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09화 (109/530)

< 어색한 재회 >

그러나 이형에게 허계가 세상을 떠나고서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은 없었다.

"허…."

"…험."

대만에서 낯익은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낯익기보다는 멋쩍기까지 한 손님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시선을 돌렸다. 적어도 10년 후에나 보게 될 줄 알았던 얼굴을 벌써 마주 보고 있자니 영 기분이 편치를 않았다.

그렇다. 대만에서 대만국 총리대신 이하응이 방한하였다.

"또 영길리 놈들이 뭔가 일을 꾸민 모양이구먼."

이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에 이하응은 답하지 않고서 헛기침만 하였을 뿐이었다. 그 짐작이 맞다는 것이었다. 살짝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틀고 있는 것이, 이하응 또한 낯부끄러운 줄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심만만하게 대만까지 건너간 뒤 사실상 영국의 수족 노릇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로 두 손 두 발이 묶여있었으니 말이다.

이형으로서는 눈 감고도 훤히 그 과정이 보이는 듯했다. 설마하니, 벌써 이하응이 한국에 스리슬쩍 돌아오려 할 줄은 몰랐던 것뿐. 조정의 관료들도 이하응이 설마하니 벌써 얼굴을 비출 줄은 몰랐던 듯 얼떨떨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잠깐 장소를 옮깁시다."

이형은 손을 휘휘 저어 관료들을 물러나게 한 다음, 이하응을 처소로 불렀다. 이번만큼은 역관도 필요 없었다. 멋대로 난입한 황후와 황후를 따라서 찻상을 차려온 궁인들 정도만이 함께 대동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조정의 관료들이 물러남과 함께, 이하응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소리쳤다.

"도대체 뭡니까, 그 금수만도 못한 놈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를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를 않는 금수 같은 놈들이 어찌!"

"그런 금수 같은 놈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니 작금의 천하가 난세인 것이 아니겠소. 자자, 진정하시고 일단 함께 차나 한잔합시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아니, 백성들이 소란을 떤다고 밭을 불태우고 쌀값을 올려 마을 하나를 의도적으로 굶겨 죽이지를 않나. 상놈들을 시켜 쌀값으로 강남땅에서 장난질을 쳐 때아닌 풍년에 기근을 일으키고, 한문을 썼다고 대여섯도 안된 어린아이를 길거리에서 채찍으로 매치고! 그놈들이 사람입니까, 그게!"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이하응은 바득바득 이를 갈면서 열변을 토해냈다. 이형으로서는 아, 역시나.하고서 고개를 끄덕거릴 소행이었다. 이하응이 말하는 것만으로 대강 무슨 일인지 짐작 가능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대영제국은 극동에서도 순항 중이었다.

'보아하니 대만에서 인구 증산하려고 쌀값 후려쳐서 강남땅을 지옥도로 만들었나 보고만. 대만에 사람이 늘어야 어떻게든 영구적으로 대만 섬과 중원이 분단될 각이 보일 테니까. 갓난애를 채찍으로 후려쳤다는 것 정도야 본국에서도 하고 있을 일이고. 마을 하나를 굶겨 죽였다는 건 다른 열강들 눈치 보느라 병사들 직접 파견해서 학살 못 하니까 귀찮은 수고를 들여서 간접적으로 죽인 거군.

보나 마나 전부 영국이 직접 움직이기보다 대만인들을 시켜서 일을 벌였을 텐데, 이걸로 대만과 강남은 영영 원수지간이 되겠구먼. 정말이지 이간질하는 것 하나로는 도가 튼 녀석들이야.'

"자자, 이것 좀 드셔보시어요. 이번에 공장에서 만든 다과랍니다. 직접 손으로 만든 것이라지요."

"끄으응…."

이형이 대강 이하응의 말을 듣고서 사태를 파악하는 동안, 황후는 궁인들을 시켜 이하응에게 유과와 강정이 중심이 된 다과 한 상을 대접하였다. 이하응은 눈을 지그시 감고서 찻상을 음미하기 시작하였고, 당이 들어가면서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린 듯 편안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중한 어조로, 이하응은 이형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든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듯한 시선이었다.

"뭘 어떻게 하긴. 이게 무슨 일인지를 알아야 대책을 내놓지 않겠소? 그래, 오늘은 도대체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거요?"

이형은 그에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이하응이라고 아니겠냐마는, 이형으로서는 간만에 만나는 이하응이 썩 반갑지를 않았다.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바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인제야 겨우 이하응이 물러나면서 온전한 이형의 천하가 열리게 되었는데, 또 이렇게 금방 얼굴을 비추고 있으니 이형으로서는 성가셨다.

그런 이형의 심기를 눈치챈 듯, 이하응은 잠시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틀었다. 그러고서는 다시 이형을 똑바로 바라보며,

"영길리에서 대만 또한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가입해두라고 하더이다."

라고 말하였다.

"…못 들은 거로 할 테니 오늘은 그냥 이만 물러나 주시면 안 되겠소?"

"어허, 이거 왜 이러십니까? 사람 낯간지럽게. 부자간의 정을 봐서라도 오늘만큼은 조금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요."

곧장 저자세를 보이는 이하응의 모습에, 이형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성가셨다. 하필이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굳이 빼두었던 대만을 영국이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끼워 넣겠다 나선 것이 성가셨고, 그걸 부탁할 역할을 하필이면 이하응에게 맡긴 것이 특히나 성가셨다.

보나 마나 이하응이 직접 찾아가는 이상 이형 또한 그리 단호하게 거절할 수는 없으리라는 걸 사전에 파악한 것이 분명했다. 이형으로서는 열이 뻗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무대 밑에서 얼쩡거리느라 영국에게 별다른 흥미를 끌지 못하였지만 이제 그레이트 게임의 번외 무대에 올라왔더니 영국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간섭이 날로 늘어가고 있었다.

'우라질 것들 같으니라고. 대만과 유구는 빼뒀고 또 노서아 견제는 알아서 잘하겠다는데도 코치 간섭하려 드는구먼. 바로 코앞에 프로이센에도 이렇게는 안 했으면서 이것들이…!'

이형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에 사냥개를 자청했으니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보어전쟁과 건함경쟁 등으로 세력이 한풀 꺾인 다음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대영제국은 21세기의 미국과 비교하여도 크게 부족하지 않은 부동의 열강국 제 1위였다. 조금 사냥개에게 간섭하려 든다고 군말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깊이 한숨을 내쉬고서, 이형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서는 이하응을 뚱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래, 그건 알겠소. 그 치들이 그렇게 나선다면 반대하기도 마땅치 않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그건 영길리가 경에게 부탁한 일이잖소. 그래서 경이 짐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무엇이냐는 이야기요."

팔을 한 짝 괴고서, 이형은 말없이 탁자를 검지로 두드렸다. 어서 빨리 말을 해보라고 독촉하는 모양새였다. 이하응은 잠시 울컥했지만, 헛기침하여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답했다.

"이번 기회에 영길리인들을 대만에서 몰아내려 합니다만."

"한 20년만 더 기다리면 되겠구려."

"…그 전에 이 늙은이가 늙어 죽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형의 무신경한 대답에, 이하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에 이형은 눈살을 찌푸리며 답하였다.

"그럼 뭐 어찌하라는 거요? 작금은 영길리의 천하라고 하였잖소. 오히려 20년 뒤에라도 어떻게든 저 영길리인들을 몰아낼 계획이라도 선 것을 칭찬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란 말이오. 아직 이 나라의 힘이 보잘것없기만 한데, 도대체 어찌-."

순간, 이형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기묘한 발상이 머리를 스쳤다.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고 있는 이형만이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었다. 이형은 입꼬리를 기묘하게 뒤틀었다.

"…흠, 생각해보니 아주 완벽히 몰아내는 건 무리더라도 어느 정도 밀어내는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려."

"그게 정말입니까?"

이하응은 기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하였다. 이형 스스로 지금은 영국의 천하라고 하였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영국을 대만에서 조금이나마 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던 것이다.

이형은 굳이 설명하지 않고서 히죽히죽 웃더니 말했다.

"그럼 일단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창설부터 서둘러야겠구려. 바로바로 시작해봅시다. 영길리에서 이런 식으로 간섭을 해왔다는 건 적어도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창립 자체는 용납하였다는 이야기니까 더는 망설일 것도 없겠지. 이번 추석에 한성에서 모두 모이도록 하겠소. 영길리에서 먼저 끼워 넣으라 하였으니 대만 또한 합류한다고 하여도 문제없겠지.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

이하응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여차하면 이형이 세운 계책이라는 것을 훔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형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이하응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있는 대로 금은보화를 모아두도록 하시오. 아예 백성들을 시켜서 금 모으기 운동 같은 걸 하는 것도 좋소.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재화를 끌어모아 두시오. 짐 또한 일단 모을 수 있는 대로 많은 재화를 모을 생각이니까."

"아니 폐하, 도대체 그 금은보화는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불란서의 국채를 사려고 하오."

이형의 말에, 이하응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프로이센과 전쟁이 한창이던 프랑스였다. 그만큼 많은 국채가 발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작 해봤자 한국과 대만이 달려든다고 해봐야 얼마나 많은 국채를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을뿐더러 또 그것을 산다고 하여도 무엇이 그렇게 달라질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형 또한 이하응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 국채를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매입해야 할지, 또 그 국채를 어떻게 사용할 작정인지도 말이다.

다만, 한 가지만은 덧붙였다.

"작금의 천하에서, 빼앗긴 국권은 돈으로 사들이면 그만인 것이외다."

전근대적 세계관에서 탈피하지 못한 이하응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라 하나를 사들이는데 필요한 것은 그저 조금 더 많은 돈에 불과했다.

***

잠시 시간을 앞으로 돌려서.

개국 초기, 프랑스에 있어서 조선은 기특한 비문명국가에 불과했다. 굳이 프랑스가 먼저 무기를 들고서 찾아가기에 앞서 알아서 자신들이 요구로 한 바를 그대로 따라주는 기특한 나라였다. 그러니 나폴레옹 3세는 조선을 개국시킨 모든 성과를 벨로네 공사에게 돌렸다.

"과연 짐은 복이 많은 황제임이 틀림없구나. 프랑스를 위하고자 하는 애국심으로 불타오르는 유능한 인재들이 이토록 많으니 실로 제국의 앞날은 밝도다!"

따라서, 나폴레옹 3세는 그저 벨로네 공사를 칭찬하였을 뿐 조선에 대하여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아직 프랑스에 조선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조청전쟁이 조선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러시아의 야욕이 본격화되면서 극동에서 프랑스와 러시아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자 그제야 프랑스에 조선은 자신들의 우호국으로서 인식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조선은 엄밀하게 말하여서는 프랑스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라에 불과했다.

극동 총독을 먼저 파견하기로 하였던 것은 나폴레옹 3세였었고, 이에 자극받아 인도 부왕을 파견했던 것은 영국이었다. 이때 나폴레옹 3세는 말하였다.

"러시아인들은 크림에서의 패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듯하구나.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도다. 어찌 러시아인들은 이토록 같은 실수를 반복한단 말인가? 짐은 위대한 프랑스가 러시아인들의 야욕에 맞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하는 바이니라."

조선이 베이징을 함락시키고, 청이 사실상 붕괴하여 사실상 황하 이북의 영토 일부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조선이 이런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청을 프랑스에 거저 넘겼을 무렵 프랑스 제국은 조선의 충성심에 감격하였다. 프랑스는 따로 조선에 이를 요구한 바가 없음에도 알아서 프랑스에 식민이권을 양도한 조선인들에게 크나큰 호의를 품었다.

물론 이것은 대등한 국가 간의 호의라기보다는 자신들의 하급자가 따로 명령하지 않고서도 자신들이 원하고 있던 바를 대신 이루어졌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에 가까웠다. 이 무렵 비로소 프랑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조선만큼은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확고히 했다. 극동의 식민관료들이 설령 인도차이나를 일시적으로 상실한다고 해도 조선과의 우호 관계만 유지한다면 머지않아 되찾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였을 정도였다.

이를 두고서 나폴레옹 3세는 이렇게 말하였다.

"실로 조선의 세가 날로 성장하여 가는 것이 마치 옛 혁명전쟁 시절 짐의 숙부께서 프랑스의 국운을 떨치시던 것을 연상케 하는구나. 참으로 조선인들은 복되었도다. 저토록 현명하고 용맹한 소년왕이 애국심과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조선인들을 이끌고 있으니 어찌 작금의 조선이 옛 혁명전쟁 시절의 프랑스와 다르다 할 수 있겠는가? 실로 조선은 제국의 참된 학생이니라. "

조선의 왕과 조선인들을 칭송하는 한편으로 조선이 프랑스 제국의 학생이라 강조하여 조선은 확고하게 프랑스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노라고 말하였다. 프랑스인들은 이에 크게 공감하여 조선과 소년 왕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인 양 기뻐하였고, 여타 유럽국가들 또한 프랑스인들의 뜻하지 않은 행운에 질투하였을지언정 조선이 프랑스의 보호 아래에 놓여있음에 대하여는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이 러시아와 싸워 이기고,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거듭나 황제국으로 재탄생한 다음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조선이 러시아와 싸워 완승을 한 것은 당시 프랑스인들에게 통쾌함과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혁명전쟁부터 시작하여 크림 전쟁기 동안 단 한 차례도 프랑스가 속 시원하게 이긴 전적이 없던 강적 러시아였다.

그런 러시아와 싸워 이긴 소년왕에게 프랑스의 황색언론들이 멋대로 나폴레옹 대제의 추종자라는 이야기를 덧씌우면서 프랑스인들은 더더욱 소년왕을 나폴레옹 대제에 겹쳐보았고, 여기에 소년왕이 마침내 러시아를 꺾고서 제위에 오르자 소년왕을 두고서 극동의 나폴레옹이오, 오스트리아를 꺾고서 대관식을 올렸던 나폴레옹 대제의 재림이라 칭송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큰 부담을 느꼈던 것은 다름 아닌 나폴레옹 3세였다. 삼촌 나폴레옹 대제의 영광을 빌려 집권한 것과는 달리, 기실 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 대제처럼 용감무쌍한 군인도 아니었고 뛰어난 전략가도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위정자일 뿐이었고, 그의 재능은 선동과 정치에 있었지 군략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황제에게서 그의 삼촌과 같은 위대한 장군으로서의 모습을 기대했다. 그것이 그들이 기억하는 위대한 황제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기억은 극동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는 소년 왕의 등장으로 더더욱 강렬해지고만 있었다.

때마침 프로이센인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자,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황제에게 기대 어린 시선을 보냈다. 과연 어떤 천재적인 전략을 보여줄까. 어떤 용맹한 모습을 보여줄까. 또 어떤 위대한 승리를 거두어줄까. 그와 같은 기대는 어디까지나 위정자에 지나지 않았던 나폴레옹 3세의 어깨를 무겁게만 했을 뿐이었다.

"짐은 숙부와 다르다. 더더욱이 짐은 그 괴팍한 소년왕 또한 아니란 말이다!"

나폴레옹 3세가 이처럼 항변하여도 소용없었다. 이미 프랑스인들의 기대는 나폴레옹 3세가 어떻게 깨트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나폴레옹 3세는 몸소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섰고, 프로이센과 싸워 거듭 패배한 끝에 스당에서 포위되었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기대하던 위대한 황제의 모습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장군들은 굳이 황제를 향한 실망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그런데도 몇몇 병사들은 황제가 무언가 천재적인 계책을 생각해내 난관을 돌파하여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 악화할 뿐이었고, 최후의 순간 나폴레옹 3세는 모든 걸 포기하고 발악하기로 했다.

"끼-야하핫! 휘리릭, 휘릭, 휘릭! 끼-요호홋!"

"""끼리릭, 끼릭, 끼요호홋-!"""

프랑스 흉갑기병대는, 그들의 황제와 함께 샴페인과 모르핀에 취한 채로 프로이센군의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장렬하고 결사적인 돌격에 나섰다.

그렇게 프랑스의 황제는 고간과 왼쪽 넓적다리, 오른쪽 어깨에 총탄을 얻어맞고 과다출혈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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