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43화 (143/530)

< 가시리 가시리잇고 >

한편, 그 무렵 강 건너편 중화제국군 진영.

"그게 무슨 소리요! 적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더 이상 협력하지 않겠다니! 적전 도주라도 하겠다는 거요? 이건 항명이오. 당장 부대로 복귀하도록 하시오. 지금 당장!"

"허. 적전 도주? 그게 지금 네놈들이 할 말이더냐? 네놈들이 뒤에서 흥청망청하면서 우리들에게만 돌격하라고 한 결과가 이 꼴이다! 지금 내 동생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나보고 나머지 동생들까지 사지로 밀어 넣으라고? 콧방귀도 안 나오는 잠꼬대는 당장 때려치우는 게 좋을 게다. 아니면 때려치우게 해주랴?"

그곳에서는 반군 대표자들과 중화제국군 장교단이 팽팽하게 맞서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처음부터 하나로 지휘체계가 통합된 단 일군 내지 연합군이라기보다는 당장 식량이 부족하다는 현실과 장강 이남에서 중화제국군의 우세한 전력에 기반하여 반군들의 불만을 힘으로 짓눌러 억지로 손을 잡은 세력에 불과하던 반작용이 나온 셈이었다.

그동안은 청군이 아직도 아편 전쟁기의 처참한 현실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는 중화제국군의 선전을 믿고서 수적으로 10분의 1 이하 밖에는 되지 않는 한국군만 처리하면 전쟁이 끝난다는 생각에 고분고분 따라왔었지만, 개전 첫날부터 10만에 근접하는 병사들을 손실하게 되자 반군들 또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우선, 한국군이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럼 이야기가 달라졌다. 당장 한국군을 이기고 황하를 건너 허베이 평야를 약탈하기보다는 당장 중화제국군과 손을 끊고서 이제라도 고향 땅에 돌아가 보리농사라도 짓거나 아니면 중화제국군이 황하 일대에 몰려들면서 상대적으로 반군토벌이 허술해진 틈을 타 이웃 마을들을 약탈하는 편이 더 손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물론 당장 고향 땅에서 황하까지 오던 고생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그야말로 현실도피에 가까운 발상이었지만 10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힘도 제대로 못 써보고 쓸려나가는 것을 낮 동안 질리도록 구경한 반군 병사들에게는 이미 승리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상대가 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계속 싸울 마음이 들지, 싸워보지도 못하고 10만 명이 당했는데 누가 전쟁을 계속하고 싶어지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이건 네놈들이 먼저 저희 전쟁에 손을 빌려주십사-해서 이 몸께서 협력해주신 거였잖냐! 그런데, 급할 때는 먼저 굽신굽신해가며 손을 빌려달라고 하던 놈들이 인제 와서는 또 뭐? 우선 우리들만으로 돌격하라고! 야, 이 금수만도 못한 새끼들아! 네놈들이 염치라는 게 있기는 하냐!"

"아니, 이 이놈들이 그래도…!"

중화제국군의 만류에도 불가하고 반군들의 불만은 이미 하늘을 찌를듯했다. 안 그래도 황하까지 행군하는 동안에 누적된 피로와 불만이 지난밤 한청 연합군의 심리전으로 극에 달하고 마침내는 낮 동안 펼쳐진 일방적인 전투에 불만이 해소될 새도 없이 절망감만 더해지다 보니 기어이는 기폭된 격이었다. 이를 중화제국에서 힘으로 찍어누르려 해도, 중화제국군과 반군의 숫자는 거의 비등한 수준이었다.

서로 진영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와중에 반군 측이 협력을 끊어버리고서 적으로 돌아서기라도 하는 순간 도망치려는 반군과 이를 막으려는 중화제국군 사이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질 테고, 이는 그 자체로도 적지 않은 피해를 내겠지만 그 이상으로 황하 건너편 한청 연합군에게 기습적으로 건너 반군과 손을 잡고서 중화제국군을 황하 유역에서 내쫓을 기회를 주는 격이었다.

"그래, 옳소! 애초에 왜 우리가 선봉을 서야 한다는 건데? 끝내주는 벌이가 있다고 해서 따라와 봤더니만 이건 또 뭐야! 우리 형제들을 모조리 물고기 밥으로 던져줄 작정이더냐! 할 거면 너희들이 선두를 서라! 하다못해 함께 전선에 나서던가, 그도 아니면 우리들은 빠지겠어!"

'그래야지만 지든 이기든 후일을 대비할 수 있다. 무턱대고 도망치면 그때야말로 겁쟁이 취급당하면서 몰락할 뿐이야. 여기서는 이홍장 패거리들과 함께 싸우면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도망칠 때 도망치더라도 이홍장 놈들이 도망치면서 어쩔 수 없이 도망친 게 되어야 해.'

"""옳다!"""

반군 중 일부 머리가 잘 돌아가는 부류는 역으로 강 건너편의 한청 연합군 때문에라도 중화제국군이 반군을 무력으로 진압하거나 할 수는 없다는 걸 역이용해서 적극적으로 중화제국과 협상을 시도했다. 주요 협상 내용은 내일 도하 시에는 중화제국군 또한 함께 건너거나 선봉을 서라는 내용이었다.

무턱대고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몽상에 빠져있던 대부분의 도적 떼와는 달리 후일에라도 지역을 호령하는 군벌세력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내포한 부류가 여기에 속했다. 이들은 무턱대고 고향에 돌아가겠다며 칭얼거리는 대다수 반군의 소망이 얼마나 헛된지 잘 알고 있었고, 또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들이 정규군에 소속되어 함께 싸운 경력이 후일 자신들의 세력을 일궈내는 데에 적합한 명분을 준비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이들 군벌세력은 무턱대고 도망치기보다는 반군 내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여론을 역이용해 중화제국군을 전면에 내세워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려고 시도했다. 무턱대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반군들은 점차 적절한 지도력과 상황판단 능력을 갖춘 이들 군벌세력을 중심으로 여론을 모으기 시작했고, 이는 점차 반군 내에서 일부 극소수 군벌세력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겁쟁이처럼 뒤로 숨지 말고 앞에서 나와 함께 싸우자! 먼저 함께 싸워달라고 요청했던 건 너희 이홍장 패거리들이잖냐! 먼저 도와달라고 했으면 그 책임을 보여라!"

"그렇다! 너희들의 싸움에 우리들만 왜 피를 흘려야 한단 말이더냐! 너희들이 앞장서라! 그럼 우리들이 뒤따르겠다! 그도 못 하겠다면 하다못해 대등한 전우로서 함께 살고 함께 죽자! 우리들은 노예병이 아니다!"

"""나와라! 나와라! 함께 살고 함께 죽자!"""

이들 군벌세력이 반군들의 여론을 하나로 합치면서, 반군세력은 점차 수백 수천 개의 반군 연합체에서 수개의 군벌 연합으로 조금씩 단일화되어갔다. 목소리를 내는 세력이 줄어들고 대신 앞장서서 현 상황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그 모순점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는 일부 세력에게 목소리가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중화제국으로서는 난처한 일이었다.

이는 곧 반군세력이 단순히 숫자만 많은 어중이떠중이 도적 떼에서 본격적인 군벌세력으로 변모해가고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벌써 우리 병사들이 전면에 나섰다가는 그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우선 어떤 식으로건 저 도적놈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그렇습니다. 아직 고작 해봤자 이틀째가 아닙니까. 아직 오랑캐들의 기세가 등등한데, 벌써 우리 병사들을 소모하게 되면 조선군과의 결전에서 쓸 전력이 크게 줄 것입니다. 우선 주동자의 목을 베어 군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 어떨는지요."

"으, 으음…."

곧 이홍장의 막사에서도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군략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장군들의 의견은 힘으로 반군들을 찍어누르는 쪽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홍장으로서는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 저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집단 탈영 내지 무장봉기 등의 여파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병사들이라…. 허허, 말도 잘하는군. 「내 병사들」이겠지. 내 너희들의 검은 속을 모를 성싶더냐.'

이홍장은 내심 혀를 찼다. 지휘하는 병사들을 곧 자신들의 사병인 줄 착각하는 장군들이었다. 당장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전후 최대한 많은 병사를 남겨서 어떻게든 제위에 재도전할 여지를 남기거나, 하다못해 이홍장에게 완전히 잡아먹히는 일만은 피해 보려고 발악하고 있는 것이 이홍장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지금만 해도 그러했다. 첫날의 도하로 반군들을 무턱대고 도하시켜봐야 희생만 늘릴 뿐이라는 것이 병사들의 시야로 봐도 분명해진 이상, 자신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반군의 불만을 누르려면 어떤 식으로건 당근을 내놓아야 했다. 그 당근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이 중화제국군 또한 함께 건너는 것이었고. 그러나 장군들은 그저 제 병사들을 잃기 아까워하며 반군들의 불만을 힘으로 짓누르고 계속해서 사지에 밀어 넣기를 바랬다.

그러나 장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함께 건너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이홍장 또한 장군들의 반란을 우려해야 하니까. 또 그렇다고 장군들에게 반대 받지 않을 이홍장이 직접 지휘하는 친위군을 전선에 밀어 넣을 수도 없다. 그럼 설령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이홍장의 세력이 장군들보다 약해지면서 주변 장군들에게 도전받게 될 테니까.

'난처하게 되었어.'

이홍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 한쪽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직 오늘 밤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장 어젯밤 폭주를 터뜨려가며 병사들의 마음을 흐트러뜨렸던 저 강 건너편의 오랑캐들이 막 반군들의 불만이 폭발하려는 차에 또다시 일을 벌인다면 그때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될 수 있었다.

"병사들에게 먹일 야식은 두둑이 준비해뒀는가?"

결국 이홍장은 당장 반군들의 불만에 대처하기보다는 우선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궁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궁리해봤자 뾰족한 대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에 계속 심력을 쏟아봤자 저 자신만 지칠 뿐이라는 판단에서 내린 결단이었다.

"네, 물론입니다. 다만, 이대로 가면 군량미가 머지않아 바닥날 것입니다. 아마 길어도 일주일 안에 바닥을 들어낼 것이라고…"

"상관없느니라. 그 전에 끝내면 그만이니까. 마침 강이 옆이라 진흙은 넘쳐나니, 병사들에게 진흙을 주어 코 밑에 바르게 시켜라. 흙냄새가 기름 냄새를 조금이라도 가려줄 것이니라. 저 오랑캐들이 폭죽을 쏜다면 우리도 대포로 응사하면 그만이고, 유람선들이니 무희들의 군무니 따위는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오늘 밤은 어제처럼 쉽지는 않을 게다."

이홍장의 단호한 말에, 장군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영웅호걸로서의 기량이 그들이 여전히 이홍장을 우두머리로 섬기고 있는 까닭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러한 기량조차 없었다면 더 이상 이홍장을 주군으로 섬길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 또한 되었다. 이홍장 또한 그것을 읽고서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날도 여지없이 솟아오른 폭죽과 함께 잔치가 시작되었다. 강 위에는 유람선이 떠올랐고, 향긋한 기름 끊는 냄새가 강가를 메웠다. 그와 함께 중화제국 측에서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야식을 병사들에게 배식해주기 시작했다. 막사에 모여들어 중화제국이 솔선수범을 보이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던 반군들도 야식 시간만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자코서 배식을 받았다.

"아으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구먼. 거 지독한 오랑캐 놈들, 음식이 남아도나? 아주 그냥 이틀 연속으로 사람 환장하게 만드네!"

"에헤이, 이 사람아. 어서 진흙이나 바르시게. 그럼 하다못해 냄새라도 안 나지 않나? 자자, 어서 내 걸 빌려줄 테니까 코나 틀어막으시게!"

"그래, 하다못해 기름 냄새는 못 맡게 되지. 밥에서까지 진흙 냄새가 난다는 걸 빼놓는다면!"

야식에서 진흙 냄새가 난다며 투덜거리면서도, 반군은 잠시 불평하는 걸 멈추고서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고작 해봤자 아무 잡초나 넣어서 끓인 채솟국에 두부, 잡곡밥이 고작이었지만, 배가 고프니 그마저도 잔칫상이었다. 진흙 냄새가 지독하여 밥맛이 안 나는 것이 끔찍하기는 했어도, 덕택에 강 건너편에서 피운 기름 냄새는 안 나게 되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폭죽이나 유람선, 군무 따위도 어젯밤에 한 번 겪어보니 담담해져서, 일부 병사들은 강변에 나와 이를 구경하며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그날 밤은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날에는 들리지 않았던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

"…잠깐, 어디서 노랫소리 들리지 않나?"

"노래야 어제도 오랑캐들이 질리도록 부르지 않았나. 신경 쓰지 말고 잠이나 자세나. 괜한 그런 노래 들어봐야 기분만 잡치지."

"아니, 그 오랑캐들 노래 말고! 틀림없네. 우리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야! 잘 들어보시게!"

"그건 또 무슨…. 아니, 정말이잖아! 이게 무슨…!"

처음에는 애써 강 건너편에서 무슨 노래를 부르건 듣지 않고 무슨 잔치를 벌이건 신경을 쓰지 않으려던 병사들도, 그들의 귀에 익은 가락과 가사가 나오니 너도 나도 강가로 모여들었다. 무관들이 애써 병사들을 막으려 들어도 소용없었다. 누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건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건, 병사들은 강가에 모여들어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은 곧 강 건너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무리의 군중을 발견했다. 악사들의 연주에 맞추어, 손뼉을 치고 발을 굴러가며 신나게 노래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저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한 가지만은 알았다.

저들은 그들의 동향 사람들이었다.

"아니, 어디서 저렇게 많은 강동 사람들이…."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가락 소리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들의 뇌리에 스며들었다. 생이별한 낭군님을 그리워하는 과부의 가락,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는 개구쟁이 아이의 가락, 둘도 없는 친우들과 함께한 청춘의 가락, 부드럽고 정겨운 어머니의 자장가, 한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농가.

무엇 하나 가슴을 찢어놓지 않는 것이 없었다. 당장 입에 넣을 쌀 한 톨 없이 집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처자식들, 성공을 약속하고 함께 고향을 떠나왔으나 이제는 소식도 알 수 없게 된 친우들, 집에 홀로 남겨두고 온 병든 노모, 굶주리고 빼앗긴 끝에 버려두고 온 농지.

"귀를 틀어막아라! 모두 더 이상 저 가락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모두 취침하라!"

뒤늦게 무관들이 길길이 날뛰며 아우성을 쳤지만, 이에 귀를 기울이는 병사들은 드물었다. 그들은 뭐에라도 홀린 듯이 계속 강가에 앉아 가락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는 울부짖었고, 또 누군가는 웃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멍하니 강 건너편을 응시할 뿐이었다. 저들은 누구일까. 어째서 이 가락을 알고 있는 것일까-하고 생각하면서.

집에 온 듯한 정겨운 가락 소리에 가장 먼저 투지가 눈 녹듯이 사라져버리고, 그다음으로 지독한 탈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분노는 온데간데도 없고, 무력감과 그리움만이 그들의 가슴 속에 꽈리를 틀었다.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건 단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내가 왜 집을 비워두고서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

고작 해봐야 쌀 몇 톨을 다른 누군가에게서 빼앗기 위하여. 그렇게 생각하니,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돌아가련다. 애초에 양놈들에게 엉겨 붙어서는 우리 가족 형제들 고혈이나 빨아먹고 살던 저 매국노 놈들에게 뭘 기대했던 것 자체가 잘못이지! 나는 돌아가겠어. 너희들도 다들 알아서들 살길이나 찾아보라고."

"아니 잠깐! 이보게나, 그건 조금 이르지 않나? 아직 고작 해봐야 이틀째라고! 아직은 조금 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이틀째는 무슨 얼어 죽을…! 그대들 모두 단체로 치매라도 걸렸나? 저 매국노 놈들과 싸워온 게 벌써 반년 가까이고, 저 개자식들의 세 치 혀에 속아서 고향 땅을 떠나 여기까지 오는 데만 거의 한 달이 넘게 걸렸어. 한 달 동안 속아줬으면 되었지, 이제는 정말 다 지쳤네. 난 돌아가겠어! 지금 당장 돌아가서 밭에 콩이나 보리라도 심으면 내년부터는 어떻게든 되겠지!"

"기, 기다리게!"

제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리던 이들을 시작으로, 반군 병사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터덜터덜 일어났다. 무관들이 만류하고 전우들이 바짓가랑이를 잡아도 소용없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검을 휘둘러 몇몇을 베어 죽여 본보기를 보인 다음에야 군 그 자체가 와해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귀향을 택한 탈영병 전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날 하룻밤 만에, 중화제국군은 20만이 훌쩍 넘는 병사들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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