었다. 분명 조선은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이 지금까지 체결한 유일한 근대적 조약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능숙하게 청에 불평등 조약을 강요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 프랑스에서 이번 조청전쟁을 계기로 프랑스의 국익을 대변할 챔피언으로서 조선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건 아닌가?'

영미러 3개국의 공사들은 이와 같은 의문을 품었다. 사실 아주 근거 없는 의심만은 아니었다. 당장 프랑스는 이에 앞서 청에 1000만 냥의 배상금과 남만주 일대 전역을 조선에 할양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조선의 거부로 무산되었고 대신 간도 일대의 할양과 600만 냥의 전쟁 배상금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런 전적이 있던 만큼 아주 근거가 없는 의심도 아니었다.

'네놈들이 무슨 의심을 하고 있는지는 뻔히 알고 있지만, 그건 아니다. 하지만, 굳이 부정할 이유가 있을 리가?'

다만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의심을 받고서도 딱히 긍정하지는 않았을지언정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당장 식민지를 늘리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던 프랑스였다. 이미 베트남과 캄보디아 일대를 합병하던 중에 있던 프랑스로서는 조선까지 동시에 식민지화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았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조선을 확고한 친 프랑스 국가로서 열강들에게 각인시킴으로써 다른 열강들이 함부로 조선에 손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예 조선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손대기 전 한 번쯤 프랑스의 눈치 정도는 살피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지금으로서는 조선의 영민한 움직임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물론, 후일 사정이 또 달라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제 十二 조, 프랑스 제국은 조선국과 청국 양국의 우호와 극동의 평화를 위하여 뤼순항을 향후 100년간 조차하고 이에 함대와 해군육전대를 주둔시킬 권리를 가진다.

◎제 十三 조, 이상의 열두 개 조항은 영불러미 4개국의 신임과 지지에 의거하여 이날부터 양국이 성실히 준수하고 준행하는 시작으로 삼는다. 양국 정부는 다시 고치지 못하고 영원히 성실하게 준수해서 화호를 두텁게 한다. 또한, 영불러미 4개국은 극동의 평화를 위하여 이를 잘 감시하고 극동에 평화에 기여할 의무를 가진다.

마무리로서 삽입된 12조와 13조는 이 종전조약에 연관된 열강들의 이익과 영향력을 대변하는 부분이었다. 본래 여기에는 러시아 제국에 의하여 코사크 1만 명을 만주에 그대로 주둔시킬 권리가 삽입되려 했으나, 영국과 미국의 결사반대로 무산되었다. 프랑스 또한 러시아의 남하가 그리 달갑지 않았던 만큼, 최종본에서는 프랑스의 뤼순항 조차만이 명시되었다.

이로써 영불러미 4개국은 조청전쟁의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전개와 결말을 지켜본 참관국으로써 전후 조청 양국의 관계에 두고두고 개입할 권리와 극동의 평화에 기여할 의무라는 지극히 그들 사정에 맞추어 내정간섭을 할 명분을 얻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는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영불미 3개국의 견제조항이기도 했다. 러시아의 남하는 극동의 평화를 저해하므로, 이를 자제하라는 압력이었다.

당연히 러시아 제국은 이에 도장을 찍지 않으려 했지만, 애초에 협상에 참여한 당사자들부터가 차르의 명령을 어기고서 멋대로 군사를 움직인 처지였던 만큼 그리 오래는 버티지 못했다.

결국, 불과 보름도 안 되어 마지막까지 사인을 거부하던 러시아 대표단이 이에 서명하면서, 봉천조약은 최종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봉천에서 각국의 행보가 모두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봉천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미합중국과 조선국 양국 간의 우호가 확립되어 양국의 국익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바입니다. 우리 미합중국은 극동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감사한 말씀입니다. 우리 조선국 또한 이번 봉천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귀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하여 이어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바입니다. 우리 조선국 또한 극동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프랑스 제국 또한 우리 프랑스 제국의 오랜 우호국인 미합중국과 조선국 양국의 원만한 만남을 위한 다리를 놓는 명예로운 자리를 맡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모두 오늘의 역사적인 만남을 기념하며 축배를 들도록 합시다!"

조선 대표단은 이후로도 계속 봉천에 남아 프랑스의 중재 아래 나머지 열강들과의 통상조약을 수립하였다.

처음부터 조선에 추파를 던지고 있던 미합중국이 가장 먼저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었고, 그 뒤로 러시아와 영국이 뒤를 이었다. 본래라면 영국이야말로 가장 먼저 앞장서는 것이 맞았겠지만, 이때 영국은 아직도 뇌사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본의 아니게 가장 늦어지게 되었다.

통상조약은 크게 종교의 자유 명시, 부산 목포 인천 남포 원산 5개 항구의 개항, 공사관 설치와 자유무역 등이 명시되었다. 물론 이상의 조항들은 일본이 흑선 개항 이후 미국과 체결한 불평등 조약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아편을 단속할 권리마저 거세당했던 청에 비하면 '비교적' 평등적인 조약에 해당했다.

다만 김병학과 김병학 형제를 위시한 조선 대표단의 경우 그것이 불평등 조약이라는 인식도 아직 부재한 상황이었기에, 서역인들과의 협상은 으레 그런 줄만 알고서 이에 서명하였다.

물론 한양의 이형은 그것이 불평등 조약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던 만큼 선선히 이를 받아들였다.

"과인이 죽기 전까지는 이걸 개정할 수 있기는 할지 잘 모르겠구려."

그런 자조 어린 한숨은 덤이었다.

한편 봉천에 남은 청의 대표단은 또 그들 나름의 고충을 품고 있었다.

"당했다…!"

공친왕은 절규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조선에서 2만 명의 포로들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만주로 송환해줬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건 청에 있어서 전혀 긍정적인 일이 아니었다. 이미 한차례 북경의 조정에게 버림받은 그들이었다. 청의 조정에게 그들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지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를 어쩐단 말이냐. 도대체 이를 어쩌면 좋아?"

공친왕은 발을 동동 굴러댔다. 하다못해 한족들의 손에 애신각라 황실이 멸망하게 된다면 모를까, 여차하면 만주족들의 손에 애신각라 황실이 문을 닫게 될 지경이었다.

만주의 선조들이 이를 듣는다면 땅을 치며 통곡을 할 터였다. 천명이 다하여 한족들의 손에 의해 만주로 내쫓기게 되면 몰라도, 같은 만주족의 손에 망하게 된다면 그게 무슨 망신이고 그게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어떻게든 그것만은 막아야만 했다.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전하, 이만 결단을 내리시지요."

"무엇을 말이더냐? 도대체 과인이 무슨 힘이 있다고 결단을 내린단 말이더냐? 설마, 이대로 북경을 치자는 작정이더냐!"

"그렇다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그 요부가 고작 은화 1000만 냥을 못 내겠다 욕심을 부리다가 이제는 만주마저 등을 돌릴 지경입니다. 더 늦기 전에 북경으로 상경하여 모든 걸 바로 잡으셔야만 합니다!"

""""다이칭구룬 만세! 공친왕 전하 만세! 만만세!""""

그와 함께 봉천의 청 대표단으로 참가하였던 그의 측근들은 이미 그에게 어서 빨리 반정하자고 종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측근들이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공친왕으로서는 도통 내키지를 않았다.

북경에는 녹영군이 있고, 그들은 한족이었다. 당연히 만주 황실의 집안싸움이 분명해진다면 그들은 다른 마음을 품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만주의 팔기군 잔당들을 모아 북경으로 향한다고 해도 녹영군을 이길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럼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방법이 없다. 조선의 손을 빌려 반정을 꾀하는 수밖에! 그러나…조선이 정말로 북경을 함락시킬만한 힘이 있는가?'

공친왕은 주저했다. 그는 분명 현 애신각라 황실에서 가장 높은 어른이었지만, 그는 애초에 정당한 왕이 될 수 없는 신세였다. 지금 황제는 그의 조카였고, 그가 반정을 꾀한다면 그는 권력을 위해 조카에게 해를 가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리고 조선의 역량도 미지수였다. 그들이 팔기군을 쓰러트렸다고 하나, 이미 청 내에서도 팔기군의 전력 저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들이 정말 공친왕을 따라 북경까지 다다른다고 해도, 정말로 북경을 함락시킬 수 있을지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다못해 동태후만이라도 나와 함께 해준다면….'

만약 동태후가 자금성에서 호응해준다면 일이 한결 수월해지겠지만, 그 또한 헛된 희망일 뿐이라는 걸 공친왕은 알고 있었다. 정치에 뜻이 없던 동태후였다. 섭정으로서 그것은 분명 바람직하였지만, 두 섭정 중 한 명이 권력욕의 화신인 지금에는 그녀를 병풍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태후를 섭정직에서 탄핵하려고 해도 순순히 탄핵당하지 않고서 최후의 발악을 시도할 것이 분명한 지금, 공친왕은 반정을 꾀하기에는 명분은 충분해도 세력에서 밀리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정말로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공친왕은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두드렸지만, 그런다고 방법이 나올 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북경으로 돌아간다면 서태후의 손에 화를 당할까 두려웠던 그는, 역적 김좌근의 시신을 인도받을 때까지 북경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계속하여 봉천에 남기로 했다.

한편 러시아인들은 이보다 다급했다. 그들로서는 당장 공로가 필요했다. 차르의 명까지 어겨가면서 남하한 이상, 차르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공이 필요했다.

만일 빈손으로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명을 어기고서 멋대로 직권을 남용한 그들에 대한 재판일 터였다. 이 경우 최선은 시베리아행일 테고, 최악은 사형이었다.

"이를 어쩌면 좋소? 중국인들이 너무 쉽게 항복한 탓에 우리들이 설 자리가 사라졌소. 어찌하면 좋겠소?"

"현 청국의 실권자 서태후라는 여자는 이번 패전으로 그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녀와 접촉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 러시아가 그녀를 지원하겠다고 한다면 저들 또한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흐음, 그거 나쁘지 않구려. 좋소, 즉시 서신을 보내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공로를 원하고, 저들은 힘을 원하니 이만하면 저들에게도 나쁜 거래는 아닐 것이오."

그 즉시 러시아 극동 도독부는 북경의 서태후에게 밀서를 보내었다. 러시아의 아무르강 이남 진주를 용인하는 대신, 러시아는 서태후의 집권을 지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실로 하늘에서 본녀를 도우시는구나! 이는 하늘에서 내린 동아줄임에 틀림없다. 어찌 감히 물릴 수 있겠느냐?!"

이미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서태후가 러시아인들의 제안을 거부할 까닭은 없었다.

북경의 요청으로 러시아인들의 아무르강 이남 만주 주둔이 공인 되었다는 소식에 영국과 프랑스 미국 3개국이 길길이 날뛰었음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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