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51화 (51/530)

< 근대화의 밑준비 >

"멍청한 것들."

창덕궁, 능허정.

박규수와 함께 후원을 거닐다가 북경의 요청으로 러시아군의 만주 주둔이 공인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이형의 첫 반응이었다.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하여 러시아라는 외세를 끌어들인 서태후를 향한 것 만이 아니었다. 그건 굳이 현 상황에서 어떻게든 남하할 명분을 만들어 낸 러시아를 향한 매도이기도 했다.

'영국뿐이라면 모를까 프랑스까지 보는 앞에서 굳이 이 깽판을 쳐?'

굳이 프랑스가 극동의 평화를 위한 평화의 사도를 자청한 지금 시점에서 병사들을 순순히 물리는 대신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 내서는 끝까지 주둔하는 길을 택하다니. 아무리 러시아가 막가파 외교가 특징이라지만 이는 지나쳤다.

10여 년 전 크림전쟁으로 영불양국의 연합군에게 패퇴한 바 있던 러시아였다. 당연히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를 동시에 적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일지 모를 리도 없었다. 그런데도 러시아는 바로 그 위험한 짓을 자초했다. 알렉산드르 2세처럼 그럭저럭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차르가 할만한 실수가 아니었다.

'동시베리아 총독부, 혹은 극동 도독부의 폭주인가.'

이형은 곧 이 일의 배후를 파악해냈다. 일찌감치 근대국가에 접어든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국가들과는 달리 러시아는 기실 덩치만 커다란 전근대 제국에 불과했다. 여전히 각지에서는 봉건영주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제권력은 초법적인 지위를 지녀 법적으로 명시된 절차들은 차르의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무시 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지방 관료들의 폭주나 월권도 흔하게 일어났다. 이형은 이번 폭주도 당분간 안정을 원한 알렉산드르 2세의 뜻을 무시하고서 지방이 멋대로 폭주한 결과라고 판단했다.

"전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아무르강 이남이라면 이번에 저희 조선에서 할양받은 간도 일대가…."

말을 흐리는 것은 영의정 박규수였다. 서구 열강들의 힘을 엿본 그로서는 러시아의 남하로 조선이 짓눌릴 것을 우려하게 된 것이다. 기실 러시아군 1만 명만으로 지금의 오합지졸 조선군 따위 10만 명이 달려들어도 상대가 되지 않을 테니, 아주 근거도 없는 우려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이형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박규수에게 말했다.

"뭘 어쩌긴. 이 일은 영길리와 불란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시오. 그 치들은 제 무덤을 판 격이오. 불란서에게 노서아의 병사들이 물러날 수 있도록 잘 좀 말해달라고 부탁해보시오.

하는 김에 이번에 봉천에서 돌아올 의병들도 이만 해산하도록 명해두시오. 공을 세운 이들에게는 영상이 알아서 추려서 적절히 보상해두고."

"…알겠습니다. 하명하신대로 하겠나이다, 전하."

이형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장 극동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여순항을 프랑스가 조차 받은 지 아직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이런 와중 러시아가 무턱대고 남하하는데 그걸 용인한다면, 그건 곧 프랑스의 낯에 먹칠하는 꼴이 되었다. 자존심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프랑스가 이와 같은 모욕을 당하고서 가만히 물러날 리가 없었다.

박규수는 이형의 말에 군소리하지 않고서 잠자코 수긍하고 물러났다. 그건 그만큼 이형을 신뢰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근거 없는 신뢰도 아니었다. 박규수가 서역의 공사들과 접촉하기도 이전에 서역인들에 대하여 깊이 알고 있는 듯 보이는 행보를 보여준 소년 왕이었다. 적어도 현 조선 조정 내에서는 색목인들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소년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어째서 그러한가, 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소년 왕이 서역의 국가들에 대하여 익히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나 다를 바 없는 조선에 있어서, 그들의 어린 소년 왕만이라도 어느 정도 색목인들에 대하여 알고 있는 바가 있다는 것 자체가 조선 백성 전체의 제 복이었다.

"왜국의 국왕사는 언제쯤 도착한다고 하오?"

"저희 조선국과 청국의 왕실 혼이 이번 단옷날 있으리라는 것을 전해 듣고서, 그때 맞추어 조선에 찾아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듣자 하니 왜국에서도 우리 조선과의 친교에 큰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였으니, 맞이하는데 있어서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불란서, 영길리, 미리견, 노서아의 공사들도 그때 맞추어 오겠다고 하였지. 허, 참. 손님을 맞이하는 데만도 허리가 나가게 생겼구려."

이형은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이에 박규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단지 헛소리가 아니라 본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허리가 나갈지도 모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엄살에 가까웠다. 이번 전쟁에서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들까지 쓸어내면서 그들의 자산을 몰수하면서 현 조선의 재정은 전에 없이 여유가 넘쳤다. 이까짓 왕실 혼 따위 부담의 축에도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걸 소년 왕이라고 모를 리도 없었다. 그러나 그로서는 그 비용이 못내 아쉬웠다.

'손님맞이와 결혼식 한 번에 400만 냥이라. 조선의 1년 세수가 이 무렵 대강 상평통보로 800만 냥 즈음이었으니까 이거 한 번에 1년 세수의 2분의 1이 날아가 버리는 건데….'

이형은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세도 가문들로부터 700만 냥 상당의 현금과 쌀가마니, 5천만 냥 상당의 농지와 가옥, 예물 등을 압수하면서 당분간 재정 걱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전쟁은 조선의 압도적 승리였고, 이에 따라 열강국들도 조선의 국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만일 괜히 승전행사에서 쪼잔한 모습을 보여줬다가는 열강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될 테고, 그럼 열강들이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더 안 좋게 변하게 될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승전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노비해방까지는 역적들을 쓸어내면서 함께 처리했지만, 토지개혁부터는 이제 이야기가 다르지. 가능한 한 시골에서 구경 온 구경꾼들에서부터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한 번에 모아서 터뜨릴 필요가 있다.'

"아이고, 나 죽네!"

"나으리,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다 말하겠습니다. 예? 제가 다 말할게요! 그러니까 그 인두는 제발…! 끄아아악!"

이는 흥선군의 제안이었다. 요즈음 아주 10년 묵은 체증이 한 번에 내려가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 희희낙락하며 친히 국문에 참여하여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세력가들을 줄줄이 고문으로 옥사시키고 있는 흥선군 이하응이었다.

그 자신도 인제 와서는 욕받이 역할에 맛이 들였는지 그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그는 반쯤 고의로 형이 집행되기도 전에 가혹한 고문으로 역적들을 줄줄이 반병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설령 그들이 모든 혐의를 밝히더라도 이하응은 상관하지 않고서 아직도 숨기고 있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며 계속하여 고문을 가했다. 그동안 상갓집 개 소리를 들어가며 세도가 세력들에게 묵은 한을 몰아서 풀고 있던 것이다.

오늘도 궁 한쪽에서는 한때 조선을 쥐락펴락했던 세도가의 이름난 세력가들이 줄줄이 곡소리를 내며 이하응에게 자비를 구걸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반대편에 있던 이형의 귀에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지글지글하는 살타는 소리와 속이 거북해지는 고기 굽는 냄새는 덤이었다.

"…뭐, 보아하니 섭정 공께서는 오늘도 열심인 모양이시는구먼."

"어허! 이놈이 어서 아는 대로 고하지 못하고! 당장 입을 열지 못할까! 여봐라, 저놈의 주리를 틀어라!"

그야말로 신바람이 난 듯한 목소리였다. 이형은 궁 반대편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이하응의 성량에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잔학성에 혀를 내둘렀다. 그가 고의로 그런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무심코 눈을 질끈 감고 말 잔학성이었다. 그만큼 묵은 한이 컸던 것인지도 몰랐다.

'보아하니 노비해방이 어찌 진행되고 있을지도 뻔하군.'

김좌근의 역모가 진압된 당일 이미 어명으로 조선 8도에 하달된 노비 해방령이었다. 당연히 각지에서도 반발이 일었지만, 이미 저항하는데 필요할 힘 잘 쓰는 노비들을 근왕군의 이름 아래 평양이나 한양까지 보내버린 지방의 향리들에게 직접 중앙과 대결할 무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에도 여전히 향리들로부터 조직적인 반발이 계속되었고, 이에 따라 섭정공 흥선군이 보부청을 내세워 그들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일을 진행하는 데는 이하응의 솜씨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한 이형의 지지 아래 이하응은 꺼릴 것 없이 지방 향림들의 반발을 진압했고, 이하응의 명에 따라 보부상들은 향림들의 가택에 들이닥쳐 그들의 노비 문서를 보이는 대로 모조리 불태웠다.

덕분에 매일같이 격무에 시달리는 이하응이었다. 낮에는 역도들을 국문했고, 해가 저문 다음에는 보부상들과 접촉하여 노비해방의 진행 상황을 전달받았다. 하지만 그런 이하응에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매일 같은 격무에 시달려 눈 아래로 그림자가 드리우면서도 삶의 보람이 여실히 느껴지는 미소를 만면 가득히 띄우고 있던 이하응이었다….

"불순분자들 때려잡는 솜씨 하나는 섭정 공이 최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영상?"

"…예, 실로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형의 만족스러운 웃음에, 박규수는 떨떠름하게 답했다. 명색이 사대부였고 조선의 선비였던 박규수였다. 지금의 조선에 필요한 일이라고 하지만, 무력을 앞세워 불만 세력들을 때려눕히고 강압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이하응과 이형의 방식에는 동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조선이 병들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다소 극단적이기는 해도, 지금은 잠자고 있던 조선을 두드려 깨울 때였다.

두드려 깨운다는 것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두들겨서 깨우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노비해방과 농지개혁까지 끝나고 나면 일단 당분간은 백성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되겠지. 선비들의 불만은 승전과 청과의 사대교린 쾌척으로 무마 가능할 테고. 물론, 오래가기는 힘들겠지.'

노비해방과 농지개혁이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던 이형이었다. 이하응의 일 처리 솜씨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죽으라고 갈려나가는 것은 청과의 전쟁준비 때부터 시작하여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개혁의 폭풍에 매일같이 격무에 시달리는 조선의 관료들이었지 조선의 왕인 이형 그 자신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상관하지 않고서 계속해서 개혁을 몰아붙일 수 있기도 했다.

'그동안 100을 잘해줘도 10을 못 해주면 불평하는 것이 인간이다. 결국 고갈 직전의 행정력으로 빠듯하게 진행하는 벼락치기 개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부족한 부분을 흥선군이 힘으로 메꾸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숨돌리기 정도는 해줘야겠지. 그럼 그때부터 개혁의 부작용들과 반발의 목소리도 한 번에 터져 나올 거다.'

이형은 그것을 3년 후라고 짐작했다. 그렇게 짐작한 까닭은 그때가 이형이 성인이 되며 친정을 가능해지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섭정공 이하응이 조정에서 물러날 합법적인 구실이 생기는 것이다.

아마도 그때부터가 지방으로부터 반대 상소가 쏟아지는 기점이 될 터였다. 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당사자인 이형을 공격할 수도 없을 테니, 비난의 화살은 모두 이하응의 몫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하응이 물러나고 나면, 자연히 개혁도 추진력을 잃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개혁의 중추는 이하응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행정력을 격무와 폭력으로 어떻게든 메워가며 벼락치기 개혁을 아득바득 유지하던 이하응이었다. 그가 없다면 이형의 개혁안은 시작하기도 어려웠다.

'뭐, 이하응도 죽어라 버티겠지만. 지금 유림에게는 최익현이라는 최종병기가 있지. 결국 언젠가는 한계가 온다.'

그럼 그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러 가지 방도가 있겠지만, 이형의 대책은 이러했다.

"그러고 보니, 군기시를 시켜 서역의 병장기들을 복제해보라 한 것은 어찌 되었소? 역시나 무리라고 하던가?"

"무리할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통상적인 저희 조선의 병장기들에 비하여 복잡하기 그지없어 여러모로 대량 양산에는 불편함이 많을 것 같습니다."

"상관없소. 어떻게든 복제해내시오. 청에서 노획한 서역의 대포들도 가능한 한 복제하고, 불란서의 공사가 선물한 소총들도 되는대로 복제하시오. 무엇보다도 그런 경험이 중요한 것이외다."

'어차피 예상한 일이다. 달려드는 족족 모조리 짓밟아버리는 수밖에 없어.'

이형의 각오는 굳건했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일본의 메이지 유신 또한 무사들의 반란과 크고 작은 민란들을 진압하면서 간신히 성사된 개혁이었다. 조선이라고 그보다 사정이 나을 이유는 없었다. 그나마 청과의 전쟁에서 승전한 것으로 불만 세력들도 줄어들거나 수위가 낮춰지게 될 것이라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프랑스로부터의 군사고문단이 늦어도 이번 달 중에는 도착한다고 들었다. 그럼 금위영부터 시작해서 오군영을 중심으로 중앙군을 재편성해야겠지. 메이지 신정부는 갑종 사단이라고 해서 중앙군 일부 사단만이라도 서구 열강들과 비등한 수준의 훈련과 무기들을 갖출 수 있도록 안배했다. 결국 동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성공한 건 메이지 정부밖에 없는 이상, 참조하는 수밖에.'

프랑스에서 어디까지 그들의 밑천을 내보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번 전쟁을 계기로 프랑스는 조선을 확고한 친 프랑스 국가라고 인식하게 되었을 터였다. 왕인 이형이 혀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프랑스가 위대한 나라이고 굉장한 나라이며 아름다운 나라라는 등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면 자국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프랑스인들의 특성상 크게 감명받을 것이다.

그럼 무기 판매에서도 정가를 받을지언정 바가지를 씌우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되지도 않는 프랑스 찬양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위대한 프랑스에서 조선을 불쌍히 여겨 아량을 베풀어 달라고 굽신대면 우쭐해서는 이것저것 말하지도 않은 것들까지 내놓거나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여서는 근대화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공산도 있었다.

'이런 거 보면 프랑스 놈들은 짱꼴라들과 꼭 닮았단 말이지.'

이형은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익보다도 자존심을 우선시하는 점이 나폴레옹 3세를 일찍이 고려 천자 2세로 점찍은 이유이기도 했다.

자존심만 세워주면 이것저것 챙겨주는 상대와의 외교라면 조선의 특기 중 특기였다.

'그리고 너무 띄워주면 아예 상전 노릇하려고 달려드는 것도 공통점이지.'

이형은 허리춤의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일찍이 박규수가 로버트 공사에게 선물 받았던 콜트 아미 리볼버였다. 그건 곧 개혁 초기 조선이 의지할 곳은 프랑스만이 아니라는 약속의 징표였다.

'물론 이 시대의 미국에 너무 기대해봤자 곤란하겠지만….'

아직 북미대륙의 지역 강국에 지나지 않는 미국이었다. 설령 미국이 조선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정말로 유의미한 지원이 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았다. 미국으로서는 우선 태평양에 진출하기 전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개척에 전념해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유사시에 의지할 열강이 하나 늘게 된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로 군축을 하며 그들이 전쟁 기간 중 사용한 어마어마한 양의 군수 물자들을 헐값에 팔아 치우게 될 테고, 이는 미국산 총기들이 값싼 가격에 조선에 대량 유입될 가능성을 암시했다.

'언젠가는 편을 정해야겠지만, 아직은 아니야.'

당장 갑종 사단부터 편성하고, 프랑스에 아양 떨며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행정력 고갈에 시달려가며 썩어 문 들어가는 조선을 개혁하는 데만도 벅찬 이형이었다.

그레이트 게임에서 누구의 편을 들 것 인가는, 아직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봐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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