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67화 (67/530)

< 격동의 시대 >

"그런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네?"

"아니, 아무것도."

무슨 일이냐는 듯이 눈을 껌뻑거리고 있는 미국에서 온 판촉원을 무시한 채로, 이형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어딘가 께름칙했던 탓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청나라 놈들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왜 아직도 태평천국을 정리했다는 소식도 없냐? 아니, 그럼 반대로 태평천국은 뭐 하는겨? 아직도 베이징 하나 못 딴거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러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을 고민해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익문사는 아직 걸음마 단계였고, 국내 첩보면 몰라도 국외 첩보에서는 의지할 수 없었다. 그러니 간헐적으로 상인들이 가지고 오는 정보에 의지해 판단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인들은 청의 정세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 돈 버는 것 만으로 급했기 때문이다. 이형으로서는 머리에 쥐가 나는 듯했다. 원래 이런 머리를 쓰는 일은 그의 특기가 아니었다.

"에라, 알게 뭐라냐. 뭐, 자세한 건 흥선군이나 다시 불러와서 물어보면 되겠지. 슬슬 집에서 할 일도 없이 세월이나 낚고 있을 텐데, 인제 그만 궁으로 불러와 볼까."

머리를 거칠게 북북 긁고서, 이형은 세차게 고개를 저어 불안감을 털어냈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해서 풀릴 일도 아니었다. 괜히 걱정만 하면서 스트레스를 쌓기보다, 그에게 알맞은 일들을 찾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

잠시 시점을 앞으로 당겨서, 청나라.

이 무렵 청나라는 장강 이남의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조선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공주를 빼앗기자 이미 한차례 궐기한 바 있던 화북의 한족들이 동요하여 각지에 도적 떼가 들끓었고, 팔기군은 조선과의 전쟁을 계기로 사실상 해체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녹영군은 베이징 수비에도 급급했다.

이런 와중 서태후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만주 일대에 러시아군을 끌어들이면서 만주족들의 민심은 베이징의 조정을 향한 지지를 철회해 버렸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베이징의 조정은 장강 이남에서 사교도들의 난을 토벌하던 이홍장의 의용군을 화북으로 불러들여 그가 화북의 도적 떼들을 토벌하도록 하였고, 장강 이남은 완전히 청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한시가 급한 일이오! 조국은 우리 청국을 돕겠다 하지 않았소? 지금이 바로 그 도움이 필요한 때요.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시오!"

"물론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차르께서 당분간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을 주문하신지라.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병장기들을 지원해 드릴 테니 그것으로 어떻게든 해결해보시지요."

거기에 정작 이러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서태후가 끌어들인 러시아군은 화북과 장강에서의 소요사태에 무관심했다. 아니, 사실은 그들 또한 개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그럴 여력이 도저히 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요동은 사실상 프랑스의 이권 지대였고, 요동과 마주 보는 화북은 열강들의 공동이권 지대였으며 강남은 영국의 이권 지대였다. 러시아가 만주에서 함부로 더 남하하여 요동이나 화북, 강남까지 진군하는 순간 2차 크림전쟁을 극동에서 치를 판이였다.

자연히 러시아군은 군사적 개입을 될 수 있는 대로 회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당장에 열강들과 추가적인 갈등을 빚기보다는 이미 확보한 만주와 신장, 몽골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이를 위해 동시베리아 총독부에서는 유럽의 중앙정부에서 보내온 이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따뜻한 남쪽 땅을 향해 남하시켰다. 신장에서 만주에 이르기까지 청나라의 북방영토 전역에 걸쳐 러시아인들의 집단이주가 이루어졌고, 이들은 극동 시베리아 총독부에서 쥐여준 라이플 따위를 들고서 현지인들과 맞서 싸우며 그들을 조금씩 밀어냈다.

"Убирайся! Это моя земля!(당장 꺼져! 여긴 내 땅이야!)"

"이 도깨비같이 생긴 놈이 뭐라는 거야? 당장 안 나가? 이 굴러들어온 놈들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하네!"

탕-.

이는 간도라고 다르지 않아, 이미 간도 전역에서는 경작지를 찾으러 남하해온 러시아인들과 봉천조약에 따라 이주한 조선인들 간의 충돌이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아직 러시아와 조선 사이에 뚜렷한 국경선이 없다 보니 북쪽으로 갈수록 이러한 갈등의 수위도 격화되어, 퇴역 무관들이 이끄는 조선의 속오군과 러시아 개척민들의 민병대가 무력충돌을 벌이는 곳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십수 명의 사냥꾼 집단이 산발적으로 사냥감의 주인을 가지고서 다투거나 사냥터를 두고서 영역을 다투는 정도로 끝나던 갈등은 노비해방과 농지개혁으로 엄청난 숫자의 소작농들이 지주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주하게 되면서 이 무렵에는 각각 수백 단위의 부대를 이끌고서 정면 충돌하는 전투로 비화한 와중이었다.

이 무렵 조선 정부는 새로이 농토를 개간하면 이를 개간한 당사자에게 해당 농지의 소유권을 부여하고 3년 간의 세금 면제와 10년 간의 세금 감면을 내세우는 등 어떻게든 간도에 많은 이주민들을 정착 시키려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고 있었다.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북상하려는 조선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여기에 만주족이나 몽고족까지 조금씩 간도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혼란 상은 한층 가중되었다.

"여긴 아직까지 우리 다이칭 구룬의 땅이다! 어딜 너희 조선 놈들이 눈독을 들이느냐! 하늘이 두렵지도 않더냐?"

"어림도 없는 소리! 이제부터 이 간도 땅은 우리 조선의 땅이다. 그리고, 네놈들이 언제부터 간도에 들어와 살았다고 망발을 늘어놓느냐?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썩 물러가라!"

각지에서는 이미 청의 관료들과 조선의 관료들 사이에 자존심 대결이 한창이었다. 할양은 3년 후로 예정 되어있었지만 만주의 조선인 마을들은 조선에서 공권력을 동원해 보호, 관리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 북적 놈들이…! 너희 같은 색목인들이 함부로 발을 디뎌도 좋은 땅이 아니다. 너희 노국 놈들의 땅은 연해주까지 이지 어딜 감히 만주까지 더럽히려 하느냐? 당장 돌아가지 못할까!"

"허, 이것 참 말이 안 통하는 친구로구만. 아니 도대체 몇 번을 말하나? 자네들의 섭정이라는 여자가 우리들을 초대했다고 말이네. 따지려 거든 그 서태후라는 여자에게 따지지 왜 우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왈가왈부인 건가? 번짓수를 잘못 찾은 거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자존심 대결은 러시아와도 다를 바 없었다. 만주족 관료들은 조선인은 물론이고 러시아인까지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나마 조선인들은 간도 일대에 모여 살기나 했지, 러시아인들은 딱히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할 수도 없이 넓게 흩어져 전방위에서 밀고 내려오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힘에서 밀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만주족 관료들이었다. 러시아 개척단이 극동 도독부의 지원 아래 민병대를 조직하고 조선인들이 속오군을 중심으로 무장하게 되면서 힘의 열세는 점점 격화 되었다. 이미 숨통이 붙어있는 것 만으로 벅차던 베이징의 조정에게 만주에서의 국경 분쟁으로 신경을 쓸 겨를이 없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도리가 없네. 조선인과 손을 잡으세나. 그래도 저 머리 노랗고 눈 퍼런 요괴들 보다야 그래도 익숙한 조선인이 낫지 않겠나? 나는 이미 뜻을 정했네. 그대도 나와 함께 하는 건 어떤가?"

"어림도 없는 소리! 조선이 우리 다이칭 구룬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기억도 못하는 건가? 우리 다이칭 구룬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금수만도 못한 것들일세. 나는 차라리 노서아와 손을 잡을 지언정 그렇게는 못하겠네!"

그러자 이제 만주족 관료들도 점차 더 이상 베이징의 조정에 충성을 바치는 대신 러시아와 조선 사이에서 줄을 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누군가는 조선과 손을 잡았다.

이러한 만주족 관료들의 이탈은 만주에 거주하던 만주족 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한때 만주족이라는 하나의 틀 아래에 단결했던 각 씨족은 점차 뿔뿔히 흩어져 러시아와 조선 두 나라 틈 바구니에서 편을 골랐다.

이미 만주는 더 이상 다이칭 구룬의 땅이 아니었다. 아직 청의 영토로 남아있는 심요 지역조차 베이징에 충성하는 이들을 찾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리고 만주족들 대부분은 조선과 손을 잡았다. 그래도 낯선 백인들 보다는 같은 아시아인끼리 뭉쳐야 한다는 막연한 인식 덕택이었다.

"아이고, 대감! 큰일 났습니다! 또 마우재 놈들이 남하하여 우리 백성 서른여 명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뭐라! 그럼 우리도 당장 병졸들을 모아 노국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한치에 물러남도 없어야 한다는 어명이니라! 두려워하지 말고 굳건히 맞서도록 하라!"

이렇게 만주족들이 막연한 인종 논리로 편을 정하게 되면서 러시아의 공세도 점차 격화 되었다. 반대로 이미 우위를 잡게 된 조선은 수세를 고집했다. 러시아로서는 어떻게 든 만주족들을 무력으로 굴복 시켜 그들의 영역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었고, 조선으로서는 반대로 이미 조선에 협력하기 시작한 마을들을 수호함으로서 만주족과 이주민들을 안심 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북방에서의 국경분쟁은 조선 측에서는 평안 관찰사, 러시아 측에서는 극동 도독에 의하여 지휘가 이루어졌고, 또한 어느 정도 조장되었다. 이미 1년여 전 단옷날 전시상황에 돌입한 것이나 다름없던 양국이었다. 후퇴는 용납되지 않았다.

여기에 남포와 뤼순 등을 통하여 영국, 프랑스, 미국의 상인들이 대거 민간에 무기를 풀기 시작하면서 전투는 더욱 격화되었다.

을축 군제 개혁안이 통과되어 징병제가 시행되면서부터 조선 측에서는 훈련이 마무리되는 족족 시위대로 편성하거나 간도로 보내어 그곳에 주둔시켰고, 조선 측에서 대거 전력을 증강함에 따라 러시아 측에서도 먼저 극동 도독부의 모든 전력을 간도 일대로 집중시켰다.

양측의 충돌은 나날이 격화 되어갔고, 처음에는 멀찍이에서 총격을 주고받다가 헤어지는 것이 보통이던 전투도 이 무렵에는 중대에서 대대 규모의 속오군과 러시아 측 민병대가 전열을 이뤄 총격을 주고받고 속오군 소속 기병대와 카자크 기병대가 검격을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대포가 등장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으나, 그마저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러시아 측에서도 점차 베이징에 신경을 쓸 겨를이 사라져 버렸다. 이는 청에 대한 지원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었음을 의미했고, 러시아의 지원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궁지에 몰려가는 것은 베이징의 서태후였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저 조선 놈들의 탓이다! 저 조선 놈들만 없었더라면, 저 조선 놈들만 없었더라도 본녀가 여기까지 궁지에 몰릴 까닭은…!"

서태후는 매일같이 이를 바득바득 갈아댔으나, 그런다고 대책이 나올 리도 없었다. 공친왕이 병을 핑계로 조선에서 귀국하기를 거부하면서 사실상 조선에 망명해 버리고, 동태후 또한 세상을 떠나면서 사실상 서태후의 독재체제가 완성되었으나 정작 그녀의 권력 기반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영토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었고, 장강 이남은 이미 사실상 독립국으로 분화되어버렸으며 몽골은 베이징과 따로 놀고 있었고 신장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준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나마 만주의 민심이라도 남아있었다면 만주로 일시후퇴하여 후일을 준비했겠지만, 만주족들은 서태후의 근시안적인 결정에 뒤돌아서 버렸고 지금에 와서는 러시아나 조선 둘 중 한 나라를 택하여 양국 간의 무력분쟁에 뛰어들고 있었다.

"정말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대답은 없었다. 서태후 자신의 손으로 쓸만한 관료들은 이미 숙청하였거나 변경으로 좌천시킨 이후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베이징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녀가 한마디 할 때마다 아부나 떨 줄 아는 구더기들뿐이었다. 그나마 청에서 유일하게 제 일을 하는 이홍장조차 베이징의 궁궐에는 얼굴을 비출 새도 없이 전장을 배회해야 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서태후는 그저 하늘에 기도할 따름이었다. 어떻게든 기울어져 가는 청국을 되살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기를. 어떻게든 청국이 살아남을 길이 나타내기를. 그렇게 빌며 도사를 불러와 하늘에 매일같이 제사를 올리기만 할 뿐이었다. 물론 서태후가 이렇게 도술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민심은 그녀를 외면했다.

"보라! 북경의 야인들은 우리 태평천국의 천명도 이미 기울었다고 하였다. 상제께서는 태평천국을 외면하였고, 그리 오래가지 않아 파멸할 거라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쇠락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보라, 형제들이여! 우리들은 다시금 우뚝 섰지만, 북경의 야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쇠락하여 당장이라도 무너져내릴 듯하구나! 이는 상제께서 우리 태평천국과 함께하심일지니. 가자, 북경으로! 지긋지긋한 야인들의 지배를 끝장내자!"

"""태평천국 만세! 홍수전 천왕 폐하 만세! 만만세!"""

한편이 무렵 난징을 재점령한 태평천국은 나날이 그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태평천국의 군세는 이미 물경 100만에 이르고 있었고, 장강 이남은 사실상 그들의 독립왕국이나 다를 바 없어 태평천국에 대항하는 이들은 모두 장강 이북으로 도주하였거나 이미 태평천국에 의하여 분쇄된 다음이었다.

여기에 한 번 쇠락을 경험한 홍수전이 기울어가는 교세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그동안 공허한 말뿐이었던 천조 전무제도(天朝田畝制度)라는 그들 교리의 이상향을 직접 실시하여 남녀 구분 없이 균등하게 농지를 분배시키자, 강남의 민심은 급속도로 태평천국을 중심으로 규합되었다.

"아이고, 안된다 이놈들아! 내가 이걸 어떻게 모은 돈인데! 안된다, 안된다 이것들아! 이것만은 안돼!"

"제 한 몸의 부귀영화를 위하겠다고 형제들이 쫄쫄 굶고 있는데 못 본 척 외면해? 이거 아주 그냥 악질이구먼! 당장 끌고 가라!"

그러나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실시한 조선과 달리 이들의 토지개혁은 무력에 기반을 둔 무상몰수 무상분배로서 실현되었고, 이에 저항하는 지주들은 줄줄이 태평천국 군의 손에 붙잡혀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여기에 사유재산을 철폐하고 모든 잉여재산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돕겠다고 나서자, 이에 반발할 강남의 거상들까지 태평천국의 군세에 붙잡혀 살해당했다. 강남 일대에서 이에 감히 저항할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청은 장강 이북으로 내쫓겼고, 장강 이남에서 조직적으로 태평천국에 대항하던 이들은 이홍장을 따라 화북으로 건너간 다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태평천국의 위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이거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소. 이대로 방임한다면 큰 사달이 나고 말 것이오!"

"내 말이 그 말이오! 당장 무력개입하여야만 합니다. 더는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한시가 급한 일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우리 영국이 구실을 만들겠습니다. 그럼 귀국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합세하여 태평천국을 치도록 합시다. 어떻습니까?"

"그야 물론 대찬성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행보는 사회주의의 확산을 경계시한 열강들의 개입을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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