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기 사관학교 졸업식 >
이 무렵 유럽에서 시작된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은 뜻하지 않게도 극동에서의 유혈사태를 일으키었다. 그간 영국, 프랑스, 미국 3개국이 힘을 합하여 러시아가 함부로 극동에서 경거망동할 수 없도록 견제하고 있었던 것이 프랑스의 이탈로 느슨해지면서 다시 러시아가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이제 러시아에는 본격적인 한국과의 패권경쟁을 시작하기 위하여 크게 두 가지의 패가 있었다. 하나는 중앙아시아에 반쯤 유폐되어 있던 서태후와 동치제 모자였으며, 또 하나는 외몽골과 내몽골의 대립이었다.
전자는 대한제국과의 전면전을 의미했으며, 후자는 산발적인 국경지대에서의 충돌을 의미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대한제국과의 전면전을 회피하기로 했다. 대한제국이 무서웠기보다는, 대한제국의 뒤에서 서슬 퍼렇게 칼을 갈던 대영제국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몽골 독립 만세! 조선 놈들에게 몽골 대초원을 팔아치운 매국노 놈들을 죽여라! 부당한 카간을 끌어내리고 진정한 예케 몽골 울루스를 재건하자!"
"노서아 놈들에게 영혼을 팔아치운 매국노 놈들을 죽여라! 대초원을 야소라는 요괴와 색목인 놈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만주의 칸을 위하여! 만세!"
러시아의 선택은 결국 외몽골과 내몽골의 몽골 내전이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외몽골인들의 선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삽시간에 몽골 초원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어 놨고, 대한제국의 지원을 받은 내몽골인들 또한 적극적으로 만주의 칸을 위하여 이에 맞섰다. 곧 러시아의 동시베리아 관구 소속 카자크 기병사단이 이에 합류하였고, 뒤따라서 대한제국의 만주 기병사단 또한 합류하였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비록 양측에서 동원한 병사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이에 연루된 이권도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대한제국에서 가벼이 웃어넘길 수 있는 전쟁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제위는 몽골 제국의 권위를 빌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전쟁에서 이겨야 했다. 러시아 또한 지난 전쟁에서의 굴욕을 갚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울고 싶던 참에 뺨 때려줬군."
그리고 이는 이형으로서는 반가운 일이기도 했다. 러시아가 더 이상 잠재적인 위협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협이 되어버린 것이다. 좋든 싫든 몽골 지역은 한국에 종속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내몽골이 무너질 경우 만리장성에서 러시아와 부딪혀야 할 청 또한 한국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청을 지켜오던 프랑스군이 조금씩 청에서 물러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더더욱 그러했다.
한국의 육군을 능가하는 전력을 보유한 열강 국가가 극동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러시아에 굴복할 생각이 아니라면 한국과 손을 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범아시아 조약기구를 주창하고자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적기였던 셈이다.
이형은 지난 조러 전쟁에서 자신을 호위하였던 한성근 대령, 이제는 준장을 불러와 그에게 물었다.
"우리 대한제국에서 현재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는가? 솔직하게 말해주시오."
"네. 우리 대한제국 육군은 6개 보병사단과 3개 기병사단을 완편하였으며, 이듬해면 추가로 2개 보병사단과 1개 기병사단이 추가로 전선 배치될 예정입니다. 다만 이조차 아직 만주 평원을 가득 채우기에는 무리가 많은지라…."
"아니, 괜찮소. 앞으로도 계속하여 전력증강에 힘써주시게."
'슬슬 근대병력으로 10만 명은 넘겼나. 향토 예비사단까지 포함하면 대충 20만에서 30만 명 즈음은 나오겠군. 일단 이걸로 적어도 러시아랑 어떻게 패권 다툼을 해보기 위한 시작점에는 선 격인데….'
이형은 작게 혀를 찼다. 여전히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하였다. 일단 되는대로 병사들을 징집한다고 쳐도 그 병사들에게 쥐여줄 소총과 군복, 대포의 숫자가 넉넉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갓 육군 사관학교에서 1기 졸업생들이 나오던 마당이었다. 절대적인 장교들의 숫자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대륙을 호령하는 100만 대군을 꿈꾸어도, 현실의 벽은 여전히 너무나도 높았다. 이형은 결국 현실과 어느 정도는 타협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뭐, 어쩔 도리가 있나. 한준장, 이번 기회에 베이징에 주재 무관으로 가주시오. 가서 청국에게 부탁하여 몽골에서 노서아인들과 싸우는 데에 동참할 용감무쌍한 의용병들을 모으도록 하시오. 청국 또한 몽골을 그리 순순히 포기할 수는 없을 터이니 절대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오."
"지시하신 대로 하겠나이다, 폐하. 그 노서아 색목인들과 맞서는 대업을 위한 일이라면 청국에서도 기꺼이 기쁘게 참여할 것입니다. 결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으리다."
이형의 명령에 한성근 준장은 황송하다는 듯이 제자리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이형으로서는 거북하기 그지없는 과장된 예법이었지만, 기실 한성근 준장만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대한제국군에 소속된 무관이라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던 것이다.
좋든 싫든 이형으로서는 익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의는 결코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 참, 그리고 육군 사관학교에서 슬슬 졸업반에 접어든 4학년 생도 중 자원자들을 모아 임시로 소위 계급을 부여하여 의용병들을 인솔하게 시키시오. 물론 그전에 만주어나 북경어 둘 중 하나는 교육 해야 할 테고. 몽골 내전 중 무공을 세우면 그 계급을 그대로 인정해주겠다 하면 기꺼이 나서는 혈기왕성한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당장 육군 사관학교에 건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나라에서 의용사단을 끌어모으면 대강 10만에서 20만 명은 우습게 모이겠지. 일단 적어도 밥 빌어먹을 곳이 필요하던 한족 유랑민들이나 만주계, 몽골계는 무조건 모일 테고, 아시아주의 계열 지식인들도 일부 참여할 거야. 그 녀석들을 우선 몽골로 보내어 우리 대한제국의 무관들에게 지휘를 받는 경험을 지금부터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반대로 우리 대한제국의 무관들 또한 그런 다국적 병사들을 지휘한 경험을 지금부터 쌓아둬야 할 테고. 군사전통이라는 건 결코 무시할 게 못 된다. 아직 본격적인 군사전통이 쌓이기 이전인 지금부터 이런 경험을 축적하기 시작하면 다국적 연합군을 지휘하여 작전을 수행하는데 금세 도가 틀 거야.'
그 외에도 한국군에게 자신들이 단지 한국을 방위하는 군대가 아니라 아시아 세계 전체를 지키는 군대라는 인식을 부여하는 것 또한 목적이었다. 단지 한국 혼자서만 강력할 뿐이고 외교적으로는 완전히 고립된 군사 강국을 만들 작정이라면 모를까, 이형이 그리는 것은 아시아 전역을 품 안에 끌어안을 수 있는 초대형 패권국이었다.
21세기의 미군이 자신들을 자유 세계의 보루이자 수호자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같이, 이형은 대한제국군이 자신을 아시아 세계의 보루이자 수호자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의도하고 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이형은 한국군에게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소집된 병사들을 지휘하는 경험을 축적해 늦어도 1차대 전기 이전에는 아시아권 내에서라면 어느 나라의 어떤 병사들이라도 능숙하게 지휘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반대로 여타 아시아 국가에서 또한 한국군의 지휘를 받으며 한국이 규격화한 군수 물자들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시되도록 밑밥을 깔고 있었다.
물론 이유는 간단한 것이었다.
'2차대전이라면 그나마 어떻게 희생을 줄일 방법을 찾아보겠는데 1차대전은 참호전쟁이잖아. 극동에서 대규모 전쟁이라도 터지면 가볍게 수십, 수백만 명은 죽어 나갈 텐데 그만한 인구 손실을 한국 혼자서 감당했다가는 나라가 망할 거다. 한국에서도 피를 흘리기는 해야겠지만 한국 혼자서 흘릴 피를 다른 나라들에 어느 정도는 떠넘겨야 나라가 버텨.'
간단하게 말하여 한국인이 덜 죽기 위하여 그만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병사들을 바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폭군이 아닐 수가 없었다.
"가만, 그러고 보면 지금 육군 사관학교 교장이…."
"네, 허계 대장 각하이십니다. 이번 1기 졸업생들의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시겠다고 합니다.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이형이 불현듯 떠올랐다는 듯 중얼거리자, 한성근 준장이 먼저 이형에게 허계를 만나러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하였다. 이형은 잠시 망설였다. 괜히 다시 얼굴을 보기가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러나 결국 이형은 한성근 준장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번에야말로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대한제국 육군 사관학교 1기 졸업식은 그리하여 황제가 몸소 참관하는 대대적인 행사로 비화하였다. 물론, 그것이 불필요한 일이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 무렵 한창 제국주의적 열풍이 몰아치던 유럽의 열강에서 사관학교 졸업식에 국왕이나 황제가 직접 참관하여 그들을 치하하는 일은 흔히 있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대한제국군 참모부에 속한 모든 장성이 소집되어 이에 참관하게 되었고, 이러한 행사를 두 번씩이나 치르기에는 해군의 규모가 아직 협소하고 졸업 생도도 많지 않다는 이유로 해군 사관학교 1기 졸업생들 또한 육군 사관학교 1기 졸업 생도들과 나란히 서서 사열하였다.
프랑스의 군악단을 흉내 낸 군악대가 웅장한 대한제국 국가를 연주하고, 의장대가 나서 엄격한 군기와 화려한 동작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사열을 참관하던 이형의 소감은 이러했다.
'빨리하고 끝내줘야겠구먼.'
저 화려한 사열을 위하여 얼마나 빡시게 갈굼을 당하였을 것이며 또 지금 속으로 얼마나 열심히 간부들 쌍욕을 하고 있을지 누구보다 잘 느끼고 알고 있었던 이형이었다.
"그간 강녕하셨나이까, 폐하."
허계가 찾아와 먼저 이형에게 경례를 올렸던 것은 그 무렵이었다. 한눈에 봐도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지고 지쳐 보이는 것이, 무리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형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채 하며 답하였다.
"뭐, 보시는 대로 다리 한 짝을 절게 된 정도를 제외하면 아주 멀쩡하오. 그야말로 천지신명이 도우심이니, 참으로 다행인 일이지."
"폐하…."
허계는 이제는 뭐라 지적하기도 지쳤다는 듯이 이형을 흘겨보았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그리워 보이는, 말로써 설명하기 어려운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그 눈빛은 흐렸고, 두 다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형은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허계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축하연설은 짐 혼자서 해야겠구려. 경은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시오. 짐이 마무리 지으리다."
"하오나, 폐하!"
"잠자코 듣고 계시오. 그런 몸으로 무슨 축하연설을 한단 말이오?"
그러고서는 허계가 뭐라 대답하는지 듣지도 않고서는 먼저 앞으로 나아가 단상 위에 올랐다. 마이크조차 개발되기 이전이었던 만큼, 온전히 이형 자신의 발성만으로 자리에 모인 장성들 전부와 생도들에게 목소리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이형에게 별다른 지장은 되지 못하는 문제였다. 이미 평양성과 산해관에서 목청 하나로 적병들에게조차 쩌렁쩌렁 들리도록 고함을 지른 적 있던 이형이었다. 이형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서는, 생도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음을 확인하고서 말문을 열었다.
"축하에 앞서서 짐은 그대들에게 묻고자 한다. 제국이란 어찌하여 왕국보다 위대한가? 황제는 어찌하여 왕보다 존귀한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그대들은 그것이 어째서라고 생각하는가?"
뚱딴지같은 질문이었다. 자리에 모인 생도들은 물론이고 장성들조차 이형의 난데없는 말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서 눈만 껌뻑거렸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형은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을 기대하고서 말문을 열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짐은 비록 대초원의 것이라 하나 황제가 되었다. 조선국은 대한제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가? 단지 오늘날의 대한제국이 조선보다 부강함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제국이 위대한 까닭은 그 안에 천하를 품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왕국은 제 앞가림을 한다면 그만이다. 제 앞가림을 할 만큼의 힘조차 부족한 왕국 또한 많으니 이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제국이란 곧 제 앞가림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니라. 제 앞가림조차 하지 못하는 나라들을 품고서 그들을 보호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제국에 필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그 3가지란 곧 금이며, 붓이며, 방패라 할 수 있다."
이형은 하늘 높이 세 손가락을 펴올렸다. 펴올리고서, 차례차례 하나씩 접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금은 곧 번영이니라. 이는 그대들의 소임이 아니다. 농민, 상인, 공인의 일이니라. 그러니 그대들이 관여할 이유는 없도다. 농민들이 밭을 갈아 농사를 짓고, 공인들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며, 상인들이 그들이 만든 것을 우리 모두에게 널리 퍼트리고 또한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니라.
붓은 곧 치세이니라. 이 또한 그대들의 소임이 아니다. 문인의 일이니라. 그러니 그대들이 관여할 이유는 없도다. 나랏일을 꾸리고, 향후 이 나라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끝없이 연구하며, 이 나라가 온 천하에 공경받고 부러움을 사게 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그 끝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주먹이었다. 이형은 있는 힘껏 주먹으로 단상을 내려쳤다.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만인의 시선은 황제 이형에게 집중되었다. 이형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짧게 숨을 내뱉고서는 말을 이었다.
"방패야말로 그대들의 소임이니라. 백성들이 그들의 평화로운 나날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들을 외적으로부터 지키고, 문인들이 이 나라를 온 천하에 공경을 받아 마땅할 나라로 만들 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을 보태어 주고,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가 온 천하를 품을 수 있도록 천하의 평화를 위하는 일이다.
장차 그대들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병사들을 지휘하여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에서 이국의 백성을 위하여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실에 우월감을 가지거나 저들을 못나게 여길 이유는 없도다. 저들의 나라를 대신 지켜준다고 한들 저들이 그 사실에 감사라도 할 것으로 생각하느냐? 그런 환상은 지금 이 자리에서 두고 가는 것이 좋다.
그대들은 제국의 방패로서 제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싸우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곧 짐을 위하는 길이며, 민족을 위하는 길이고, 궁극적으로는 그대들의 가족과 친우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니라."
이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서 단상 위에서 그의 연설을 들었을 생도들을 살펴보았다. 짐작했던 대로, 혼란스러운 눈초리였다. 아마도 그가 지금 이야기 한 바에 절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형은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지금 이형은 지금의 대한제국에는 아직 멀고 먼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짐이 대초원의 황제가 되어 이 나라가 제국이 된 그 날 그 순간부로, 제군들의 소임은 단지 이 나라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게 되었다. 그 사실을 잘 숙지하고서 장차 아시아의, 대한제국의 천하에 힘을 보태어 줄 수 있는 명예로운 대한제국의 군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겠다. 이상이니라."
"대한제국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누군가의 선창을 시작으로, 곧 사방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형은 박수도 받지 않고서 그대로 뒤돌아서서 단상에서 내려왔다. 단상에서 내려오니, 허계가 울고 있었다. 이형은 한걸음에 허계에게 달려가 물었다.
"아니, 어찌 우는가?"
"이제 더 여한이 없어 그러합니다."
펑펑 울면서, 허계는 답하였다. 그 모습에는 차마 이형도 뭐라 더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서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날, 허계는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육군 사관학교 교장직에서 사임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허계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던 기차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치 잠자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형은 이에 허계의 고향 집에 하얀 국화 한 다발과 베이징에서 가져온 고량주 1병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