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계획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금 모으기 운동은 성공했다. 그것도 그냥 성공이 아니었다. 대성공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한 감이 있을 지경이었다. 고작 1달여 만에 대한제국 정부는 1년 세수에 준하는 가치의 금은보화를 긁어모았다. 아직 철도망이 완성되지 않아 교통이 불편하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지방의 백성들은 이형이 손수 적은 대자보를 보자마자 기꺼이 금을 내놓은 셈이었다.
그뿐일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금 모으기 운동과 함께 진행한 자원병 모집은 불과 1달여 만에 5만여 명의 청년들을 끌어모으며 엄청난 성황을 이루었다. 그 무렵 이미 14만 명 가량의 청년들이 현역복무 중이던 것과 대한제국의 전체 인구가 2000만 명이 조금 안 되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징병 가능한 한창때의 청년 계층 전부가 군에 입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마저도 이미 징병검사를 받을 나이를 지난 유부남이나, 징병검사를 받을 나이가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을 현장의 징병관들이 수도 없이 거른 결과였다. 그렇게 거른 숫자만 만 명에 근접한다고 하니, 현장의 징병관이 미처 거르지 못한 숫자까지 모두 합하면 얼마나 될지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사실상 이형이 적은 대자보 하나에 온 나라의 백성들이 없는 자산을 털어 금은보화를 내놓고, 군에 징병 될 가망이 보이는 모든 성인 남성들이 자진해서 군대에 가겠다고 나선 셈이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며 도움을 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상상 이상으로 호응이 좋아."
그 상상 이상의 호응에는 어느 정도 이런 반응을 유도했던 이형 자신도 놀라서 헛웃음을 흘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형은 그동안 자신이 귀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대한제국은 사회 최하층에서부터 최상층까지 애국 열풍에 휩싸여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어째서일까, 는 굳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민족주의라는 이름의 시대정신 덕분이었다. 민족과 겨레를 위하여라는 대의 아래 수천만 명의 힘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시대였다. 중화제국이 의도치 않게 몰아닥친 민족주의의 광풍에 휩쓸려 전쟁을 준비하고 있듯이, 대한제국 또한 민족주의의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던 것이다.
그동안은 애초에 여론에 무관심한 이형은 물론이고 조정의 관료들조차 이러한 기류를 느낄 틈이 없었다. 민족주의를 말미암아 발생한 거대한 힘은 언제나 국내에 산더미 같이 쌓인 개혁과 공사를 진행하느라 소진되었고, 이러한 기류가 국외로 흐르기도 전에 만주 일대를 통째로 병합하고 칭제건원을 올리는 등 민족주의와 동반된 확장 주의, 패권주의 등의 욕구도 알아서 충족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국내에만 집중되고 있던 에너지가 이형의 대자보를 시작으로 지금 한 번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세계대전과 함께 촉발된 민족주의라니. 대한제국을 뒤흔들고 있는 애국 열풍이 애꿎은 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몰고 있었다.
"내 탓이로구먼."
이형은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걸 깨닫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민족주의가 힘을 가지려면 세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하나는 공통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시민 집단이고,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침략이며, 하나는 조국과 민족을 향한 자긍심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제국은 그 3가지 전부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인들은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나머지 소수민족들도 군 복무를 통한 부분적인 강제이주와 강제동화 정책으로 조선화를 강제당하고 있고, 그들 모두에게는 러시아로 대표되는 서역 오랑캐들에게 침략당하고 있다는 공통된 의식이 존재하며, 무엇보다도 연이은 승전으로 절대다수의 국민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품게 되었다.
굳이 대단한 선전도 필요 없이, 지금의 대한제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위대한 나라였다. 지난 10여 년간 3번을 싸워 3번 모두를 이겼고, 그중 한번은 지금껏 아시아에서 그 어떤 나라도 이겨본 적 없는 유럽의 열강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었다.
만주, 몽골, 중원, 일본, 대만, 유구, 노서아 등 지난 수 세기 동안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천하의 전부였던 모든 세력이 한국에 무릎 꿇었고, 마침내는 전성기의 청나라조차 꺾지 못했던 영길리로부터 극동의 조정자로서 존중을 받게 되었다.
수 세기 동안 중원의 번 국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다시 태어나 천하의 주인이 되었고, 각국의 국가지도자를 초청해와 성공적으로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창립식을 마무리하며 이를 천하 만방에 다시 한번 재확인받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오히려 자긍심을 품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간접세의 여파로 담배나 술이 값비싸지고 작은 정부를 표방하던 조선에 비하면 세금도 늘어나는 등 부작용도 적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토지개혁을 펼치고 만주의 드넓은 평야를 개간하도록 장려하는 등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돈 벌 구석을 마련해주고 있으니 미래에는 이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길 법하다.
나라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조차 모르던 무지렁이 백성들도, 이제는 매일 같이 열차가 철로 위를 달리고, 시멘트를 들여와 저수지를 세우고, 도시에는 학교가 들어서는 등 온몸으로 변화를 감지하게 되었다. 새 시대가 찾아오고 있음을 누구나 알게 된 것이다. 그저 막연하게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있던 무지렁이 백성들도, 이제는 구체적으로 그 미래가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을지를 깨닫게 되었다.
사회 전반에서 흘러넘치는 조국을 향한 자긍심과 자긍심의 주체가 이끄는 거대한 변혁의 기류. 두 가지가 합해지며 근대적 민족주의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민간에 흡수된 것이다. 중화제국에서 풍년에 의한 기근이라는 사상 초유의 재앙으로 민족주의를 자각하게 되었듯이, 대한제국에서는 다소 과할 정도로 부풀어 오른 자국에 대한 자긍심이 민족주의를 자각하게 만든 셈이었다.
"그 말씀대로입니다. 백성들의 호응이 상정했던 것 이상으로 좋습니다. 이미 상정했던 목표 금액은 진즉에 넘겨 버렸고, 배 이상의 초과 달성도 기대해봄 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군자금이 부족할 걱정은 없겠지요. 이 모든 것이 우리 민족과 겨레가 일치단결한 덕분입니다! 정말로 폐하께서는 날로 새로운 방법으로 이 늙은이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박규수는 잔뜩 흥분에 벅찬 눈치였다. 그 또한 이형이 몸소 글귀까지 적어가며 대자보를 전국 방방곡곡에 붙였을 적에 백성들이 이에 열렬히 호응할 것이라는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불과 1달 만에 목표치를 달성하는 수준의 기적과도 같은 호응을 보여줄 줄은 미처 예상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사실 비단 박규수만이 아니라, 관료인가 초야에 묻혀 사는 서생인가를 막론하고서 조선에서 글깨나 읽는다는 식자들이라면 누구나 이번 금 모으기 운동에서 백성들이 보여준 열성적인 호응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라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온 나라의 백성들이 자진해서 자산을 털어서 나라에 보태어주고, 아직 나이도 차지 않은 젊은 학생들이나 군에 복무할 나이가 이미 지난 애 딸린 유부남들까지 나서 군에 자원하던 것이다.
그동안 백성들의 힘을 과소평가하던가 민족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없던 유림조차 이번 금 모으기 운동으로 시작된 범국민 운동에 한해서만큼은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백성들의 열성적인 호응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고서 그동안의 반정부 기조를 뒤집고서 친정부 기조에 더하여 누구보다 열성적인 민족주의자로 전향하는 이들도 수두룩하게 나왔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민족과 겨레라는 대의 아래 일치단결하게 된 셈이었다. 그 기류에 저도 모르게 휩쓸려 러시아와 싸우기 위하여 군에 자원하는 머리 노랗고 눈 퍼런 만주 주거 러시아인들까지 나오던 판국이었으니, 이 무렵 대한제국에서 기폭된 민족주의의 위력은 가히 태풍에 준한다고 할만했다.
"그래, 정말이지 생각했던 이상으로 대단하군. 하, 우라질. 너무나도 생각했던 그 이상이야. 이제 이걸 과연 제어할 수 있을지 회의감만 드는구먼 그래. 여차하면 꼼짝없이 브레이크 작살난 폭주 기관차야. 하다 하다 이제는 여론까지 걱정하라니. 정말이지 팔자에도 없는 고생까지 하게 생겼구먼."
이형은 그런 박규수의 감동을 떨떠름하게 받았다. 이 민족주의의 열풍이 까딱하면 위험한 방향으로도 흐를 수 있다는 걸 이 시대의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이나 군인들이 민족주의가 안겨다 주는 이 강력한 힘에 취하여 폭주하다가 나라가 망한 사례가 어디 한둘이던가. 이형으로서는 백성들의 호응이 반갑기도 하였지만, 그 이상으로 부담스러웠다.
민족주의 그 자체가 위험한 사상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힘은 언제나 순수한 법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힘이 순수하다고 해서 그 힘을 휘두르는 주체까지 순수할 수 있는가의 딜레마였다. 이형은 자신과 조정의 관료들이 과연 언제까지 이 막강한 힘에 취하지 않고서 국정을 돌볼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험험."
그리고 이형의 정색이 박규수를 멋쩍게 만들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음이라. 박규수는 절로 감동이 식는 것을 느꼈다. 그로서는 이형의 걱정이 과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고자 나선 기특한 백성들이었다.
지금은 솔직하게 대한의 백성들이 자랑스럽다며 백성들을 칭찬하고 더 나아가 조정의 관료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품을 수 있도록 더욱 격려하고 기운을 보태어주는 것이 더욱 올바른 치세법일 것이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다 함께 기뻐할 일에는 함께 기뻐해 주실 수는 없는 건가? 이래서야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나 원.'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규수는 내심 한숨을 몰아쉬며, 이형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관하여 물었다. 이번 금 모으기 운동을 비롯한 범국민운동은 어디까지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자금과 병사들이 모였으니, 이제는 어떻게 전쟁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구상이 필요하던 것이다.
"글쎄…."
이형은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한국에 최선의 수는 어떻게든 러시아와의 몽골 내전을 조기에 마무리 짓고서 중화제국과의 전쟁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러시아의 항전 의지는 그리 높지 않다. 당장 유럽에서 세계대전이 한창인데 극동에 병사들을 파병하여 한국과 정면으로 맞서려면 제아무리 천하의 러시아라도 성한 턱이 없다.
그렇다면 극동 러시아를 선제타격하여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주는 순간 러시아 또한 한국과 교섭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러시아가 분을 못 이기고서 항전을 결의하는 순간 러시아도 양면 전쟁이지만 우리도 뒤통수가 간지럽단 말이지.'
러시아가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서 물러나려면 정말로 러시아가 더 이상의 전쟁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길만한 수준의 타격을 한 번에 입혀야 하는데, 그런 대규모 군사작전은 중화제국에 당장 뒤통수를 후려갈겨달라고 유혹하는 꼴이었다. 청에서 되는대로 병사들을 징병하면 당장 그 모든 전선을 가득 채울 병사는 마련할 수 있을지 몰라도, 러시아에 대한 전면공세를 실시하면서 동시에 중화제국의 침공을 상대로 방어전을 펼칠 군수물자를 마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참호에 틀어박혀 수세에 전념하도록 하겠다. 1차로 황하를 울타리로 삼아 막고, 2차로 베이징에서 막고, 최악을 대비하자면 3차로 요하를 방벽 삼아 막고서 적이 먼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최대한 버틴다. 그 뒤에 적과 아군의 피해 상황을 보고서 어디까지 반격할지를 정하도록 하지. 적어도 중화제국과의 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러시아와의 대결은 현상 유지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 좋겠어."
결국 이형이 택한 전략은 차선책이었다. 러시아에서 조기에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이상, 비교적 안전한 수비를 택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지금은 참호전의 시대였고, 참호전의 시대에서는 언제나 공자보다는 방자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마련이었다. 이형은 굳이 모험을 감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정말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황상께서라면 이번에도 러시아와의 전쟁을 앞장서시겠다 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그런 이형의 선택에 놀라 박규수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이미 한차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술과 약에 취하여 적진에 돌격하는 미치광이 전술의 끝을 보여준 황제였다. 박규수로서는 내심 이번에도 또 그와 같은 모험을 단행할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던 것이다.
"다리 하나가 작살이 낫는데 말 타고 전장에 나서봤자 도움이 되기는 하겠소? 짐 덩어리나 안되면 천만다행이지."
이형은 그런 박규수에게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답했다. 그제야 박규수는 이해하고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리가 성한 시절이라면 모를까, 다리 하나가 반쯤 불구가 되어버린 지금 혹여나 낙마라도 하면 두 번 다시는 말 위로 오르지 못할 위험이 너무 컸다. 박규수로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답변이었다.
그것이 한때 술과 약에 취하여 적병들을 향해 돌격한 괴팍한 황제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웠을 뿐.
'그리고 뭐…이제 부양할 입도 생겼겠다, 조금 사리기는 해야겠지.'
이형은 뒷말은 하지 않고서 삼켰다. 괜히 입 밖에 내봤자 놀림 받기밖에 더하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황후의 출산 예정일이 이제 1달 반 정도 밖에는 남지 않았다. 사랑만으로 보다 듬어주겠다던가, 이 세상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겠다든가 하는 거창한 다짐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이형이었다. 그런 거창한 부성애는 본 적도 없었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여 황후의 배가 부풀어 오기 시작한 이후에도 그 존재를 의식해 본적은 드물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고, 미리 이름을 지어둔다던가 발길질 소리를 듣는다든가 하는 애정표현도 해본 적 없었다. 이형 자신도 이제 와서 왜 태어날 아이의 생각부터 떠올랐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그래, 이제 조금 철이 드시려나 보구나.'
혹시라도 놀림당할까 입을 다문 이형의 오산이 있었다면, 박규수의 눈에는 이형이 굳이 입밖에 내지 않은 마지막 말이 무엇일지 훤히 보였다는 것이다. 노련한 정치인으로서가 아닌, 자신 또한 아이를 길러보고 그 아이가 낳은 손주까지 구경해본 할아버지로서의 통찰안 덕택이었다. 박규수는 이형이 요근래 곧 태어날 아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구태여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형이 그런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누가봐도 분명했던 것이다. 황후가 뭐라 꼬드겨도 꿈쩍도 않던 벽창호 같은 황제였다. 박규수로서는 그저 아이를 기르며 조금이라도 그 괴팍한 성정이 유해지기를 기대할 따름이었다.
"그럼 이번 전쟁은 철저하게 방어전으로 가실 생각이시군요."
"응?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한적 없소만."
무슨 그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 이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규수로서는 당혹스러운 대답이었다. 이형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짐작도 할수가 없었다.
"…네? 아니, 분명 방금 전 수비에 전념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갑자기 그 무슨…."
"그야 물론 우리 한국은 수비에 치중해야지. 하지만 내가 언제 전부 수비만 하라고 했소?"
이형의 대답은 박규수를 더욱 혼란에 빠지게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형은 언제나처럼 태연한 얼굴로 덧붙였다.
"그 짱꼴라 놈들이 먼저 뒤통수를 보이며 유혹하고 있는데 한대 후려갈겨 주지 않으면 열강이라 불릴 자격이 없지."
대만 왕국,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일본국, 영국령 홍콩,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등등.
한국이 양면 전선이라면, 중국은 최소로 잡아도 3면 전선을 각오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