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 사냥 >
"보아하니, 생각하신 대로 일이 풀리신 모양이로군요."
그 무렵 이형은 이하응과 만나고 있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볼까지 눈 그늘이 내려온 이하응이였다. 이는 그만큼 그가 격무에 시달려 왔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글쎄. 솔직히 잘 풀린 것인지는 그리 자신할 수 없구려. 알다시피, 얼마나 많은 지원을 끌어내더라도 앞날을 보장하기 쉽지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서 말이오."
"그러나 보아하니 적어도 실패하신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다른 이들의 힘을 아무리 빌린다고 해봤자 결국 끝을 보는 것은 온전히 조선의 힘이어야 하겠지요."
이형은 어깨를 으쓱이며 솔직하게 답하였다. 이하응도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참, 저들로부터 예물은 어떻게 되었소? 제대로 은화 600만 냥이던가?"
"조금 전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속이지는 않았더군요. 이것으로 당장은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미안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힘들 거요. 이미 저들에게서 이것저것을 들이기로 약조하였으니. 그냥 없는 셈 치시오."
"…참으로 씀씀이가 헤프십니다, 전하."
이하응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겨우 개혁에 필요한 여유자금이 생겼다고 여겼더니 금고에 들어온 그 즉시 내뱉게 생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이형도 할 말은 많았다. 아무튼, 그가 딱히 사치품을 사거나 하는 곳에 쓴 것도 아니고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투자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걸 짐작하고 있었으니 이하응도 따로 어디에 썼느냐고 추궁하지는 않았다. 다만 불평했을 뿐.
"그래, 언제쯤 시작할 예정이오?"
"슬슬 시작하려 합니다. 바람잡이들도 미리 모아두었습니다. 한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자신감에 찬 대답이었다. 사실, 이하응으로서는 자신감을 가질 만도 했다.
전쟁이 마무리될 무렵 즈음부터 시작해서 거의 반년간을 격무에 시달리면서 완성한 토지개혁안이었다.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를 계기로 본격화될 지방의 불만만이 걱정일 따름이었다.
"이번 기회에 시위대의 훈련을 겸하여 이 조선 8도 강산의 범들을 모조리 쓸어내려 하오만."
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이형이었다.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하응은 이형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조선에서 평시에도 합법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 바로 호랑이 사냥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호랑이 사냥을 명분 삼아서, 토지개혁에 불응하는 지방의 지주들을 모조리 때려잡을 작정이라는 것이다.
"과연, 필요한 일이겠지요. 이 조선 8도에 호랑이가 좀 많답니까. 이제 조금 그 수를 줄일 때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인의 생각 또한 그러하오. 필요하다면 아주 씨를 말릴 각오 또한 있소이다. 여하튼, 호랑이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지 않겠소."
"그 말대로입니다. 이 나라 조선이 누구의 나라인지 이제는 분명히 보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히 한양의 조정에 왕이 계시거늘 산군을 자처하다니, 참으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짐승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응당 천벌을 내려주어야겠지요."
"천벌이라. 글쎄, 이는 인벌이라고 해야겠지. 결국, 벌을 내리는 것은 인간이니."
이형은 굳이 지주들이라고 하지 않았다. 물론 이하응의 생각대로 함부로 지주들이 반발하면 이번 기회에 시위대를 시켜 쓸어낼 작정이기도 했으나, 그의 가장 큰 목표는 우선 정말로 조선 땅의 호랑이들을 쓸어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맹수들이랑 공존하기에는 한반도는 너무 좁아.'
사방에 들끓는 호랑이들은 그 자체만으로 조선이 육로를 개발하기 꺼리는 원인 중 하나였다. 함부로 산을 타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보니 산에 가까이 가려 하는 사람들이 드물었고 이는 곧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한반도에서 각 지방 간 왕래가 드물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장차 한반도 곳곳을 철도로 이을 필요가 있는 이상, 한 번쯤 호랑이들을 솎아내 주는 건 필수였다. 그렇지 않다면 철도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줄줄이 식인 호랑이에게 물려갈 공산이 컸다. 아니, 사실 장차 어떤 공사를 벌이더라도 결국 호랑이들과는 충돌할 수밖에는 없었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한반도에서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호랑이들과 충돌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였다.
'호랑이를 보려면 동물원이면 족하지 밤길을 걷다가 호랑이와 마주치는 건 질색이다. 하다못해 멧돼지라면 운이 따른다면 살 수 있겠지만 호랑이가 상대라면 총을 들고 있어도 생존은 보장 못 해. 남쪽에서부터 시작해서 북쪽까지 쓱 훑어내면 알아서 만주로 이주하든가 시베리아로 가든가 하겠지.'
물론 굳이 남쪽부터 시작인 이유에는 이하응의 생각대로 지주들에게 경고를 가하거나 토지개혁에 불응하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무력행사를 가하는 것 또한 이번 사업의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장 시위대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숙련병들의 보충과 한반도 내 맹수 개체 수 조절, 그리고 지방의 불만 세력 토벌까지 일거삼득을 노리던 것이다.
"참, 그러고 보니 왕세손은 언제쯤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까?"
상념에 잠겨있던 이형을 깨운 것은 이하응의 장난스러운 농이었다. 능글능글한 미소를 띠고 있는 평소답지 않은 이하응의 모습은, 이형으로서도 낯설기만 했다.
이형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아직 과인은 열셋이고, 저 공주는 열둘이오. 그런데 무슨 왕세손을 기대한단 말이오?"
"이 늙은이 또한 열하나에 혼사를 올렸습니다. 그것이 무슨 장애가 된단 말입니까? 곧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믿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허, 참."
이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자, 이하응은 장난스럽게 그에게 꾸벅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 후 조용히 물러났다.
그 모습에 이형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우라질, 내가 무슨 소아성애자도 아니고 아무리 급해도 국민학교 5학년을 품게 생겼냐. 별 웃기지도 않는…."
그러나 이형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모든 건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아무리 후일 조선이 심요 땅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먼저 청국과의 왕실혼을 입에 담은 건 다름 아닌 이형 그 자신이었다.
그럼 그 뒷감당 또한 그 자신이 감수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이형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그가 처한 현실을 체념하고 인정하였다.
혼례는 조선의 예법에 맞추어 진행 되었다. 봉천 조약을 계기로 조선은 청과의 사대교린을 청산하였고, 또 지난 전쟁에서 승전국은 조선이었음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아으, 답지 않게 젠체하고 있자니 죽겄네.'
왕실혼이 진행되는 내내 이형은 팔다리가 근질 거려오는 걸 견뎌야 했다. 왕실혼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대원수복을 벗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복식이라도 편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속내는 서역에서 온 기자들에게는 알 길이 없었던 만큼 이들은 이를 조선의 어린 국왕이 그만큼 서구화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들이 기록한 사진은 그대로 본국에 전해져 이를 확대 해석한 루머들을 양산할 예정이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하였다. 한데 오늘날 천하에 농사지을 한 뼘의 땅조차 없는 백성들이 나날이 늘고 있으니, 이는 곧 천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민초들의 고통은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는데, 이 나라 조선의 선비라는 자들은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하여 대관절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온 천하의 토지는 마땅히 왕의 것일 터. 그러나 이 나라 조선의 선비라 자칭하는 작자들은 왕의 토지를 탐 내 온 나라의 백성들이 농사지을 땅 한 뼘 없이 굶주리는 동안 죄 없는 백성들을 수탈하여 그들의 피 고름을 빨아 먹고 온 나라의 농지를 힘 있고 권세있는 자들의 것으로 만들어 백성들을 남의 땅을 소작하는 신세로 전락 시켰으니 이는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러나 어찌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그러하였겠는가? 이 나라 조선이 국시로서 유학을 채택한 까닭은 불자들과 유착하여 차마 눈 뜨고 볼 수없이 부패한 전조 고려를 폐하고 이 나라 조선의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 이러한 국초의 뜻 있는 선비들은 오늘날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선비들만의 잘못이랴?
사태가 이와 같이 된 것은 이 나라 조선이 오랜 세월 이러한 폐단을 외면하고서 당장의 세수를 위하여 그들이 죄 없는 백성들을 쥐어 짜도록 방조하고 도리어 장려한 까닭이다. 이는 비단 이 나라 양반들의 죄만이 아니라 이 나라 조선의 원죄라 할 수 있으니, 이는 마땅히 이 나라 조선의 손으로 바로잡혀야만 할 것이다.
하여, 을축년 단옷날 이와 같이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하여 천명을 받아 이를 바로잡고자 하니, 이는 곧 전주 이씨의 향후 천년대계를 위함이오. 조선의 만백성을 위한 일일지라. 대조선국 국왕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대조선국 만세! 국왕 폐하 만만세!"""
혼례가 마무리될 무렵, 이하응은 돌연 경자유전과 유상매입 유상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을축 토지개혁안을 발표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더 이상 조선이 청의 번국이 아닌 대등한 황제국임을 동시에 선언하면서, 시선을 분산 시킨 건 덤이었다.
이하응의 만세 선창을 시작으로 한양 곳곳에 스며든 보부상 바람잡이들이 만세를 외치고, 어리둥절해 하던 한양의 백성들이 술기운에 힘입어 합류하면서 온 한양 땅에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섭정공 이하응의 개혁선언에 뭐라 토를 달려고 했던 관료들이나 선비들의 목소리는 이 만세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이 만세 소리야말로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사대교린을 청산한 증표였기에, 조선이 주명의 천명을 이어받았다 자부하던 그들로서는 차마 이 만세 소리를 깨트릴 수가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서역의 대표들도 이것이 으레 조선의 예법이겠거니 하고 구경하거나 장난스럽게 참여하면서, 사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단지 국내에서 퍼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외의 인정을 받아버린 것이다.
그것은 곧 이하응을 향해 이를 갈던 지방향림을 향한 이하응의 선전포고였다.
* * *
을축 토지개혁안은 경자유전의 원칙과 유상매입 유상분배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원칙에 따라 한 농가당 최대 토지보유 면적은 3정보-약 9000평으로 한정되었으며 그를 초과하는 농지를 가지고 있는 지주들은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지증권(地證卷)을 발행받았다. 이 지증권에는 농지의 국가 매입가가 적혀있어, 이를 들고 각지의 보부청 지부를 찾아가면 지증권에 적혀진 만큼의 액수대로 화폐로 교환해주었다.
요컨대, 지증권은 조선 최초의 국채였던 셈이고 보부청의 각 지부는 기초적인 형태의 은행 역할을 맡게 된 셈이었다. 본래라면 불가능할 일이었으나, 지금의 조선은 세도 정치를 청산하면서 그들이 축적한 막대한 현물자산들을 보유하게 된 와중이었다.
이번 을축토지개혁 한 번에 그 모든 현물자산을 쾌척하게 될지언정, 재화가 부족하여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원칙을 지킬 수 없다는 건 애당초 말이 안 되던 셈이었다.
이렇게 매입한 농지들은 다시 5년간 3할의 소작 세를 내는 대가로 농민들에게 분배되었다. 이는 상당한 부담으로 보일 수 있었으나, 기실 지주들이 농민들에게 거두어가는 소작 세를 고려하면 소작의 대상이 지주에서 국가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일평생을 소작을 지어도 자신의 농지를 가질 수 없었던 그동안과는 달리, 5년간만 소작 생활을 하고 나면 꿈에 그리던 자영농이 될 수 있었다.
"자, 여기 한양의 본청에서 온 동화 4만 냥일세! 오늘 날이 저물기 전까지 숫자가 맞는지 확인하고, 숫자가 맞다고 확인하면 서명해두게! 만약 다르다면 모든 책임은 자네가 뒤집어 쓸 테니까 괜히 농땡이 부리거나 빼돌릴 생각일랑 말고!"
"아니, 이 사람이 나를 도대체 어떻게 알고! 그럴 생각일랑 추호도 없으니까 안심해두게. 이 사람이 일 평생을 성실함으로 인정받아 섭정공 합하께 중용 받은 사람이야! 그런 내가 괜히 독박 쓸 짓을 왜 하겠나!"
"그렇다면 다행이네만, 기억해두게. 이번 사업에서 실패하면 우리들은 물론이고 섭정공 합하까지 끝장이야. 알겠나? 우리들도 더이상 뒤가 없다는 이야기일세.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는 것이 좋을게야. 지금 온 나라의 신경이 곤두섰으니까!"
을축토지개혁의 발표일은 을축년 단옷날이었고, 그 시행일은 이듬해 병인년 정초로 8개월간의 준비 기간을 갖추기로 예정되었다. 이에 대비하여 조선 8도 각지의 보부청에서는 4만 냥 상당의 현금과 유사시 40만 냥 상당의 현금을 한양의 본청에서 받아올 수 있는 증서를 분배받았고, 한편 본청에서는 세도 가문들로부터 몰수한 700만 냥 상당의 현금과 5000만 냥 상당의 현물자산에 더하여 내수사에서도 새로이 400만 냥의 현금을 차출 받았다.
이 모든 것이 토지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함이었다. 준비에 있어 부족함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한, 시행에 있어 반발이 없을 수도 없었다.
"이는 어림도 없는 소리요!"
"아니, 하다 하다 나라에서 선비들의 농지를 탐내다니! 허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나!"
"더는 안 되겠소. 모두 한양으로 갑시다! 폐하께 유림의 뜻이 굳건하다는 것을 알려드린다면, 폐하께서도 섭정공을 달리 보게 될 것이오!"
을축토지개혁에 대한 반발은 삼남도 일대에 집중 되었다. 강원도는 산지라 본래부터 지주들이 드물었고, 북방 삼도는 오랜 세월 조선 왕실에 홀대를 받아 본래부터 지주나 선비들이 드문 곳이었다. 또한, 경기도 일대는 세도 가문들이 일거에 소탕당하면서 경기권 전역이 국유지나 다름없게 되어 농민들에게 이를 분배하는 데 어떠한 지장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토지개혁에 반발할 지주들이 충청도와 호남, 영남 일대에 집중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조정에서 무상으로 토지를 몰수하는 대신 지증권을 분배하여 현금으로 이를 보상하겠다 천명하였음에도, 지주들의 반발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에게 토지는 단지 재산이 아니라 곧 그들의 신분을 증명하는 특권이기도 했다.
거기에 아직 화폐경제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이식되기 이전이다 보니 조정에서 지증권이라는 이름의 국채를 분배하여도 이에 대한 불신도 파다했다. 설령 정말로 이 지증권을 들고서 보부청을 찾아간다고 해도 그것을 현금으로 교환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남았다.
그러다 보니 나라에서 현금으로서 이를 보상해주겠다 하여도, 이를 신뢰하지 못하고 나라에서 무상으로 토지를 몰수해간다는 뜬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자연히 지주계층들 사이에서 한양의 조정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흉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보게나, 그거 들었는가? 아니 글쎄 나라님께서 양반 어르신네들에게서 땅을 빼앗아 우리 같은 천것들에게 나눠주시겠다고 하시지 뭔가!"
"허, 허어! 아니, 그게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여, 허허!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아무렴, 태평성대가 별거인가? 내 땅이 있고 목 꼿꼿이 펴고 다니던 김가 놈네 패거리가 없으면 태평성대지! 그야말로 대조선국 만세여, 허허!"
한편 그와 대조적으로 백성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소작농들의 호응이 열렬하였음은 물론이였다. 을축토지개혁이 발표된 그 날 당일부터 시작하여 이하응은 무엇보다도 각지의 소작농들이 이 개혁안에 대하여 빠르게 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신경을 기울였다. 그를 위하여 보부청을 통해 보부상들을 총동원하여 조선 8도 구석구석까지 입소문을 내기도 하였고, 일부러 언문으로 발행한 격문을 돌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하응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어, 소작농들은 조정의 결단에 열렬한 지지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