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10화 (110/530)

< 엎친 데 덮친 격 >

황제가 몸소 이끌던 흉갑기병대의 결사적인 돌격은 당시 스당 요새를 포위하고 있던 프로이센군에게도 더 없이 위협적이었다. 모르핀과 샴페인에 흠뻑 취한 이들 흉갑기병대는 돌격 중 황제가 프로이센군의 총탄에 맞아 낙마하고서도 최후의 항전을 펼친 끝에 고간에 총탄을 맞아 절명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서 돌격을 계속하였고, 고통도 죽음의 공포도 모르는 흉갑기병대의 돌격은 프로이센군을 크게 위축시켰다.

뒤늦게 이들 중 프랑스의 황제가 섞여 있다는 첩보를 접하고 난 이후에 프로이센의 참모본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금까지 죽였거나 앞으로 사살해야 할 흉갑기병 중에서 프랑스의 황제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조기에 프랑스의 황제를 포로로 잡고서 전쟁을 마무리 지으려 했던 프로이센군의 애초 구상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사태였다.

"사격중지! 중지하라! 명령이다! 당장 사격 중지해!"

"하, 하지만 이대로는 우군 포위망이 붕괴합니다! 사격재개를 허가해주시던가, 아니면 후퇴를 인가해주십시오!"

"…제기랄! 어쩔 수 없다! 쏴라! 저 미치광이 약쟁이 놈들을 모조리 쏴 죽여버려!"

그러나 프로이센군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술과 마약에 취하여 결사적으로 돌격해오는 프랑스 기병대의 공격에 포위망이 흔들리던 것이다. 이들을 최대한 상처 없이 포로로 잡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총에 맞아도 칼에 맞아도 고통조차 느끼지 않고서 미쳐 날뛰는 흉기를 든 마적단을 무슨 수로 상처 없이 포획한단 말인가?

프로이센군의 열렬한 반격으로 스당 요새 포위망을 돌파하려던 프랑스 기병대 최후의 돌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프로이센군의 악몽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프랑스 기병대 최후의 돌격을 체념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프랑스 보병대가, 뒤늦게서야 저 중에 자신들의 황제가 함께하고 있었다는 걸 듣게 된 것이다.

"황제 폐하의 복수를 하자! 프로이센 놈들을 죽여라! 자랑스러운 프랑스의 건아들아, 깨어나라! 황제 폐하께서 몸소 우리들을 구하려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지시고 있는데, 겁쟁이처럼 요새에나 틀어박혀 있을 테냐!"

"프랑스 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전군 착검! 가자, 프랑스의 용사들아! 앉아서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택하자! 전군 돌격! 위대한 프랑스의 황제를 위하여!"

항복 명령만 떨어지기를 잠자코 앉아서 기다리던 병사들의 사기가 급변하던 순간이었다. 스당 요새에 갇힌 프랑스 중앙군은 누가 따로 명령할 것도 없이 그들의 총신에 총검을 끼워넣었다. 프랑스군은 한순간에 황제의 복수라는 대의 아래 눈이 돌아갔고, 이를 진정시켜야 할 부사관들이나 장교들은 병사들의 동요를 말리기는커녕 앞장서서 총검을 꺼내 들었다.

장군들은 누구라고 따로 지명할 것도 없이 한목소리로 총검 돌격을 외쳤다. 곧 돌격 신호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고, 13만의 프랑스군은 20만의 프로이센군을 상대로 결사적인 총검 돌격을 실시했다. 이를 막아야 할 프로이센 참모본부는 공황에 빠져있었다. 그들 또한 그제야 자신들이 프랑스의 황제를 확실하게 사살하였음을 깨달았다.

"동요하지 마라! 화력은 우군이 압도하고 있고, 병사들의 숫자도 여전히 우군의 우세다! 고작 해봤자 난쟁이 한 사람이 죽었을 뿐인 일이다. 무엇을 그리 소란을 떨고 있는가!"

가까스로 프로이센군이 동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을 지휘하던 헬무트 폰 몰트케의 일갈 덕분이었다. 물론 몰트케라고 해서 상황이 최악의 가정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지만, 황제가 죽었다는 동요에 프로이센 참모부까지 뒤흔들린다면 병력과 화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군이 참패하는 참상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이에 따라 나폴레옹 3세의 죽음을 '난쟁이 한 사람의 죽음'이라 격하하며 어떻게든 참모들의 동요를 가라앉혔다.

이러한 몰트케의 지도력으로, 프로이센군은 프랑스군의 돌격에 맞서 조직적인 대응을 보일 수 있었다. 당시 프랑스군은 계획적인 돌격조차 아니라 각각 전혀 다른 방향을 목표로 질주하고 있었고, 적절한 화력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이센군의 본격적인 대응이 시작되자, 프랑스군 장병들은 삽시간에 무수하게 죽어 나가게 되었다.

프랑스군은 죽음을 각오하고서 프로이센군만이라도 함께 저승길 동무로 삼으려 들었고, 프로이센군은 애초의 전략목표였던 황제의 포로화가 물 건너간 이상 적어도 프랑스군의 핵심주력이라 할 수 있던 이들 13만 명이라도 확실하게 섬멸한다는 각오로 맞섰다.

혈전 끝에 승리를 거둔 것은 프로이센군이었다. 스당 요새의 프랑스군은 사실상 전멸하고 1만여명 정도만이 살아남아 포로화 되었고, 이들을 섬멸하는 데 성공한 프로이센군 또한 진공을 멈추면서 사실상의 공세 종말점에 도달하였다.

적어도 반수 이상의 병사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 것이다. 프로이센군은 진공을 멈추고서 대대적인 재편에 들어갔고, 참모총장 몰트케는 빌헬름 1세에게 '조속히 프랑스를 외교 협상장에 끌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건 즉 프로이센이 프랑스에게 군사적 승리를 거두는 경우의 수는 현실적으로 물건너 갔음을 공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게 다 그 괴팍한 극동의 난쟁이 황제 때문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조금이라도 프랑스인들이 이성적이기를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뿐이다."

이 소식을 들은 프로이센과 북독일연방의 수상 비스마르크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고 할 정도로, 이 당시 프로이센이 받았던 정신적 충격은 굉장한 것이었다. 비스마르크는 그의 조국이 아직 프랑스에 비하여 왜소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인구도, 경제규모도 뒤쳐지고 해군력조차 전무 하다시피한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것은 육군 뿐이었다. 그러나 그 육군 전력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는 적어도 프로이센보다 한체급 이상 거대한 나라였고, 황제를 잃은 프랑스인들은 분노로 눈이 돌아가 결사항전을 외칠터였다.

벌집을 쑤셔놓은 격이 된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그 즉시 프랑스 정부와 접촉하기 위한 모든 외교망을 총동원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것은 프랑스가 현재 무정부 상태임을 의미하거나, 아니면 프로이센과의 어떠한 외교적 협상도 거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위대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 폐하 만세! 프랑스 제국 만세! 파리의 애국시민들이여, 일어나라! 우리 모두 황제의 복수를 하고서 저 침략자 독일 놈들을 신성한 프랑스의 강토에서 몰아내자!"

"나를 어서 전장에 보내주시오! 비록 내 노쇠하였으나, 젊은 시절 크림 땅에서 황제 폐하를 섬기며 용맹히 싸웠던 근위대원이었소. 황제 폐하께서 몸소 조국 프랑스를 위하여 싸우다 전사하셨는데, 어찌 황제를 섬겨야 할 근위대가 침대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단 말인가! 어서 나를 전장으로 보내주시게!"

한편 프랑스는 전에 없던 거국적인 복수의 열기에 휩싸였다. 체제전복과 공산혁명을 외치던 코뮌 세력부터 부르봉 왕정복고를 외치던 왕당파, 프랑스 공화국 재건을 외치던 공화주의자까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황제 만세를 외치며 프랑스는 근 30년 만에 처음으로 완벽한 국론일치를 달성했다.

"우리 프랑스 제국은 결코 프로이센인들의 압제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짐은 영광스러운 우리 프랑스의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신 아버지의 뜻을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이 자리에서 맹세하노라!

프랑스는 승리할 것이며, 프로이센이라는 그 저주스러운 이름을 이 유럽 땅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그날까지 결코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폴레옹 4세 만세! 황제 만세! 프랑스 만세! 복수 만만세!"""

프로이센군이 스당에서 태세를 추스르는 동안, 벨기에로 피난을 가 있던 이제 갓 만으로 14살에 지나지 않던 황태자 루이 외젠 보나파르트가 파리로 돌아와 나폴레옹 4세로서 제위에 올랐다.

대관식 당일, 어린 황제는 섭정의회의 앞에서 결사항전과 부왕을 위한 복수를 선언하였다. 섭정의회는 황제의 뜻에 열렬히 공감하였고, 한때 체제전복을 외치던 사회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 부르봉 왕당파 세력조차 입을 모아 프랑스 제국의 국가를 제창하며 결사항전의 의사를 굳건히 하였다.

섭정의회는 만장일치로 '프로이센군이 프랑스의 신성한 영토에 완전히 퇴거할 때까지 결사 항전'을 선언하였으며, 군복무기간을 5년으로 연장하고 사실상 적정 연령대의 모든 청년들을 징집하는 강도 높은 징병제의 실시를 예고하였다. 프랑스 전역에서 봉기한 의용군이 파리를 목표로 북상하기 시작했고, 프로이센군의 점령지역에서도 의용군이 들고일어나 결사적인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프로이센군의 장기라고 할 수 있었던 철도망을 통한 기동전은 프랑스 영내에 진입한 프로이센군에게는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프로이센과 달리 프랑스는 철도망이 그렇게 빼곡하게 들어서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나마의 철도망조차 열차를 운용하던 기관사들과 역무원들이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파괴하고 프로이센군에 협력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이 이상 전쟁을 끄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만 철퇴하는 것을 허용하여 주시던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프랑스인들과 협상하여 전쟁을 마무리지어 주십시오!"

결과적으로 2주 간의 재정비 끝에 스당에서 프로이센군이 피해를 추스르고 다시금 진공하게 되었을 무렵, 프로이센군은 알자스-로렌의 독일계 주민들을 포함한 모든 프랑스 시민들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이거나 무기를 겨누고 항전하는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현실적으로 더 이상 프랑스 영내에서 전투를 치루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참모총장 몰트케는 빌헬름 1세에게 후퇴를 요청하였다. 나폴레옹 4세가 즉위하고 섭정의회가 세워지면서 군통수권을 회복한 프랑스군이 차츰 프로이센군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후방으로 물러나고 있던 것이다.

그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프랑스군이 프로이센군을 영내에서 격퇴하기 위한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르세유의 프랑스 남부군이 파리로 향하여 북상한다면, 기껏 프랑스 주력군을 스당에서 전멸시켰던 것이 헛수고로 돌아갈 공산이 컸다.

"철퇴는 결코 안됩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적어도 우리군이 우세한 상황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독일의 제후국들 또한 우리 프로이센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껏 내쫓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서 다시금 독일의 제후국들에게 지도력을 발휘하려 할 것이고, 그럼 독일 통일은 적어도 앞으로 반백년은 더 기다려야할 것입니다!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폐하!"

하지만 그것은 북독일연방의 수상 비스마르크에 의하여 거부 되었다. 만일 작금의 정세에서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상대로 확실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는데에 실패한다면,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서도 자비를 베풀었던 것이 최악의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도 몰랐다.

이 기회에 오스트리아가 재차 영향력을 확대해 프로이센의 북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남독일로 영구분단 상태가 적어도 반백년간 지속되거나, 최악 프로이센이 일개 제후국으로 전락하고 오스트리아의 주도로 신성로마제국이 재건되는 형태의 결말도 가능했다. 그럼 프로이센은 무수한 피를 흘리고서도 그 과실은 오스트리아에게 헌납하는 꼴이 되는 셈이었다.

아니, 그뿐일까. 그보다 더 최악은 오스트리아조차 프로이센에게 패배하고 이탈리아 통일을 용납하면서 국력이 쇠한 탓에 독일 일대를 수습하는데에 실패하는 경우의 수였다. 그 경우의 결말은 리슐리외 체제의 부활이었다.

즉, 프로이센이고 바이에른이고 작센이고 모든 독일 통일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독일계 왕국들이 멸망당하고 독일이 다시금 수백여개의 크고 작은 소국들의 집합체로 전락하여 프랑스가 영원한 유럽의 폭군으로서 군림하는 결말이었다.

"파리를 점령하라! 어떻게든 의용군이 파리로 집결하기 전에 파리를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승전은 물 건너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리를 함락시켜라!"

결국 빌헬름 1세의 결단은 파리를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가능성은 극히 작았지만, 파리를 점령하여 프랑스의 황제와 섭정의회의 의원들을 체포하고 그들을 협상카드로 삼아 프랑스의 항복을 이끌어내는 것만이 그 당시 프로이센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승산이었다.

이는 곧 참모총장 몰트케의 판단보다 수상 비스마르크의 판단을 보다 신용하였다는 뜻이었고, 그동안은 그것이 옳았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본질적으로 문관이었고, 그의 군복무 경험은 예비역 소위로 평시에 후방에서 1년간 복무한 것이 고작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전황이 프로이센에게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알았어도, 어디까지 더 악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보잘 것 없는 난쟁이의 죽음이 우리를 죽음의 길로 이끌고 있구나!"

참모총장 몰트케는 그렇게 한탄하며 병사들에게 파리진공을 명하였다. 이미 2주 간의 시간을 허비한 프로이센군 참모본부는 고작 1주간의 준비기간을 가지고서 마르세유의 프랑스 남부군이 파리에 도착하기 이전, 파리까지 2주안에 쾌속 진격하여 1주 안에 파리의 시민들에게 항복을 받아내야한다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요구 받았다.

도합 4주 안에 철도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서 도보와 마차를 이용해 파리까지 진격해 포위하고 또한 함락시켜야하는 셈이었다. 프로이센 참모부의 참모들은 자조적으로 이를 두고 '작전명:파리행 편도 열차표'라고 불렀다.

만일 성공한다고 하여도 요새 도시 파리를 끼고서 결사항전하는 파리의 시민들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절대 다수의 병사들은 전사하거나 불구가 될 것이며, 실패한다면 프로이센군은 모든 주력병력을 상실하게 될테니까.

"부탁드리겠소, 소장. 이제 파리의 운명은 그대의 손에 달린 셈이 되었소. 영광스러운 프랑스 대 육군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분투를 기대하리다."

"결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폐하. 심려하지 마십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프로이센인들이 파리를 손에 넣지 못하도록 막아 내겠습니다!"

루이 베르그송 대령, 아니 소장이 파리에 도착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섭정의회는 그가 관영언론의 보도대로 조러전쟁의 승전을 이끈 전쟁영웅이라고 여겼고, 프랑스군 장성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주력군 13만 명이 스당요새에서 허무하게 전멸을 당하는 등 전황이 영 좋지 않게 풀려가자 지휘봉을 잡기를 꺼리고 있던 참이라 다대한 민간인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파리 공방전의 책임을 떠넘길 작정으로 루이 소장을 파리 방어 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루이 소장은 이를 받아들였고, 곧 현실이라는 높다란 벽을 마주해야만 했다. 비록 의용군들이 파리에 모여들고 있었으며 파리 시민들 또한 적극적으로 파리 방위에 협조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막상 프로이센군에 맞설 정규군 병력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프랑스의 주력군이라고 할만한 전력 대부분이 나폴레옹 3세를 따라 진격하였다 패퇴한 끝에 스당 요새에서 전멸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정규군 병력도 프로이센군을 프랑스 영내에서 격퇴하기 위한 반격 작전에 동원해야한다는 이유로 장성들이 병력 차출을 거부하였다. 물론 실상은 이제 막 한국에서 돌아온 루이에 대한 거부감과 요새 도시 파리의 방어력을 과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뒤늦게 루이 소장이 현실을 깨닫고서 후회해도 늦었다. 프로이센군은 이미 파리를 향하여 진군해오고 있었고, 마르세유에서 북상하고 있는 남부군이 파리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파리를 수호할 의용병들은 숫자만 많을 뿐 대부분은 크림전쟁에 참전하였던 참전 용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예비전력일 뿐이었다. 위기의 순간 루이 소장은 필사적으로 5년여간 한국에서 보고 배웠던 것들을 떠올렸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긴말하지 않겠다. 삽과 망치를 들고 벽돌과 시멘트 포대를 있는대로 징발해와라. 지금부터 참호 공사에 들어간다."

루이의 별명이 진흙탕이 되던 순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