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동하는 위선 >
그리고 한국인들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제각각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당장 현재를 살기 위하여 발버둥 치고 있는 자들 또한 있었다.
"쌀을 내놔라! 우리가 먹을 쌀까지 불태워버린 지주 놈들을 죽이자! 우리의 쌀을 빼앗아가는 오랑캐 색목인 놈들을 죽여라! 모조리 죽이고, 죽이고서 우리의 쌀을 되찾자!"
"무고한 백성들의 자산을 탐내는 도적 무리의 변명일 뿐이다! 동요하지 마라! 저 도적놈들을 토벌하고 천하의 평화를 되찾자!"
"하, 하오나…!"
"상관의 명령에 토를 대지 말아라! 이놈, 그렇지 않으면 사교 놈들의 세작이더냐! 아니라면 어서 저 도적들을 토벌하라!"
이 무렵 중화제국에서 시작된 기근과 그에 연계된 소작쟁의는 치안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었다. 소작쟁의에서 시작된 소규모 민란은 점차 지역의 도적 떼로 변질하였고, 여기에 쓰촨성에서 기회만 노리던 태평천국의 세작들이 개입하면서 빠르게 내륙에서 해안가 지대로 번져나가고 있던 것이다.
그 즉시 중화제국군이 투입되어 이를 진압하기 시작했으나, 한계는 명확했다. 때아닌 풍년기에 기근이 일어난 것이다. 전근대적 농촌사회에서 이러한 현실의 괴리 속에서 중화제국의 천명을 의심하지 않는 이는 드물었다. 논밭에 알알이 곡식이 가득한데 정작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다.
이 경우, 문제가 있는 것은 풍년임에도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도적이 된 백성들인가 아니면 풍년이 한창인 와중에 기근을 일으킨 조정의 관료들인가? 누가 봐도 후자의 책임이라는 것은 명확했다. 조정의 관료들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니까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또 도적이 되어 날뛰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동이란 말이냐!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풀어라. 지금 당장! 명령이니라!"
"그, 그것이 구휼미를 저장하던 쌀 창고가 텅텅 비었습니다! 요 몇 년간 쌀값이 날로 높아지기만 하면서 관료들이…."
그리고 이는 비단 백성들만이 아니라 중화제국의 조정 또한 다를 바 없었다. 그들로서도 현황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풍년에 식량이 없어 굶주린 백성들이 도적 떼가 되어 날뛰고 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누가 봐도 조정의 관료들이 무언가 일을 크게 잘못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군벌들의 대립으로 파벌이 극명하게 갈린 중화제국이었다. 이렇게 파벌이 나뉜 와중 풍년 중 기근이라는 초유의 재앙을 겪게 되니 책임공방은 자연스럽게 파벌다툼으로 변질 되었고, 이는 당연하게도 사태를 해결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다.
다만, 정확히 지금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도 알 수 있는 누구보다 명확한 원흉이 두 곳이 있었다.
"그 오랑캐 놈들이 기어이…!"
중화제국의 뜻있는 관료들은 누구나 이 사달을 일으킨 원흉을 향하여 이를 갈았다. 하나는 처음부터 쌀 가격을 붕괴시킨 영길리의 상인들이었고, 하나는 쌀값 폭등에 올라타 쌀 투기를 시작한 지주들이었다. 설령 지금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사태를 일으킨 원흉만큼은 누가 봐도 분명하던 것이다.
뜻 있는 관료들이 힘을 모아 어떻게든 구휼미를 마련하려고 해도,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지주들이 쌀을 되는대로 불태워버리면서 풍년기에도 불구하고 다시 쌀값이 폭등한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시장에 풀린 쌀조차 미리 영국이 독점해버린 다음이었다. 영국은 결코 제값에 쌀을 팔지 않았고, 그 유통지마저 자신들의 지배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해안가의 항구도시들에 집중시켰다.
결국 제아무리 뜻 있는 관료들이 분발하여 어떻게든 기울어가는 민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여도, 재화도 시간도 모든 것이 부족하였던 셈이었다.
"부족하지만, 십시일반으로 모아온 구호물자입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받으십시오. 이웃이 힘들다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도와야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자자, 다들 줄 서세요. 줄! 일본국 규슈 땅으로 떠나는 배입니다. 새치기하지 마시고 혹시나 줄을 착각하신 분들께서는 옆에 있는 구호기구를 찾아가 주세요!"
그런 와중 유구 왕국의 이름으로 바다를 건너 도착한 구호물자와 일본으로 향하는 이주선은 사실상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중화제국의 조정보다 당장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던 중화제국의 백성들에게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같은 동포라는 작자들이 색목인들에게 빌붙어 동포를 수탈하는 모습에 분개하던 중화제국의 백성들에게 유구의 이름으로 그들을 돕는 범아시아 조약기구가 호의적인 인상으로 남았음은 물론이었다.
이렇게 범아시아 조약기구에서 생필품들과 쌀을 비롯한 식량을 풀기 시작하면서, 당장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하고만 있던 쌀값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쌀 독점으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얻고 있던 영국 상인들은 이를 두고서 본국의 공사관을 찾아가 열띤 항의를 했으나, 아편전쟁 때와 달리 영국 공사관은 침묵을 지켰다.
아닌 게 아니라 영국 본국의 내각에서는 점차 악화하여가는 중화제국의 정세 속에서 위기감에 사로 잡혀있었다. 도덕적 책임을 운운하기 이전에, 극동에서의 영국의 영향력 그 자체가 증발해 버릴 지도 모르는 사태였다. 시장 불간섭의 원칙탓에 전면적인 규제는 하지 못하였어도, 런던의 내각은 최소한 이 일의 확산을 막으려는 범아시아 조약기구와 중화제국의 노력을 지원하기로 뜻을 굳히고 있었다.
물론 이를 두고서 현장의 상인들은 정부의 유약함을 탓했지만, 기실 근시안적인 것은 아편 무역 때보다 심각한 식량을 두고서 돈벌이를 하고 있던 그들 자신이라는 걸 영국의 상인들은 알지 못했다.
"최소한 침묵 정도는 해주었나. 저놈들도 염치 정도는 있었던 모양이구먼."
이형은 이를 두고서 냉소했다. 차라리 침묵이라도 지켜주는 편이 이형으로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야 본격적인 구호작업이 이뤄질 테고, 그래야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인명을 구할 것이며, 그럴수록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역할과 사명에 대하여 깨닫는 이들이 늘어날 테니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의 국익과도 직결된 일이었다. 이형은 본격적인 구호사업에 앞서 프랑스와 영국에 부임해 있었던 김병학, 김병국 형제를 귀국시켰다. 그리고 막 한국에 도착한 그들과 뭔가 회포를 풀기도 전에, 그들에게 임명장을 건네며 말했다.
"경들은 앞으로 아시아 식량농업기구의 사무총장과 부총장을 각각 맡게 될 것이오. 이미 오는 길에 지금 강남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개략적인 사정은 대강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오. 경들의 임무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오. 아시겠소?"
전에 없이 이형의 태도는 진중했다. 그것은 그만큼 이번 일이 중대한 일이며, 또한 위협적인 사태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물론 영국에게 강하게 종속된 중화제국의 특별한 속사정 탓에 촉발된 사태지만, 꼭 이런 형태가 아니더라도 식량 위기는 앞으로 몇 번이고 재발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암모니아 합성법이 완성되지 않아 맬서스 트랩에 의한 인류문명 자멸이 공공연히 거론되던 시대였다. 식량 산업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라도 국가 간 공조는 필수적이었다. 인간 또한 동물인 이상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만큼 더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식량처럼 중요자원을 관리하는 국제기구를 한국에 위치시키고, 그 핵심관료들 또한 한국인으로 구성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이 극동아시아의 식량 산업 전체를 조율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이형은 남몰래 입꼬리를 뒤틀었다. 물론, 딱히 이형은 이 부분까지 따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범아시아 조약기구와 그 하위기관들은 어디까지나 아시아의 발전과 아시아 각 국간 상생을 위하여 존재하는 국제기구로 남아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직간접적으로 한국의 패권을 심화시키는 데에 이바지한다는 걸 눈치챈다면 범아시아 조약기구 그 자체에 경계심을 품게 되는 이들이 늘어날 텐데, 아직 지금의 체제가 공고해지지 않은 지금 그런 의심은 위협적이었다.
적어도 범아시아 조약기구와 한국이 주도하는 체제가 완전히 자리 잡게 될 10년 후까지는 계속 이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즈음 되면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학자들도 하나둘씩 범아시아 조약기구가 어떤 식으로 한국의 패권에 이바지하는데 알게 될 테니,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어질 테니까.
'형님, 아무래도 이거….'
'음, 그렇군. 어딘가 구린 냄새가 풀풀 풍기는구나.'
이형이 한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김병학, 김병국 형제가 정확한 정체는 눈치채지 못하였어도 최소한 무언가 구린 냄새가 난다는 정도는 귀신같이 눈치챘다는 점이었다. 명색이 안동 김씨 세도 가문을 지탱하는 인재 중 하나로서 생활해온 경력이 있다 보니, 이형이 겉으로는 좋은 일을 하는 척하면서 무언가 구린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한 번에 눈치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이형의 심산은 어느 정도 눈치챘다는 사실을 이형에게 알리지 않았다. 자신들이 그 사실을 눈치챘다는 걸 알려봐야 괜한 의심만 사게 될 것이라는 걸 뻔히 알던 것이다. 대신, 그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맡을 수 있는 최적의 배역을 연기하기로 했다.
"아이고, 나으리! 이 쇤네가 마저 나르겠습니다! 어찌 굳은살 하나 없으신 그 고운 손을 더럽히십니까? 어서 이 쇤네에게 넘기시지요!"
"어허, 이 사람이! 다 같이 나라의 녹봉을 받는 처지가 아니던가? 다 같은 녹봉을 받는 처지에 어찌 직책의 귀천이 있을 수 있으리오? 한 사람이라도 손을 거들어야 조금이라도 일이 빠르게 마무리되지 않겠는가. 자자, 어서 남은 것들도 모두 넘기시게! 내 오랜만에 힘 좀 쓰겠군, 허허허!"
"나으리…!"
김병국은 귀국과 동시에 식량농업기구의 부총장으로서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뛰면서 현장 인력들의 일을 도왔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었다. 안동 김씨 세도 가문이 숙청되고, 국외로 수년간 추방되어있다가 돌아온 신세였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 또한 그에 대한 인상이 옅어졌을 무렵, 하루라도 빨리 성실하고 인자한 인상을 남겨야 위태로운 입지가 안정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조금도 소홀함이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이형이 후-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처지에, 하다못해 부하 관료들의 신임조차 받지 못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던 것이다.
"한시가 급한 일이요. 혹 청국과 일본국에서 쌀을 급하게 배로 나를 수는 없겠소? 조금이라도 더 쌀값을 안정시키지 못한다면 강남의 민생은 앞으로도 계속 파탄할 수밖에 없소. 당장 국내에서 인구증산이 급하여 식량을 국외로 돌릴 수 없다면, 하다못해 다소 여유가 있는 청과 일본에서라도 될 수 있는 대로 쌀을 구해오도록 합시다."
"다행히 일본국에서는 다소 수확한 쌀이 여유가 남아 기꺼이 협력할 것이라 하였나이다. 하오나, 청국에서는 점차 강남에서 북상한 난민들이 모여들고 있는 모양인지라…."
"그렇다면 먼저 일본에서 날라온 쌀을 청에게 돌리도록 하시오. 강남과 우리 한국 사이에는 바다라는 장벽이 있으나, 청과 우리 한국 사이에는 무엇 하나 없소. 만일 강남의 민생이 붕괴하면서 연달아 청까지 붕괴한다면 그때야말로 한국도 무사할 수는 없을 거요. 우리의 소임은 대한제국의 천하를 안정시키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마시오."
그에 반하여 김병학은 식량농업기구의 총장으로서 공명정대하고 유능하며 또한 청렴하기까지한 우두머리를 연기하였다. 물론 한때 김좌근과 붙어먹던 처지에 그가 청백리였을 턱이 없었지만, 당장은 이형이 후-하고 불기만 해도 날아갈 수 있는 처지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가 국외에 머무는 동안 잠시 인상이 옅어진 틈을 타 어떻게든 그의 인상을 송두리째 덧칠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김병학에게는 그럴만한 재능과 역량도 있었다. 김병학은 한때 실력 우선주의 가풍을 자랑하는 안동 김씨 내에서 두각을 보이던 경험과 유럽에서 외교관으로서 수년간 머물면서 배우고 익힌 경험을 복합해 식량농업기구의 사무총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실적을 만들어갔다.
물론 이렇게 김병학과 김병국 형제를 필두로 한 아시아 식량농업기구가 강남에 대한 구호사업을 주도하여도 항구 지대에 모든 물자가 집중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해안가 항구지대를 영국인 상인들과 친영파 상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상 물자가 내륙 깊숙이까지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하다 하다 유구에서 선의로 베푼 구호물자까지 빼돌리는 거냐! 네놈들이 그러고도 사람 새끼고 동포더냐! 창고에 산더미같이 구호물자를 쌓아두고 있는 걸 뻔히 알고서 찾아왔다! 당장 내놔라!"
"""내놔라! 내놔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 집을 불태우고 네놈 가족들의 생간을 씹어먹을 테다!"""
"저, 저 폭도 놈들이…! 허, 헌병! 헌병들은 어디에서 뭘하는거야?"
하지만 이렇게 구호사업에 차질을 빚을수록 증오가 집중되는 것은 바로 그 구호물자를 빼돌려 착복하는 영국 상인들과 친영파 상인들이었지 범아시아 조약기구를 대신해 구호물자를 제공한 유구 왕국이 아니었다.
유구 왕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구호물자를 풀기 시작하고, 점차 백성들의 증오와 분노가 영국이 상권을 장악한 해안가 항구지대의 상인들에게 집중되면서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그제야 현지 상인들도 사태의 위험을 깨닫고서 물자를 풀기 시작했지만, 그 무렵에는 모든 것이 너무 늦은 다음이었다.
이미 항구 도시의 영국인 상인들은 침략자이자 사람 목숨을 가지고서 장난을 친 찢어 죽여 마땅할 금수가 되어있었고, 중국인 상인들은 그런 영국인 상인들과 붙어먹으며 동포들을 수탈한 매국노로 낙인찍힌 다음이었다. 뒤늦게 시장 불간섭 원칙을 폐기하고서 영국령 홍콩을 비롯하여 영국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강남을 구호하기 위하여 소매를 걷어붙였지만, 분노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고 있었다.
1871년 봄에 접어들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하였다. 이제는 영국에서 모아둔 쌀마저 바닥이 나서 대만 왕국마저 간헐적인 기근에 시달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애초에 대만의 인구증산을 위하여 본인들이 소모하지도 않는 쌀을 모아두었던 것을 가지고서 억단위에 이르는 강남 전체를 그리 오랫동안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대만 왕국은 일본에서 들여온 쌀로 당장 기근은 넘기게 되었지만, 이로써 강남은 범아시아 조약기구에서 지원하는 쌀을 제외하면 쌀의 공급 그 자체가 사라진 격이 되었다. 농사를 지어야 할 농민들이 논밭을 버리고서 쌀을 약탈하는 도적 떼가 되어 있었는데, 설령 추수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현 인구를 지탱하기에 충분한 양의 쌀을 수확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도 없었다
결국 영국의 특명전권대사가 이형의 황궁을 찾아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