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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28화 (128/530)

< 천기누설 >

'인제야 알 거 같군.'

솔즈베리 후작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처음부터 거리를 재려고 했던 것이 잘못되어있던 것이다. 이렇게 거리를 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눈앞의 황제가 모종의 방법으로 그가 숨기고 있던 정보 대부분을 이미 사전에 접하고서 이 협상장에 나섰다는 전제로 움직였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솔즈베리 후작은 이미 황제가 주도하는 기류에 휩쓸린 다음이었다. 이제 와서 이야기를 없었던 거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들어버렸고, 기억에서 함부로 지울 수도 없는 위험한 문건까지 보고 말았다. 이제는 그저 한배에 탔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눈앞의 황제가 그래서 지금 대영제국의 국익에 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지금 이 황제는 어디까지나 보통이라면 알 수 없을 정보를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서 그를 기반으로 놀라운 통찰력과 경악스러운 행동력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을 뿐 영국과 정면으로 적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직은 이용가치가 있다. 언젠가 영국이 총력을 다하여 제거해야만 하는 위험분자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세계대전.'

솔즈베리 후작은 그 어감을 천천히 곱씹었다. 난생처음으로 들어보는 개념, 그러나 한번 들은 순간부터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채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불길한 단어였다.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 거대한 전쟁. 열강이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 강국들 전부가 말려들어, 전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전쟁.

유럽의 호사가들조차 지금 유럽대륙에서 펼쳐지는 전쟁은 어디까지나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내지 독일 통일 전쟁 정도로 호칭하지, 세계대전이라고 호칭하지는 않는다. 영국 정계의 최심부에 근접해있던 솔즈베리 후작조차 세계대전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보았던 만큼, 사실상 공적인 자리에서 지금 유럽에서 펼쳐지는 전쟁을 세계대전이라고 지칭한 건 눈앞의 황제가 처음이다.

그리고 이 눈앞의 황제는 보통이라면 알지 못할 정보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 정보들을 이용하여 지금 이렇게 거래를 걸고 있으며, 터무니없는 도박을 걸기도 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황제가 발언한 세계대전이라는 호칭 또한 그런 보통이라면 알지 못할 정보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지금 이 황제는 우리 보수당의 집권을 도우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곧 이번 세계대전에서 어떻게든 우리 영국의 참전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는 것. 또한 중화제국은 이번 세계대전에서 대한제국의 적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걸 위해 양키들의 경계를 사는 것조차 감수하고서 저돌적으로 도박을 걸었다.'

과연 미국이 이 황제가 기대한 그대로 움직여 줄지는 미지수다. 설령 움직인다고 해도 이 눈앞의 황제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보여줄지도 알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해서, 솔즈베리 후작은 미국이 설령 움직인다고 해도 영국 정계에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키기란 어렵다고 여기고 있었다. 고작 해봐야 그까짓 졸부들의 로비 따위로 영국의 정계가 휘둘리기는 어렵다는 확신이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졸부들의 보잘것없는 지원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법이다. 미국인들의 지지는 분명하게 보수당 집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 글래드스턴 내각의 설득으로 조기 총선의 뜻을 꺾은 여왕이 이번에야말로 조기 총선의 의사를 굳힐 것임이 틀림없다.

독립한 지 100여 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국인들에게 다른 나라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깝고, 같은 나라라고 하기에는 너무 먼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였다. 지난 수년간 극동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견제를 위해 영국을 끌어들이고 이후에도 영국과 함께 발을 맞추려는 행보를 보여왔음을 고려하면, 극동에서의 식민이권 분쟁에서 미국과의 공조는 긍정적으로 고려될 여지가 충분했다.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한참을 침묵하던 솔즈베리 후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형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서 대답이 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 기저에 깔린 것은 긍정이었다. 이형은 그것을 읽고서 입꼬리를 뒤틀었다.

"원하는 것이라. 글쎄,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구려. 구태여 말해보자면 이번 기회를 잘 살려 확실하게 조기 총선을 이룩하고, 집권에 성공하여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시작해달라는 것뿐이오. 특히, 저 중화제국에 대한 지원은 하루라도 빨리 집어치워 줬으면 하는구려. 귀국의 공장에서 만든 무기가 우리 대한제국을 향하는 건 정말 상상만으로도 섬뜩하니까."

"진정 그것이 끝입니까? 이해하기 어렵군요. 그것은 분명 대한제국의 국익과도 부합합니다만, 분명 그것만이 아닐 텐데요."

'약아빠진 놈.'

솔즈베리 후작의 지적에, 이형은 작게 혀를 찼다. 역시나, 대충 뭉개고서 넘기려고 했더니 그것만으로는 당장 대한제국이 얻는 것이 극히 적다는 부분을 파고들었다. 이형은 눈앞의 전권대사가 어쩌면 지금 그가 세계대전 이후의 챙길 이익을 노리고 있다는 걸 파악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조차 못한다면 애초에 전권대사로 뽑힐 자격조차 없다.

이형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눈치가 빠르니 이야기가 빠르구려. 우리 범아시아 조약기구는 이번 전쟁의 승전을 대가로 황하 이남과 장강 이북, 그 사이 화중 땅을 원하오."

"화중 땅이라. 과연, 폐하께서는 이번 세계대전을 계기로 중화제국을 분할시키자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러나 중화제국은 우리 대영제국의 지배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가입니다. 대영제국의 잠재적 식민영토를 깎아낸다면, 그건 곧 대영제국의 국익에 반하는 일이 아닐는지요."

"지금 그 말, 구라파의 식민열강들이 듣는 앞에서 할 수 있소?"

이형은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 그 지적에 솔즈베리 후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나, 눈앞의 황제는 그가 무엇을 숨기려고 하건 이미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인도를 통째로 식민영토로 삼은 것을 두고서 끝없이 견제를 당하고 있던 영국이었다.

이번에 중화제국이나 대만을 손에 넣은 것도 어디까지나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3개국과 함께 공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전제로 간접적으로 통치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기근에 의한 대규모 소요 사태는 영국의 실태로 나머지 열강들의 국익을 손상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 좋건 싫건 영국은 지금 손안에 쥔 것 일부를 나머지 열강들에게 나눠줘야 했다. 지금 영국이 우선시해야 할 것은 어쩔 수 없이 손에서 놓아야 할 것은 놓아주고 핵심적인 이권들만 골라서 유지하는 것이지 손안에 든 전부를 놓지 않겠다며 발버둥을 쳐 나머지 열강들의 경계와 적의를 사는 일이 아니었다.

"졌군요. 과연 폐하께서는 모르시는 게 없는듯합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넓은 식견과 지식을 얻은 것인지 정말로 궁금하지만, 지금은 우선 그만두지요. 어차피 물어보신다고 한들 답해주지도 않을 테니 말입니다."

솔즈베리 후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극동에서 대영제국의 머리 위에서 놀려고 하는 쥐새끼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그 쥐새끼가 알고 보니 이미 대영제국의 머리 위에서 꽈리를 틀고 있던 능구렁이였다.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가 더 이상 눈앞의 황제와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 대적하려는 것도, 수를 읽어보려는 것도 포기하고서 하다못해 대영제국의 국익에 어긋나는 결정만큼은 내리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지금 솔즈베리 후작의 유일한 수였다.

이형은 그런 솔즈베리의 모습에 헤벌쭉 웃었다. 자신의 도박이 통했다는 확신을 마침내 얻은 것이다.

"좋소.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구려. 지금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 포도아, 불란서, 미리견, 화란 정도인가? 그 이상 생각나는 열강이라도 있소?"

"특별히 없군요. 그리고 식민지 전쟁에 개입할 나라는 본디 적을수록 좋은 법이지요. 폐하께서는 이번 전쟁에서 중화제국을 멸망시키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거야 그대들 영길리에서 알아서 결정하도록 하시오. 지금 중화제국을 감싸고 도는 건 그대들 영길리잖소. 그런데 감히 묻건대, 중화제국에 그 모든 죄업을 떠넘기는 방법 이외에 그대들이 억지로라도 식민이권을 사수할 방법이 남아있기는 한 거요? 있다면 들려나 주셨으면 좋겠소만. 어차피 중화제국의 지도부에게 모든 죄업을 떠넘기고 최대한 처참하게 죽이고서 새로운 얼굴마담이라도 세울 작정이잖소."

"폐하께서는 가끔 저보다도 런던의 배불뚝이들이 좋아할 만한 일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야 모르겠냐. 다른 건 몰라도 니들이 무슨 짓을 해왔는지 내가 까먹을 리가.'

이형은 말을 삼켰다. 구태여 말해봤자 좋을 것도 없는 말이었다.

"지금은 도적 떼의 토벌에 전념하겠지만, 머지않아 치안이 조금이라도 진정되면 그 즉시 중화제국은 전쟁을 결의할 거요. 마침 멸청흥한이라는 좋은 대의도 있겠다, 이번에 사태를 계기로 크게 부흥할 한족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서 국내의 불만을 국외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결의하겠지.

그럼 청과 동맹 관계에 있는 우리 범아시아 조약기구는 필연적으로 전쟁에 돌입하게 될 거요. 그때 영국 보수당에서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아 귀국의 여왕 폐하께 진언을 올려 조기 총선을 약속받고 우리 대한제국을 지지하여 참전해주시오. 그 무렵이면 불란서는 도움이 될 턱이 없는 이태리, 돌궐 따위의 뒤처리를 하며 오지리, 노서아 양대 강국과 한창 전쟁 중일 텐데 그러면 불란서라도 성한 턱이 없소.

그때 영길리가 나서서 불란서의 등을 떠밀어준다면 분명 전세도 기울 것이고, 이는 곧 빚을 만들어 두는 격이니 전후에 불란서가 구주 대륙에서 함부로 설쳐댈 수 없도록 막는 것 또한 가능할 거요. 어차피 피는 불란서인들이 흘릴 테고, 세계대전의 승자는 영길리가 되는 거지. 자, 어떻소. 이만하면 최상의 전개가 아니오?"

이형은 자신이 지금까지 읽어낸 향후의 세계정세 전개와 그를 위한 영국의 행보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설마 극동의 군주 나부랭이가 말한 그대로 영국 보수당이 움직여줄 리는 없겠지만, 최소한 설득력을 주는 것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영국이 입을 피해나 손해에 대해서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포장했고, 극동에서 영국의 영향력은 최소화되거나 소멸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쏙 뺐지만. 어차피 이야기해봤자 솔즈베리 후작의 적의만 살 것이 뻔한 이상 말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구상을 들은 솔즈베리 후작과 토마스 공사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이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극동의 군주 나부랭이가 장차 영국이 지금의 세계정세에서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지에 대한 해결책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턱 하니 내놓은 것이다. 이쯤 되면 눈앞의 황제가 예언자이거나, 그 비스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밖에는 없었다.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으십니까?"

더듬거리며, 솔즈베리 후작은 물었다. 그에 이형은 별 싱거운 소리도 다 한다는 듯이 태연하게 답했다.

"보나 마나 지금 이걸 짐에게서 엿 들은 게 아니라 그대 자신의 힘으로 생각해낸 것이라고 속이려 하고 있을 게 뻔하지."

그날, 솔즈베리 후작은 극동의 황제는 예언자이거나 그에 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극동 순방일지에 기록했다.

***

"이걸 어쩐다? 이걸 어쩌면 좋아?"

한편, 미국의 민치상은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었다. 황명이랍시고 건네받은 밀서의 내용이 워낙에 어처구니가 없고 터무니없을뿐더러, 당장 그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던 것이다.

재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게 그가 지난 수년간 봐온 미리견인들의 천성이었다. 그런 미리견인들을 재화를 미끼로 삼아 겁박하는 것이다. 눈이 까뒤집혀 게거품을 물어대며 항의할 건 불 보듯 뻔하고, 여차하면 민치상에게 해를 끼치려 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민치상은 손과 발이 묶여 화물 상자에 갇힌 채로 대서양 앞바다를 두둥실 떠다니는 자신의 말로를 너무나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색이 황명인데 무시하고 모른 채 할 수도 없다. 그는 일개 외교관에 불과하고, 이것이 황명인 이상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두 번 다시 조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더.

"황상께서는 참으로 엄하시구나. 역시나 아직도 노기를 거두어주지 않으신 건가?"

민치상은 결국 하릴없이 뭐가 마려운 사람처럼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공사관 주변 일대를 맴돌고 있었다. 우선 각오를 굳히고서 공사관을 나서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나서고 나니까 무슨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나설 수가 없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민치상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한국 공사관을 예의주시하던 인물들의 주의를 끌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어딘가 편치 않아 보이시는군요, 선생님."

"…아, 자네인가."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낯익은 색목인의 목소리에, 민치상은 떨떠름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뒤편에는 민치상의 예상대로 요즈음 한국 공사관을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던 색목인 사업가 존 피어폰트 모건, 통칭 J. P 모건이 서 있었다.

미국 금융계에서는 요즈음 그럭저럭 이름을 날리고 있다지만, 상인을 업신여기는 기질이 그대로 남아있던 민치상에게는 그런 건 별다른 고점이 되지 못했다. 그에게 모건은 고작 해봤자 혓바닥을 잘 놀리고 상인 나부랭이로서 사대부에게 최소한의 예의범절 정도는 갖추는 보기 드문 색목인 오랑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를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여기고 있던 만큼, 민치상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모건에게 마음을 허용했다.

"들어주시게. 아니 글쎄, 우리 황상께서-."

민치상은 깊이 한숨을 내쉬며 모건에게 지금 그가 처한 사정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중화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그걸 막기 위해 이형이 미국인 사업가들의 자산을 국유화하겠다는 빌미로 영국 보수당의 강경책을 지지하도록 미국 정·재계를 겁박하려고 하는 일. 그로 인해 자신이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는 사실까지.

"정말이지 너무하신 분일세. 아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이래서야 영락없이 내게는 죽는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혹시나 아직도 노기가 덜 풀린 황상께서 차도살인지계를 꾸미고 계신 것은 아닌가 의심이라네."

"…과연, 그렇군요. 정말이지 너무하신 분입니다."

민치상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러나 모건은 이미 그의 말에 더 이상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으로는 이미 지금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은지에 대하여 계산이 시작된 다음이었다.

'소리 내어 짖는 개는 절대 물지 않는 법이다. 정말로 국유화할 속셈이었다면 이미 진작에 국유화하고서 다시 재산을 돌려받고 싶다면 보수당 정권을 지지하라고 했을 거다. 그렇다는 건 결국 한국의 황제가 정말로 국유화를 벌일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좋겠지. 그리고….'

중화제국에서의 대규모 소요사태, 한국의 동요와 한국 황제의 국유화 협박. 여기에 약간의 과장과 거짓말을 뒤섞는다면.

모건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혹시나 묻지만, 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제가 처음입니까?"

"아니, 그럼 내가 아무에게나 이런 이야기를 흘리고 다니는 실 없는 사람으로 보이던가? 어디 가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게. 그때는 정말이지 내 목이 성하지 않을 테니."

"알겠습니다. 그것참 큰일이군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주께서 도우시기를 빌겠습니다."

모건은 생긋 웃는 낯으로 민치상을 뒤로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보기 드물게 진심으로 들뜬 듯한 그 모습에 민치상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굳이 그를 뒤따를 필요도 못 느꼈기에 그대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이튿날, 영국의 구호물자를 받은 중화제국의 반외세 폭도들이 이미 도시를 불태우고 청나라를 침공하려 하고 있으며 대한제국에서는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자국 내 미국인 자산을 국유화하고 전시태세에 돌입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뉴욕 타임즈의 제1면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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