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위대의 활약 >
조선 8도 방방곡곡이 토지개혁 소식으로 들썩거렸다. 사람이 둘이 모이면 토지개혁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사람이 셋이 모이면 토지개혁이 시행되고 나면 어느 토지를 받아갈지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이 당연하게 이뤄졌다.
사람이 넷이 모이면 마침내 태평성대가 왔노라 술잔치를 벌이는 것은 물론이였다. 그만큼 소작농들의 지지는 열정적이었고, 또한 절대적이었다.
"옳소! 옳소! 천하의 땅은 마땅히 왕의 것이거늘, 백성이 걸인이 되고 도적 떼가 되어 천하를 방랑하는 동안 조선의 선비란 자들은 대관절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이제 우리 조선국이 복적들과의 사대교린을 청산하고 주명의 천명을 이어받은 중화의 문명국임을 천하 만방에 공인받은 이상, 마땅히 이와 같은 악습은 청산되어 사라져야만 할 것이다! 대조선국 만세!"
"온 나라의 백성이 소작이나 하면서 지주들에게 빌붙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천하에 잘못되지 아니한 것은 없다!"
이런 와중 혜성 같이 나타나 토지개혁에 열렬한 지지를 보여준 이들이 있었다. 흔히 잔반이라고 불리던 몰락 양반들이었다. 명색이 식자층으로서 지적 수준은 드높았으나 사회적으로는 양반 취급조차 받지 못하고 나날이 사회에 대한 개혁 욕구와 불만만 축적해가던 이들이 토지개혁이라는 각계각층이 정면충돌하는 급변기를 맞아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그들과 같은 양반이었으나, 경제적으로 완전히 몰락한 잔반들과는 달리 지주계층으로서 사회의 부를 쓸어 담던 기득권 계층에 대하여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 행동 원리의 근간은 물론 질투였으나, 그들이 들고나온 민심이라는 대의명분은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소작농들에 의하여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토지개혁 지지의 목소리는 잔반들에 의하여 정립되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이하응의 지시로 보부청이 지원하였음은 물론이였다.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늘어놓던 잔반들에게 민심의 지지와 재정적 지원마저 더해지자, 그 파급력은 이제 더는 삼남도의 유생들도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점차 삼남도 유생들과 이하응의 정면 대결은 민심을 등에 업은 잔반들과 기득권을 거머쥔 지주들의 대결로 변하고 있었다.
"아니, 어찌 양반이라는 자가 천 것들과 어울려 뜻을 함께할 수 있는가! 잔반, 잔반 하더니만 실로 양반조차 아니게 된 모양이구나. 에휴, 썩 물럿거라! 너희들과 같은 천것들이 감히 어찌 우리들과 말을 섞으려 하느냐!"
"허허허, 이 나라의 선비라는 자들이 백성들의 목소리를 천 것들의 목소리라 매도하여 들은 채도 하지 않다니 참으로 말세로구나, 말세야! 그래, 너희들이 말한 대로 내가 더 이상 양반이 아니게 되었다 치자. 그렇다면 너희들은 이 나라 조선의 선비라 할 수 있더냐?
이 나라 조선의 백성들을 천 것이라 매도하고,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단지 백성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여 그 고혈을 빨아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너희 금수 같은 족속들이 어찌 이 나라 조선의 선비를 자칭하느냐? 하늘이 두렵지도 않더냐?
공맹의 도를 배웠다 자부하는 선비라는 작자들이 공맹의 도에 따라 무엇 하나 행동하지 않고 있는데, 어찌 그대들이 이 나라 조선의 선비라 할 수 있으며 이 나라 조선이 유자들의 나라라고 할 수있느냐!"
"아, 아니 저놈들이 그래도 주제를 모르고서는!"
그러나 근본적으로 잔반들이 우세할 수 밖에는 없는 싸움이었다. 아무튼, 결국 민심은 잔반들과 그들이 옹호하는 현 조선 조정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잔반들이 질투심에 근거하여 양반 지주들을 헐뜯고 있더라도, 그것을 통쾌해 하고 이를 응원하는 것은 진짜 백성들이었다.
백성들의 민심을 등에 업고, 그들이 그간 배워온 경전의 가르침을 등에 업고, 한양의 조정을 등에 업은 그들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 나라 조선이 개국 된 지도 어언 500년을 바라보고 있는데, 국초 이래로 들끓던 범 떼가 아직도 민생에 해를 끼치고 있으니 이를 통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여, 과인이 시위대를 시켜 삼남도를 시작으로 이 조선 8도의 범 떼를 토벌하여 백성들이 안심하고 산을 탈 수 있도록 하고자 하니, 시위대를 도와 과인의 수고를 덜어줄 용감무쌍한 포수들은 언제든 관청을 찾아 시위대에 자원할 수 있도록 하라.」 "
그 무렵 한양의 조정으로부터는 새로운 포고문이 하달되었다. 섭정공이 소년 왕의 권위를 빌려 시행하는 형식이었던 을축토지개혁과는 달리, 이 해수토벌령은 소년 왕의 이름으로 직접 지시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를 시행할 주체도 왕의 친위세력이라 할 수 있는 시위대였다.
해당 포고문에는 호랑이와 곰, 늑대, 표범 등의 해로운 짐승들에 대한 전면적인 토벌령과 함께 해당 해로운 짐승을 사냥한 후 얻게 될 부산물 일체는 개인이라면 개인에게, 집단이라면 집단에 포상의 형태로 지급될 것이라 명시되어 있었으며, 시행 일자는 포고 당일부터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허세인지를 고민하기도 전에 한양에서 삼남도로 내려온 시위대는 그 즉시 동래 주변 금정산을 시작으로 삼남도의 산을 샅샅이 뒤지며 보이는 해로운 짐승이란 해로운 짐승은 모조리 사살하기 시작했다.
1000여 명이 넘는 병사들이 모여 산을 빙 두르고서 토끼나 노루, 멧돼지 따위의 잔챙이들은 무시한 채로 맹수들만 집중적으로 사냥해대니, 제아무리 날고기는 맹수들이라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조준! 아직, 유효사거리까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라. 지금이다, 쏴라-!"
타타탕-.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복식과 상투 대신 머리를 짧게 자른 채로 질서정연하게 산을 올라 맹수들을 싹쓸이하고서 내려오는 시위대의 모습은 삼남도의 백성과 유림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탄약값을 벌기 위해서라도 사살한 맹수들의 시신을 수레 가득히 채워서 하산하는 시위대의 모습은 좋든 싫든 백성들의 눈에 띌 수밖에는 없었다.
"저기, 보았는가? 아니, 이 조선 땅에 어디에서 저런 정병들이…."
"아니, 이 사람이 그것도 못 들었는가? 저 시위대가 바로 그 금위영 병사들일세. 국왕 폐하를 바로 곁에서 모시는 병사들인데, 그야 강할 수밖에!"
"허, 허어…그래, 저런 정병들이 있었으니까 그 청나라 놈들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었던 것이로구먼! 정말 대단하구먼, 대단해!"
백성들은 그들의 눈과 귀로 직접 실감하게 된 조선군의 힘에 환호했다. 아직 자연보호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드물던 시대였다. 그들로서는 농사를 방해하거나 그들의 가족들을 해치던 맹수들을 국왕을 곁에서 보위하던 시위대가 몸소 나서 대대적인 토벌을 벌이니 그저 마냥 좋기만 할 수밖에는 없었다.
함부로 백성들에게서 물품을 징발하지 말고 징발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정당한 값을 치르라는 엄명을 받은 시위대는 엄격한 군율을 유지하였고,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그들의 삶을 위협하던 해로운 짐승들을 몸소 나서 토벌하는 시위대의 모습에 백성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자연히 시위대에 대한 호의적인 인상을 품게 되었고, 이에 백성들은 시위대의 장병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옷을 꿰매 주고 잠시 묵을 거처를 제공하는 등 크고 작은 호의를 베풀게 되었다.
이러한 백성들의 크고 작은 호의가 곧 시위대의 장병들과 무관들에게 하나의 자긍심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물론이였다.
"제군들은 아름다운 이 나라 조선의 팔도강산과 위대하신 우리 조선의 국왕 폐하를 모시는 영광스러운 시위대다. 설령 다른 모두가 등 돌려 도망치더라도, 제군들은 그럴 수 없다. 제군들은 최후의 보루요, 최초의 선봉이기 때문이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행군 중에 노래한다. 노래는, 양파의 노래!"
"""기름에 튀긴 양파가 좋다네, 맛있으니까 양파가 좋다네! 기름에 튀긴 양파가 좋다네,양파가 좋다네, 양파가 좋다네~♬"""
시위대를 인솔하는 시위 대장 허계를 도와 삼남도까지 따라온 루이 대령과 프랑스 군사고문단은 이러한 자긍심을 근간으로 삼아 시위대에게 철저한 정신교육을 하였다.
그들 프랑스인이 조국 프랑스에 대하여 조건 없는 애국심을 품듯이 시위대 또한 조국 조선에 대하여 조건 없는 애국심을 품도록 교육하였으며, 그들 프랑스인이 나폴레옹 3세 황제에게 경외심을 품듯이 시위대 또한 조선 국왕 이형에게 경외심을 품도록 교육하였다.
이러한 정신교육은 그 자체로서 마약이나 다름없었다. 민족주의의 영광이 세계를 뒤덮던 19세기였다. 불과 얼마 전 극적인 승전을 거두고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 신음한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루이 대령과 프랑스 군사고문단으로부터의 민족주의 교육은 어떠한 저항도 없이 그대로 이식되었다.
"아이고,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나. 나라님의 병사들에게 이렇게 폐를 끼쳐서야…."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주머니. 모두 같은 조선 사람이 아닙니까? 조선 사람끼리는 당연히 돕고 살아야지요."
"에구, 에구. 이거 너무 받기만 해서….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시위대는 가는 곳마다 루이 대령과 프랑스 군사고문단에서 교육받은 민족주의를 전파하고 다녔다. 이는 이형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점차 국왕의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시행되던 해수토벌량은 맹수들에게 고통받으며 매일매일 공포에 떠는 조선 민족을 위하여 당연히 이뤄져야 할 민족적인 성전으로 포장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그 즉시 병사들과 장교들에게도 전해져 해수토벌량은 한층 열성적으로 되었고 또한 민간에 친화적으로 변하였다.
"이보게, 자네 들었는가? 아, 글쎄 나라님께서 한양에서 시위대를 내려보내 우리 같은 천 것들을 위하여 온 나라의 호랑이들을 잡고 계시다지 뭔가."
"아니, 그게 정말인가? 그런데, 시위대? 그건 또 무엇인가?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구먼."
"아이고, 이 사람아. 그러게 산에 틀어박히는 것도 적당히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시위대가 바로 금위영일세. 국왕 폐하께서 몸소 금위영 병졸들을 내려보내셨다는 이야기야!"
"아니, 이 사람이 지금 제 정신인가! 폐하라니, 말 조심하게! 또 무슨 곤욕을 치르려고 이 사람이…!"
"허, 참. 정말 세상과는 완전히 연을 끊고 살았구만, 이 사람! 아무튼 간에, 나는 가려하네. 전하께서 몸소 우리 같은 천 것들을 위하여 수고를 하고 계시는데 어찌 이를 돕지 않을 수 있겠나. 시위대에 동참하고자 하는 이는 언제든지 관아를 찾아오라고 하셨지. 나는 떠날 걸세."
"어, 어어! 아이고, 잠깐 기다리게! 나도 가겠네 이 사람아! 아니,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이는 삼남도의 수많은 포수가 앞다투어 시위대에 자원하여 해수토벌량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남과 호남에서만 각각 400여 명씩의 포수들이 자원하였고, 충청도에서도 200여 명의 포수들이 자원하였다. 이들 경험 많은 포수들이 시위대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하였던 정예병이었던 것은 물론 이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자원병들의 합류로 시위대의 규모가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시위대의 작전 범위도 크게 늘어났다. 하루에 산봉우리 두 개를 해치워버리는 일도 왕왕 일어났고, 이들의 훈련비용과 운용비용을 대기 위하여 맹수사냥의 부산물들 판매 또한 활성화되었다.
주로 판매되는 것은 가죽들이었고, 호랑이 뼈나 웅담 같은 한약재들도 비싼 가격에 팔려나갔다. 하루에도 십수마리씩 남획하는 것이 흔하게 이뤄지다 보니, 조선 국내의 수요는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별다른 장애도 되지 못하였다.
"보자, 오늘로서 잡은 범만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허어, 열손가락으로 다 세기도 어려워졌구만. 이래서야 어디 시장에 함부로 내다팔기도 힘들겠어!"
"그 말대로 일세. 그러나, 저 많은 범들을 그냥 썩힌다는 것도 웃기는 꼴 아니겠는가? 범 한 마리를 잡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어찌나 많은데, 저걸 그냥 버린다는 말인가?"
"흐음, 그럼 이걸 가져다가 떼놈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보는 건 어떻겠나? 떼놈들도 우리 조선 범이라면 사족을 못쓰니, 가져다 팔면 큰 돈이 될 걸세."
"그거 좋은 생각일세. 당장 허 대장 각하께 진언을 올려보지!"
조선에서 대대적인 맹수 토벌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특이한 음식이나 수집품을 모으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고, 이 무렵 봉천조약에 따라 톈진과 상하이를 위시한 5개 항구가 개항됨에 따라 조선 정부에서는 해로운 짐승들을 사냥하고 남은 부산물들을 되는대로 청에 팔아치웠다.
아무튼 사람은 많고, 그만큼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 또한 많던 청이었다. 일찍이 호랑이를 잡아다가 청에다 내다 팔며 벌이를 하던 북방 출신 포수들이 올린 진언에 따라 청국에 이를 내다 팔기 시작한 조선 정부는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하게 되었다.
"조선 호랑이의 두개골이라고? 100냥! 100냥에 팔게! 어떤가?"
"에이, 고작 100냥? 이보시오, 그게 어디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이 총이 그보다는 비싸겠소!"
"이 사람아, 내 말은 끝까지 들어보시게! 은화 100냥! 은화 100냥일세! 어떤가, 팔겠나?"
그야말로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예로부터 건강 챙기는 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중국인들이었다. 조선에서 맹수들을 보이는 대로 토벌하면서 쓸어 담은 어마어마한 양의 한약재들은 바다를 건너 시장에 내놓는 그 즉시 사라졌다.
거기에, 이를 사들이는 것은 중국인들만이 아니었다. 호랑이 가죽이나 곰 가죽 따위의 가죽들의 경우 상하이 조계지의 색목인들 또한 눈독을 들였다.
남자 얼굴의 흉터는 멋으로 인정받고 멋들어진 수염 하나 없으면 유행에 뒤떨어진 것으로 놀림 받던 마초적인 문화의 제국주의 시대였다. 맹수들의 가죽은 그 자체로서 수집가들의 수집욕을 자극했다.
더군다나 미지의 나라 조선에서 건너온 맹수들의 가죽이라고 했다. 이 무렵 흔하던 시베리아나 아프리카, 인도 등의 맹수 가죽과는 또 다른 매력에 서역의 수집가들은 군침을 흘렸다.
결과적으로 맹수 토벌령으로 조선 정부는 뜻하지 않게 상당한 양의 외화를 쓸어 담게 되었고, 이형은 이렇게 하여 얻게 된 수익 전부를 시위대를 훈련하고 유지하는 데에 사용했다.
이렇게 시위대의 활약이 늘어나고 그 규모가 불어날수록, 자연히 삼남도 일대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유림이라고 이러한 토벌령이 유림에 대한 무력시위를 겸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
"모쪼록, 앞으로 일평생 잘 부탁드립니다."
"피곤하구려. 오늘은 이만 자도록 합시다."
'우라질, 아무리 내가 급해도 국민학교 5학년이랑 거사를 치르라고? 흥선군 이 망할 노친네가…!'
시위대를 삼남도로 떠나보낸 이형은 어떻게든 그와 중전이 거사를 치를 수 있도록 노력과 열정을 아끼지 않는 궁인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