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올리기 >
"거 참 음흉하게 놀고 싶어 하는 놈이구먼. 제 아비는 주제도 모르고 이놈 저놈에게 시비 걸고 다니는 게 제 업이더니, 이 애새끼는 이놈 저놈에게 수작 걸고 다니는 게 제 업인가?"
군사 정보국에서 올린 경과 보고서를 받아 읽은 이형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보고서에는 태평천국에서 먼저 대한제국에 접촉을 시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신들 또한 아시아 대륙의 운명은 아시아인들의 손에 의하여 개척되어야 한다는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뜻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내용은 덤이었다.
물론 허울뿐인 말일 터였다. 분명 태평천국이 가장 큰 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양이 들과 양이와 손잡은 지주층인 만큼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기저에 깔린 아시아주의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래 봐야 태평천국 측에서는 범아시아 조약기구는 결국 동이 오랑캐들이 뜻대로 쥐락펴락하고 있는 꼭두각시들의 집합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오히려 태평천국 측에서 먼저 대한제국을 상대로 접촉을 꾀하면서 이형이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은, 태평천국과의 연줄 그 자체보다도 지금 태평천국을 지도하고 있을 홍천귀복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하여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본래의 역사에서는 홍수전이 죽고 곧장 홍천귀복이 즉위하였으나 그 무렵의 태평천국은 이미 토벌순서를 밟고 있었던 탓에 자신이 어떤 인물인가를 내보일 새도 없이 청군의 손에 붙잡혀 죽어버렸다.
그리고 태평천국이 본래보다 오랜 세월 잔존하고 있는 지금도 쓰촨성에 틀어박히고 난 다음에서야 홍수전이 죽어 홍천귀복이 뒤늦게 천왕에 오르고 이렇다 할 대외적인 행보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나 보니, 이형으로서도 홍천귀복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하여 판단할 여지가 극히 적었다. 홍천귀복이 보여준 평가할 여지가 있는 첫번째 행보였던 셈이었다.
"그리고 그릇도 더 작아졌군."
이형의 평가는 신랄했다. 그는 이번 행보 하나만으로 태평천국과 내통한다는 선택지 그 자체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통치자로서의 재능이 어떻다를 평가하기 이전에,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간사한 행보 자체가 이형으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동맹을 속이면서 음모를 꾸민다면 이형에게 아첨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어떤 뜻을 품고 있으며 자신의 대업에 도움을 준다면 무엇을 주겠다고 나오는 것이 정석이 아니던가.
적어도 선대 천왕 홍수전은 현실감각이 심각하게 부재하여 있을뿐더러 광증을 앓고 있는 사이비 교주였을지언정 장차 자신이 중원을 통치하겠다는 야망은 확실하게 내보였고, 또 한차례 실패를 겪은 다음에는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는가를 반성하고서 다시금 조직을 부흥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 반해 그의 아들이라는 홍천귀복은 그저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뜻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사만을 보였을 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내보이지 않았다.
파촉왕 자리라도 하나 내려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중원을 차지할 수 있도록 협조를 해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양이들을 몰아내려고 하니 힘을 빌려 달라는 것인지 적어도 자신의 야망 정도는 내보여야 하는데, 그조차 숨기고서 무언가 뒤에서 모략만 꾸미고 있으니 이형으로서는 영 마음에 차지를 않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군요. 전령의 목을 베어 돌려보낼까요?"
"아니, 필요 없소. 굳이 이렇다 아니다를 답해줄 필요도 없이, 한번 생각 정도는 해보겠다고 돌려보내시오. 원래 모략을 꾸미기 좋아하는 놈들은 제 꾀에 제가 빠지기 쉬운 법이니까."
한성근의 서슬 퍼런 질문에, 이형은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략을 꾸미기 좋아하는 성정이라면 지금쯤 이미 대한제국에서 거래를 받아들였을 경우와 그렇지 않았을 경우 모두 그 나름대로 대처법을 생각해두었을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곧장 답을 주어 태평천국에서 대응할 시간을 주기보다는, 답을 질질 끌면서 대응할 시간을 빼앗는 편이 옳았다.
오히려 이형으로서는 그나마 신식교육을 받았다는 한성근이 거래가 끝장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전령의 목을 벤다는 발상부터 나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한성근이나 조선군 출신 무관들에게 있어서 태평천국은 고작 해봐야 혹세무민을 일삼는 사교도 반군에 불과하니 과격한 대응이 나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현 한국에서 가장 신식화된 군부의 장성이라는 자들조차 이 모양이니.
교육부의 극히 일부 인사들과 군부의 극히 일부 인사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사고의 틀이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아직 내가 즉위한 지도 10년도 채 되지 않았군. 세대교체조차 아직인데 내가 즉위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조선인이었던 관료들에게 그리 많은 걸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인가. …우라질, 나란 놈은 무슨 이제 즉위한 지 10년도 안 되었는데 벌써 4번째 전쟁을 치르고 자빠졌다느냐?'
이형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을 치러도 전부 1년이 안 되어 연달아 마무리 되다 보니 생긴 기현상이었다. 당장 지금 중화제국과 치르게 된 전쟁도 애초에는 본격적인 근대적 참호전을 예상하다가 너무 빠르게 시작되면서 조금 근대적 요소들이 가미된 전통적 천명대전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다만 그것이 꼭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연달아 일어난 전쟁에서 연달아서 승전을 거둔 덕분에 조선이 이형조차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날아오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천명대전마저 대한제국의 승리로 마무리된다면, 그때야말로 대한제국은 중원 전역과 대초원 전역을 발아래에 두며 다이칭 구룬의 천명을 계승 받았다고 천하가 보는 앞에서 당당히 선언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것도 우선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을 경우에나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이형은 애써 헛기침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래서, 어떻소. 80만 정도는 채울 수 있겠소? 마음 같아서는 100만은 넉넉하게 채웠다는 희소식이기를 바랄 뿐이오만."
"유감스럽게도, 70만을 채우는 것이 고작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역도의 대군이 장강을 건너 황하 목전까지 다가왔다는데, 어느 누가 군에 나가 싸우고 싶어 하겠습니까? 모두 도망치기 급급할 뿐이지요."
이형의 농이 섞인 질문에 공친왕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대한제국으로부터 100만의 증원군이 도착했다는 낭설이 돌면서 그나마 조금은 나아진 편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청의 병역기피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설령 징병 되어 훈련소까지 끌려와도 병사들은 하나같이 의욕이 없었고, 심한 경우 탈영하거나 최악 훈련소에서 무기를 들고서 탈영하는 등의 사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지만, 이형으로서는 역시 입맛이 썼다. 청에서 계속 한족 민족주의에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린다면, 청군은 유사시에 의지할 만한 아군은커녕 언제라도 병사들이 돌아설 여지가 다분한 잠재적인 적군이 될 수도 있었다. 그 경우 한국군은 밖으로는 중화제국에서 이끌고 온 반청 연합군과 싸우며 내부적으로는 한족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반란을 일으키는 청군 병사들과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위험 하나 때문에 청군을 전력에서 제외할 수도 없었다. 당장 25만밖에 되지 않는 한국군이 족히 200만은 가뿐히 넘길 반청 연합군을 상대로 허베이 일대를 방위하는 건 여러모로 무리수가 많았다. 최소한 청군이 보조전력 수준의 활약이라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한국군은 숫자의 폭력 아래 휩쓸려 나갈 터였다. 물론 그 와중에 적어도 100만 명 이상의 중화제국군을 지옥 길의 동반자로 끌고 가겠지만.
'아주 그냥 계륵이로구먼. 그대로 믿고 쓰기에는 불안하고, 그렇다고 빼기에는 당장 숫자가 부족하고. 어쩐다….'
이형은 눈살을 찌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화북의 한족들이 중화제국에 맞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굳이 전장에 나와 목숨을 버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청나라인들에게 싸워야만 하는 이유를 부여해주는 것이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중화제국의 한족들과 화북의 한족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 집단이다. 아무래도 청의 만주 황실이나 대한제국보다는 중화제국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이형으로서는 성가실 따름이었다.
'아니, 가만.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애초에 만주족과 한족의 대결 구도에 어울려줄 생각을 하면 안 되잖아. 판이 불리하면 판 자체를 엎어 버릴 생각을 해야지, 지금 이 판 위에서 이길 궁리를 해봤자 이홍장 놈 좋은 일밖에 더 시켜주냐?'
불현듯, 이형의 머릿속으로 전류가 스쳐 지나갔다. 애초에, 근대의 시대정신이라고 부를법한 민족주의를 적으로 돌리려고 했으니 답이 나오지를 않는 것이 당연했다. 한족 민족주의가 발흥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면 그 부작용을 회피할 궁리를 해야지, 정면에 맞서려고 하니 병역기피 문제가 터지는 것이다.
이번 전쟁은 한족과 그 외의 구도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중화제국이 한족 민족주의를 대변하게 되는 순간 중화제국은 화북의 한족들까지 아군으로 품을 수 있게 된다. 이번 전쟁에서 대한제국이 적대해야 하는 건 한족이라는 민족집단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중화제국이라는 국가 내지 반군집단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중화제국에서 한족 민족주의의 대변자라는 가면을 벗겨버릴 수 있을까. 이형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차피 이번 전쟁에서 민족주의는 옆에서 거드는 격이야. 멸청흥한? 반외세? 다 겉치레다. 저놈들은 그냥 굶주렸을 뿐이야. 당장 식량이 부족하니까, 그렇다고 이웃 나라에서 식량을 사 오기에는 먹일 입이 너무 많아 이웃 나라가 굶어야 할 판국이니 식량 약탈을 위해 멸청흥한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것뿐이다.
하다못해 오보 사건이라도 없어서 몇 년간 기근에 시달리며 정신이 피폐해진 끝에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혁명이라도 한번 터졌다면 모를까, 지금 저놈들은 기근이 시작된 지 1년밖에 안 되었어. 그럼 저 녀석들은 외세에 대한 분노보다도 당장 굶주림이 더 앞서고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은 추수기다. 농부들에게 있어서는 파종기와 더불어서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또 동시에, 1년 중 가장 식량이 풍족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그래, 지금 역도 놈들의 군세가 얼마나 모였다고 했었지?"
"어제까지 확인되기로는 190만이 조금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황하 유역에 도달할 무렵이면 240만에 이르는 대군이 될 것이라 국가정보원에서는 예상합니다."
이형의 질문에, 한성근 준장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이미 예상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현실감이 없는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저만한 대군이 하루가 다르게 베이징을 향하여 접근하고 있다니 두려울 따름이었다. 물론 저들 중 대부분은 중화제국에서 식량을 담보로 끌어들인 농민 반군들이라지만, 그래도 대군은 대군이었다. 저만한 숫자의 병사들이 모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위협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한성근에게, 이형은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군. 이제 곧 추석이었지, 아마? 마침 잘 되었어. 우리 모두 축제 준비를 하세나. 다 같이 떡을 빚고 만두를 빚는 거야. 때마침 금 모으기 운동으로 재정에 여유도 생겼으니, 황하에 비단 배도 띄우고 있는 대로 밀가루와 고기를 사들여서 진수성찬을 차려 보세나!"
"…네?"
"허, 참."
한성근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친왕은 이형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눈치채고서, 헛웃음을 흘렸다.
***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어느날부터였을까. 이홍장의 머릿속에는 그런 후회 밖에는 맴돌지 않았다. 이 중원을 발아래에 두겠다, 그런 야망이 없었다고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백성들을 위하겠다는 마음이 거짓이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서태후를 몰아내고 천하를 바로 잡겠다는 대의는 그보다 한발 앞서 베이징을 점령한 조선에 의하여 좌절되었다. 조선과의 일전을 각오하고서 북진을 감행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조선이 프랑스에 베이징을 넘겨주고서 물러나 버리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꼴이 비참해졌다. 천하를 바로 잡겠다면서 병사를 일으켜 놓고서, 결국 열강들의 눈치를 보느라 베이징을 뜻하는 대로 공략할 수도 없는 처지라는 걸 온 천하에 보여준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청에, 태평천국에 환멸을 느끼어 중화제국에 기대를 걸었던 민중은, 그 순간부로 열강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이홍장의 중화제국을 향한 기대를 거두었다.
그럼 하다못해 한 줌도 안되는 뜻있는 지식인들의 지지만이라도 끌어모아 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출신이 발목을 잡았다. 열강의 꼭두각시임을 온 천하가 보는 앞에서 보여준 이후에도 변함없이 그에게 지지를 보여준 지주계층을 이홍장은 차마 배신할 수 없었다. 인간적인 은원 문제 이상으로, 지주 계층마저 등을 돌리는 순간 이홍장은 국내에 어떠한 지지세력도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지주들의 방해로 기껏 계획했던 개혁은 흐지부지되어버렸고, 뜻 있는 신식 지식인들마저 이홍장과 중화제국에 실망하며 외면해 버렸다. 그러자 이제 정말로 부패한 지주들과 어떻게든 중원을 수탈할 궁리 밖에는 하지 않는 열강 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개혁이 흐지부지된 이래 중화제국은 국가적 동력을 잃고서 주저앉아버렸고, 지주들은 거리낌 없이 열강들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사욕을 위하여 나라를 팔아먹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가.'
이홍장은 몇 번이고 되뇌었다. 결론은 한결같았다. 그때, 조선보다 앞서 베이징을 차지했어야 했다. 그것이 불가능했다면 하다못해 열강들과의 일전을 각오하고서 베이징을 공격했어야만 했다. 물론 승산은 극단적으로 낮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홍장 이름 석 자는 후세의 존경을 받으며 명예롭게 남았을 것이다.
"폐하, 황하가 보입니다."
"…음."
그를 부르는 측근들의 목소리에, 이홍장은 천천히 눈을 떴다. 과연, 노을의 붉은 빛을 머금은 커다란 강이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그가 이미 한차례 베이징을 함락하러 건넜었던, 그의 후회와 좌절로 얼룩진 강이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이제라도 모든 것을 바로잡으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조선 놈들은 100만의 대군이 모였다고 하나, 실제로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패한 청군과 한 줌도 안되는 조선군만 쓰러트리고 나면, 그때는 마침내 온 천하가 이 중원의 적법한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무관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이홍장은 그것이 자신에게 아부를 떨고 있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 분명 청군은 그리 대단한 전력이 될 수 없겠지만, 한국군은 달랐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그 러시아군을 완패시킨 강군이 아닌가. 고작 해봐야 사교도 반군과 다툰 것이 고작인 중화제국군과는 그동안 누적해온 군사전통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그래. …암, 그렇고말고."
그러나 이홍장은 내색하지 않고서 애써 자신만만한 척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총사령관인 그마저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때야말로 중화제국군은 자중지란으로 무너져내릴 터였다. 안 그래도 중화제국과 이홍장을 향한 민중의 적의와 회의를 당장 전쟁으로 무마한 격에 가까운 현실이다. 지도부의 동요는 군조직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 수밖에는 없었다.
"오랑캐들의 수군은 어디에 있지?"
"드문드문 순찰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황하 전역을 가득 채우기에는 오랑캐들도 군선이 부족한 것이겠지요."
"그런가. 그거 불행 중 다행이로군. 당장 포대를 강가에 전진 배치하고 내일 아침까지 도하를 준비하게. 오랑캐들로서는 도하 지점이 늘어날수록 방위선이 얇아질-."
퍼엉-.
느닷없는 폭음이었다. 이홍장은 그것이 강 위의 군선이 대포를 발사한 것이라고 여겼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중화제국의 무관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퍼퍼펑-.
그날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한 건, 강 건너편에서 쏘아 올린 총천연색의 폭죽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