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태후의 야욕 >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근대는 그 찬란한 번영과 함께 무수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사회주의는 이러한 문제점을 수습하겠다며 혜성과 같이 등장한 사상이었고, 이 무렵 한창 유행하던 노동투쟁과 연계하여 나날이 그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전까지도 흔히 보이던 유토피아론의 아류라 여겨 이를 가벼이 웃어넘기던 각국의 사회지배층들도,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과 프랑스의 노동자 총파업 등으로 투쟁이 본격화되자 사회주의를 바라보던 시선도 달라졌다. 단지 이상주의자들의 헛소리가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와중 태평천국이 점차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의 한 분파인 기독교 사회주의와 연계하여 이를 구체적으로 사회에 구현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열강들은 이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방임한다면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할 판국이었다.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그동안의 사회주의 운동도 그 규모와 질적 수준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구실을 만드느냐였는데, 이 부분에서는 큰 걱정할 것 없었다. 이미 아편을 몰수했다는 이유, 그리고 해적선에 내걸린 유니언잭을 불태웠다는 이유만으로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 바 있던 영국이었다. 구실이야 어떻게든 조작해서라도 만들면 그만이던 것이다.
"색목인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상하이는 우리들의 땅이다! 어찌하여 색목인들이 멋대로 들어와 제 주인인 양 행세하고 있단 말인가! 형제들이여, 색목인들이 부덕하게 빼앗아 간 우리들의 것을 되찾자!"
"바리케이드를 세워라! 총을 다룰 줄 아는 분들은 모두 모여 주십시오! 어떻게든 저 폭도들의 진입을 저지하여야 합니다!"
타타탕-.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불필요한 궁리였다. 굳이 열강들이 개입을 위한 명분을 날조할 것도 없이 태평천국에서 먼저 병사들을 앞세워 상하이의 외국인 조계지를 침공한 것이다. 필연적인 일이었다. 이미 반외세 성향을 공공연히 표출한 태평천국이었고, 또 그에 맞서 자발적으로 의용군을 조직하여 태평천국군과 싸웠던 상하이 조계지의 서역인들이었다.
태평천국군은 5만의 군세를 내세워 상하이를 침공하였고, 상하이에 주둔 중이던 프랑스, 영국군과 조계지의 서역인들이 의용군을 구성하여 이들의 침공에 맞섰다. 물론 무의미한 저항에 지나지 않았다. 20세기 이후의 상하이와 다르게 이 무렵의 상하이는 서구 열강들에 의하여 막 개발이 이루어지던 신흥 항구 도시에 지나지 않았고, 그런 만큼 상하이에 주둔 중이던 병사들도 모두 합하여 1개 연대를 간신히 채우는 수준이었다.
"오, 하느님. 저희가 안전하게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 야만인들의 마수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
"이 코쟁이들은 또 뭐라는 거야? 젠장, 아무튼 빨리 올라타시오! 곧 출항합니다!"
의용군을 모두 합하여도 20대 1에 근접한 수적 열세에 놓인 연합군은 상하이를 사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많은 이들을 피난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하여 상하이에 정박 중이던 모든 상선이 총동원되었다. 이들 중에는 지난 봉천조약 이후로 청과 자유무역을 누리던 조선의 상선들 또한 극소수지만 포함되어 있었다.
상하이는 불과 이틀 만에 함락되었다. 연합군은 마지막까지 결사 항전을 불사하며 태평천국군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누적시켰으나, 근본적인 전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태평천국군은 포로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몇몇 개별적으로 후퇴한 병사들을 제외한 영불연합군의 병사들은 전사하거나 무장해제당한 뒤 학살당했다.
그리고 이 이틀, 상하이를 포위하러 태평천국의 대군이 온다는 사실이 전해진 날을 기준으로 해도 나흘간의 시간은 상하이의 모든 색목인이 대피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그리고 상하이를 지키던 열강의 병사들과 싸우며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태평천국군에게 이들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이라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모조리 죽여라! 우리 형제들의 고혈을 빨아 부귀영화를 누리던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이다. 모조리 죽여서 하늘의 상제께서 우리들을 대견스럽게 여기도록 하자!"
""홍수전 천왕 폐하 만세! 상제 만만세!""
앞서 무장해제된 병사들을 무참히 학살한 것은 아직 제네바 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이라 포로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옹호 할 수 있었겠지만, 상하이 점령 뒤 태평천국군이 실시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민간인 학살이었다. 그들은 결코 상하이에서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남겨진 색목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도, 빠르고 편한 죽음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최대한 색목인들을 고통스럽게 살해하였다. 온갖 종류의 고문들이 자행되었고, 때로는 병사들의 '재미'를 위하여 사용되었다. 죽고 난 다음 형체나마 남길 수 있던 것은 행복한 이들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들이 본래 남성이었는가, 여성이었는가, 어린아이였는가, 노인이었는가도 구분할 수 없는 처참한 모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사, 살려…아니, 차라리 죽여줘. 제발, 이제 그만 죽여줘…."
"이로서 정의가 실현 되었다! 우리 태평천국의 지상 낙원이 머지 않았도다! 홍수전 천왕 폐하 만세! 상제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제발, 죽여…."
한때 인간이었다는 것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고깃덩어리들이 장대 위에 내걸려 죽음을 구걸하는 동안, 지상의 광신자들은 입을 모아 만세를 외쳤다. 한때 인간의 것이었던 뼛조각들을 밟고서, 다른 인간의 것이었던 화려한 장신구들과 금은보화로 온몸을 피장한채로 그들은 정의가 실현 되었다며 희희낙락했다.
태평천국군은 이러한 대량학살을 신앙의 이름 아래 포장했다. 그들의 학살은 성전이었고, 정당한 보복이자 정의였다. 종교적 광기와 서역인들에 대한 적의가 합쳐지자 더는 걷잡을 수도 없었다.
"회개하라! 죽음으로서 회개하라! 상제시여, 이 오랑캐들을 죽음으로서 용서 하소서! 천왕이시여, 이로서 천하가 말끔히 정화될 수 있도록 하소서!"
"오랑캐들이 더럽힌 이 추악한 도시를 불로서 정화하라! 모조리 죽여라! 천상의 상제께서 우리들과 함께하신다!"
광신, 야만, 그리고 기독교 그 자체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서역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의.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결말은 참혹했다. 태평천국의 사제들은 신도들의 광기를 장려했고,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지옥이 된 상하이를 가까스로 탈출한 미국인 기자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인간이 지상에 두 발을 디디고 선 이래 처음으로 인간이 갓난아이를 집어던져 대나무 창에 꽂으며 즐거워하는 지옥을 보았다. 시체가 우물을 가득 메우고, 핏물이 바다를 붉게 물들게 하고, 한때 신사 숙녀들이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던 도시가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고 밤하늘이 지상의 불꽃으로 붉게 더럽혀졌다.
상하이는 지옥이다. 그조차도 지금의 현실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이곳은 야만의 궁극이며, 이단의 소굴이고, 인간 악의의 끝이다. 누구도 이곳의 풍경을 보고서는 세상의 종말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홍수전이라는 이단의 교주는, 적 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참상이 상하이가 끝 일리가 없었다. 상하이는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태평천국의 수뇌부는 이미 이 중원 땅에서 서역 오랑캐들을 일거에 몰아내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곧 상하이를 시작으로 광저우, 항저우, 홍콩 등 장강 이남에서 색목인들이 주거하는 모든 항구가 습격당하기 시작했다. 이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조직적인 침공은 그 배후에 태평천국 지도부가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저 야만인들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군!"
"전능하신 주의 이름으로, 저 원숭이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성모 마리아시여, 하늘에 계신 주께 승리를 빌어주소서!"
이러한 태평천국의 반외세 운동은 중국인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끌어냈지만, 동시에 열강들의 격노를 일으켰다. 당장에 홍콩에 주둔 중이던 영국 극동함대와 뤼순에 주둔 중이던 프랑스 극동함대가 연계하여 반격에 나섰고, 반나절 간의 함포 사격 끝에 상륙한 연합군의 해군육전대는 해가 저물기 전에 상하이를 탈환했다.
비교적 신흥 항구로서 방비가 취약하였던 상하이와 달리, 영국에서 작정하고 자국의 영토로 육성 중이던 홍콩과 원래부터 대도시였던 항저우, 광저우 등의 항구 도시는 태평천국의 공격에도 굳건히 견뎌냈다. 조계지의 주둔군과 현지 의용군이 굳건히 버텨내는 동안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이 4개국이 연합군을 결성하였고, 도합 1만 6천의 군세를 이끌고서 그 즉시 태평천국의 도읍 남경을 목표로 진공하기 시작했다.
"썩 물럿거라, 이 오랑캐 놈들아!"
"상제 만세! 홍수전 천왕 폐하 만세! 서역 오랑캐들을 몰아내자!"
"쏴라, 쏴라, 쏴! 모조리 죽여라! 이딴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라!"
타타탕-.
그러나 이들은 가는 곳마다 현지 주민들의 결사적인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반외세 감정과 종교적 열망, 그리고 토지개혁에 의한 농민들의 열성적인 지지의 시너지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연합군은 연전연승했으나, 난징에 근접할 수는 없었다. 무리한 진격은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휩쓸려 보급선이 단절되고 내륙에서 고립될 위험이 컸다.
이에 고무된 태평천국 군 20만 명이 연합군과 롄윈강을 등지고 결전을 시도했으나, 이들의 시도는 무참한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이 한 번의 결전에서 태평천국군은 20만의 병사 중 3만 명이 죽고 8만 명이 포로로 잡히는 등 참혹한 대패를 당했고, 이때의 패배를 계기로 태평천국군은 난징에 틀어박혀 연합군과의 교전을 거부하였다.
자연히, 전쟁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대로 계속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저희뿐이 아닙니까? 어떻게든 빠르게 마무리 짓거나, 아니면 새로운 원군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청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본래 저들은 반란군일 뿐입니다. 지난 조선과의 전쟁으로 크게 약체화되어있다고는 하나 아직 청도 명맥이 유지되고는 있으니, 그들을 지원한다면 저희의 수고를 크게 덜 수 있을 것입니다."
"흐음,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뿐인 듯합니다. 좋습니다. 청군과 함께 싸우도록 합시다."
일이 이렇게 풀리자 열강들은 전략을 바꾸었다. 열강들은 화북의 유지조차 간당간당하던 청군을 지원하여 그들의 반군 토벌을 돕기로 하였고, 난징으로 진군하던 연합군은 다시 상하이를 비롯한 항구지대로 회군하여 압도적인 제해권을 이용해 태평천국 군을 내륙에 가둬 버렸다.
이러한 청에 대한 열강들의 지원은 조금씩 말라 죽어가던 청에게 내려진 구원의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열강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겨우 녹영군은 베이징에서 벗어나 화북 일대를 평정할 수 있었고, 녹영군이 화북을 평정하자 다시금 이홍장이 이끄는 의용군들도 장강 이남으로 남하하여 사교도 토벌전에 나설 수 있었다.
"이제 청나라는 살았다! 오호호, 아무렴 그렇지. 설마 하늘께서 이 몸을 버리실 리가! 실로 태상노군께서 함께하심이다!"
"""경하드리옵니다, 마마."""
"무엄하도다! 앞으로는 짐을 폐하라고 부르라고 하였을 터인데!"
이 소식에 베이징의 서태후는 득의양양해졌다. 그녀가 애초 도사를 부러 제사를 올리던 대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태평천국에서 알아서 열강들의 비위를 거스르면서 거의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던 청국에 마지막 동아줄이 내려진 것이다. 서태후는 이를 두고 태상노군이 그녀의 지극정성에 감동하여 도운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모든 일을 태상노군과 그를 성심성의껏 섬긴 자신의 덕분이라고 확신하게 된 서태후의 언행은 나날이 교만해졌다. 그녀는 어린 황제를 두고서 스스로 황제와 다를 바 없이 차려입고서 자신을 짐이라고 자칭하였고, 또한 그녀를 부를 때 폐하라고 부르도록 하였으며 금상이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도록 하였다.
이러한 서태후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이미 청국 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친왕은 조선에 사절단으로 건너간 이래 병을 핑계로 조선에 계속하여 머무르며 사실상 망명해 버렸고, 이홍장은 어떻게든 무너져가는 청국을 살리기 위하여 전장을 전전하고 있었다.
"고작 해봤자 사교도의 군세일 뿐이다! 절대 기죽지 마라. 사교의 무리에게 패하고서 우리가 무슨 낯으로 선제 폐하들을 뵐 수 있겠느냐! 전군 돌격!"
"겁먹을 것 없다! 기도하라, 총알조차 그대들을 비껴가리라! 야소의 형제 되시는 천왕 폐하께서 함께하시고 계시거늘, 어찌 우리 태평천국에게 패배가 있을 수 있겠느냐? 나가서 싸우자, 형제들이여!"
타타탕-.
장강 이남으로 돌아온 이홍장의 의용군은 사교의 군세와 치열하게 맞서 싸우며 차근차근 무공을 쌓아 올렸다. 열강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홍장의 군세는 혹독한 서구식 훈련을 받았고, 이러한 서구식 훈련과 무기들이 더해지자 그들의 전력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놀라울 정도로 일신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투를 거듭해갈수록 이홍장의 의용군이 우세를 잡게 된 것은 그들이 장강 이남 땅의 해안가 지대를 독점한 덕분이 가장 컸다. 서구 열강의 연합군은 압도적인 제해권을 내세워 그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였고, 이는 필연적으로 해안가 지대에 집중된 장강 이남 땅의 인적, 물적 자원이 이홍장에게 쏠리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쓸만하더군요. 말도 통하는 것 같고, 그 이홍장이라고 하는 장군과는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조선과의 전쟁과 무관하게 이 장군에게 지원을 계속했다면 그 태평천국이라는 이단들이 여기까지 커질 일도 없었을 텐데, 후회스럽습니다."
"그 말대로 입니다. 그러나, 그에 반하여 베이징의 그 마녀는…."
"…말을 말도록 합시다. 그 러시아 놈들에게 영혼을 팔아 치운 마녀 년에 대하여 이야기해 봤자 기분만 나빠질 뿐이니까."
이 무렵의 열강들은 점차 더 이상 전선에 나서는 대신 거점 수호에 전념하면서 이홍장을 지원하여 그로 하여금 대신 태평천국과 싸우도록 하였다. 이홍장은 열강들이 그에게 떠맡긴 역할을 묵묵히 해냈고, 이러한 이홍장의 충실한 모습은 열강들로 하여금 호의를 품게 하였다.
그에 반하여 베이징의 서태후와 그녀의 추종자들은 열강들에게도 점차 버려져 가고만 있었다. 안일한 것도 정도가 있지, 장강 이남 땅이 엉망이 되어가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미신에 심취하여 도사들에게 국고의 재화를 가져다 바치는 일뿐이었으니 필연이었다.
설령 꼭두각시를 내세우고서 착취에 전념하게 된다고 해도 우선 최소한 그 꼭두각시가 착취할 나라를 온전히 간수해야 착취를 할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서태후와 그녀의 추종자들은 꼭두각시로서도 낙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