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13화 (113/530)

< 코리안 드림 >

"『삼가 아뢰옵니다. 예로부터 연호란 일세일원제라 하여 천자 한분 당 하나의 연호만을 정하도록 하여 시일을 알도록 하였으며, 연호를 정함은 건원이라고 하여 황제국으로서 권위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하온데 폐하께서는 하늘에 제사를 올리었으며 황제의 지위에 올랐으니 연호란 곧 대한이 천하의 올바른 주인임을 보이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서기란 곧 구라파의 야소라는 자를 기준으로 하는 기년법이라 들었습니다. 이 대한이 야소의 나라가 아니라면 어찌 야소의 기년법을 따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여…(하략)』"

"역시나 말 잘하네. 그리고 생각보다 서역에 대하여 아는 것도 많아 보이고. 그런데 신문은 내가 혼자서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유림이나 백성들이 널리 읽으라고 있는 것인데, 이래서야 그냥 공개적인 상소구먼."

이형은 역사적인 대한일보 창간호를 빼곡히 채운 기사를 빙자한 상소들을 읽으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최익현이 자신을 중임해주었다고 이를 은혜로 여겨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는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그런 걱정은 없었다. 이 글을 불특정 다수가 읽게 된다는 것을 알고서도 꺼릴 것 없이 위험수위에 근접하는 비판을 쏟아내는 최익현의 담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는 없었다.

이형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경죄로 잡아넣고도 남는 언사들이 창간호 모든 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이다. 그나마 궁내부에서 조보를 작성하던 문관들이 함께 참여한 덕분에 정보를 전달하는 신문 그 자체의 기능도 없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말 많은 언관들 답게 정상적으로 정보전달에 힘쓰는 기사에도 자신들의 사설을 꾸준히 삽입해두고 있었다.

그야말로 창간호 모든 면이 그동안 이형이 해왔던 일을 성토하는 성토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림도 심심할텐데 이 정도 소일거리는 있어야 스트레스 해소라도 하지."

그러나 이형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애초에 그의 권력 기반은 군부였지 문관들이 아니었다. 만약 군부의 충성심이 모종의 이유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모를까, 문관들이 과격한 개혁에 불평하며 뭐라 떠들건 이형의 권력에는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그간 축적되었던 불만을 해소할 창구를 제공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물며 대한일보는 내탕금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관영언론이었다. 이래저래 불평하는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해도, 역모를 꾸민다던가 본격적인 폭동을 선동하는 형태의 저항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형으로서는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시끄럽게 멍멍 짖고 있으니 개껌이라도 하나 물려준 격이었다.

물론 그것 말고도 슬슬 내부적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권위적이고 경직된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자유로운 목소리가 나오기도 어려울뿐더러 출세욕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인맥을 이용해서건 자본을 이용해서건 권위에 빌붙은 이들이 사회 요직을 독차지하고 권위와 폭력을 앞세워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드는데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건 개개인의 출세욕과 재물욕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기에 결코 적합한 사회적 분위기라고 할 수 없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야 용을 보고서 자기도 용이 되려 아등바등 치지. 그런 의미에서….'

이형은 잠시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앞서 양반층의 특권을 한 번 더 정리해 둘 필요성을 느꼈다. 인맥, 재산, 지연, 학연만으로도 출셋길이 막히고 열리고가 일상다반사인데 거기에 혈통까지 끼어들면 그동안 출세한 이들만 계속 출세하는 사회구조가 만들어지지 밑바닥에서 사회 꼭대기 층까지 올라오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나오기는 어려웠다.

세도 가문들을 대거 정리하여 일시적으로 특권계층의 최정상에 공백이 생긴 지금 시점에서 한 번쯤 잔가지를 쳐두지 않으면, 또 금새 새로운 특권층이 올라올 것이 뻔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가장 문제가 된 것도 결국 계속 특정 가문과 특정 지역에 모든 요직이 몰렸다는 거지. 그 덕분에 마음이 뭉치는 정치 거물들끼리 힘을 합쳐서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그 개혁이 끝나고 난 다음에도 계속 마음이 모이는 녀석들끼리만 모이니까 결국 고인 물이 썩어버렸고 메이지 유신을 이룩한 유신지사들까지

세상을 등지고 나니까 그 후손이라는 놈들이 자기들끼리 듣기 좋은 말만 주고받다가 현실감각이 흐려져서 폭주한 끝에 자멸했다. 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미리미리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치고 올라올 사회적 장치들을 만들어둬야 해. 그걸 위해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게 특권이고.'

그러나 막상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이미 잔가지는 거의 다 쳐낸 상황이기도 했다. 이미 토지개혁으로 한차례 양반 지주들을 대거 솎아낸 다음이었고, 의무교육이 실현화되면서 과거제도도 단지 공무원 시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도록 변해갈 예정이었다. 여기에 양반들 또한 군역을 지도록 징병제까지 시행한 다음이었으니, 막상 양반계층의 특권을 빼앗자고 나서자니 특권이 남아있지를 않았다.

그건 즉 다시 말하여 이제 와서 양반계층을 한 번 더 솎아 봤자 사회구조를 바꾸는 데에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나마 지금 양반들의 특권이라고 할 만한 게…부사관으로 군대 가는 것 정도던가? 그거야 뭐 부사관에 대한 존중을 만들려고 일부러 그랬던 거고, 이제 슬슬 양반들도 사병으로 보내면 되겠지. 전직 백정 출신 병장이 유생 출신 이병 갈구는 거 보게 생겼군. 훈련소 조교들을 전부 다 백정이나 노비 출신으로 편성하라고 해버릴까? 아니, 그건 또 역차별인가. 흐으음."

젊은 유생들이 피눈물을 흘릴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이형이었다. 참으로 폭군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필요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그동안은 부사관이라는 계급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을 만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양반들을 부사관으로 복무시킨 거였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군사전통을 축적해야 하는 판국에 이제 막 훈련소에서 구르다 부임한 신참 하사 따위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육군 사관학교에서도 이를 개선하여 달라고 지속해서 요청해오던 판국이었다. 이형은 이번 기회에 무관들의 숙원 중 하나를 이뤄주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또 손을 댈 만한 것이…그렇군. 식자층으로서의 특권을 빼앗아 보실까."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고서, 그 즉시 베르뇌 대주교를 궁궐로 불러왔다. 이 무렵 베르뇌 주교는 이형에 의하여 신앙의 자유를 공인받은 이래 지속적인 선교 활동으로 한국 내 천주교 신자 수를 대거 늘린 공을 인정받아 로마 교황청에 의하여 대주교로 서임을 받은 이후였다.

이형의 부름에 번거롭다고 거절할 수도 있었을 터이지만, 베르뇌 대주교는 이형의 부름에 한걸음에 궁궐로 찾아왔다. 이형은 아기 예수라 여기고 있던 베르뇌 대주교에게 이형의 부름은 일종의 신탁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형으로서는 오기야 오겠지만 와달라 부탁한 당일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던지라,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구려. 그간 어떻게 지내셨소? 그래, 어디 뭔가 불편하거나 부족함이 있지는 않았소? 만일 있다면 말하여 주시오. 기꺼이 도와드릴 테니."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오나, 불편한 일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천주의 보살핌이요, 폐하의 은덕이니, 이 은혜를 어찌 갚으면 좋을지 두려울 따름이옵니다."

'…저번에 만났을 적부터 느낀 거였지만, 이 양반 진짜로 대하기 어렵구먼.'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에, 이형은 속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거듭 말하는 것이지만, 이형으로서는 이런 부류의 인간상이 가장 대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시꺼먼 속이 보이는 이들이 상대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이용하겠지만, 티 없이 맑다 못해 한눈에 봐도 주변 인물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워 보이는 인물들을 이용하기에는 왠지 양심에 찔렸다.

그 때문에 일부러 국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한동안 멀리하고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현재 이형이 가장 접촉하기 쉬웠던 근대적 식자층은 선교사들이었고, 그중에서 한국에 가장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인물은 다름 아닌 베르뇌 대주교였으니 말이다.

이형은 잠시 한숨을 내쉬어 마음을 고르고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우리 한국에서도 의무교육을 하여 뭇 백성들을 일깨워주려 하고 있지 않소. 그러나, 그대도 알겠지마는 언문은 아무튼 한문은 익히기 실로 번거롭소. 하여, 부탁할 것이 있는데…."

"무엇이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결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고맙소. 그렇다면 짐을 대신하여 우리 조선말을 연구하여 줄 수 있겠소? 우리 조선말을 연구하여 어휘를 정리하여 사전을 편찬하고, 유럽의 문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좌횡서 가로쓰기와 띄어쓰기를 도입할 수 있도록 문법을 연구하여 정립하여 준다면 감사하겠소. 만일 이를 받아 들여준다면 이번에 한성을 재개발하는 수고에 더하여 명동에 큰 성당을 세워주리다."

이형은 여기에 더 나아가서 공문서들은 동음이의어의 문제로 국한혼용문을 유지하되, 한문을 교양과목으로 빼버리고서 순수 한글을 교육 현장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도록 적극 권장할 계획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일단 기본적으로 사칙연산과 읽고 쓰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라비아 숫자와 사칙연산 기호들의 도입이야 유럽에서 서구식 수학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겠지만, 국어는 한국에서 직접 연구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서 국어를 연구하기 위한 언어학자들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다 보니, 별수 없이 파리 외방전교회의 손을 빌려보고자 한 것이다.

"그거야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로군요. 알겠습니다. 이 또한 이 조선 땅에 복음을 널리 퍼뜨리기 위하여 필요한 일이겠지요. 기꺼이 돕도록 하겠습니다."

"정말로 고맙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으리다."

"은혜라고 말씀해주시니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이 또한 주님께서 인도하심이 아니겠습니까?"

베르뇌 대주교는 순순히 이형의 요청을 수용하였다. 이형에 대한 개인적인 호의와는 별개로, 이를 도와준다면 명동에 성당을 세워주겠다는 확언까지 받은 것이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인맥을 이용하면 조선말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언어학자들을 초청해오는 일 정도야 일도 아니었던 만큼, 베르뇌 대주교는 기꺼이 이형의 계획에 협력하기로 하였다.

그럼 일단 당장의 준비는 끝난 것이었다. 이형은 베르뇌 대주교에게 그 일을 맡기었고, 그 자신은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언어학자들을 초빙하여 국어를 연구하는 동안 그간 해왔던 일의 종지부를 찍기로 하였다.

바로 청과의 조약을 개정하는 일이었다.

"한 준장은…지금쯤 베이징에서 의용군을 모으고 있을 테지. 그럼 이제 한국에 별다른 인상이 없던 청나라의 무지렁이 백성들도 어떤 식으로건 대한제국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라는 건데…."

이형이 맞닥뜨린 가장 큰 난관은 바로 대부분의 청나라인이 대한제국에 호의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우선 전쟁을 두 차례를 치렀고, 산업화를 위해서라지만 현재 진행형으로 경제적 수탈 중이며, 이제는 상전 행세를 하고 있기까지 하다.

서태후를 벌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들을 벌한 이형 개인에 대한 호의라면 몰라도, 대한제국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호의를 품고 있기를 기대하기란 여러모로 무리수가 많았다. 청나라인들이 기억하는 한국은 상전 노릇을 하는 관료들 내지 헐값에 가격을 후려쳐가는 탐욕적인 상인들 정도가 고작일 게 뻔했다.

그건 단기적으로라면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아직 불평불만 정도로 끝나는 수준이지만, 이런 민족 감정이 지속해서 누적된다면 언젠가는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법이었으니까.

이형은 박규수를 불러와 대책을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나?"

"영길리인들의 식민통치법을 배우는 것은 어떠십니까? 청나라에서 자라나는 청년들을 우리 한국 대학에 유학생으로 받아 한국에 친화적인 인사들로 자라나도록 합시다."

박규수의 제안은 유학생들을 받아 친한 인사들로 기르자는 것이었다.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민족 감정 억제법이기도 했다. 이러한 친한 인사들의 침투가 심화하면 설령 민중들이 한국에 거부감을 드러내더라도 사회의 요직을 독점하고 있는 엘리트 계층은 계속하여 친한 적인 태도를 유지하게 되고, 이러면 겉으로는 한국에 부정적이라도 기업이나 정부 차원에서는 기민히 밀접 하는 관계가 성립될 수 있었다.

멀리 찾아본다면 영국과 인도의 관계가 있을 테고, 가까이 찾자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그러했다. 식민열강들이 적극적으로 유학생들을 받아 식민지 엘리트층을 육성하는 건 괜히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그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거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이네."

이형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이형으로서는 그런 기본적이고 당연한 공작이 아니라 보다 직접적이고 교묘한 공작을 기대하고서 말을 꺼냈던 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박규수로서도 침묵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형이 요구로 하는 건 통상적인 식민열강들의 수법을 넘어선 보다 세련된 방식이었는데, 박규수는 그 통상적인 식민열강들의 수법조차 통달하지 못했으니 이는 필연적이었다.

이형은 마음속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는 결국 그 스스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솔직히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취업비자로 청나라에서 대거 노동자들을 끌어와야겠어. 한동안은 만주 개발과 산업화로 일자리가 모자라기 보다는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난리가 날 테니 차라리 지금부터 들여오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이형은 한숨을 깊이 내쉬면서 자조했다. 청나라에서 들어온 값싼 육체노동자들은 필연적으로 한국 국내에서 동일업종에 종사하는 서민층의 생업을 위협할 수밖에 없었지만, 청나라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동경심을 품어주기 위하여 가장 쉬운 방법은 한국에서 일하면서 고향 집에다가 한두 푼씩 부치며 먹고 사는 외화벌이 노동자들이었다.

한국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고향 집에 한두 푼씩 보태는 외화벌이 노동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청나라인들의 머릿속에서 한국은 막연하게 부자나라이자 공업 선진국의 형상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예 한국군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서 정착한다면 흔히 말하는 미국에서 성공한 친척 미스터 김의 청나라-한국판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코리안 드림이었다. 물론 아직 한국은 산업화가 막 시작했을 뿐이고 청과 비교하여도 크게 나을 것이 없는 나라였지만, 중화제국과 대치하고 태평천국 소탕에 힘쓰고 몽골에서 러시아와 싸우는 등 사방으로 군사력을 투사하느라 정작 본국을 산업화할 여력이 없는 청은 당분간 계속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반면 미국의 적극적인 투자를 받는 한국은 이미 달려나가기 시작한 다음이었다.

10년 정도만 있어도 청나라인들이 진심으로 한국을 동경하고 한국으로 이주하고 싶어 가슴 애태우게 하는 건 이형으로서도 손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청나라에서 사람이랑 자원 들여와서 한국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든 다음 다시 청나라에 내다 파는 격이기도 하고.청나라에서 벌어들인 외화 다시 청나라에 재투자하는 격인데 뭘.'

청나라의 재화로 청나라인을 고용하여 청나라의 환심을 사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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