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유공자법 >
"죽겄다…."
한편 러시아의 차르가 관료들을 닦달하고 있을 무렵.
차르를 격노하게 만든 당사자, 조선 국왕 이형은 근 1년 여 만에 창덕궁으로 돌아와 요양이 한창이었다. 다행히도 화상이 덧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출혈이 많았고 또 모르핀에 과도한 음주까지 겹치니 그 숙취로 몸의 자연 회복력이 현저히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정작 조선군은 전쟁에서 압승했는데 그 국왕인 이형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의 엉망인 몸 상태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지만 얼마나 이형이 자신의 몸을 험하게 써왔는가를 대신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러게 좀 적당히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정말로 죽으면 어쩌시려고 이토록 무리하셨단 말입니까."
이하응은 그런 이형을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한번 노려보고서는 땅이 꺼지라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 만큼은 이하응으로서도 한마디 잔소리라도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를 않을 것 같았다.
왕이라는 자가 기어이 기병들을 선두지휘하다 과다출혈로 죽을 뻔한 꼴을 보고서 뭐라 한마디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게 교육계 이전에 왕의 아버지라고 불릴 자격이 있기는 한 걸까. 이하응은 이번 기회에 이형에게 단단히 한소리 해둘 작정이었다.
"제발 이 나라 조선의 왕이시다는 자각을 가지십시오. 금상의 두 어깨에는 이 나라 조선 1천만 백성들의 명운이 걸려있단 말입니다. 왕이라는 자가 술에 진창 취하여 말을 몰고 전장에 나섰다 죽을 고비를 넘기다니 그게 어딜 봐서 참된 왕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란 만백성의 아버지와 같습니다. 백성들의 모범이 되셔야 할 분이 어찌…."
"뭐, 미안하게 되었소. 짐도 이번 일은 조금 지나쳤다고 반성하고 있던 차요.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 내 약속드리리다. 그리고 사실, 앞으로 그럴 필요도 없을 테고."
"조금은 진중하게 귀 기울여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전혀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잖습니까. 아시겠습니까. 만일 이와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난다면 그때야말로 저도 회초리를 들겠습니다. 이 나라의 왕이라면 왕 다운 모습을 조금 보여주시지요!"
"거 사람 성미만 급해서는…쯧, 알겠소. 알겠다니까. 다음번부터는 조심하리다. 이제 되었소?"
이하응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고함을 쳐도, 이형의 태도는 여전히 불량하기 그지없었다. 귓구멍을 후비적거리고 새끼손가락에 귀지가 묻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꼴이 영락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 성의 없는 태도에 이하응은 복장이 터지는 듯했다. 처음에는 즐겁게 받아들였던 섭정직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형으로서는 나름대로 진지한 다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조선은 더는 국왕인 그가 직접 전장에 나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야 할 만큼 급한 고비는 넘긴 이후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야 국왕인 이형이 몸소 나서서 하나하나 경과를 봐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달랐다.
러시아를 꺾었으니 당분간 극동은 조선의 독무대였고, 이제 해외로 유학을 하러 갔던 인재들도 하나둘씩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근대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독일이 한 손 거들겠다 떠들고 있지만 말 뿐일게 뻔한 이상 적어도 10년에서 20년간은 신경쓸 것도 없었다.
재화라면 화북에서 얼마든지 끌어올 수 있었고, 외교 관계라면 영국, 프랑스, 미국과 손을 잡은 시점에서 이대로 쭈욱 유지하기만 해도 크게 신경 쓸 것 없었다.
산업기술이라면 미국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받은 시점에서 절반을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남은 건 백성들을 교육하는 것뿐이었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시간이 해결할 문제였다. 교수들이라면 영 불미 3개국에서 초청했고, 학교를 세우는 일도 미국에 사업을 수주해뒀다.
근대화라는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길은 준비 되었고, 이정표라면 이형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남은 건 그저 계속하여 멈추지 않고 내달리는 일뿐이었던 것이다.
'슬슬 내가 현장에서 날뛰어봤자 괜히 방해만 될 뿐이지. 현장의 일이라면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놈들이 더 잘 알테고. 이제 좀 나도 술 먹고 놀면서 편하게 왕 노릇 할 수 있겠네.'
이형은 헤벌쭉 미소지었다. 이제부터는 그저 방향만 적당히 지정해둔 다음 일은 모두 현장에 미뤄두고서 탱자탱자 놀 생각을 하니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매일 같이 진창 술도 마시고 고기도 마구 뜯고 폐가 썩어 곪을 때까지 담배도 피우고! 꿈에 그리고 그리던 방탕한 생활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듯했다.
물론 이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 못 할 이하응이 아니었다. 이형이 헤벌쭉하고 멍청한 미소를 띠는 그 즉시 이하응은 이형이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이형을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은 매일같이 일에 치여 사는데 왕이라는 작자는 매일 같이 놀고먹고 있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이 고약한 놈. 내 태조께 맹세하건대 기필코 네 입에서 왕 노릇 못 해 먹겠다는 불평이 나오게 만들고 말겠다. 이 몸이 일하다 죽으면 네놈도 그 옆에 함께 묻혀야 할 게다, 이 망나니 놈.'
이하응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이형을 쏘아보았다. 그와 함께 이형은 알 수 없는 오한이 그를 덮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린 소름이 등골을 타고서 꼬리뼈까지 퍼져나갔다. 이형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이하응 탓이라는 걸 직감했다.
'아니, 이제 나는 할 것 다 했다니까 또 뭐가 불만인 거냐? 이 몸 어르신께서도 이제 좀 즐겨보면서 살자고! 왕이 되었으면 좀 즐기면서 살아야지 맨날 웬 놈들에게 총이나 맞고 다니는 게 어딜 봐서 왕이냐! 거 좀생이 같은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기왕이면 이 몸도 일하고 네놈도 일하는 게 더 효율이 높지 않더냐? 으흐흐, 이놈. 어딜 감히 이 몸에만 덤터기를 씌우고서 도망치려 하느냐? 그건 안될 일이지. 아암, 안될 일이고말고! 이 망나니 놈아, 네가 벌인 일이니 너도 함께 뒷수습해줘야겠다!'
부자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서 서로를 노려다 보면서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굳이 입 밖으로 일일이 발성하지 않아도 부자는 눈빛만으로 서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이형은 질렸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고, 이하응은 낄낄거리며 고약한 미소를 터뜨렸다.
피만 섞인 부자가 왜 이리도 서로의 속을 훤히 알고 있는지. 참으로 이상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일이요? 짐은 보이는 대로 환자요. 잔소리하러 온 것뿐이라면 이만 물러나 주었으면 하오만."
이형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며 이하응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참으로 무례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이 모습을 조선의 선비들이 본다면 그야말로 기함을 할 터였다. 하지만 이형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행동했고, 이하응 또한 그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이하응은 잠시 빤히 이형을 노려다 보다 헛기침을 하고서는 답했다.
"…연해주의 확보에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현지 노서아 사냥꾼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통에 잠시 물러난 틈을 타 노서아의 황제라는 자가 새로이 3천여명의 정병을 연해주에 주둔시켜, 더 이상 연해주를 공략하는 일은 어려울 듯합니다."
"흐음, 역시나 그렇게 되었나."
이하응의 보고에 이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장은 점령을 목표로 할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단기결전이라면 몰라도 연해주에 대한 장기간 군사적 점령을 시도하기에는 지금의 조선군은 허울만 강군에 불과했다. 내부적으로는 민병대가 날뛰고 외부적으로는 러시아군이 남하한다면 애꿎은 병사와 물자만 낭비할 공산이 컸던 것이다.
지금 조선이 대외적으로 알려야 할 건 러시아가 협정을 지키지 않겠다며 강짜를 놓은 사실이었고, 또 그를 통해 얻어내야 할 건 이번 조러 전쟁의 승전을 계기로 조선군에 대한 평가를 상향조정한 영불미 3개국에게 집중적인 지원을 따내는 일이었다.
요컨대 명분 싸움이었다. 극동에서 러시아를 고립 시키는 한편으로 러시아에 분노한 영불미가 직접적으로 무대 위에 오르기 보다 조선의 등을 떠미는 구도를 유도하는 것이다.
연해주 원정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유감스러운 이야기지만 예견된 일이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노서아인들이 더 이상 만주로 나오지 못하도록 방비나 철저히 해두라고 하시오. 그리고 이번 진공전에서 희생된 병사들은 따로 파악하여 유족들에게 잘 포상해주고."
이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명령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하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폐하께서 직접 하십시오. 이제 슬슬 어엿한 성인이 되셨잖습니까? 이와 같은 일은 금상께서 몸소 하셔야 할 일이지, 언제까지고 이 늙은이에게만 의지하셔서야 곤란할 따름이지요. 제가 거들어 드릴 테니, 금상께서 직접 해보십시오."
"…뭐라?"
이형은 그게 뭔 뚱딴지같은 이야기냐는 듯이 이하응을 쏘아보았다. 여전히 이하응은 추호도 동요하지 않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이하응은 말했다.
"폐하께서 시작하신 일이 아닙니까. 폐하께서 마무리를 지으셔야지요. 살아있을 적에 함께 술잔이나 기울이는 걸 책임이라고 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그러자 이형도 답할 말이 없었다. 이하응의 말이 옳았다고 생각하기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형은 한참을 눈을 껌뻑거리며 이하응을 바라보았다. 그에 대하여 이하응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전장에 나서는 것은 전장에 나선 장수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금상께서는 장수가 아니잖습니까. 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 전쟁을 일으킨 왕의 책임이란 전쟁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일입니다. 이 나라의 왕이시라면 왕으로서 책임을 다하시지요."
"…허."
이하응에게 말대꾸하는 대신, 이형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미간에 주름을 잡고서, 한참을 생각에 잠기며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마치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아픔은 없었다. 오히려 비로소 머릿속이 말끔히 개는 듯했다.
이형은 한참을 말도 없이 턱수염을 쓰다듬다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소. 듣고 보니, 딱히 틀린 말을 한 것 같지는 않구려. 그렇지만 짐을 좀 도와주셔야겠소. 알다시피, 짐은 영 활자와는 친해질 수가 없어서 말이요. 공부부터 마저 끝내야겠구려. "
"비로소 각오를 굳히신 듯하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우선은 요양에 전념하시지요. 공연히 서두르다 병을 얻기라도 한다면 그거야말로 우스운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오."
'걸렸다!'
이형의 확답을 듣고서는, 이하응은 남몰래 회심의 미소를 띄웠다가 지웠다. 겨우 이 망나니 왕이 함부로 날뛸 수 없도록 마음의 족쇄를 채웠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겨우 저 망나니의 손에 말고삐와 술 대신 활자책을 쥐여준 것이다.
권력 욕심도 하루 이틀이지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게 될 거라며 매일 같이 근심하고 있던 이하응에게 이보다 기쁜 일은 없었다.
그런 이하응에게 이형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뜸 내뱉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에 국가유공자법을 지정하고자 하오만."
"…그건 도대체 어떤 법입니까?"
알 수 없는 일말의 불안을 느끼며, 이하응은 되물었다. 어째서일까. 괜한 일을 시작했다는 후회가 마구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뭐,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소. 이번 전쟁처럼 나랏일에서 크게 다치거나 죽거나 하였을 경우, 나라에서 그 유가족들에게 따로 보상을 해주겠다는 이야기이니까. 왜, 예로부터 비석을 세워주거나 하면서 공을 기려주었잖소. 그걸 좀 더 본격적으로 제도화해 보자는 이야기요."
"오호, 과연."
이형의 설명은 이하응으로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요컨대, 나랏일을 하다가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라에서 직접 나서 보상을 해주면서 백성들이 나라에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건 이하응으로서도 나쁠 것 없는 이야기였다.
나라에서 몸소 나랏일을 하다 큰일을 당한 유공자들에게 보상을 내리면서 더욱 전주 이씨의 권위를 공고히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주 이씨의 천하를 그리던 이하응에게 있어서도 거부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다만, 한가지.
"…그렇다면 그 경우 필요한 예산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경에게 가장 먼저 말씀드리는 것 아니요?"
'이 영악한 놈이…!'
뭘 그리 당연한 걸 묻고 있냐는 듯 히죽 웃으며 답하는 이형의 얼굴에, 이하응은 혈압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역시나, 이 망나니 왕은 순순히 당하고 있기만 할 생각이 없던 것이다. 보나 마나 지금도 예산이 빠듯하다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서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재정처럼 섬세하기 그지없는 업무에 문외한을 끌어들이면 그 결말은 그야말로 참혹할 터였다. 이는 다시 말해 이형이 어떤 도움도 되기 어렵다는 것이었고, 가능한 한 이하응이 알아서 없는 예산을 쥐어짜야 할 필요성을 의미했다.
"일단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오만, 이를 위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키우거나 하는 건 안될 말이요. 백성들을 위하는 일이 도리어 백성들의 부담을 키운다면 배보다 배꼽이 큰일이 되지 않겠소. 자, 그러니 함께 잘해봅시다."
"허허허, 말씀만으로 천군만마를 얻은 듯합니다. 금상께서 이리 백성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지극하시니, 참으로 조선의 복입니다."
'함께? 네 녀석이 감히 함께를 입에 담아? 요 4년간 서류 한 장 펼쳐본 적 없는 망나니 놈이!'
그렇다고 차마 먼저 말을 꺼낸 입장에서 뭐라 토를 달지도 못하고, 이하응은 이를 악물었다. 이형은 그런 이하응의 속이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는 걸 훤히 알고 있다는 듯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하응은 새삼스레 전율하였다. 이 망나니 왕이 단지 우연이 아니라 고의로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머리 검은 짐승은 들이는 것이 아니라더니, 옛말이 꼭 맞구나! 이 고약한 망나니 놈, 기어이 아비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어디 두고 보자. 후일 이 몸이 늙어 벽에 똥칠하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은 평생 서류만 읽다가 죽게 만들어 주겠다!'
'낄낄낄! 꼴 좋다, 이 영악한 영감탱이 놈! 오냐, 먼저 시작한 것은 네놈이렷다? 어디 네놈이 먼저 지쳐 쓰러질지 이 몸께서 먼저 지쳐 쓰러질지 겨뤄보자꾸나!'
"하하하하하!"
"허허허허허!"
두 부자는 서로를 향해 뒤틀린 미소를 띠며 겉으로는 하하호호 웃었다. 두 부자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방이 편한 꼴은 보지 못하겠다는 고약한 마음씨였다. 부정애고 효심이고 두 사람에게는 사치일 따름이었다.
"참으로 금상께서는 효심이 지극하신 분 이시로구나. 금상께서 마음씨 따뜻하신 건 가정이 화목한 덕이라는 걸 마침내 알았다."
그 모습을 기둥 뒤에 숨어 지켜보며, 중전은 쿡쿡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예?"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궁인들은 그저 멍청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거릴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