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29화 (129/530)

< 국유화 오보사건 >

"『난징 함락! 거리를 가득 메운 중국 민족주의 폭도들! 상하이 함락의 악몽이 재현되는가?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절박한 기도 소리와 비명!』"

"『한국의 배신인가, 중국의 황화 야욕인가! 사상 초유의 한국 내 미국인 자산 국유화 조치!』"

"『유럽에 이은 동아시아에서의 초대형 무력충돌 위기 고조! 세계를 전화로 휩쓸 거대한 전쟁의 전조인가?』"

"『대영제국의 오판인가? 그도 아니면 의도된 일인가? 극동의 황화 야욕을 부추기다! 도덕 외교, 세계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는가!』"

뉴욕 타임스의 보도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히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무렵은 황색언론의 전성기였다. 조금이라도 자극적인 기사를 보도하여 단 한 부의 신문이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하여 사실을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을 지어내어 과격한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이 무렵 언론들의 특기였고, 언론들은 누가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기사를 보도하는가를 두고서 경쟁했다.

어차피 미국 국내에서는 동아시아까지 전보가 닿는 1달, 다시 돌아오는 1달 도합 2달간은 사실 파악도 불가능했다.

그 2달여간 미국은 발칵 뒤집혔고, 한국 정부의 예고 없는 국유화 소식에 동요한 투자자들이 대거 채권을 팔아치우면서 한국의 채권과 함께 한국에 막대한 투자를 했던 투자은행들의 주가 또한 일제히 폭락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한국이 우리에게 아무런 기별도 넣지 않고서 국유화를 단행했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내, 내가 얼마나 많은 얼간이 놈들을 한국에 파견해뒀는데 그런 전조 하나 모르겠나!"

"하지만 지금 저희가 로비를 넣던 외교 쪽 인물들이 한입을 모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이 자국 내 미국인 자산을 국유화하겠다고 협박한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말입니다! 당장 중국인들이 영국의 지원을 받아 멋대로 전쟁을 시작하여 한국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이, 이 빌어먹을 짱꼴라 놈들! 저 개 같은 노란 원숭이 자식들이 내 돈을 떼먹었어! 개자식들! 절대로 용서 못 한다! 절대로 용서 못 해!"

극동에 어느 정도 소식통이 닿아있던 이들 또한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던 것이, 지금 중화제국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일어나고 있던 것 자체는 진실이었으며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고 영국이 중화제국에 엄청난 양의 구호물자를 푼 것도 사실이었다. 미국의 정계와 친분이 있는 이들은 거기에 더 나아가 한국의 국유화 협박 또한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거기에 더 나아가 중화제국이 정말로 이미 범아시아 조약기구와 전쟁에 돌입했으며, 영국이 그런 중화제국을 지원하고 한국은 이미 국유화를 단행하지 않았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통신도 교통도 불편하던 시절에, 80%의 진실 속 거짓과 과장이 20%가 섞여 있다고 해서 그걸 눈치챌 수 있는 식견과 어쩌면 파산에 준하는 막대한 자산 손실을 감수하고서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가는 나날이 하한선을 쳤고, 투자자들은 이미 휴짓조각이나 다름없던 주식을 헐값에라도 팔아 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하여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그걸 사주는 바보가 있을 턱이 없었다. 이미 국유화되었다는데 멍청하게 그걸 사들일 천치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시장가의 20% 가격으로 매수해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번 기회에 전부 제게 파시지요."

"2, 20%? 아,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거래가 어디 있다는 건가! 적어도 50%! 적어도 절반일세! 이 사람아, 그 정도는 챙겨줘야 나도 살지 않겠나!"

"장담하지요. 곧 10%에라도 매수해달라 제게 찾아올 것이라고.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당신의 채권은 이미 휴짓조각이나 다름없다는 걸 말입니다."

'물론 아주 잠깐만 말이지.'

그러나 그 바보가 있었다. 월 스트리트가 발칵 뒤집히고 이름난 거물들조차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기 위하여 시장가의 절반 이하에 헐값에라도 자신들이 지닌 한국과 연관된 주식들 전부를 팔아치우는 와중에, 모건만큼은 그들이 팔아치우는 주식들 전부를 매수하여 자산으로 삼았다.

이유는 물론 간단했다. 이 뜬소문을 퍼뜨린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유화를 예고했을 뿐 아직 국유화를 실시한 것이 아니었고, 시끄럽게 짖는 개는 절대 물지 않는 법이었다. 당장 국유화를 실시했다가는 주요 산업시설 대부분의 운영을 미국인 기술자들이 담당하고 있던 한국의 경제 그 자체가 마비될 판국인데 마르크스주의에 뇌가 절인 것이 아닌 이상 국유화를 단행할 턱이 없었다.

그러니까 모건은 거리낌 없이 월 스트리트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되는대로 한국의 채권을 사들였다. 이 소문이 가라앉는 그 즉시 자신이 속았다는 걸 눈치챈 투자자들이 다시 득달같이 한국의 채권을 사기 위하여 달려들 테고, 그때 몇 배의 가격으로 되팔거나 계속 수중에 넣어두고서 투자배당금을 받아 챙기면 그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덕 외교의 비참한 말로! 또다시 상하이가 불타오르다! 조계지의 상인들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이빨 빠진 사자가 되어버린 대영제국과 여전히 인도적 지원이라는 몽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멍청한 내각!』"

"『신이시여, 여왕을 보우하소서! 대영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난파선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영광스러운 조국!』"

"『모든 것을 끝낼 거대한 전쟁의 개막! 이미 세계는 전화에 휩싸였다! 승리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패배하고 도태될 것인가? 자연선택의 갈림길 앞에 놓인 대영제국의 운명은?』"

"『애국 청년들의 감동에 벅찬 기립박수! "대영제국은 유럽 대륙의 평화와 도덕이 아니라 대영제국의 국익과 영광을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한다" 디즈레일리 보수당 당수의 케임브리지 연설, 여왕 폐하께서도 극찬!』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상황은 곧바로 대서양 해저 전신을 통해 영국까지 전해졌다. 같은 언어를 공유하던 미국으로부터 건너온 황색언론들의 보도는 번역을 통한 검열 따위의 귀찮은 절차 없이 그대로 영국 전역을 발칵 뒤집었고, 곧 영국의 극동 이권 그 자체를 송두리째 불태우고 있는 무능한 자유당 내각에 대한 비난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무렵 극동에 특명전권대사를 파견하는 등 시시각각 극동에서의 동황을 전해 듣고 있던 자유당 내각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이 아니라며 항변했지만, 그들 또한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극동에서 가장 빠른 경로로 정보를 전해 듣는다고 해도 광저우-캘커타-런던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 중 캘커타-런던은 직통 회선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광저우-캘커타까지는 배를 통해야만 했다.

그럼 제아무리 극동에서의 정보수집에 사력을 다하며 바로바로 대처법을 내놓는다고 쳐도 런던과 광저우 사이에는 적어도 1달간의 지연이 발생했다. 런던의 자유당 내각이 전해 듣는 건 언제나 1달 전의 광저우와 극동의 정황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 1달간 정말로 극동의 정세가 격화되어 전시 태세에 돌입했는지 아닌지 지구 반대편의 런던에서는 도저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도대체 사태 수습을 어떻게 했길래 극동에서 우리 영국인들이 야만스러운 황인종 폭도들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조계지가 불타고 있느냐는 말이오! 그것도 모자라 한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게 방관을 해? 러시아인들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협조는 필수적이라고 했던 건 다름 아닌 경이잖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그러나, 잠시만 인내하여 주소서. 지금 막 극동의 식민관료들에게 사실 확인을 부탁하고 있던 참입니다. 미국인들의 선동에 속아 넘어가서는 아니 되옵니다. 우선 모든 정황이 확실해지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떨는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한층 더 혼란을 키운 것은 신문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빅토리아 여왕이 분노하여 글래드스턴 총리를 달달 볶기 시작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부터 전해진 낭설은 영국 현지의 황색언론들이 끝없이 루머와 곁가지를 덧붙이면서 이미 상하이 조계지가 불타오르고 수많은 영국인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뿐일까. 친 보수당 성향의 신문들은 거기에 더해서 자유당 내각에서 지원한 구호물자들은 이를 받아 챙긴 중화제국의 관료들에 의하여 그대로 전쟁물자로 돌변해 중화제국 정부에서 몸소 영국인들을 살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식으로 선동하기 시작했고, 이는 이미 극도로 격화되어있던 극단적인 민족주의 기류와 만나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퍼지며 영국인들의 공분을 끌어내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자유당 내각으로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영국인들은 이미 크림전쟁에서의 비극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자유당이 제시한 민주주의의 확대와 아일랜드 사태에서의 유화책보다도 영국인들은 복수를 원했고 유럽대륙에서의 전쟁에 참전하여 다시 한번 나폴레옹 전쟁 직후처럼 유럽 대륙의 조율자로서 군림하는 위대한 대영제국을 원했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글래드스턴은 이 무렵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펼쳐질 세상은 지금까지 그들이 알아 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그들이 본적이 없는 세상이 되리라는 것을. 전쟁에 나가 죽어갈 것이 뻔한 서민들이 앞장서서 전쟁을 외치고, 전쟁에서 이득을 볼 귀족과 자본가들이 낭만주의에 빠져 몸소 전쟁에 자원했다가 헛되이 죽어나가는 지옥도.

모두가 평등하게 죽어 나가고, 모두가 한입을 모아 전쟁을 외친다. 평화와 번영을 외치는 이상론자들은 도태당하고, 전쟁을 외치는 선동가들이 판을 치며, 더욱 극단적인 이념을 들고나오는 정치가일수록 환영받는 끔찍한 시대. 그것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데, 지금의 자유당 내각으로서는 그걸 도저히 막을 여력이 없었다.

"듣기 싫소! 그대들의 무능과 유약함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영국인이 죽어 나가야 만족할 생각이요? 당장 짐의 눈앞에서 사라지시오! 그대는 해임이오! 본인은 이 대영제국의 국왕으로서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명하는 바요!"

분노에 가득 차 고함을 지르는 여왕의 목소리를 들으며, 글래드스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틀렸다. 어떻게든 저 지옥 같은 전쟁만큼은 회피하기 위하여 애써왔지만, 그 또한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번 조기 총선에서 평화를 외치던 자유당 내각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좋다.

전쟁을 외치던 보수당은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할 것이고,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한 보수당 내각은 집권과 동시에 중화제국과 러시아에 대항한 전쟁을 결의할 것이다. 황색언론에서 지껄여대던 세계대전이 현실화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비통하고 슬퍼서, 글래드스턴은 버킹엄 궁에서 내쫓겨 그의 관저로 돌아오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터뜨렸다. 모두가 전쟁을 외치는 이 지옥 같은 시대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전장에서 앞장서서 죽어 나갈 서민들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전쟁을 원하는 이 모순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서, 그는 그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이, 이런 우라질…!"

그리고 미국에서 시작된 황색언론의 보도는 약 1달여간의 지연 끝에 극동, 한국까지 다다랐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한국의 사대부나 서민 중 이 황색 신문들의 기사를 읽을 수 있는 인물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이 영어는커녕 알파벳조차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형은 읽을 수 있었다. 그리 대단한 영어 실력조차 필요 없었다. 신문 제1면에 Stock Market Crash(주가폭락), Nationalization(국유화), World War(세계대전), Lunatic Red Chinky(미쳐버린 빨갱이 똥양인) 따위의 자극적인 단어들이 즐비한데 그조차 이해 못 할 수는 없었다.

사태를 파악한 그 즉시 영국, 미국 양국의 황색언론들이 대량양산한 기사들을 되는대로 관저에 모아서 사태파악에 나선 이형은 그리 오래지 않아 뒷목을 잡고서 쓰러질 수밖에는 없었다.

어째서 이런 사태가 되었는가, 는 보나 마나 뻔했다. 도중에 정보가 샌 것이다. 어디에서 샜는지는 알 수 없어도, 정보가 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우라질, 그것도 하필이면 금융가 놈에게 흘렀어! 보아하니 금융가 전체에 흐른 것도 아니야. 보나 마나 한 놈 내지 은행 하나다! 그게 아니면 지금 이런 낭설 한 번에 미국 증시가 곤두박질칠 리가 없어! 지금 사태를 틈타서 우리 한국 쪽 주식을 대량 매수하고 있는 놈이 범인인데…!"

이형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정보가 샐 가능성 자체는 예상했다. 한국에 대단한 첩모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밀서를 보낸다 한들 중간에 한번이라도 개봉되지 않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다만, 민주당에서 이를 두고 공화당을 공격하는 식의 전개를 기대했지 한국이 작전주의 희생양이 되는 전개를 바라지 않았을 뿐.

일단 이 사태 자체는 시간이 흐르면 무난하게 진정될 것이다. 당장 한국에 진출하고 있는 미국인 사업가들부터가 국유화 소식에 기겁해서 한국 정부에 사실확인을 요청하고 또 한편으로는 본국의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발로 뛰고 있는 만큼 이들의 목소리가 미국에 도착할 즈음이면 당장 전쟁이라도 난 듯이 날뛰고 있던 황색언론들은 정정 보도 한번 없이 싹 입을 씻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이면 모든 것이 끝난 다음일 것이다. 미국은 단잠에서 깨어나 신대륙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테고, 눈이 까뒤집힌 빅토리아 여왕은 의회에 조기총선과 참전을 주문할 것이다. 작전주를 위한 오보 한번에 미국과 영국이 세계대전에서 위치할 곳이 갈리는 것이다.

"다만…영국이 조기총선을 한다고 쳐도 그 결과가 극동까지 반영 되려면 반년은 필요할테고, 미국의 배불뚝이들이 진정하려면 적어도 3달은 필요하겠지. 그리고 지금 꼬라지를 봐서는 늦어도 3달 안에는 전쟁이 날테고…!"

이형은 이를 갈았다. 장기적으로 보면 나쁠 것은 없었지만, 당장의 뒷수습이 문제다.

한국이야 아직 개항이 이루어진 지 얼마 안 되어 영어 화자가 극히 드물지만, 아편전쟁 이후로 일찌감치 개항되어 영국인들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드문드문 영어를 익힌 이들이라면 부족하게나마 있는 게 지금의 중원이었다.

그런 영어 가능자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이 소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시위나 폭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중국인들까지 이번 사태가 그들이 표면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며 훨씬 파급력이 대단하다고 착각할 공산이 컸다.

그런 와중 중화제국 정부에서 반외세 폭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낭설은 그들의 주적이 정부가 아니라 외세라는 인식을 심어줄테고, 중화제국의 고관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그런 풍조에 올라타 적극적으로 모든 업보를 외세에게 떠넘기려 할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작전주의 영향으로 한국의 전시국채는 휴지조각이 되었다. 런던의 재계야 세계경영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니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한국의 국채를 사들여야 하지만, 월가에서 한국의 채권을 사들이던 건 어디까지나 금전적 이익 때문이다.

단순 국유화 위협이 아니라 이미 국유화를 한 다음이라 자국 내 자산이 모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면, 더 이상 미국이 한국의 채권을 쥐고 있을 이유가 없다.

"이 우라질 놈아! 그걸 하필이면 금융가 놈에게 흘리냐! 트러스트에 흘릴거면 다른 좋은 놈들 많잖아! 하필이면 작전주 각 세우던 금융가 놈에게 이런 정보를 흘려!"

이형은 있는 힘껏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은 분명 세계대전에서 영미가 하나의 축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판이 완성되면서 커다란 이익을 봤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미국발 주가폭락의 여파로 엄청난 양의 국채가 헐값에 풀리게 되면서 당장 전쟁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자본이 고갈 되었다. 런던의 재계도 한국의 전시국채를 비싼 값에 매입하기 보다는 당장 조기총선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데에 전념할 것이 확실시 되는 이상, 당분간 한국의 국채가 제값에 팔릴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도 좋았다.

"빌어먹을, 이것만은 아껴두고 싶었는데…!"

이형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총력전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여력을 남길 수는 없었다.

금 모으기 운동의 다소 이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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