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71화 (71/530)

< 황제병 >

"이 장군, 이제 선택하실 때가 왔습니다. 저희 연합군은 이번 기회에 다시금 베이징을 정벌하여 그 마녀에게 본보기를 보일 작정입니다. 어떻습니까, 저희와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주신다면 크나큰 영광일 것입니다."

"으, 으음…."

조선이 호전적인 발언을 늘어놓는 동안, 열강들은 이홍장을 계속하여 부추겼다.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미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서태후의 추태에 환멸을 느끼어, 그녀가 사라지는 편이 안정적으로 청을 수탈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이홍장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남아있었다. 하나는 열강들의 부추김을 무시하고서 마지막까지 청의 충신으로서 남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스스로 열강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황제가 되어 천하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역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이홍장의 본심이었다. 그는 청의 충신으로서 역사에 기록되고 싶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청이 다시금 천명을 회복하여 천하를 안정시키는 꿈을 꾸고는 했다.

그에게 야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역사에 반역자로서 기록되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은 그의 조국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그렇다면 그는 애국자이자 충신으로서 역사에 기록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헛된 꿈이라는 걸 지금 이홍장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여전히 민심은 저들 사교도들과 함께하고 있다. 지금의 토벌전은 결국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는 일이다. 이건 청의 잘못이다. 민심이 사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다니. 그러고도 청의 천명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던가?'

이홍장은 청의 천명이 이미 다했다고 확신했다. 장강 이남에서 그가 마주친 사교도들만 해도 그러했다. 그들은 분명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테고, 아들이었을 테고, 남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광신에 사로잡혀 헛되이 그들의 목숨을 낭비하고 있었다.

사교 교주 홍수전은 그의 군세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천국의 군세라고 주장했다. 이홍장으로서는 혐오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들이 어찌 천국의 군세일 수가 있단 말인가. 눈을 까뒤집고서 죽음을 갈망하는 사교의 군세가 진정 천국의 군세라면, 이 세상은 지옥일 수밖에 없었다.

"본관은 이 나라가 다시금 강성해지기를 원하오. 그리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이 나라의 백성들을 지킬 수 있을 힘을 손에 넣기를 원하오."

이홍장은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실제로도 대답을 원하고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홍장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물론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희들이 이 장군께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희와 손을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장군께서 뜻하시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홍장은 눈앞의 색목인이 하는 말에 참을 수 없는 유혹과 함께 모멸감을 느꼈다. 상황을 여기까지 악화시킨 건 물론 청의 자업자득도 있지만, 저 색목인들의 역할도 결코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색목인들이 그에게 천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황제가 되라고 독촉하고 있었다. 청을 멸하고서, 중원을 구원하라고 말이다. 이홍장으로서는 이 모순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홍장은 그런데도 저들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가 꿈꾸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저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눌러앉아 버린다면 그때야말로 중원은 썩어 문드러질 터였다. 이홍장으로서는 극단적인 수준의 강도 높은 개혁을 갈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개혁의 또 다른 이름은 서구화가 될 것이다.

지금의 조선이 그러하듯이, 중원 또한 서구화의 길을 걷는 것밖에는 생존의 길이 없었다.

'설령 이 때문에 신세를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나라의 백성들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다.'

이홍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서구화를 외쳐봤자 모두가 이를 반대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지금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 알고서도 입을 잠자코 다물고 있을 정도로, 이홍장은 교활한 인물상은 되지 못하였다.

"…정녕 그것이 본관의 천명이라면, 그렇게 하리다."

"""중화제국 만세! 이홍장 폐하 만세! 만만세!"""

결국, 이를 자신의 천명이라고 받아들인 이홍장은, 난징에 스스로 읍하고서 중화제국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그것은 과연 그 스스로의 야망을 위하였을까. 아니면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였기 때문일까. 그 스스로는 백성들을 위하여라 하였지만, 그걸 결정하는 건 이홍장이 아니었다.

그걸 결론 짓는 건 그의 행보를 평가하는 후세의 일이었다.

"오늘부로 다이칭령 타이완 섬은 대영제국, 프랑스 제국, 네덜란드 왕국, 미합중국 4개 열강국의 관리 아래 향후 6년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총선거를 실시하여 독립 정부를 구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겠소."

"현명하신 판단에 감사드립니다. 그 보답으로서 금일 부로 저희 열강 4개국은 중화제국을 중국의 정통 정부로 인정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귀국과는 변치 않는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 싶군요."

그리고 중화제국 역사의 첫 장은, 타이완 섬의 할양으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이홍장이 중화제국을 세웠다, 라."

"그렇습니다, 폐하. 열강은 이 장군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홍장이 태평천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강남의 주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이형이 듣게 된 것은 불과 일주일만이었다. 물론 조선의 첩보력이 우수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전쟁을 획책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극동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한양에 들어온 서역의 공사들이 시시각각 정보를 공유해 준 덕분이었다.

물론 그 의도는 뻔한 것이었다. 결국, 피를 흘리는 역할은 조선에서 하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일단 일보후퇴하였고, 러시아의 후퇴는 서역의 열강들이 극동에 힘을 쓸 이유도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튼, 태평천국의 난은 거의 진압 되었고, 남은 것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한차례 서역의 열강들을 배신하고 또다시 허튼짓을 벌여 극동에서 2차 크림전쟁을 일으킬 뻔한 청에 대한 징벌뿐이었으니까.

"이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이 장군께서는 저희와도 제법 말이 통하시는 분이니까요. 한동안 극동은 평화로울 겁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그저 이 장군께서 청을 멸하시고 나면 심왕으로서의 봉토를 회수하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홍장의 천자 등극을 알리는 서역의 공사들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느긋했다. 그들은 이미 조선과의 전쟁에서 참패하는 청의 모습을 보면서 청이 더는 존재할 자격이 없다고 단정 지었고, 서태후가 거듭하여 극동에서 긴장감을 조성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이자 원흉 제거를 명분 삼아 이홍장을 부추겨 이홍장이 억천을 시도하게 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이홍장의 중화제국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그들이 지원한 그들의 챔피언이었으니까. 실제로 그 기대를 단 한 차례도 배신하지 않았으니, 이홍장에 대한 서역 열강들의 신뢰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랄하는군."

그에 대한 이형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 짱꼴라 놈들의 5천 년 역사 중에서 외세를 끌어들여서 건국 시조 노릇을 하려던 놈 중에서 성공한 놈이 있던가? 동양에 대한 무지도 정도가 있지, 저놈들이 럼주 빨고 쳐 돌았나."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뒤섞이면서 서로 부대껴온 역사가 기나긴 유럽과 달리, 동북아에서는 언제나 두 가지 부류의 족속만이 존재해왔다. 중화와 오랑캐.

조선이 자신을 소중화라고 자칭한 이유도 결국 이러한 협소한 세계관 탓이 절반은 되었다. 자신을 오랑캐라고 지칭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니까 결국 중화는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소중화라고 자칭한 것이다.

여기서 중화에 포함되지 못한 오랑캐들은 인간과 유사한 모습의 동물 수준의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서역의 열강들에 대한 현 동북아의 보편적인 인식은 이상하게 생긴 오랑캐라는 것이었다. 서역 열강들의 지원을 받는 순간부터 짐승들의 손을 빌려 권좌를 탐한다는 오명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 이홍장이라는 자가 여기에 동참한 건 의아한 일이로군요. 그 또한 이 사실을 모를 리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하응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적어도 이하응이 듣기로 이홍장이라는 자는 영웅호걸의 풍모가 있는 대인이라고 들었던데, 이제 와서 청을 등진 이유를 이해할 수 없던 것이다.

"그야, 청의 천명이 다한 것은 부정할 여지 없는 사실이니까지."

그에 대한 이형의 대답은 시큰둥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핵심이기도 했다. 결국, 모든 일의 원흉은 조선이 청의 천명을 끝장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본래라면 괜한 흑심을 품지 않을 자들까지 차라리 청의 존속을 바라는 것보다 자신이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편이 백성들을 위하는 길이라 자기 위안하고서 하나둘씩 궐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 흩어지면 다시 합쳐지고, 합쳐지면 다시 흩어지는 것이 저놈들 역사 아니었소? 이제 그 주기가 돌아왔다, 그뿐인 일이요."

요컨대, 천명쟁탈전이었다. 그 시작을 알린 건 태평천국이었고, 그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확정 지어 버린 것이 조선의 역할이었다.

이홍장은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하여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선지자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이홍장이 시작을 알렸으니, 곧 다른 이들도 여기에 하나둘씩 합류하게 될 것이 뻔했다.

이형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자고로, 중원의 난세는 언제나 조선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기회였으니까. 앞으로도 백성들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서 수없이 많은 영웅호걸들이 궐기할 테고, 또 무너져내릴 터였다.

이것이 전근대의 일이었다면 단지 그뿐이겠지만,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제국주의의 시대였다. 이제부터 황제가 되고자 꿈꾸며 궐기할 영웅호걸들이라는 군벌들은, 열강들의 이익 관계에 따라 조종당하고 또 농락당할 운명이었다.

"우리 조선이 누구와 손잡아야 할지는 이제부터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오. 뭐, 잠시 지켜봅시다. 어차피 한두 해로 결정 날 사안도 아니니까."

느긋하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이형은 팔을 괴고서 비열한 미소를 띄워 보였다.

물론, 조선이라고 단순 관람자가 아닌 천명 쟁탈전의 참가자로서 한 손 거들지 말라는 이유도 없었다.

"폐하께서는 아직 조선과 손잡을 만한 인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시는 모양이로군요."

이하응은 의외라는 듯이 말하였다. 이형은 별다른 반발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이오. 예로부터 큰 뜻을 품어 범인보다 많은 것을 보고서 앞선 미래를 준비하던 영웅호걸은 많았으나 범인들에게 이해받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이들은 드물었소. 짐은 작금의 이홍장이라는 자 또한 그와 같다고 생각하오."

"폐하께서는 이홍장이라는 자를 높게 평가하시는 듯합니다."

"그야 물론. 아마 지금 중원에서 가장 작금의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는 이라고 생각하오. 지금쯤 우리 조선이 그러하듯이 하루라도 빨리 근대화를 마무리 지을 궁리를 하고 있을 거요."

'물론 정답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 정답을 실현하는 건 다른 거지만.'

이형은 마음속으로 냉소했다. 근대화라는 게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이 지구상에 식민지가 된 나라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이홍장만 해도 그러했다. 이형이 알기로 이홍장은 청나라 최후의 충신이라고 불릴만한 권신이었다. 비록 군벌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가 어떻게든 쇠락하여 멸망해가는 청을 되살리기 위하여 일평생을 바쳤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홍장은 오늘날 스스로 중화제국의 천자임을 선언하고서 화북으로 진군하고 있다. 쓰촨성으로 도망친 태평천국 교주 홍수전의 추격조차 뒤로 미뤄둔 채로 말이다. 그것이 과연 이홍장이 괜한 야심을 품었기 때문일까. 이형은 그것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보아하니, 지금의 청나라를 기반으로 중원을 근대화시키고 서역의 열강들로부터 살아남는 건 무리수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청의 천하가 살아남는 것보다 청을 멸하고 새로운 천하를 여는 편이 중원의 백성들을 위하는 길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겠지만, 이홍장이 마음을 고쳐먹은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근대화 쪽일 거라고 이형은 추측했다.

근대화는 상당한 행정력, 재정과 함께 기득권층의 반발을 동반하는데, 지금의 청나라가 그를 견딜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재정이야 어떻게든 준비한다고 쳐도, 행정력과 기득권층의 반발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건 정말로 청이 차라리 한 번 망하고 없어지는 편이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홍장은 이를 위해 서역의 열강들을 끌어들이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아마 이홍장이 집권하게 된다면 그는 곧장 본래 역사의 양무운동보다 강도 높은 수준의 체질 개선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았다. 현 중국에서 유일하게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읽고 있다고 평가되는 이홍장이니만큼, 이는 틀림없다고 이형은 판단했다.

"민심이 저자의 편일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이하응은 싸늘하게 말했다. 이형도 거기에 반대하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 그는 한족 신사 층 출신이고, 그의 출신과 지지기반을 배신할 수 없는 이상 토지개혁을 비롯하여 당장에 백성들이 기대하는 개혁을 강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한동안은 이홍장의 군공에서 말미암은 명성과 탁월한 인품에 기반을 둔 인망으로 어떻게든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물론 국가의 생존에 가장 절실한 개혁은 공장들을 세우고 철도를 깔면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며 지식인들에게 서역의 학문을 가르치는 일이겠지만, 그게 대관절 민생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이것저것 바뀌는 모습에 관심을 보이던 이들도, 정작 자신들의 호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지기만 할 뿐이라면 외면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형과 이하응이 대개혁에 앞서 가장 먼저 토지개혁부터 단행한 까닭이기도 했다.

"그야 물론이겠지."

이형은 딱히 부정하지 않고서 선선히 이하응의 말을 인정했다. 부정할 까닭도 없었다.

일단 당장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뭔가 들어오는 것이 있어야 이후에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겪게 될 불편들을 민중들이 감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홍장은 서구열강들의 지지를 받아 비교적 백성들의 요구에 기반을 둔 토지개혁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태평천국을 쓸어내고서 한족 신사 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강남을 차지했다.

이는 이형이 냉소하는 가장 큰 원흉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인물이 태생적으로 기득권인 꼴인데, 개혁이 탄력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형의 시선으로 보기에 이홍장의 파멸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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