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54화 (54/530)

< 산 넘어 산 >

"함정입니다."

토마스 공사에게 일단 단옷날까지 요구사항을 정리해 두겠다는 말로 돌려보낸 후.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섭정공 이하응은 말했다. 이형도 깊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여 그에 수긍했다.

"그렇소. 함정이지. 받아들인다면 우린 저들을 대신하여 노서아와 다퉈야 할 테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린 저들을 배신하고서 노서아와 손잡으려 한다고 의심당할 것이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소."

"이건 미친 짓입니다, 전하. 어떻게든 막아야만 합니다! 이제 막 청국과 싸워 이겨 간신히 무엇이 되었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판입니다. 지금과 같은 정세에 또다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한다니요. 그거야말로 미친 짓입니다. 당장 멈춰야 합니다!"

"무슨 수로? 알다시피 노서아는 만주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 하였고, 영길리와 불란서는 이에 맞서 우리 조선을 돕겠다 하였소. 3년 뒤면 간도가 우리 조선의 것이 되고, 그럼 우리 조선은 우리 조선 땅에 노서아군을 들인 꼴이 되지.

우리들로서는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노서아를 섬기는가, 아니면 저들의 대리인으로서 노서아와 부딪히는가 중 1택 밖에 없소."

이하응은 신음을 토하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인제야 겨우 세도 가문들을 쓸어내고서 이 나라 조선과 전주 이씨 왕조를 살릴 실마리가 보이던 와중이었다. 그런 와중 이번에는 노서아와의 충돌을 각오해야 할 판국이라니. 하늘이 노래지는 듯했다.

이는 이형으로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극동 러시아군은 유럽 러시아군과는 다르다. 숫자도 그리 많지 않고, 실속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속이 없는 거로는 우리 조선이 더하지….'

이형은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이 부분이었다. 저들은 명색이 열강의 군대고, 조선군은 결국 비유럽권 준 문명국의 군대였다. 그 차이는 실로 거대했다. 2선급 부대가 상대라고 해서 조선군이 숙련도와 화력, 사기 등 모든 면에서 저들에게 우위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물론 러시아와의 전쟁이 실제로 터진다면 그리 오래 끌지는 않을 것이다. 국경지대에서의 단 한 번의 결전으로 모든 것이 결정될 테고, 그 전투의 승패에 따라 양국은 협상하는 수밖에 없다. 조선은 장기전을 치르기에는 여력이 부족하고, 러시아 또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아직인 이상 극동에서 장기전을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한 번의 결전이 전부일 거라는 점이 문제다. 차라리 러시아 놈들이 조금 더 여유가 있어서 조선반도까지 남하한다면 의병들을 동원해서 유격전이나 펼치지, 단 한 번의 결전으로 모든 것이 승부가 난다면 결국 정규군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지금 우리 조선에서 저들과 대등하거나 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력이라고는….'

고작 시위대 1개 대대가 끝. 그마저도 아직 훈련 단계이고,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3년 후까지도 1개 사단 이상의 전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그 1개 사단도 그나마 현 조선이 청과의 전쟁으로 실전경험을 축전하면서 그만큼 숙련병이 늘어났기에 가능한 이론상 최대 수치였다.

그러나 그 1개 사단도 러시아 제국군과 맞붙는다면 동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지금과 같은 대치가 계속된다면 러시아도 조금씩 정예군을 전진 배치 시킬 테고, 그럼 3년 후까지는 아무리 낙천적으로 생각해도 2~3개 연대 정도는 배치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2~3개 연대와 우리 시위대 갑종 사단이랑 맞먹을 테지. 러시아 민병대들과 합류한다면 아예 쌈 싸 먹을 수 있을 테고. 우라질, 망할 놈의 러시아 놈들 같으니라고. 이래서야 여차하면 러시아랑 손잡는 길이 사라져 버렸잖아.'

"어쩔 수 없소. 간도의 할양이 완료되는 3년 후까지 최대한의 전력을 갖춰서 어떻게든 노서아인들에게서 양보를 끌어내는 수밖에. 저들에게 영토를 양보받거나 배상금을 건네받는 건 기대도 하지 않소. 하다못해 머지않아 우리 조선 땅이 될 간도에서만이라도 몰아내 봅시다."

"…허허허."

이하응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형의 말이 단지 빈말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무심코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이하응은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청나라까지는 운이 좋게도 이겨낼 수 있었지만, 러시아는 명실상부한 서역의 열강이었다.

이번 전쟁과 통상조약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서역인들의 힘을 느낀 이하응으로서는 울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이형이라고 그건 다르지 않았다. 평소의 허세도 지금에 와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최악의 가능성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러시아에게 패배하고 그들의 괴뢰국이 되는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게 오늘은 아니야.'

"자, 또다시 시간제한이요. 저번에는 1년이었고, 이번에는 3년이지. 그럼 적어도 그때보다야 지금이 낫지 않소? 함께 힘내 봅시다. 그렇다고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서 주저 앉을 수야 없지 않소?"

이형은 가볍게 손뼉을 쳐 분위기를 환기했다. 거기에 이하응도 정신이 돌아왔다.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고작 전쟁에서 한번 승리한 정도로는 무엇 하나 바뀌기 어려운 조선의 현실이었다.

그럼 또다시 철저히 준비하여 그들의 방식대로 승리를 거머쥐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하응은 깊이 한숨을 내뱉었다가, 다시 들이쉬었다. 한차례 심호흡하여 동요를 가까스로 가라앉힌 이하응은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선 역도들의 처분부터 마저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더는 국문을 끌어봤자 얻어낼 정보도 없는 듯하니. 인제 그만 편하게 보내드려야겠지요.

영길리와의 협상은 부탁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주상께서는 저들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아시는 듯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한은 좀 풀렸소? 보아하니 꽤 즐기는 듯 보였소만."

"아니, 아직 덜 풀렸습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있겠습니까? 더는 끌 시간이 없으니 이만 마무리 짓는 수밖에요."

이하응의 살벌한 대답에, 이형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승낙의 뜻이었다.

"아 참, 상투를 자르셨더군요."

이하응은 문득 생각 났다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그렇소. 섭정공께서도 자르시겠소?"

"그야, 언젠가 기분이 내키면 생각해보지요."

두 부자의 문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토지 개혁이라는 개국 이래 최대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개혁을 앞두고서, 고작 상투를 자른 정도로 요란을 떨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보름 후 마침내 형이 집행되었다. 역모에 관련된 주모자들은 일괄적으로 목이 잘렸다. 역적 김좌근만은 여기에 예외로, 그는 형이 집행되기도 전에 지나친 공포로 심장발작을 일으켜 목숨을 잃었다. 김좌근의 시신은 사후 청에게 양도 되기로 약조 되어있던 만큼, 그 즉시 김좌근의 시신은 소금에 절여졌다.

이국의 시선을 고려한 이형의 지시였다. 그런 만큼 처벌받게 된 것은 당사자들뿐이고, 가산이 몰수되었을 지언정 그들의 가족들에게까지 처벌이 가해지지는 않았다. 이는 경국대전에 어긋난다며 항소가 빗발쳤지만, 이형은 거부하였다.

"그 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모든 처벌을 묻지 않고서 그 가족들에게까지 형을 확대함은 악습이다. 과인은 이를 이번 역모를 끝으로 뿌리 뽑으려 한다."

역모를 자신의 힘으로 무너뜨린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는데 반발이 오래 갈 수는 없었다. 결국 유림은 마땅치 않아 하면서도 조금씩 침묵했다. 그러나 이미 유림 사이에서는 안하무인의 소년 왕에 대한 우려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단지 세도정치의 폐단을 뿌리 뽑으려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개혁이, 점차 조선을 근간부터 뒤흔들고 있다는 우려였다.

"이 모든 것이 저 섭정 공을 자처하는 흥선군의 탓이다. 그 작자가 아직 미숙하신 왕을 속여 이 나라 조선을 망치려 하고 있다!"

누가 먼저 시작했다고 콕 집어 낼 수조차 없이, 어느새인가 지방에서는 그런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이는 보부청을 통하여 조선 8도 곳곳의 정보를 전해 듣고 있던 이하응 또한 파악하고 있었다.

"허, 내가 저 안하무인의 애송이를 속여 멋대로 힘을 휘두르고 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하응은 그저 냉소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지방의 불만에 정점을 찍은 것은 단옷날이 다가오면서 점차 부산, 인천, 목포, 남포, 원산에 이국의 상선들이 들락거리고 몇몇 색목인들이 아예 집을 세워 이 5개 항구에 정착하려 들면서였다. 색목인들은 이 5개 항구에 정착하면서 가장 먼저 그들이 살게 될 집과 함께 교회를 세웠고, 이들이 세운 교회에는 곧 조선 8도 곳곳에 천주교도들이 모여들었다.

색목인들과의 통상으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천주교도들은 기쁜 마음에 한데 모여 감사의 뜻을 올리는 미사를 올렸다. 여기에 중심이 된 것은 다름 아닌 현 조선왕 이형의 친모이기도 한 여흥 부대 부인 민 씨였다.

"그 아이가 마침내 해냈구나! 나는 믿었다. 암,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데! 전능하신 천주시여, 제게 이 조선 땅의 천주교도들을 구할 아기 천사를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한 조선 내 천주교도들의 움직임은 색목인들에게도 감지되었고, 그들은 이날의 미사를 조선 땅에서 공식적으로 기독교 박해가 종식된 역사적이고도 거룩한 순간이라며 앞다퉈 고국의 언론들에 알렸다.

이는 홍콩과 상하이를 비롯하여 극동 내 유럽인 조계지에 가장 먼저 알려지게 되었고, 그들은 5개 항구에 모여 미사를 올리는 신앙의 형제들을 구경하거나 돕기 위하여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연히 어떠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던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색목인들의 유입이 늘어나자, 각지에서는 혼란이 벌어졌다. 상인들이야 색목인들이 와서 돈을 펑펑 써주고 있으니 좋아했지만, 어부들은 급작스럽게 늘어난 색목인들의 상선들 때문에 어획량이 줄었다며 불만스러워하였고 유생들은 천주쟁이들이 벽두 대낮에 시가지를 활보하고 요사스러운 성가를 부르며 행진하고 있는 현실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이놈들이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이 나라 조선은 유자들의 나라이니라. 괴력난신에 홀려 조상들께 제사도 지내지 아니하는 너희 금수와도 같은 족속들이 어딜 감히 이제 너희들 세상이 온 양 행패를 부리느냐?!"

"아이고, 나리!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아이고!"

"이곳은 하느님의 성전이요! 이러한 행패는 결코 용납될 수 업소다. 당장 물러가시오!"

"이, 이 오랑캐 놈이 어딜 감히 조선 땅에서 눈을 부라려…! 안 되겠다. 쳐라!"

결국에는 사건이 터졌다. 목포에서 천주교도들을 고까워하던 양반이 주먹패들을 모아서 미사를 올리던 교회의 천주교도들을 구타한 것이다.

교회에는 색목인 상인들과 사제들도 있었고, 이들은 한유석이라는 양반이 끌고 온 주먹패들을 막으려다가 이 변고에 휩쓸렸다.

다행히 희생자는 없었으나 이 일로 5명이 중상을 당했고, 12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 일은 그 즉시 관아에 보고되었으나, 평소 천주교도들과 색목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걸 마땅치 않아 하던 현감은 이를 모른 채 했다.

한양의 이형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보부청을 통하여 이 사실을 사전에 전달받은 이하응의 덕분이었다.

"…우라질, 이거 또 귀찮게 생겼군."

이하응에게서 사건의 경위를 전달받은 이형은 가장 먼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청과의 전쟁으로 색목인들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북방의 백성들과 천주교도들이 역모를 진압하는 데 도움을 주었음을 알고 있는 경기권의 백성들은 비교적 변화에 호의적이었으나, 삼남도의 백성들에게 천주교도들과 색목인들은 여전히 이방인일 뿐이었다.

이번 사건은 이방인들에 대한 반발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에 불과했다. 그들로서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방인들과 조상들에게 제사도 올리지 않는 금수와도 같은 천주교도들이 이제 제들 세상이 온 마냥 설치고 다니는 걸 고깝게 볼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형이 이걸 가볍게 넘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에는 프랑스인들까지 연관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보고에는 직접 프랑스인이라고 되어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조선과 통상조약을 맺은 4개 열강 중 천주교 국가는 그들뿐이니 프랑스일 수밖에는 없었다.

"이를 엄히 벌한다면 유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신중해지셔야 합니다, 전하."

박규수의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 말 대로이기도 했다. 만일 이번 일을 엄중히 벌하게 된다면 유림은 조정이 천주교도들과 색목인들을 감싸고 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반대 상소 정도로 끝날 리가 없었다. 한양까지 상경해서 시위를 벌이는 유생들이 속출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벼이 넘긴다면 프랑스에서 불만을 품을 테고, 자신들이 직접 처벌할 테니 어서 죄인들을 넘기라고 소란을 피울 것이 틀림없었다. 이형으로서는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는 없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섭정공?"

결국 이번에도 이형은 이하응의 지혜에 기댔다. 하지만 이하응이라고 해도 대답이 궁할 수밖에는 없었다. 어느 쪽을 택하건 누구 하나의 불만은 사게 될 테니, 애당초 정답이 없는 문제일 수밖에는 없었다.

"전하께서는 불란서와 조선의 유림 중 누구의 반발을 사는 것이 더 두려우십니까."

이하응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둘 중 누구를 적대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불란서요."

이형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박규수는 눈을 질끈 감았고, 이하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해주어야겠지요."

이형은 그 즉시 보고를 빠뜨린 현감을 직무 태만으로 파직하고, 천주교도들과 색목인들을 구타한 한유석과 그 패거리들에게 태형 50대를 구형하였다.

자연히 삼남도에서는 반발이 터져 나왔고, 몇몇 양반들은 한양까지 상경할 채비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양까지 올라올 수 없었다. 일차적으로 이하응의 보부청이 매타작으로 이를 진압했고, 이차적으로 오군영의 병졸들이 한양으로 가는 길목들을 봉쇄하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는 폭정이오! 선비들의 입을 틀어막고서 색목인들과 천주쟁이들을 감싸고 돌다니! 섭정공 그 작자도 제정신이 아니구려!"

"실로 그렇소.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오! 당장에 저 간악한 섭정 공을 몰아내고 전하께 충언을 올리도록 합시다!"

그러자 삼남도 일대의 민심은 완전히 부정적으로 변했다. 그들은 공공연히 섭정공 이하응을 김좌근보다 더한 간신 모리배라고 힐난했고, 서역 오랑캐들에게 홀린 간신배 이하응을 몰아내고서 소년 왕을 보필하여 진정한 군자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외쳤다. 스스로 욕받이 역할을 자처한 이하응조차 신변의 위협을 느낄 여론 악화였다.

이쯤 되면 노골적인 반란의 징조였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뭘 어찌하긴. 제들이 알아서 제 명을 재촉하고 있으니 응해줘야지. 아무래도 김좌근 보다는 과인이 덜 무서운가? 모조리 진압합시다."

세도가문이 사라졌으니 이제 더 이상 눈치 볼 일도 사라졌다고 여겼는지, 삼남도 유생들의 발언은 도가 지나쳤다. 이쯤 되면 저쪽에서 먼저 죽여 달라고 목을 들이미는 격이었다. 이형은 겁도 없이 왕의 친부를 모욕하고 섭정공을 몰아 내겠다며 반정을 암시하는 폭언을 입에 담은 그들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리기로 했다.

보부청의 보부상들을 통하여 삼남도의 여론 악화를 주도하고 있는 선비들을 찾아낸 포졸들은 그 즉시 몽둥이질을 앞세워 선비들을 포박하고 압송했다. 죄목은 당연하게도 불경죄였고, 죄질에 따라서는 역모 모의까지도 추궁받았다.

그 뒤는 뻔한 것이었다. 관아로 압송된 선비들은 제각각 죄질에 따라 벌금형과 태형을 구형 받았고, 주모자로 지목당한 몇몇은 사약을 들이키고 숨이 끊어졌다. 그들 스스로가 자처한 일이었고, 부정할 여지없는 자업자득이었다.

함부로 입을 놀리다 변고를 당하는 꼴을 본 삼남도의 유생들은 이 일을 계기로 일단 입을 다물었고, 그렇게 잠시 여론이 잠잠해진 틈을 타 이형은 색목인들에게 개항한 5개 항구에 배치된 포졸들의 숫자를 2배씩 늘렸다. 자국인들의 보호를 명분으로 서역의 열강들이 병사들을 파병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프랑스 제국을 대신하여 신속한 조치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조선의 가톨릭교도들과 프랑스의 시민들이 큰 빚을 졌군요."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요. 그러니 그리 띄워줄 것도 업소다. 다음에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갖추도록 하겠소."

다행히도 프랑스에서는 조선의 신속한 대처에 만족한 듯 당장에 병사들을 파병하겠다느니, 겉과 속이 다르다느니 같은 모욕적 언사들을 퍼붓지는 않았다. 이에 이형은 내심 안도하여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프랑스인들에게 아양떠랴, 러시아인들과 싸울 준비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이형이었다.

왜국과 서역 4개국의 공사들, 그리고 청국의 공주가 조선을 찾아온 것은 이 무렵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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