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52화 (52/530)

< 프랑스 군사고문단 >

이형의 예상대로, 프랑스는 전쟁조차 불사하겠다며 당장 러시아에 만주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였다. 영국과 미국은 직접적인 지지 의사는 보이지 않았으나 러시아의 확장 주의적 행보로 극동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며 우려의 뜻을 보였고, 이는 곧 프랑스에 대한 암묵적인 지지였다.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러시아 또한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서 끝까지 버텼다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차르는 그가 평생에 걸쳐 총애하던 전 동시베리아 총독 무라비요프 백작을 차마 내치지 못했다.

프랑스가 독일 통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시선을 고의로 동방으로 돌려둘 작정이었던 북독일연방의 수상 비스마르크의 지지 의사는 덤이었다. 프로이센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와중 북경의 조정에서도 러시아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한결 자신감이 붙은 차르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봉천 조약에 의거하여 지린성의 할양은 3년 후로 예정되어 있으며, 그럼 그때까지 아직 만주 전역은 청국의 영토이다. 청국의 요청에 따라 남하한 우리 러시아군의 정당한 군사적 조치에 대해 어찌하여 영불미 3개국에서 왈가왈부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우리 러시아 제국은 청국과 3년 후 조선국을 제외한 어떠한 나라와도 교섭하지 않겠다."

당연히 이러한 러시아의 응답에 프랑스에서는 정말로 전쟁조차 불사할 기세로 날뛰었으나, 그렇다고 정말로 러시아와 전쟁을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1862년 멕시코 내전에 개입하여 대군을 파병한 것을 시작으로 멕시코 일대에 프랑스의 괴뢰국인 멕시코 제국을 세우기 위하여 군사력을 투사하는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 무렵 독일 통일을 거의 완성해 가는 듯 보였던 프로이센의 존재도 그들의 군사력 투사를 망설이게 했다. 당장 통일 독일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웃 패권 국가가 탄생하려는 와중 러시아와의 군사적 충돌을 빚는 것은 결코 프랑스의 국익에 합치되지 못했다.

"우리 프랑스에서는 조선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바이며, 조선의 주권을 위협하는 어떠한 횡포에도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봉천조약에 의거하여 극동의 평화를 위협하는 러시아인들은 우리 프랑스를 위시한 열강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저들은 머지않아 만주를 떠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아무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국 이것이 프랑스 공사 벨로네로부터 돌아온 공식적인 프랑스 제국의 의사였다. 직접 지금 뭔가 해줄 수 있는 건 없겠지만, 그래도 또다시 이러한 사태가 재발한다면 그 즉시 프랑스에서도 지원을 올 테니까 안심하라는 상투적인 말이었다.

러시아가 영불미 3개국의 압력을 못 이겨 곧 물러날 것이라는 미래예측도 결국 프랑스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따뜻한 남쪽 땅을 향한 끝없는 갈망에 목마른 러시아인들이 이번 기회에 만주 땅에 눌어붙으려 하면 눌어붙었지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었다. 정말로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직접적인 무력시위가 있는 다음에야 물러나게 될 터였다.

당연히 영불미 3개국에서 어련히 러시아를 자제시킬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던 이형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우라질 것들 같으니라고. 지금 장난해? 그럼 결국 조선에서 알아서 대처하라는 거잖아. 3년 후에 열강들의 지지만 믿고서 러시아 상대로 만주에서 물러나 달라 요청하라고? 전두엽에 총 맞았냐?'

"허허허, 과연 믿음직합니다. 조선국에서는 귀국만 믿고 있겠습니다. 노서아인들도 귀국과 같았다면 우리 조선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실로 그러합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조선국과 같은 좋은 친구를 극동에서 얻게 되어 얼마나 기뻐하시는 줄 모릅니다. 우리 프랑스 제국에서 조선국에 걸고 있는 기대가 참으로 큽니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형은 절로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근육을 혹사해서 가까스로 웃는 낯을 유지했다. 물론 프랑스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프랑스 또한 거의 공짜로 얻게 된 친 프랑스 국가를 버리지는 않을 테니,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로부터 어느 정도 지원만이라도 타낼 필요가 있었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하. 저는 프랑스 제국 대육군 대령 루이 베르그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저와 함께 조선국의 문명개화를 도울 군사고문단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과인이야말로 그대들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영광이오. 그대들에게 거는 기대가 참으로 크오. 앞으로 과인이 이 나라 조선국을 귀국 프랑스 제국과 같이 위대한 나라로 바꿀 수 있도록 잘 도와주시오."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안심해주십시오. 우리 프랑스군은 유럽 최강입니다. 프랑스와 손을 잡으신 일을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이틀 후 인천항을 통하여 프랑스로부터 파리 외방전교회의 선교사 겸 역관과 함께 11명의 군사고문단이 도착했다. 3000정의 미니에 소총과 12문의 후장식 야포, 그리고 이 모든 화기를 1주일간 사용 가능한 탄약들과 함께였다. 루이 대령은 조선과 프랑스 양국의 우호 관계를 위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전에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제공된 150정의 소총은 어디까지나 벨로네 공사 개인의 선물인 만큼, 이번 선물은 프랑스 제국으로부터의 공식적인 축하선물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에 조정의 신진 관료들은 크게 반색하며 프랑스에 우호적인 발언을 연신 쏟아냈으나, 이형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걸 한눈에 깨달았다.

'빌어먹을. 진짜로 우리들보고 러시아에 개겨보라는거군.'

이번만큼은 이형도 더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구겼다. 하필이면 지금과 같은 정세에 이만한 양의 지원을 퍼붓는다면 그 속내야 뻔한 것이었다. 자신들은 지금 여유가 없으니, 조선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건 조선에 있어서도 그다지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고작 1개 연대를 무장시키는 것이 전부일 무기들을 가지고서, 비록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 이전이라고 하나 러시아를 상대로 으르렁거려야 한다.

좋게 말해도 고기 방패였고 나쁘게 말하면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받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없었다. 아무튼 지금의 조선에게는 어떤 식으로건 열강들의 지원이 절실했으니까.

'그래, 어차피 지금 조선에 있는 게 깡다구밖에 더 있었냐. 싸우다가 힘이 부족해 패하여 망한다면 억울하지나마 않지. 우라질, 또 오지게 죽어 나가게 생겼군.'

근대화는 민중의 피와 눈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다. 이형은 그것을 국내의 반발과 근대화의 부작용 때문일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의 조선이 흘려야 할 피와 눈물은 근대화의 부작용 같은 배부른 소리가 아니었다.

당장에 청과 러시아라는 두 대국을 상대로 만주를 놓고서 정면 대결을 벌여야 할 판국이었다. 이형은 결국 어떤 식으로건 흘렀을 피였다고 자신을 다독였지만, 뜻하지 않게 끝도 없이 전쟁을 강요당하는 꼴이 된 지금의 국제정세가 그리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향후 조선은 귀국 프랑스로부터 우수한 병장기를 도입하고자 하오. 한데, 소총과 탄약류의 경우에는 언제나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지 않겠소? 하여, 이번에 청으로부터 받을 배상금 중 각 은화 100만 냥씩 총 200만 냥으로 귀국의 탄약공장과 소총공장을 이 나라 조선 땅에 유치하고 싶소.

물론 새로이 탄약과 소총을 생산할 때마다 그 값은 지불하리다. 그리하면 귀국 또한 운송료를 아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우리 조선도 프랑스의 우수한 공업기술력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이오."

"물론입니다. 전하께서는 우리 프랑스의 가톨릭 신자들의 영웅이십니다. 정당하신 대가만 지급하신다면 그까짓 공장이 대수이겠습니까. 당장 폐하께 진언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나마 띄워주면 이것저것 챙겨주기는 하는 거 보니 양심은 있구나. 하기야, 우라질. 러시아랑 싸워보라고 싸움 붙이면서 이 정도도 안 해주면 너희들이 사람 새끼더냐.'

이형이 연이은 친 프랑스 발언을 쏟아내자 루이 대령은 그야말로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함박웃음을 띄웠다. 생전 처음 보는 나라의 왕이 프랑스가 위대한 나라이며 굉장한 나라이고 자신은 프랑스의 좋은 문물들을 아낌없이 도입할 예정이라고 아낌없이 친 프랑스적 언사를 쏟아내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만무했다.

'장차 여순은 우리 프랑스의 홍콩이 될 것이고, 조선은 여순과 베트남을 잇는 우리 프랑스의 극동 삼각무역의 일축이 되어줄 것이다. 조선의 왕이 우리 프랑스에 이토록 우호적이니, 향후 100년간 극동에서 감히 우리 프랑스에 대항할 자는 없다! 그렇게 되면 나는….'

조선군을 개화시켜 극동의 강군으로 만들어 그 공로로 장군까지 진급할 꿈에 부푼 루이 대령이었다. 근거 없는 기대도 아니었다. 조선은 극동의 대표적인 친 프랑스 국가였고, 현재 프랑스 본국에서는 조선에 대한 깊은 기대를 보이었다.

이미 제국의회에서는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가면서 물 건너간 멕시코 식민지화는 이만 포기하고서 조선과 극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고, 이는 황제 나폴레옹 3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온 프랑스의 관심이 극동에 집중된 가운데 군사고문단을 이끌 총책임자로 선출된 것이다. 성공시키기만 한다면 프랑스 군수업체들은 족히 20만 명 이상의 대군을 보유할 미래의 강군을 단골로 얻게 되는 셈이었다. 자연히 루이 대령에게 쏟아지는 관심도, 기대도 예년 같지 않았다.

'기필코 성공하여 돌아가고 마리라.'

그런 굳건한 각오를 담아, 루이 대령은 눈앞의 소년 왕에게 허리를 굽혀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경의를 표했다.

'얼씨구. 아주 쇼를 한다 등-신. 그래봤자 노랑 원숭이 두목쯤으로 보고 있는 거 다 안다 이놈아.'

정작 그를 마주하는 이형은 냉소적이었지만 말이다.

프랑스 군사 고문단이 정식 부임하게 된 이후, 이형은 가장 먼저 금위영을 재편하여 시위대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단순히 이름만 시위대로 바꾼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고문단의 조언에 따라 편제까지 프랑스식으로 바꾸었다. 금위대장은 시위대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고, 그 지위는 프랑스식 계급 체계상 준장에 해당했다.

물론 본래 금위영에 속해있던 병졸들과 갑사들의 계급체계 또한 프랑스식 체계에 따라 개편되었다. 프랑스 군사고문단은 조선군에게 부사관에 해당하는 계급이 드물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폴레옹 1세 시절의 대육군 이래 경험 많은 부사관들이 전체 부대의 사기와 기강을 유지하고 경험이 부족한 신임 장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군사전통을 축적한 프랑스군에게 있어서, 부사관의 부재는 무엇보다도 심각하게만 느껴졌다.

"전하, 감히 말씀 드리건대 현 조선군에는 무엇보다도 하사관들의 부재가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경험 많은 부사관은 곧 군의 허리와도 같습니다. 현 조선군에게 무엇보다도 부족한 것은 경험 많은 병졸들에 대해 대우와 그들이 함부로 장교들에게 조언을 할 수 없는 경직된 문화입니다. 이를 고치지 않고서는 조선군은 강군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경들의 뜻대로 하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더는 과인에게 이런 세세한 사항들까지 보고하지 않아도 좋소. 알겠소? 과인은 그대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하였소. 이는 과인이 귀국 프랑스의 강성함을 믿고 있기 때문이오. 그대들이 이 나라 군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소. 그대들의 뜻대로 하시오."

"전하…! 감사합니다. 이 신뢰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결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이형은 프랑스 군사고문단의 조언을 그 즉시 받아들였다. 그날로 이형은 무엇보다도 경험 많고 나이 많은 병졸들을 먼저 한양으로 불러들여 그들을 시위대에 편성시켰다. 이들은 자연히 시위대에서 부사관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프랑스 군사고문단은 그들에게 부사관으로서의 업무와 역할에 대하여 철저히 교육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해 무과에 급제하여 새로이 벼슬길에 오른 젊은 무관들도 모두 한양으로 불러들여 그들을 시위대에 편성하였다. 군사고문단은 그들에게 프랑스군의 군사전통과 문화를 철저히 이식하였고, 이는 분명 당대 최신을 달리던 프로이센군에 비하면 부족한 감이 있었으나 조건 없는 조국을 향한 애국심과 황제에 대한 충성을 기초로 한 프랑스의 군사교육은 조선의 무관들에게 실로 이해하기 쉬웠다.

조청전쟁 이래로 해산된 의병 중에서도 계속하여 군문에 남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형은 먼저 시위대에 편성시켰다. 그는 글자 그대로 조선의 모든 군사적 역량을 시위대 하나를 위하여 투자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는 뻔했다.

'일단 무엇보다 절실한 건 상시투입 가능한 완벽히 근대화된 1개 사단이다. 그 1개 사단의 편성이 완료되고 여기에서 군 복무를 마친 하사관들과 장교들이 늘어갈수록 점진적으로 그 규모를 확대하고 최종적으로 전군에 확대하는 거지. 어떻게든 1만 명만 채우자. 어떻게든 1만 명만 채우면 돼! 그 1만 명이 후일 100만 명이 되어줄 거다!'

물론 여기까지 끌어모으고서도 시위대의 규모는 고작 1개 대대 남짓한 수준이었다. 아직 프랑스 군사고문단이 조선에 도착한 지 1달이 조금 안 되었으니 이마저도 제대로 된 근대화가 완료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수야 없겠지만, 이형은 아직도 모든 것이 굼뜨게만 느껴졌다.

당장 러시아와 검을 맞대려면 우선 군사력부터 육성해야 했다. 산업화도 근대화도 당분간은 모두 군비증강에 초점을 맞추고서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개혁의 중심축이 되어야 할 군대조차 미비한 상황이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실로 프랑스가 이 어린 소년 왕을 얻게 됨은 하느님의 은총임에 틀림없다! 과연 그동안 우리 프랑스가 만난 이교도 왕 중 이 소년 왕처럼 프랑스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여주던 왕이 있었던가? 이 신뢰에 보답하는 것이 곧 위대한 조국 프랑스를 위하는 길일 것이다!'

처음에는 장군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열을 올리던 루이 대령도, 그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소년 왕에게 조금씩 감화되어갔다. 병사들이나 무관들의 불만도 모두 무시하고서 그들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손을 들어주는 왕이었다. 호의를 품지 않는다면 그편이 이상했다.

점차 루이는 자신이 조선에 온 것이 조국 프랑스를 돕고자 하는 하느님의 인도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루이 대령이 프랑스 본국에 올리는 보고들도 하나같이 조선에 호의적이기 그지없었다. 루이는 조선의 왕이 프랑스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조선을 프랑스와 같은 위대한 나라로 바꾸고자 하는 굳건한 의지로 똘똘 뭉쳤다고 보고했고, 이를 전해 들은 프랑스의 언론들은 어린 소년 왕에게 호의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이러한 우호적인 기사들이 곧 프랑스 시민들과 정계에까지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점차 소년 왕을 세상에 둘도 없을 친 프랑스 인사이자, 기독교 신앙에 관대하고 현명하면서도 용감무쌍한 어린 이교도 왕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던 어느 날, 루이 대령은 심각한 병사들과 무관들의 반발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상투를 자르고 오랑캐들의 옷을 입으라니! 제아무리 그대들이 주상전하의 대리인이라고 하여도 이는 받아들일 수 업소다!"

"실로 그렇소! 우리들보고 오랑캐들이 되라는 소리요? 해도 해도 정도가 있소. 우리는 결코 상투를 자르지 않을 것이오!"

"아니, 도대체 그까짓 머리 자르는 것이 뭐라고 이토록 난리란 말입니까? 이 나라와 국왕 전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까짓 머리 하나 자르는 것이 대수입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요! 하다 하다 정도가 있지, 상투를 자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원!"

결국 난관에 부딪힌 루이 대령은 참다못해 또다시 이형을 찾아갔다. 그가 더는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지 꼭 보름만의 일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이형은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시위대가 훈련마저 거부하고 소란을 피우고 있는 훈련장으로 찾아갔다.

"이게 대관절 무슨 일인가?"

"전하, 소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소서. 아니, 저 오랑캐들이 훈련을 명목으로 상투를 자르고 호복을 입으라며…!"

싹둑-.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형은 소리 높여 고함을 지르던 젊은 무관에게서 총검을 빼앗아 그것으로 자신의 상투를 잘라버렸다. 돌발행동에 병사들이 경악하여 할 말을 잃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이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잘려나간 머리 꼬랑지를 던져 버리고서는, 산발을 한 채로 입고 있던 곤룡포마저 벗어버리고서 병졸들이 아무렇게나 던져 둔 제복을 주워 입었다.

그 뒤 태연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 조금 전 뭐라고 했었지?"

대답은 없었다.

그날로 시위대의 무관들과 병졸들은 상투를 자르고 프랑스에서 선물한 서구식 군복을 차려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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