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01화 (101/530)

< 대만 왕국 >

"승냥이 같은 양이 들을 몰아내자! 나라를 좀먹는 지주들을 타파하라! 태평천국 만세! 천조 전 무제도 만만세!"

"홍천귀복 천왕 폐하 만세! 상제시여, 지상의 새로운 천왕을 축복하소서!"

이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태평천국의 확장기회가 되었다. 청이 군사력 해체로 악화하고 중화제국이 썩어 문드러지는 틈을 타 여전히 쓰촨성을 중심으로 한 내륙지대에서 세력을 유지하던 태평천국은 그 즉시 중화제국에 침투하여 자신들의 사회주의적 체제를 내세워 반 지주 운동을 주도했다.

그 무렵에는 초대 교주 홍수전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다음이었으나, 쓰촨성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태평천국 세력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태평천국 운동 초기 여러 군벌세력의 연합체에 가깝던 태평천국이 조청전쟁 이후 홍수전을 중심으로 재부흥하고 쓰촨성을 장악하며 소수정예화되어 강력한 독재 권력을 이룩하기도 했다.

중화제국 정부는 이들 태평천국의 침투에 성공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 태평천국의 집권 기간 동안 지주들이 대거 숙청되면서 그 숫자가 크게 줄어 지주층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던 중화제국은 태생적으로 열강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것이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숫자가 크게 준 한족 신사 층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던 중화제국은 태평천국이 쓰촨성을 중심으로 농민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지주들을 살해하도록 부추기면서 점점 더 약화 되어만 갔다. 국력만 따지자면 태평천국은 중화제국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나, 태평천국이 게릴라 전략으로 선회하자 중화제국으로서는 이에 대항할 수단이 마땅치가 않았다.

"네놈 집에서 사교도 놈들이 비밀집회를 했다는 신고가 있었다! 이놈, 솔직히 말하지 못할까! 사교도 놈들을 어디에다가 숨긴 거냐!"

"지, 지는 몰라유! 지는 증말로 몰라유! 그냥 스님께 시주 드리고 불공 드린 거 밖에 없어유! 참말이어라!"

"어허, 이놈이 그래도! 여봐라, 이놈과 이놈 가족들의 목을 베어 감히 사교도 놈들과 내통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어라!"

태평천국의 침투를 막으려면 지주들로부터 특권을 회수하거나 아니면 고통받는 농민들에게 무언가 당근이라도 내주어야 할 텐데, 전자는 바로 그 지주층의 지지로 나라를 세운 중화제국에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후자는 당장 근대화로 재정이 고갈되고 있던지라 무리였다. 그러자면 결국 대응법은 폭력이 될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태평천국의 폭력에 지쳐 중화제국의 지배를 받아들였던 민심은 또다시 주먹을 휘두르는 중화제국의 압제에 금방 진저리를 냈다. 민심이 중화제국에 이탈할수록 중화제국의 지방 장악력은 바닥까지 추락했고, 중화제국을 등진 민심은 새로운 대체재를 갈구했다.

그 대체재가 농민들에게는 태평천국이었던 것이었으나, 소상공인들은 비롯한 도시민들에게 태평천국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였다. 불과 1년도 가지 못한 태평천국의 지배 기간 동안 그들이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무턱대고 그들의 재산을 압류하며 폭압을 휘두른 악몽은 아직도 도시민들에게 생생했다.

"조선, 아니 한국으로 가자! 허구한 날 이거 내놓아라, 저거 내놓아라…그러면서도 무엇 하나 해주는 건 없고.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듣자 하니 한국의 황제가 상업을 우대한다고 들었다. 한국으로 가자!"

그중 일부는 중화제국을 떠나 한국으로 향했다. 매일 같이 전쟁에, 착취에, 재산압류에 혼란이 끊이지를 않던 중원에 진저리를 내고서 전 재산을 털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던 한국으로 이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소수에 속하였지만,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었다.

이들 대다수는 중화제국에서도 부유한 거상은 아니되 그렇다고 보잘것없는 서민도 아닌, 요컨대 중산층에 해당하는 집단이었다. 거상들은 특권층에게 모든 부와 권력이 집중되던 현 중화제국의 질서 속에서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었고, 보잘것없는 서민들까지 이주민 대열에 합류할 만큼 한국의 위상이 대단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들 중산층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들은 지식인이었으며, 기술자였고, 또 그 나름대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산업화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기에 유입된 이들의 존재는 한국 경제에 있어서 훌륭한 양분이 되어주었다.

"대한제국에 온 것을 환영하네! 다 망해가는 중화제국을 등지고 한국을 선택한 일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걸세. 그런데 아 참, 앞으로 한국 사람으로 인정받기 전에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무엇이든지 좋소. 저 망할 사교도 놈들과 시도 때도 없이 상납금이나 내라는 관료인지 건달인지 모를 놈들과 만나지 않는 것만으로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음, 각오가 대단하구먼. 그렇다면 좋네. 자, 소집영장 받으시게나. 개마고원에서 한 3년만 구르고 오면 자네도 어엿한 한국인일세."

"…잠깐만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당장 러시아와 패권 경쟁을 하기에 병사들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대한제국 국방부는 때마침 굴러들어온 인적자원을 결코 소홀히 할 생각이 없었다. 군대에 갈 수 없다면 하다못해 1달간 훈련을 받은 다음 보충역 내지 예비군으로 편성되었고, 그조차 할 수 없다면 전시근로역 민방위에라도 편성되었다.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시민권 취득을 거부하고 중화제국으로 귀국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숫자는 소집영장을 받는 대신 불법적으로 이주하려 들었고, 이들은 불법 이민자로 취급되어 국가헌병대의 추적을 받아 훈련소로 보내지거나 중화제국으로 추방되거나 둘 중 하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들 불법 이민자들의 검거율은 대단히 높은 축에 속했다. 시민권을 따내기 위하여 군대에 끌려가야 했던 현지 화교들이 적극적으로 불법이민자들의 검거에 동참하였기 때문이다. 집안의 성인 남성들이 군역을 지면 여성들이나 군대에 갈 수 없는 노인들 또한 시민권을 받아낼 수 있었기에 집안에서 밀고하여 붙잡혀가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이는 만주에 이주했던 러시아인들 다를 바 없었다. 러시아 제국과 내통할 위험 탓에 국경지대보다는 멀리 떨어진 요동이나 아예 한반도에 먼저 복무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대한제국 국방부는 이들 모두에게 군 복무 중 조선어와 한글을 익히도록 강제하며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펼쳤다.

중화제국을 떠나 한국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적극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몸도 마음도 서구화되고자 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기름 부음을 받고서 기독교인이 되기도 하였고,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걸치며 시가를 피우며 서역인들의 말을 적극적으로 배웠다. 서역인들은 이러한 친 서구파 세력의 탄생을 크게 반기었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며 그들에게 자신들의 사업을 대신 관리하도록 맡기기도 하였다.

이들은 금세 큰 부자가 되었고, 자신들에게 부를 안겨다 준 서구인들과 서구 문명을 동경하고 또한 찬미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 나면 말하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글러 먹었어. 게으르고 폭력적이고 남 탓 밖에 할 줄 모르고 미신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힘도, 그럴 역량도 없어. 이런 패배자 족속들은 그냥 망해서 사라져야 해."

흔하디흔한 매국노 집단의 탄생이었다. 이들은 중국이 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고, 희망이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니 자신들의 매국 행위는 옳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차이점은 한가지뿐이었다. 그래서 중국이 망하고 나면 누가 이 땅을 차지해야 하는가였다. 여기에 영국이라 답하면 친영파 매국노였고, 프랑스라 답하면 친불파 매국노였으며 미국이라 답하면 친미파 매국노였다.

그리고 이 중에는 친한파 매국노들도 나날이 그 숫자를 불리며 늘어만 가고 있었다. 굳이 한국 정부가 이를 따로 지원할 필요도 없었다.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화교가 늘수록 한국에 대하여 무책임하고 조건 없는 동경을 드러내는 이들의 숫자도 늘어갔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거리가 가깝다 보니 나날이 변해가는 한국의 발전상을 접하기도 쉬웠고, 이주라면 몰라도 단지 상행위를 위해 들락거리는 정도라면 간편하기 그지없었다. 한국 정부가 산업화를 위하여 대중무역을 늘려 갈수록 이런 친한파 세력은 세를 불려갔다.

"한국을 보라. 철도를 놓고, 공장을 세우고, 전신을 깔면서 날로 문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마땅히 한국을 본받아 문명개화를 완수하고 불평등조약들을 청산하여 국제무대에 당당히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들 전부가 매국노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한국의 사례나 그 외 서구 열강들의 사례를 예로 들어 중화제국을 개화시키고자 하는 지식인들도 이와 같은 부류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화제국 정부로서는 함부로 이들을 단속할 수도 없었다. 이들 또한 중화제국의 주요한 지지기반이었던 탓이다. 오히려 중화제국으로서는 근대화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한국을 본받자는 주장에 더욱 힘을 부여하고 권장해야만 했다.

중화제국 내부로부터 울려 퍼지는 파열음은 중화제국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들조차 선명히 들을 수 있을 만큼 나날이 그 굉음을 키워만 가고 있었다.

***

"우선 중화제국에 의존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합니다.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그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한 저런 어수선한 정국에 있는 나라를 도대체 어떻게 의지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중화제국으로부터 연이어 울려 퍼지는 파열음은 열강들의 부추김으로 독립 정부를 수립할 준비에 한창이던 대만에 그 즉시 감지되었다. 이 무렵 대만은 임시로 열강들의 공동담당 구역이 되어 있었고, 영불미화 4개국에서 파견된 무관들과 관료들의 지도 아래 대만군을 창군하고 행정조직을 완성하는 등 근대국가로서의 구색이나마 갖추려는 노력이 한창이었다.

열강은 대만을 영구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분리할 구상을 품고 있었고, 여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언제나처럼 영국이었다. 영국은 대만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부추겼고, 자신들을 한족의 지배로부터 대만을 독립시키기 위하여 나타난 해방자로 포장하였다. 영국은 한족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한족들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대만의 지식인들은 점차 이를 받아들여 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대만 임시정부는 한자의 사용을 금지하고 라틴 알파벳을 공식 문자로 지정하였으며, 민남어를 공식 언어이자 유일 언어로 지정하고 그 외에 대륙에서 사용되는 중국어와 그 방언들 모두를 금지했다. 또한 영국의 권유로 대만 임시정부는 적극적인 통혼정책을 계획해 대만 원주민과 한족-원주민 혼혈, 순수 한족의 분류를 없애버리고 이들 전부를 하나의 대만인으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당연히 이는 무수한 반발을 일으켰으나, 열강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대만 임시 정부는 이를 강행했다. 영국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본국의 학자들을 불러모아 대만의 역사를 연구하고 대만인의 유전학적 특징을 연구하는 등 모든 면에서 대만이 중국에 속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편집증적으로 긁어모았다.

한국이 상식을 초월한 속도로 불평등조약을 청산하고 문명국으로 인정받는 것을 보면서 중국 또한 비슷한 속도로 근대화를 끝마치고서 홍콩과 대만을 다시금 요구하지는 않을까 초조감에 사로잡혀 설령 중국이 힘을 되찾은 이후에도 대만을 요구하는 일이 없도록 선을 그으려 한 것이었다.

물론 이 당시 중화제국이 내부적으로 연이어서 파열음을 내며 자멸하고 있었다는 걸 고려하면 과도한 걱정이었지만, 아무래도 구린 구석이 많았던 영국이었다. 설령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더라도 그동안 저지른 업보 중 일부라도 돌려받는다면 그것만으로 영국 식민제국의 종말이 될 수 있었다. 영국은 후한을 남겨두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희 자유 대만 공화국은…."

"실례. 아직 공화국을 말하기에는 이르지 않습니까? 무지렁이들뿐인 우리 대만 섬에서 극동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을 실험한다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됩니다만."

"그렇다면 어쩌자는 것이오? 왕국이라도 세우자는 거요? 그래, 그래서 왕이 되어보시겠다, 이건가?"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내가 언제 공화국이 위험하다고 했지 내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했던가?"

그리고 이러한 영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대만의 엘리트들은 이 무렵 하나의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바로 신생 대만의 정치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였다. 처음에는 공화국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들 대만의 엘리트들은 영국의 지원을 받았다고 하나 여전히 유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에 익숙한 이들이었다.

공화국은 너무 위험부담이 컸을뿐더러 이들이 받아들이기에도 너무나도 낯설었다. 애초에 이 무렵의 열강 중 공화국은 미국 하나뿐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그리 흔한 것도 아닌 공화국을 신생 독립국의 정치체제로 삼기에는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컸다.

그러나 그렇다고 왕국을 세우자니 문제가 되는 것은 왕으로 세울 만큼 특출난 가문도, 그런 인물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제아무리 열강들의 괴뢰국이나 다름없는 처지라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인망이 있고 세력도 있어야 왕위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그럴만한 왕재가 없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겠소? 우리 중에서 없다면 해외에서 왕을 모셔오도록 합시다. 거, 보아하니 구라파에서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라고 하더구먼."

"그거 좋은 생각이오. 그런데, 어디에서 왕을 모셔오면 좋겠소?"

난관에 봉착하자 대만의 엘리트들은 또다시 영국에게 의존하였고, 영국은 이들에게 은밀히 해외에서 왕을 모셔올 것을 권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신생 그리스 왕국이 독일계 왕가를 초청하여 왕으로 모시는 등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말이다. 여긴 유럽이 아니라 극동이라는 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영국이었다.

하지만 대만의 엘리트들은 영국의 권유를 곧이곧대로 수용했다. 애초에 영국이 부추겨서 시작된 독립운동이었고 영국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던 임시 정부였다. 대만 임시정부의 정부 수반들은 영국의 지시를 거부할 생각도 거부할 힘도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 왕을 모셔오느냐는 것이었다. 일단 중화제국이나 청은 논외였고, 영국 이외에 나라에서 왕을 모셔오기에는 영국의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영국에게 왕가를 보내 달라 부탁했더니, 여기에 대해서는 영국도 난색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지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준을 넘어서 영국계 귀족이나 왕가가 대만을 다스린다면 대만에 이권을 두고 있는 다른 열강들로부터 견제와 항의를 받을 것이 뻔하던 것이다. 영국은 대만을 사실상 소유하고 싶었지만 대만 하나 때문에 열강들과 전쟁을 치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자면 대만의 엘리트들에게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대한제국에서 요즈음 크게 세를 불리고 있지 않소? 그야말로 동방의 떠오르는 태양이라 부름 직하니, 한국과 친해지는 길이 곧 우리 대만국의 향후 백 년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 하오."

"그렇다면 대한제국에 요청하여 왕가를 모셔오도록 합시다. 대한제국이라면 영길리인들도 크게 상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만 임시정부는 대한제국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황제를 알현해 장차 대만을 통치할 왕을 내려달라 요청하였다. 이는 곧 대한의 선비들에게는 대만이 한국의 천조 질서에 속하기 위하여 찾아온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개화파 인사들에게는 대만이 먼저 보호령으로 삼아달라 요청해온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흥친왕 이희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이하응이 먼저 나서 이형에게 제안하였다. 이하응의 적장남이자 이형의 친형인 흥친왕 이희를 보내자고 말이다.

"그런 녀석이 있던가?"

이형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하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흘겨봤지만, 이형으로서는 빙의하기 이전에 대한 기억도 없고 궁궐에 들어온 이후로는 종친들과 거의 만나지도 않고 전장을 떠돌거나 기껏해야 이하응과 만나 정무를 보는 정도가 생활 전부였던지라 진심 어린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형은 흥친왕 이희를 대만의 왕으로 보내는 일 자체는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흥친왕 이희와 그의 가족들은 그를 따르는 수행원들과 함께 대만으로 떠났다.

그리하여 1870년 경오년 단옷날 흥친왕 이희가 대만 섬 타이베이에서 즉위식을 올리니, 이날이 곧 대만 왕국의 건국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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