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 먹을 준비 >
"뭐 저런…!"
이홍장은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대초원의 대칸 운운이야 새로울 것은 없다. 이미 애신각라 황조에게서 만주의 칸 직위와 몽고의 대칸 작위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진작에 들었다. 당장 이를 두고서 의회와 설전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이미 전해 들은 다음이다.
그러니 대칸 운운이야 새로울 건 없다. 그러나, 그게 이렇게 당당하게 할 소리던가. 천자를 참칭한다고 욕하였더니 자신은 천자가 아니라 오랑캐 마적단 대두목이라고 답한 꼴이 아닌가. 저게 명색이 동방예의지국이라며 되려 한족들조차 잃어버린 지 오래인 명나라의 옛 전통유산들을 보존하고 있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던 조선의 왕이라는 작자가 할 말인가.
하다못해 진짜 애신각라의 사람을 불러온다고 해도 그 또한 경전을 읽은 유자인 이상 여기까지 당당하지는 못하리라. 아마 천하를 통틀어 자신은 천자를 참칭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오랑캐 마적단 대두목이었다며 당당하게 지껄일 수 있는 건 저 조선왕이 유일할 터였다.
진정으로 대칸이 천자를 대신하여 이 천하를 다스릴 권위와 힘이 있다고 믿지 않는 이상에야, 제정신으로는 나오기 어려운 말이었다.
"왜 말이 없느냐? 되지도 않는 벙어리 흉내라도 낼 작정이더냐? 만일 이 몸 어르신의 동정을 타낼 작정이라면 형편없도다. 자, 어서 넘어오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 먼저 이 몸 어르신께 감히 도전장을 내민 것은 네 놈이렷다! 설마 역적 나부랭이가 감히 황제께서 귀한 걸음을 하게 만들 작정이더냐? 혹 겁을 먹었다면 언제든지 말하거라.
네놈이 먼저 말하기만 하면, 이 몸께서 10리 즈음은 기꺼이 물려줄 수 있으니! 네놈도 장차 태산에 오를 야심을 품고 있다면 사내대장부가 그 정도 배짱은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새삼 어처구니가 없어 이홍장이 말문이 막힌 틈을 타, 이형은 낄낄거리며 더욱 목청을 드높였다. 명명백백한 도발이었다. 기실 동문서답이나 다름없었던 대칸 운운과는 다르게, 노골적이고 정석적이기까지 한 도발이었다. 무지렁이 병사들조차 한 번에 알아들을 정도로 말이다.
이홍장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앞서 동문서답으로 그의 혼을 빼놓은 것이 일부러 이처럼 노골적이고 본격적인 도발이 파고들 심리적 틈을 만들기 위하여 벌인 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교활한 오랑캐 놈이로구나. 과연 이 몸이 그날 한발 늦었을 법하도다. 그러나, 네놈의 천운도 여기까지다. 그와 같은 잔재주가 언제까지고 먹힐 성싶더냐…!'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참이었느니라! 짐의 200만 대군에 겁을 집어먹어 선공을 양보한 겁쟁이 놈이 주둥아리만 살았구나! 내 네놈을 산 채로 잡아 배를 갈라 펄떡거리는 심장을 씹어먹고 남은 살점으로 젓갈을 만들어 태산에 올라 하늘에 계신 상제께 바치겠다! 그리하여 상제께서도 오랑캐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천하를 짓밟던 비탄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게 될 터!"
이홍장은 이를 갈았다. 더 이상 어울려줘 봐야 괜히 저 교활한 오랑캐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따름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럼 괜히 입 아프게 떠들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모두 도하를 준비하라! 전군 돌격! 단숨에 황하를 건너온 천하에 오랑캐 놈들의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렸음을 보이고 만백성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하라!"
"""와아아! 만세! 만세! 중화제국 만세! 만만세-!"""
기세 좋게 대도를 뽑아 든 이홍장의 고함을 시작으로, 그의 휘하 병사들이 소리 높여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족히 수십만이 넘는 병사들이 일제히 만세 삼창을 하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지평선을 가득 메운 대군이 일제히 고함을 내지르며 돌격할 채비를 하고 있으니 땅이 요동을 치고 하늘이 울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형은 겁먹지 않았다. 어차피 겁먹어봐야 기세 싸움에서 지고 시작하는 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저 중화제국군은 숫자만 많을 뿐 실제로 도하에 도움이 될만한 전력은 한청 연합군과 별 차이점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덕분도 있었다.
"역적 놈이 세 치 혀를 놀리는 솜씨만 갈고닦았구나! 제 주제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꼴을 보니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도다! 여봐라, 저 역도 놈들에게 예의범절을 교육해줄 용사들은 어디 없느냐? 이 몸 어르신과 함께 저 수염 난 애새끼에게 하늘이 얼마나 높은 줄 알려줄 대한의 용사들은 어디 없느냐!"
"""와아아! 대한제국 만세! 만세! 황상 폐하 만세! 만만세-!"""
섣불리 황상을 입에 담지 못한 중화제국과 달리, 한국군은 당연하다는 듯이 황상을 입에 담았다. 그것은 곧 이홍장과 이형 두 사람의 황제가 구축한 권위의 격차를 선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휘하 병사들조차 황제로 대접해주기를 낯설어하는 이홍장과 병사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황제로서 떠받드는 이형. 그 격차를 고함 한 번에 증명한 셈이다.
이홍장은 이를 갈았고, 이형은 이홍장이 그럴 줄 알고서 히죽 웃었다. 서로 얼굴은 보지 못하였으나 그들은 서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눈으로 직접 보듯 선명하게 연상할 수 있었다.
"역도 놈들을 쳐라! 천명을 탐한다는 건 겉치레요, 그저 기름진 화북 땅을 약탈하러 왔을 도적 떼들일 뿐이다. 저 도적 떼들에게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이고 국법의 지엄함을 똑똑히 알게 해주자!"
""만세! 만세! 만세….""
청군 진영은 여전히 앞선 양 진영에 비하여 사기가 크게 저조했다. 당장 지난밤 초나라 가락을 들으며 심리전에 된통 당한 중화제국군조차 청군보다는 사기가 드높았다. 여전히 병사들은 싸울 이유를 찾지 못했고, 이번 전쟁도 고작 해봐야 높으신 분들의 권력 다툼 즈음으로 여기고 있었다.
무관들이 저들은 식량을 약탈하러 온 도적 떼라고 제아무리 설득해도, 병사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뭔가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면 믿지 않을 듯한 모습들이었다. 공친왕은 입술을 깨물었고, 이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나, 청군이 도움이 되기는 글렀군. 그나마 아직 군이 와해하지 않은 게 소기의 성과인가.'
이형은 힐끔 고개를 돌려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황하 위를 순찰하는 연합함대와 거리를 유지하며 조금씩 지난 해전에서 패퇴했다던 중화제국군 수군이 전장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난 해전에서의 참패를 보여주듯, 육안으로도 돛에 아로새겨진 탄 자국과 파손된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화제국 수군 최후의 수군 전력들이 집결하고 있던 것이다.
"그나마 남은 수군조차 모조리 오늘 상륙에 소모해버릴 작정인가 보군. 보아하니 황제가 몸소 선봉에 설 모양이고, 친위대까지 전면에 나서면 도하를 막기는 어렵겠어."
이형은 담담하게 현실을 인정했다. 첫날 한국군이 일방적으로 건너 오는 반군 병사들을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수군 전력의 지원 없이 무턱대고 수적 우세만 앞세워 건너왔다는 것과 반군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 탓에 포병대의 산탄 사격과 개틀링 사격 몇 번이면 단숨에 사기가 꺾였다는 점이었다.
이제 중화제국군에서도 아껴둔 최후의 전투함들을 꺼내 들고, 황제의 친위대라는 정예 중의 정예를 선봉에 내세운 이상 어제와 같은 일방적인 양상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첫날에만 30만 가까운 병사들을 무력화시키고서도 여전히 양군의 수적 격차는 3배, 청군을 제외하면 10배에 근접하니 이는 필연적이었다.
"그럼 이쪽도 슬슬 준비를 해보실까. 여봐라, 취사병들을 시켜서 중식을 준비하라. 오늘은 긴 하루가 될 테니, 두둑이 배를 불릴 수 있도록 노력과 재료를 아끼지 말지어다."
"넷!"
이형의 지시에, 전령은 그대로 제 자리에 부복하였다. 그는 이형이 내린 명령에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는 듯 보였다. 상식적으로, 양국의 황제가 몸소 전선에 나선 이상 병사들이 팔자 좋게 점심이나 먹고 있을 시간적 여유는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러했다. 지난 3차례의 승전이 그들에게 이형을 향한 굳건한 신뢰를 만들어준 덕분이었다.
이형은 새삼스레 병사들의 신뢰를 재확인하고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장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의도했던 것보다는 빠르게 결전이 성립되었지만, 구도 자체는 의도했던 대로 이루어졌다. 남은 건 한가지, 결정타를 때려 넣는 것뿐.
'보아하니 난징보다 먼저 이쪽에서 결정타를 넣게 될지도 모르겠군. 뭐, 그것도 일이 뜻대로 풀릴 경우의 이야기지만. 어디 간만에 말 달릴 준비나 해보실까.'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
"황제 폐하께서 몸소 선봉에 나서셨다! 모두 황제 폐하께서 보는 앞에서 부끄러울 일 없도록 용감무쌍이 싸울지어다! 모두 황상의 지도에 따라 저 극악무도한 오랑캐들을 몰아내고 중원을 되찾자!"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만세-!"""
그날의 전투도 어김없이 중화제국군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고작 해봐야 뗏목 수준의 쪽배가 고작이던 전날과는 다르게 황제의 친위대가 선봉에 나서고 이미 앞선 해전으로 너덜너덜해진 수군 전투함들이나마 전면에 나서면서 중화제국 측에서도 제대로 된 상륙함들을 동원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에 따라 전날과는 다르게 포격 한 두 번에 상륙함이 가라앉거나 하는 일이 사라졌고, 목재 정크 선들은 비록 연합함대의 기선들에게 비할 바는 못되었으나 한국군의 집중 포격에도 충분히 버텨주며 황하의 절반을 건넌 다음에야 하나둘씩 격침되어 가라앉는 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각하, 정말로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중국군의 기세가 전날보다 더 없이 위협적입니다. 여기서는 다소 함대의 피해를 각오하고서라도 배를 적 상륙 선단 가까이 대는 것이…!"
"필요 없다. 이미 한국의 황제와도 이야기된 일이다. 그도 아니면, 명령에 불복종할 생각인가 함장?"
"…결코 아닙니다, 각하. 저는 단지 적들의 상륙으로 우군의 피해가 늘어날까 우려한 것뿐입니다."
"이건 명령이다. 거리를 150m로 유지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도록. 신호기를 올려라. 오늘 본 함대는 화력지원에 전념하도록 한다."
이는 전날과 다르게 연합함대가 섣불리 상륙함들에 접근하지 않고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디까지나 해상포대의 역할에 전념한 것 또한 원인이었다. 적 상륙함이 접근해오면 일제히 산탄을 쏟아부으며 적극적으로 상륙을 저지하던 것과 달리 이날 연합함대는 유효사거리 안팎에서 작열탄 사격에 집중했고, 이는 포격 명중률을 크게 낮추었을 뿐 아니라 상륙병단이 받게 될 심리적 압박도 크게 낮추었다.
이 무렵에는 한국군 포병대에서 탄착군 형성이 완성되어 일제사격 한 번에 확실하게 1, 2척씩의 정크선들을 가라앉히기 시작했으나, 전날과는 다르게 그 무렵에는 이미 선두에 나선 정크선들의 경우 황하의 4분의 3 이상을 건너온 다음이었다. 연합함대가 적극적으로 저지에 나서지 않고 전날과 다르게 중화제국측에서도 정크선을 동원하는 등 본격적으로 상륙에 임하면서 500m 거리 정도는 단숨에 좁혀진 탓이었다.
"전 포대, 산탄 사격 준비! 저 역도 놈들이 뭍을 오른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줘라!"
점차 거리가 좁혀지면서 한국군에서는 전날과 같이 산탄 사격을 퍼부을 준비를 하였다. 전날과 같은 살인공장의 재현을 준비한 것이다. 그러나, 중화제국군은 전날과 달랐다.
"속도를 줄이지 마라! 승리를 위하여! 모두 충격에 대비하라!"
"…! 전 포대 발포하라! 저 미치광이들을 막아야 한다! 쏴라, 쏴!"
콰앙-.
바로 정크선을 뭍에 대려고 속도를 줄이는 대신 도리어 뭍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세차게 노를 젓고 돛을 활짝 펼쳐 들이박아 버린 것이다. 뒤늦게 낌새를 눈치챈 한국군 포병대가 일제히 산탄 사격을 퍼부었고, 이는 선두에 선 정크선들의 목제 선체를 가볍게 관통하여 선원들을 손쉽게 무력화시켰으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 정크선들은 관성에 따라 진흙탕 위를 내달렸다.
당연히 선체가 크게 훼손되었고, 일부는 충돌각을 잘못잡아 선수가 푹 가라앉은 채로 강변의 진흙을 들이박는 바람에 선박이 두 동강이 나면서 그 충격에 튕겨 나간 수십 명이 공중에 흩뿌려지는 소동도 벌어졌지만, 몇몇은 경사를 타고 기어올라 강 너머에서 중화제국군의 도하를 기다리고 있던 개틀링 토치카나 보병진지를 들이박아 버렸다.
이는 자살 특공이나 다름없었고, 실제로 뭍에 들이박은 정크선들은 선체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배의 기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선원들 대부분도 충돌 시의 충격에 배에서 튕겨 나가거나 전사, 부상, 공황, 등의 이유로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자살 특공으로 선체의 무게에 반응한 지뢰들이 일제히 기폭 하며 지뢰지대가 무력화되었고, 도하를 저지할 목적으로 한청 연합군에서 설치한 보병 진지 일부와 개틀링 토치카 일부가 무력화되었다.
"전우들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전군 돌격! 이 땅에서 오랑캐들을 몰아내자! 중화제국 만세!"
"""와아아! 만세! 만세! 만만세-!"""
선봉에 나선 중국 수군의 느닷없는 자살 특공에 한청 연합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뒤이어 이홍장의 친위군이 하나둘씩 뭍에 올라 돌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크선은 일부러 속도를 높여 한청 연합군의 방어진지를 들이박거나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뒤늦게 피해를 수습한 한청 연합군이 개틀링 사격을 퍼붓고 산탄사격을 퍼부어가며 이들의 상륙을 저지하려 해도, 앞서 뭍에 들이박으면서 산산이 부서진 정크선의 잔해가 엄폐물이 되어주었다.
앞서 뭍에 들이박았던 정크선들이 지뢰지대와 철조망을 비롯한 대부분의 방어시설을 무력화시켜주면서 이홍장의 친위군은 비교적 수월하게 뭍에 올라 한국군 진지까지 달려들 수 있었다. 이들은 조준하지도 않고서 사방으로 총을 난사하면서 손에 익지 않은 총검 대신 대도나 창 따위를 들고서 방어진지에 뛰어들었고, 곧 난전이 벌어졌다.
"이 역도 놈들이 감히 누구에게 백병전을 걸어오는 것이더냐! 전군 착검! 황제 폐하께서 보고 계신다! 대한의 용사들이여, 저 역도 놈들의 가랑이를 걷어차주고 오자! 대한국 만세! 만만세!"
"""대한국 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한가지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대한제국 육군이 그동안 자신들의 목표로 삼아왔던 곳은 다름 아닌 백병전의 명수 프랑스 육군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개틀링 포대 선에서 거진 대부분의 적이 정리되다 보니 겉으로 드러날 기회도 필요도 없었지만, 애초에 한국군의 보병 운용 전술은 처음부터 백병전에 맞추어져 있었다.
한국군 부사관들은 중화제국군 보병들이 참호에 뛰어드는 즉시 개머리판을 휘둘러 두개골을 까부수고서는, 뒤이어 달려드는 적병의 가슴팍에 주저 없이 총검을 쑤셔 박아 넣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이에 놀라 중국 보병들이 놀라 주춤하고 있을 때 한국군 부사관들은 권총을 뽑아 손잡이 끝으로 적병의 이마를 후려쳐 밀어낸 다음 충격에 뒤로 한걸음 두 걸음 물러서자마자 가슴팍에 꽂아넣은 총검을 뽑고서 뒤따라 달려드려한 적병을 권총으로 사살했다.
"모조리 대가리를 까부숴줘라! 개머리판은 장식이 아니라 저 새끼들 대가리 까부수라고 달린 거다! 총검이 손에 익지 않으면 하다못해 몽둥이처럼 휘둘러, 알겠냐! 알아들었으면 나 장전 좀 하게 박 상병 네가 엄호 좀 해줘라!"
"네, 넷! 김 중사님! 야그들아, 뭐하냐? 김 중사님 장전하신단다! 손 남는 새끼들 전부 여기 모여!"
그러고 난 다음에야 부사관들은 소총에 다음 탄환을 장전했고, 이를 방해하려 하는 적병들에게는 망설임 없이 총검을 내질렀다. 부사관들의 선전에 고무된 사병들은 부사관들의 뒤를 쫓아 망설임 없이 총검을 내지르며 백병전에 임했고, 상대적으로 중국군은 크게 위축되며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양군이 뒤섞이며 포병대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급작스럽게 달려든 중화제국군의 돌격에도 수월하게 대응하며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대도와 창 따위의 손에 익은 냉병기로 무장하고서 백병전을 걸어오는 중화제국군을 상대로 한국군은 총검과 수류탄 권총 등의 근대식 병기로 대처했고, 강을 건너야 한다는 상황적 배경은 실제 전장에서 맞붙는 양군의 숫자를 어느 정도 대등한 선에서 맞추어 주었다.
연이은 전쟁과 프랑스 군사고문단의 지도로 완벽하지는 못해도 근대적 전쟁에 익숙해진 한국군과 달리, 중화제국군은 냉정하게 말하여 신식병기로 무장한 전근대적 군대에 지나지 않았다. 수군의 느닷없는 자살 특공으로 잠시 우세를 잡는가 싶었던 중화제국군은 금세 다시 열세에 몰렸고, 한국군은 되려 강을 건너온 중화제국군을 조금씩 밀어내서 강에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좌익과 우익을 맡은 청나라군이 어디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일제히 패퇴하지만 않았더라면, 전투는 이 시점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