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답 >
"허, 허허허…."
'그래, 이거였나. 이래서 그토록 많은 포로를 일부러 거둬들인 것이었던가! 이, 이 교활한 오랑캐 놈이…!'
이튿날, 해가 떠오른 다음 이홍장은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는 없었다. 한눈에 봐도, 병사들에게서 투지가 사라졌던 것이다. 하나같이 피로에 찌들고 무력감에 찌들어 어두컴컴한 얼굴을 하고, 무기는 드는 둥 마는 둥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있거나 장난감이라도 다루는 듯 어깨에 대충 걸쳐두고만 있었다.
당했다, 그 말 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것은 장군들이 그를 보고 있다는 자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라도 이홍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눈동자를 휘번득 거리고 있는 장군들이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당장 전쟁에서 패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장군들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는 수가 있었다.
부하에게 배신당하여 생을 마감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당장 적의 계책에 당했다는 것보다는 우선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먼저 고심해야 했다.
'대포 소리로 노랫소리를 감춘다? 아니, 그래서야 화약 소모량을 감당할 수가 없어. 수만 명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대포소리로 감추려면 한두 발로는 안될 텐데, 밤새도록 대포를 쏜다면 화약은 금방 사라진다. 그리고 대포 소리가 시끄러워서 우리 병사들까지 선잠을 자게 될 테고. 그렇다고 이쪽에서 노래를 불러봐야…당장 배고프고 지친 우리 병사들만 더 힘들 뿐이군, 빌어먹을…!'
그렇다고 귀를 틀어막도록 명해봐야 들을 병사들은 계속 듣기 마련이다. 기름 냄새는 빈속에 위액만 계속 나오게 만들어 괴롭게 되니 진흙을 발라 흙냄새로 냄새를 맡지 않도록 하면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지만, 노랫소리는 듣는다고 딱히 괴로워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분명 노래를 듣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노래를 들으려 하는 병사들이 나올 것이다.
채찍으로 때리면서 강제로 귀를 막게 하거나 명령에 따르지 않는 병사들의 고막을 총검으로 쑤시면서 힘과 고통에서 나오는 공포로 억지로 노래를 듣지 못하게 한다면 일단 당장 병사들이 노래를 듣지 않게는 할 수 있겠지만, 그 반대급부로서 공포에 짓눌린 마음은 더욱 피폐해지고 중화제국에 적의를 품게 되니 역으로 적들의 계략을 도와주는 꼴이다.
오늘은 탈영으로 끝났지만, 공포와 고통으로 이를 짓누르려 한다면 내일은 무장반란이 터질 수도 있었다. 이홍장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적들이 어떤 목적으로 이런 행동을 취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심리전을 걸어올 것을 알고서도 당해주는 수밖에는 없었다. 당장 기근이 한창인 와중 군을 일으킨 중화제국은 이런 심리전에 취약할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저, 저 비열한 오랑캐 놈들이 기어이 이런 수까지…! 페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당장 도하 준비를 시작하여 오늘날이 저물기 전에 황하를 건너야만 합니다! 태만한 병사들의 목을 베어 군율의 엄격함을 보이고 중화제국군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야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보면 모르겠소? 반군들은 이미 전의를 잃은 다음이오. 몇 사람 정도 목을 벤다고 해봐야 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폐하, 소신을 보내어주소서. 소신이 이 한목숨 바쳐 활로를 열어보겠나이다!"
"하! 거명분 하나는 좋구려. 그래봤자 폐하의 아까운 정병들을 이끌고 몸소 적진까지 나아가 투항할 작정이잖소? 언제부터 그대가 그토록 용감무쌍해졌는지 이 모자란 놈으로서는 도통 모르겠소이다!"
"뭐요? 이 미련한 멧돼지 같은 작자가…! 이미 기세가 꺾일 대로 꺾인 도적 떼 따위가 목을 베면서 군법의 지엄함을 보인다고 한들 우리가 원한대로 따라줄 것 같소? 괜히 저 도적 떼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면 그 멍청한 주둥이 당장 다무시오!"
그 와중 장군들은 이때가 기회라는 듯이 저 좋을 대로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험악한 기세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황제가 보는 앞이라는 건 까마득히 잊은 듯했다. 아니, 어쩌면 이홍장을 처음부터 황제로 생각하지도 않았거나 일부러 이홍장의 권위를 깎아내려는 목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조성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홍장은 아마 그 세 가지 전부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저 중 누가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구분 내릴 수 없었지만 말이다. 처음부터 이번 전쟁에서의 승전보다 당장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고 몸집을 불리는 데에만 전념하던 장군들에게 그리 많은 충성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앞장서라! 앞장서라! 앞장서라!"""
"이게 지금 무슨 소란이냐?"
"그, 두목들이 막사 앞에 모여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만일 오늘 전장에서 우리 군이 앞장서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더 이상 이번 전쟁에서 협력하지 않겠다고…."
"거 내가 말했지 않소. 더 이상 저 도적놈들에게 의지해도 소용없다고! 폐하, 어서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한시가 급한 일입니다. 소신에게 선봉을 맡을 영예를 내려주소서! 이 한목숨 바쳐 저 오랑캐 놈들의 방어를 뚫어 보이겠습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폐하, 소신에게 100명의 장사를 내려주십시오. 저 도적놈들의 아가리 따위 한주먹에 틀어막고서 돌아오겠습니다! 처음부터 저까짓 도적놈들이 입이 뚫렸답시고 이 소리 저 소리 시끄럽게 지껄일 수 있도록 내버려 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저놈의 주둥아리를 뜯어내고 목구녕에 펄펄 끓는 기름을 퍼부으면 모두 조용해질 것입니다!"
이런 와중 반군들까지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니 혼란이 한층 가중되었다.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와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서 장군들이 멱살잡이까지 해가며 앞다투어 이홍장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좋게 보면 충성 경쟁이었고, 나쁘게 보면 장군들 간의 정치 싸움이 마침내 극에 달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홍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둘 다 자신에 대한 충성심보다도 자신들이 이끄는 파벌이 주도권을 쥐기 위하여 이러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던 탓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장군 중에서 이홍장이 확실하게 자신의 아군이라고 볼 수 있는 장군들은 도리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침묵하고 있는 쪽이었다. 당장 이홍장의 지도력이 위태로운 와중에 목소리를 키우며 이홍장의 지위까지 위협하는 이들을 그의 아군이라 볼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다.'
결국 이홍장은 마음을 굳혔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적의 심리전에 대응하려고 해도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고, 당장 기근 중에 병사들을 일으킨 까닭에 중화제국군은 심리전에 더없이 취약하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괜히 시간을 끌어봐야 적에게만 유리하다면, 최선의 수는 당장 눈이 돌아간 병사들이 도적 떼로 돌변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전투를 끝내는 수뿐이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전쟁을 가장 빠르게 끝낼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군량미를 모조리 털어서 병사들을 배불리 먹여라. 병사들이 조식을 먹고 배불리 배를 채우는 대로 총공격에 나선다. 짐이 몸소 선봉에 나서겠다. 만일 오늘도 저들의 방위선을 뚫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우군의 패배라는 각오로 전투에 임하도록!"
이홍장은 허리춤에 대도를 뽑아 들어 탁상 위에 꽂아 넣으며, 결연한 어조로 선언했다. 황제가 몸소 선봉에 나서겠다. 그 말은 곧, 나머지 장군들 또한 꼼짝없이 전선에 나서 몸소 병사들을 지휘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넷!"""
그제야, 이홍장의 앞에서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던 장군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홍장은 그들의 눈빛에 서린 공포를 애써 외면했다.
***
그날 아침, 양군은 평소보다 기나긴 시간을 조식에 할애했다. 중화제국군은 황명에 따라 그동안 계속 배식량을 줄여온 군량미를 본래의 정량보다도 수배 많은 양을 지급해 한 번에 소모하느라 그랬던 것이고, 한청 연합군은 평소대로의 조식으로 마무리 지을 예정이었던 것이 강 건너편에서 평소보다 오랫동안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서 급하게 간식이나마 조리해서 병사들에게 더욱 많은 식사를 배급하느라 그러했다.
병사들은 간만에 배를 두둑이 채우고 좋아했지만, 일선 무관들은 병사들처럼 웃고 즐길 수 없었다. 직감적으로 결전이 다가왔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웃고 떠들던 병사들도, 무관들의 굳은 얼굴에 무언가 전조를 느끼고서 하나둘씩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어느 진영에서건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였다. 한국군도, 청군도, 중국군도, 모두가 무거운 긴장감 속에서 평소보다 길었던 조식 시간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조식을 끝마치고 전선에 돌아온 그들은 일제히 안색이 시퍼렇게 질릴 수밖에는 없었다.
황룡과 삼족오가 나란히 아침 바람을 맞아 펄럭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빠르군. 결단력 하나는 대단한 놈이야. 길게 끌면 불리할 거라는 걸 알게 되자 마자 앞으로 튀어나왔나."
망원경으로 강 너머를 살피던 이형은 헛웃음을 지었다. 황금색 갑옷을 두른 거한이 백마 위에 올라 위풍당당하게 선봉에 서있던 것이다. 그게 누군가, 는 굳이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그가 등지고선 아침 바람에 펄럭이는 황룡의 깃발이 그의 신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중화제국의 황제. 이홍장이 저곳에 있었다.
"그럼 이 몸 어르신께서도 나서줘야겠지. 자, 바둑아. 잠깐 수고 좀 해줘야겠다."
푸르릉-.
이형은 그의 애마 바둑이의 등 위에 올랐다. 키가 작은 주인을 배려하여 제 자리에 무릎 꿇은 흑마는, 그의 주인과 대비되게도 다른 말들과 비교하여 머리 하나는 더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다. 그 덩치에 걸맞게도 성정은 난폭하여 맹수가 따로 없었지만, 지난 세월 당해온 것이 있다 보니 이형에게만은 고분고분했다.
곁에서 그런 이형과 바둑이를 지켜보던 공친왕으로서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광경이었다. 제보다 대여섯 배는 커다란 맹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는 모습을 보니, 인제야 비로소 몽골인들이 순순히 이 작자를 대칸으로서 섬기고 있는 까닭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함께 가시겠소? 따지고 보면 저자는 청나라의 역도인 셈이오만."
그런 공친왕을 향해, 이형은 대수롭지 않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마치 뒤에 태워주겠다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럴 터였다. 어린아이를 다루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 정도로 모욕감을 느끼기에는 공친왕 또한 이형과 알고 지내온 세월이 길고 길었다.
"…허락해주신다면야 기꺼이 뒤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사양하지요."
공친왕은 한숨을 내쉬며 따로 자신의 말을 데려와 그 위에 올라탔다. 처음부터 별다른 의미를 두고 한 행동은 아니었던 듯, 이형은 공친왕이 말에 올랐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앞으로 나섰다. 공친왕은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형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확인한 듯, 강 건너편의 이홍장 또한 전면에 나섰다. 전선은 침묵에 잠겼고, 두 사람의 황제는 황하를 사이에 두고서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양측의 거리는 고작 해봐야 500m 안팎. 보통이라면 서로에게 소리가 닿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이 경우는 보통이 아니었다.
"코딱지만 한 것이 잘 보이지도 않는구나. 그래, 네놈이 감히 황제를 참칭하여 천하를 어지럽힌 대역죄인 이가 놈이렷다!"
먼저 고함을 지른 것은 이홍장이었다. 청군에게 들으라는 듯 만주어였다. 청에서 한국을 그리 곱게 보지 않는다는 걸 알고서 이간책을 편 셈이었다.
단숨에 청군 사이에서 동요가 퍼져나갔지만, 이형은 여전히 이죽거리고 있었다. 이형은 가래침을 대뜸 뱉고서는, 소리를 질렀다.
"코딱지만 한 것이 잘 보이지도 않는구나. 그래, 네놈이 감히 황제를 참칭하여 천하를 어지럽힌 대역죄인 이가 놈이렷다!"
이형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서 이홍장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이 씨였으며, 관점에 따라 역적이라고 불릴 여지가 있기에 가능했던 대답이었다. 그 한마디에 청군에서 동요가 일었듯이 중화제국군에서도 동요가 일었다. 청에서 지속해서 만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만주어를 널리 퍼뜨리려 시도한 탓에 중화제국군 내에서도 만주어 화자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동요가 없었던 것은 일부 장교들과 포수 출신 병사들을 제외하고서는 두 사람이 뭐라고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한국군뿐이었다.
"이 코딱지만 한 역적 놈아, 네놈의 죄를 네가 알렸다!"
이홍장은 분기탱천하여 재차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가 묵직하고 쩌렁저렁 울려, 강 너머의 장병들조차 그가 뭐라 외치는지 익히 들을 수 있었다.
"모르겠다! 내 갖은 패악질을 저질렀어도 백성들을 굶긴 적은 없거늘, 어딜 염제 신농께서 복되디 복된 풍년을 해를 이어 내려주어도 백성들을 굶긴 도적 놈이 이 몸 어르신께 역적 운운 질이더냐!"
이형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그 어조는 경박했으되, 그 목소리는 자신만만하고 위풍당당했다. 그 대답에 이홍장은 새삼 말문이 막혔다. 결국 크단 작던, 그 또한 이번 기근에 책임을 논한다면 답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혹은, 억지를 부리지 않는 이상에야.
이홍장은 이를 갈면서도 어떻게든 아득바득 소리쳤다.
"그것이 어찌 나의 잘못이더냐. 너희 오랑캐들과 양이 놈들이 손을 잡고서 이와 같은 패악질을 저질렀음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천하 만민이 알고 있거늘! 양이들과 패를 이루어 동맹을 맺은 것이 그 증거! 천자를 참칭하여 하늘을 우롱하고 민생을 빠트린 그 죄! 오늘 이 이홍장이가 천명을 받아 하늘에 계신 상제를 대신하여 벌하여주겠노라!"
"푸-하하핫!"
이홍장의 대답에, 이형은 소리 내 웃었다. 그로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홍장이 제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만에 하나 이홍장이 승리하는 순간 저 억지가 진실이 되고 나머지 진실은 묻히리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잊혔다 수백 년 뒤에나 재평가받게 된 일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와 같은 억지를 자신이 직접 보고 당하는 입장이 되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두 가지만 정정해주마. 첫째. 설령 그것이 바르다고 한들, 지금 네놈들이 하려는 일은 무엇이더냐? 결국 이 땅을 약탈하여 당장 너희들의 주린 배를 채우려는 것뿐이 아니더냐. 그것이 도적 떼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고작 해봐야 좋은 병장기를 두르고 있다고 한들, 도적 두목이 태산에 올라 천명을 받을 수는 없음이라!"
"오랑캐 놈이 세치 혀를 놀리는 재주만 갈고 닦았구나. 당장 거짓부렁만 지껄여대는 그 입을 다물지 못할까!"
"그리고 둘째,"
이홍장은 이형이 자신을 비웃는다 여기고서는 얼굴을 붉혔다. 그런 이홍장을 향해 이형은 외쳤다.
"텡그리께 천명을 받은 대초원의 대칸께 땅이나 파먹고 사는 농사꾼 나부랭이가 주제넘게도 못하는 말이 없구나! 이 몸 어르신께서는 예케 쿠릴타이에서 정당하게 우르스, 밍간들에게 추대를 받아 제위에 오른 예케 몽골 울루스의 제 50대 대칸 바다라울트 투르 칸이시니라!
천자를 참칭하였다고? 예케 몽골 울루스의 밍간으로서 대초원을 발 아래에 두고서 우르스, 밍간들에게 추대를 받아 정당하게 제위에 올랐으며 아이신기오로의 공주와 혼인하여 적장자를 본 이 몸께 그게 무슨 망발이더냐! 내 너희 족속들을 산채로 가죽을 벗겨 나무에 매달아 독수리들이 그 간을 쪼아먹게 해주겠다!"
한숨을 내쉰 공친왕과 위풍당당하게 호통을 친 이형을 제외한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한순간 일제히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