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14화 (114/530)

< 우리 장인 어르신 >

"그것이 어째서 청나라인들이 한국에 호의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단 말입니까?"

박규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형에게 질문하였다. 그로서는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이형은 21세기를 살면서 이러한 인적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이 곧 장기적으로 양국 간의 경제적 협력 강화로 이어지고, 혈연적으로 유사점이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협력을 강화할수록 양국 간의 민족 감정 또한 옅어지는 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21세기를 보지 못한 박규수로서는 영문을 알수 없는 소리에 불과했다.

아니 그 이전에, 박규수로서는 어째서 이형이 이토록 국민감정 같은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여타 식민열강들조차 적당히 본국에 친화적인 엘리트층을 육성하고서 선교사들을 통하여 문화적 동화를 시도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본격적으로 민족 감정을 약화하기 위하여 벌어들인 자금 일부를 재투자한다던가 인적교류를 활성화한다던가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작 해봐야 세포이 항쟁 이후로 영국이 어느 정도 인도인들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으로 무슬림들과 힌두교도들 사이를 이간질하면서 자신들의 통치를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려 애쓰고 있는 것 정도가 그나마 비교될만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단순노동을 넘어선 본격적인 본국과의 혈연적 교류를 추구하고 있지는 않았다.

박규수로서는 괜한데에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받아들일 여지도 충분했던 셈이다.

"나라의 구별은 있으되 국경의 구분이 허물어지면 그것은 이웃 나라가 아니라 이웃사촌이 되기 때문이오. 기왕 형제의 나라라면 바로 이웃집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소?"

이형의 대답은 유럽연합의 구상과 유사한 것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유럽연합의 가맹국들은 각각 차이는 있어도 대등한 입장에서 힘을 합쳤지만, 지금 이형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각국의 자주권은 보장하되 그 위에 대초원의 카칸인 이형이 군림하고 한국이 조약기구 전체를 이끌어가는 양상이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형이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구상을 박규수가 이해하기에는 이형의 설명은 너무 간결했다는 것이었다. 박규수로서는 이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바 정도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형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그를 제외한 다른 이에게 이해시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알아들으셨다면 우선 우리 장인어른이나 불러와 주시오. 장인어른께서 한성에 와주셔야 청국과 뭔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겠소? 대강 구상은 머릿속에 그렸으니, 실무적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합시다."

"…지시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박규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이형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박규수로서는 나날이 늙어가는 기분이었다. 내각 총리대신이라면 결코 낮은 지위도 아닐 터인데, 정작 황제라는 작자가 무슨 일을 꾸미건 제 혼자서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고서 이리하라 저리 하라 명령만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을 품고 있으며 그 끝이 어떠할지를 전혀 알려주지 않고 있던 것이다.

박규수로서는 일의 보람을 느끼려야 느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형을 도와 한국을 바꾸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좋았던 박규수는 점차 자신이 하는 일에 환멸을 느껴가고 있었다. 이래서야 자신이 이 나라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인지 아니면 일개 심부름꾼 나부랭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록 늙은 이 몸은 이렇게 궁궐의 심부름꾼으로 살다가 죽게 되겠지만, 내 뒤를 잇게 될 젊고 혈기 있는 후임들은 절대로 이와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래서야 의회가 있는 이유가 무엇일 것이며 또 조정에 뜻 있는 선비들이 출사할 이유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대로는 안 된다. 이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라도 황제 폐하를 보위할 뜻 있고 혈기 있는 선비들이 필요하다.'

박규수는 머릿속으로 이번에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뜻있는 젊은이, 김홍집을 떠올렸다. 평소 그가 총애해 마지않았고, 그 때문에 서역으로 보낼 유학생들을 뽑을 때 가장 먼저 추천하였던 패기 넘치는 젊은이였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박규수가 그의 대업을 이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인재이기도 했다.

한가지 박규수가 걱정하는 바가 있다면 영국 유학을 다녀오면서 영국의 문물에 매료되어서인지 지나칠 정도로 영국에 호의적이고 그들의 의회제도를 한국에 적극적으로 이식하고자 뜻을 함께하는 젊은이들을 모아 의견을 모으고 있는 점이었다. 박규수로서는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었다.

선비란 본질적으로 백성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것이 일이지 무지렁이 백성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휘둘리거나 하물며 돈 많은 상인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론이었던 박규수에게 김홍집은 너무 젊은 나이에 영국물이 들은 것은 아닌지 심려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내가 아는 한 김홍집, 그를 대신하여 이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줄 인재는 없다. 이제 그도 조선 땅으로 돌아와 조선에서 뜻을 펼치게 될 터이니, 이 늙은이에게 시간이 남아있는 동안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잘 훈계하고 이끌어주는 수밖에."

박규수는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바로 김홍집을 위시한 뜻있는 젊은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국정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각오가 사실상 이형에게 심부름꾼과 다를 바 없이 혹사당하면서도 박규수가 계속하여 조정에 남아있는 까닭이었다. 근대화와 산업화에 적극적인 이형이라면 결코 서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 돌아온 김홍집과 그 동료들을 홀대하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기도 하였다.

박규수에게 유감스러운 일이 있다면 김홍집 세대의 젊은이들이 바꾸어나갈 한국을 살아서 지켜보기란 아무래도 힘겨워 보인다는 것뿐이었다. 박규수는 애써 불안감과 씁쓸함을 머릿속에서 지우고서 걸음걸이를 재촉했다.

***

"그런가, 알겠다. 바로 가보도록 하지."

베이징에 머무르던 공친왕이 청을 떠나 한성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당일이었다. 대한제국에서 통신국이 설치되어 전신 건설에 착수한 이래, 가장 먼저 착공에 들어갔으며 가장 큰 비용을 들여 유지하고 있는 것이 베이징과의 전신망 연결이었던 만큼 이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한제국에 가장 중요한 이웃국 가는 청이었으며, 대한제국의 핵심이권 지대라고 할 만한 지역 또한 청이던 것이다. 공친왕으로서는 기가 찬 일이었다. 한때는 다이칭 구룬의 번국에 지나지 않았던 조선이 이제는 청의 상국으로서 누구 보다 앞장서서 수탈하고 있는 형국이라니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선제 황제들이 지금의 청을 본다면 더 이상 만주의 칸도, 몽골의 대칸도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장 먼저 기함을 하겠지만. 공친왕은 새삼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여 헛웃음을 지었다.

"내 죽어서 선제 폐하분들을 무슨 낯으로 만나면 좋을지 도통 모르겠구나."

공친왕은 씁쓸하게 자조하면서 한성으로 향하는 기선에 몸을 실었다. 안 그래도 대한제국에서 먼저 부르지 않았다면 그가 먼저 한성을 찾아가야 하던 참이었으니 사정이 딱 맞아떨어진 격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대한제국의 황제가 불렀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의 섭정인 공친왕이 직접 한성으로 향하여 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청의 처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잘 쳐줘 봐야 번국이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보호국 내지 속국이었다. 베이징의 관료 중 그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이형이 베이징을 점령한 이래 공친왕이 다시 권력을 쥔 이후에도 백성들은 베이징의 조정보다도 한성의 황제를 더욱 공경하고 또한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공친왕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제아무리 애써서 그날 이형이 강요했던 대로 한족들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한족들의 일부가 되려 하여도, 백성들은 이미 청의 천명이 다하였다고 여기고 외면할 뿐이던 것이다.

"오오, 마침 잘 와주셨습니다 장인 어르신! 진작에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제 누추한 초가집에 귀한 걸음을 하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이 사위는 사람이 덜된 놈입니다. 장인 어르신께서는 이 어리석은 놈을 잘 가르치고 이끌어주소서."

"…."

그렇게 씁쓸함을 곱씹고 있던 공친왕이 조선 땅에 발을 디디고서 가장 먼저 맞닥뜨렸던 것은 다름 아닌 어울리지도 않게 호들갑을 떠는 이형의 모습이었다. 공친왕으로서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날 공친왕의 마음을 반쯤 꺾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인간이 이제 와서 장인 어르신이라고 불러주면서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라니.

'이 애송이가 혹시 이 몸을 놀리려고 드는 건가?'

공친왕은 진지하게 혹시 이것이 공친왕에 대한 의도적이고 노골적인 모욕은 아닐까 고뇌하고 있었다.

"흐음, 표정이 영 별로구려. 역시나 답지 않았던 모양이구려. 그럼 저번에 만났을 적과 같이 가겠소."

"…혹시 폐하께서는 소인이 치욕을 못 이겨 혀라도 깨물고 까무러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까?"

"설마. 짐도 한번 외교적 수사라는 걸 배워볼까 생각했을 뿐이라오. 그러나, 보아하니 안 하느니만 못한듯싶구려. 과연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었소. 무례하게 여겨졌다면 사과하리다."

그런 공친왕의 낯을 잠시 살피던 이형은 작게 혀를 차고서는 언제나처럼 오만하고 안하무인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공친왕은 도리어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이 공손하게 나서는데 모욕적으로 느껴지고, 도리어 아무렇게나 대할 때 비로소 존중받는 기분을 느끼다니.

그들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가의 여부와는 완전히 무관하게도, 이형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둘씩 그의 뒤틀린 인물상에 적응되어가고 있던 것이다.

"오늘 어쩐 일로 불렀는지는 대강 짐작하고 있다고 생각하오만."

"그야 뭐…."

이형이 꺼낸 말에, 공친왕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 또한 듣는 귀가 있던 만큼 지금 한국이 주변국들과 어떠한 조약을 체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익히 듣고 있었다. 그런 만큼 오늘 이형이 무엇을 요구할지에 대하여도 짐작하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형이 꺼낸 이야기는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유감스럽지만, 귀국과는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생각은 없소. 체구가 너무 크거든. 그대들과 자유무역협정 같은 걸 맺었다가는 되려 한국이 청국에 먹힐 판국이오."

검지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이형은 말하였다. 그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이기도 하였다. 설령 화베이 지방 밖에는 남지 않았다고 하여도 여전히 청국은 동아시아에서도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인구 대국이었으며, 상업 대국이었다. 그 나머지 하나도 본디 청국의 일부였던 중화제국이었으니, 그것은 곧 하나 된 중원이 동아시아 세계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한 증명이었다.

처음부터 이제 막 산업화에 시동을 건 대한제국 따위가 집어삼키려 들기에는 경제 규모부터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던 것이다. 이형은 현시점에서 청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역으로 한국 경제가 청에 집어 먹히는 결과 밖에는 남기지 않으리라는 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청국과는 영영 자유무역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까?"

"어허,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언제 짐이 하지 않겠다고 하였소? 한 10년 정도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해 나갑시다. 그즈음은 되어야 비로소 우리 한국도 청국과 겨룰 최소한의 체급은 확보할 수 있을 테니."

공친왕의 질문에, 이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공친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게 보면 청을 특별대우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형의 언사로 짐작해보면 결코 그것은 아니라는 게 뻔했다. 보통 이러면 겉으로라도 청은 특별하다면서 내숭을 떨어야 하는 법일진대, 이 황제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길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공친왕은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여 다시금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럼 상호방위조약도 없었던 것으로 하실 생각입니까?"

"아니, 그건 그대로 진행하리다. 온 세상천지가 도적 떼에 오랑캐들뿐이잖소. 백성들도 믿고 의지할 군대라도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소?"

정작 청에 있어서 가장 큰 도적 떼 겸 오랑캐 두목이 바로 공친왕의 눈앞에 있는 절름뱅이 난쟁이였지만.

공친왕은 이형의 설명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를 흘겨보았다. 정작 이형은 언제나처럼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본제인데…."

이형은 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공친왕은 그것이 안 좋은 징조라고 여겼다. 보나 마나 또 다이칭 구룬에게서 만주의 칸 작위를 회수해가겠다거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할 심산이라고 말이다. 정작 이형은 공친왕의 경계 섞인 눈초리에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이 양반에게 뭔가 못 할 짓이라도 했던가?'

폭군이 폭군인 까닭이었다.

"뭐, 그리 경계할 건 없고. 그냥 이번 기회에 청국에서 우리 한국에 일하러 오기 좋도록 취업비자를 발급할 예정이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한량이나 한국으로 모두 건너오면 온 사방에 도적 떼가 창궐하지 않겠소? 그리하여 우리 조선말을 할 줄 알거나 과거 경력이 깨끗한 인물들을 위주로 가려 뽑으려 하는데, 이 일에 청국에서도 협력하여주었으면 하여서 말이오.

…한데 뭘 그리 귀신이라도 본 듯이 쳐다보는 게요?"

"…그걸로 이번에는 또 우리 청국에서 무엇을 빼앗아 가실 작정입니까?"

"훔쳐? 글쎄, 굳이 말한다면 인력이겠구려. 하지만 노예로 끌고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당한 봉급을 지급하고서 정식으로 고용을 하겠다는 것인데 표현이 영 그렇구려. 짐은 장차 우리 한국이 청에서 벌어들인 만큼 화베이 땅에 학교와 철도, 병원 등을 세워 재투자할 계획을 구상 중인데 말이오. "

공친왕의 불신 섞인 반응에, 이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답하였다. 물론 그런다고 공친왕의 불신이 그리 쉽게 가라앉을 리가 없었다. 다이칭 구룬에게서 만주의 칸을 빼앗아간 천하에 둘도 없는 도둑놈이 어디 그리 신뢰가 가겠는가. 정작 이형은 그것이 무슨 대수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말이다.

"좋소. 어쩌다가 그렇게 짐이 못마땅하게 보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내 행동으로 보여드리리다. 요즈음 가장 큰 근심 걱정거리가 대관절 무엇이오? 짐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당장에라도 해결해 보이도록 하겠소."

이형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팍을 두들겼다. 그것이 연기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반응이라는 사실이 공친왕으로서는 가장 황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지금 이형이 꺼낸 이야기야말로 바로 공친왕이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말이었다.

안 그래도 한국에서 부르지 않았다면 공친왕이 먼저 한국으로 찾아가려 했던 것은 이번 사안이 한국의 도움이 없으면 해결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공친왕은 잠시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고서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가능한 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멸청흥한(滅淸興漢)."

"…허?"

"불란서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저 악독한 역적 무리가 멸청흥한의 표어를 외며 우매한 백성들을 홀리고 있나이다."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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