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47화 (147/530)

< 참수작전 >

"저, 적이다! 오랑캐 기병들이 나타났다!"

"방진! 방진을 구축하라! 빨리! 더 늦기 전에 방진을…!"

우지끈-.

뒤늦게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중기병들의 존재를 눈치채고서 방진을 구성하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무관들의 목소리가 병사들에게 닿았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은 뒤였다. 황제 이형이 몸소 이끌고 온 1만 6천여 명의 흉갑기병들은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그대로 뿔뿔이 흩어진 보병들을 휩쓸었고, 숟가락도 없이 허겁지겁 배를 채우느라 손에 화상을 입은 중국군 보병들은 무기를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결과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예정된 대로 진행되었다. 방진을 짤 시간적 여유도, 공간적 여유도 없이 뿔뿔이 산개해 있던 보병들은 최초의 충돌에서만 천여 명 가까이가 충격을 못 이겨 공중에 튀어 오르며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몇몇은 느닷없는 상황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우둑하니 서 있었고, 몇몇은 도망쳤으며 일부는 제자리에 엎드렸고 일부만이 맞서 싸우려 무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황제 이형이 몸소 이끌고서 달려드는 흉갑기병들의 돌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흉갑기병들은 처음부터 고깃국을 퍼먹다가 느닷없는 기습에 노출되어 허둥거리는 반군과 중국군 보병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뒷줄에서 상륙을 지휘하던 지휘부였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홍장과 그 친위군이었다.

"괜히 힘들여 검을 휘두를 필요 없다! 굳이 앞길을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라! 전과에 목맬 것 없다. 이홍장 그 한 놈의 목만 벨 수 있다면 나머지 놈들 전부가 살아도 상관없다!"

"""대한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이형의 명령에 따라, 흉갑기병들은 도망치거나 굳이 저항하지 않는 적병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서 자신들의 진로를 적극적으로 가로막으려 하는 병사들에게만 창을 내지르고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던 병사들은 앞길을 가로막지만 않으면 노려질 걱정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자 무관들의 명령에 따라 적극적으로 흉갑기병들을 저지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도망치거나 숨으려 했다.

당장 한청 연합군이 후퇴하는 것을 보면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던 병사들은 아직 전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병사들은 방진을 형성하는 데 실패하고 흉갑기병들이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진형에 난입한 시점부터 이미 반쯤 전의를 상실한 다음이었고, 한번 도망갈 길이 제시되자 망설이지 않고 뒤돌아서 도망쳤다.

그런 와중에도 몇몇은 고깃국이 담긴 가마솥을 챙겨서 도망치려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당장 중요했던 것은 오랑캐들을 몰아내는 것도, 이홍장의 천하통일도 아닌 당장 주린 배를 채우는 것뿐이던 것이다.

"으하하핫! 그래, 비켜라. 비켜! 도망치는 놈들은 추격할 필요 없다! 지들이 알아서 피해 주니까 슬슬 속도가 붙는구먼! 총기병대 앞으로! 비싸 보이는 갑옷을 입은 무관들은 보이는 대로 다 쏴 죽여 버려라!"

"""충!"""

이형은 신이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형이 먼저 콜트권총을 꺼내 들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방진을 짜라고 지시하고 있던 중국군 무관의 가슴팍에 세 발의 총탄을 박아 넣은 것을 시작으로, 기병들은 일제히 리볼버 권총이나 카빈총을 꺼내 들어 어떻게든 지휘체계를 재건하려 애쓰던 중국군 무관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물론 달리는 말 위에서 방아쇠를 당겨봐야 명중률을 대단하지 않았고, 설령 맞더라도 급소에 맞아 절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격은 분명한 위협이 되어 아직 전의가 남아있던 중국군 무관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했고, 책임감과 자존심 때문에 이미 병사들이 패퇴하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발악하던 중국군 무관들을 무너뜨려 갔다.

일부는 집중사격이 시작되자마자 볼썽사납게 울면서 도망치거나 목숨을 구걸했고, 일부는 엄폐물을 찾아 숨어들었다. 일부는 마지막까지 호기롭게 제 자리에 우뚝 서서 병사들을 고무시켰지만, 이들은 특히나 많은 집중사격을 당해 그 자리에서 부상 혹은 전사 등의 이유로 무력화되었다.

"으, 으아악! 도, 도망쳐! 오랑캐 놈들이다! 몽골 놈들이 말에 올랐다! 오랑캐 놈들이 말에 올랐다고! 이제 틀렸어. 우린 이제 다 죽을 거야!"

"으흑, 으허허헝! 어무이! 어무이이! 살려줘요! 오랑캐 놈들이 말에 올랐다고요!"

이와 같은 일방적인 전투 양상이 계속되자, 중화제국군 병사들 사이에서는 공황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몽골로 대표되는 북방의 기병들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에 가까웠다. 애써 최후의 심리적 보루를 지키고 있던 무관들마저 차례차례 무너져가자 병사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불행 중 다행으로, 기병들은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병사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이 알아서 길을 열어주면서 이형이 이끄는 중기병대는 사실상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서 전열을 돌파하여 순식간에 뒷줄에서 뒤따라 강을 건너든 병사들의 도하를 지휘하든 이홍장의 진영을 사정권에 넣게 되었다. 삽시간에 중화제국군의 진형을 관통한 셈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은 중기병대는 전속력으로 이홍장을 에워싼 그의 친위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폐하! 저희가 후열을 맡겠습니다. 배에 오를 채비를 해주십시오! 후일을 대비하셔야 합니다!"

"저, 저 오랑캐 놈들이 기어이…!"

이홍장은 망연자실해지고 있었다. 흉갑기병대의 돌격으로 이미 중화제국군의 대열은 완전히 무너진 다음이었고, 사실상 그 무렵 이홍장의 수중에 남아있던 건 그가 끌고 온 친위군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반군은 이미 무력화되었으며, 장군들은 함부로 병사들을 투입 시키지 않고서 이형에게 항복하는 것과 이홍장에게 계속 충성을 바치는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주판을 튕기고 있었다.

그의 충신들은 후퇴를 간청하고 있었고, 이미 이형이 이끌고 온 흉갑기병대는 그를 분명히 노리고서 돌격해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고깃국이 담긴 가마솥으로 진형을 어지럽힌 다음 소수의 중기병을 앞세운 참수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이홍장은 그제야 지난 이틀여 간의 심리전은 결국 그를 전선에 나오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는 걸 깨달았다.

'당했다. 당했어! 완전히 당한 거야!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아직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홍장은 있는 힘껏 주먹을 움켜쥐었다. 턱에 너무 힘을 줘서인지, 입안에서는 피 맛이 감돌았다. 입안에 감도는 짙은 혈향에 이홍장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아직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저 오랑캐 황제가 유도한 대로 끌려온 격이 되어버렸지만, 애초에 이 전략은 저 오랑캐 황제에게도 도박 수였다.

도망치는 건 처음부터 선택지가 아니었다. 적의 계략을 사전에 눈치채지 못한 이상, 승리를 거머쥐려면 그 또한 일생일대의 도박을 각오해야만 했다.

"후퇴? 어디로 후퇴한다는 것이더냐. 도대체 어디로 후퇴한다는 말이다! 후퇴해서 난징으로 돌아가면? 이 몸이 진정으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느냐? 그럴 리 없다. 짐은 패하든 승리하든 이곳에 남아있어야 하느니라! 약한 소리 말아라. 우리들마저 저 오랑캐들에게 패한다면 그때야말로 오랑캐들의 천하가 열리는 것이니라!"

"하, 하오나 폐하…!"

"이건 황명이니라! 당장 대열에 복귀하여 방진을 구축하라! 짐은 마지막까지 위치를 사수하겠다. 그대들이 진정 짐을 위하고 있다면 짐을 도와 저 오랑캐들을 막거라. 만일 저 오랑캐들의 돌격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때야말로 모든 것이 바로 서게 되리라!"

그의 마지막 남은 충신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이홍장의 의지는 결연했다. 어차피, 이미 황하를 건너고 뒤에는 연합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설령 배에 올라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100% 생환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보다는 연합함대의 손에 수장당하거나 포로로 잡히는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리고 그렇게 탈출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뒤가 없었다.

그 반면 확률이 얼마나 되건 결사 항전을 각오하고서 위치를 사수하여 끄끝내 돌격을 막아내거나 최소한 지연 시키는 데에 성공한다면, 그때부터는 눈치만 살피던 장수들 또한 하나둘씩 다시 합류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무너진 대열도 차츰 복원될 것이고, 호기롭게 중화제국군 대열을 돌파하여 여기까지 온 중기병대는 중화제국군의 틈바구니에서 갇히는 꼴이 된다.

즉, 이홍장 그 자신이 미끼가 되어 위치를 사수하는 동안 중기병대를 역으로 포위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는 부정할 여지 없이 중화제국군의 대승이 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폐하. 전군, 위치를 사수하라! 겁먹지 마라. 오랑캐 놈들은 소수다! 말 위에 올랐다고 한들 두려워할 것 없다! 전군, 방진을 짜라!"

결국 먼저 꺾인 것은 충신들 쪽이었다. 친위군은 최후의 항전을 준비했고, 괜히 친위군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는 듯 신식 병기로 무장한 그들은 전근대적 보병 전술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타 중화제국군의 병사들과 달리 본격적인 전열 보병으로서 열을 맞추어 방진을 이루었다. 사각형의 방진 한가운데에 이홍장을 숨기고서 총검을 빼곡하게 치켜든 그들은, 얼핏 보기에 고슴도치 같기도 하였다.

"흐흐흐! 좋아, 그렇게 나왔다, 이거지…! 고맙다, 이 우라질 놈아! 혹시나 도망칠까 봐 이 어르신께서 얼마나 가슴 졸여 왔는지 늬들이 알겠느냐!"

친위군의 진형변경을 확인한 이형은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양군의 거리는 고작 해봐야 200m 남짓. 방아쇠 한번 당길 시간이면 이미 서로 부딪히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이미 쐐기형 돌격진을 형성하고 있던 연합군 중기병대에게 진형을 변경하거나 진로를 변경할 새는 없었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방진. 비록 어설프게 따라 한 것뿐으로 군데군데 맨눈으로 봐도 빈공간이 훤히 보이는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방진은 방진이었고 기병에 맞선 보병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설령 몽골, 만주, 조선, 화북의 연합 중기병대라고 한들, 정면에서 확실하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 경우 가장 정석적인 공략법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해서 들이박으면서 조금씩 깎아내고, 마침내 전열이 붕괴하면 그때 총돌격하여 짓밟는 것. 그러나 한 번에 꿰뚫지 못하고서 시간을 끌면 중기병대는 당장 그들이 지나쳐온 수십만 명의 적병들에게 역으로 포위된다.

그러니 이형에게 그런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대신, 이형은 언제나처럼 익숙한 것에 의존하기로 했다.

"배때기에 힘 빡 넣어라! 기병이 먼저 쫄려서 피하려 하는 순간 다 같이 뒈지는 거다! 모두 고량주 한 병씩 까고!"

꿀꺽-.

약과 술 둘 중 하나는 하지 마라. 모르핀을 하지 않았으니 그 약속은 지킨 셈이었다.

먼저 고량주를 꺼내 들고 단숨에 비워버린 이형을 시작으로, 기병들은 일제히 고량주를 꺼내 들고서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비웠다. 여타 기병대라면 카빈총을 난사하건 함성을 지르며 기합을 넣곤 하고 있었을 중요한 시간에, 이들은 고량주를 꺼내 마셔버린 것이다. 당장 이들과 부딪혀야 했던 이홍장의 친위군조차 절로 얼이 빠지는 광경이었다.

'한 놈, 두시기, 석삼,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그리고 그 와중에도 이형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욱 정확히는, 시간을 재고 있었다. 남은 거리는 고작 해봐야 100m 남짓. 거리가 충분히 좁혀들면서 이홍장의 친위군 병사들이 일제히 이쪽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시야에 잡혔다.

남은 거리는 50m. 전열 보병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시야에 잡혔다. 총성이 울리기보다 앞서서 선두에서 말을 몰고 있던 흉갑기병 몇몇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제야 총성이 들렸다. 괴로운 신음을 흘리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운 좋게도 총탄이 흉갑을 관통하지 않아 목숨을 건진 병사들일 터였다.

그러나 이형은 웃고 있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원하던 것이 마침내 시야에 잡혔기 때문이었다.

남은 거리는 25m.

"너구리-!"

이형은 괴성을 질렀다. 영문 모를 소리에, 그와 함께 돌격하고 있던 병사들조차 함께 소리를 질러주지 못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투콰앙-.

굉음과 함께, 이홍장의 친위군은 후열에서부터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느닷없이 휘몰아친 수십, 수백여 발의 산탄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서 후열의 친위군은 핏덩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후열이 무너지면서 전열까지 지지대를 잃고서 휘청인 것은 물론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당장 전방에서 돌격해오는 중기병대에게서 시선을 돌려 뒤를 보았다.

그곳에는 포신에서 포연이 피어오르고 있는 연합함대의 전투함들이 있었다.

"아뿔싸…!"

"깔아뭉개줘라-!"

우지끈-.

양군은 그대로 정면에서 맞부딪혔다. 그리고 충돌과 동시에 연합군의 흉갑기병들은 그 무지막지한 속도와 무게를 앞세워 그들의 진로를 막아선 이홍장의 친위군 병사들을 깔아뭉개 버렸다. 바로 직전에 후방에서 날아온 산탄 사격에 휩쓸린 보병 방진의 저지력으로는 사실상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고서 전속력으로 내달려온 중기병대를 막을 수 없었다.

충돌 직후 충격에 목재 창신이 터져나가고, 수백 명의 병사들이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 흉갑기병 또한 충돌의 반작용을 고스란히 받아 말의 목을 꿰뚫고서 가슴팍에 총검이 꽂히는 등, 수십 명의 기병들이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자리에 널브러지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피가 튀기고, 내장이 흩뿌려졌다. 곧이어서 제2파가 부딪혔다. 먼저 충돌한 우군 기병들이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뒤에서 들이박은 제2파의 충돌로, 마침내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던 최후의 전열마저 무너져 내리며 방진은 해체되었다.

"이, 이 미치광이 오랑캐 놈이…!"

이홍장으로서는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방진이 무너지면서 후열의 기병들은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전열을 무너뜨리고서 대열에 난입했고,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러대며 총을 난사하는 흉갑기병들의 난동으로 삽시간에 진형은 무너져 내렸다.

그 뒤로는 그저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1만 6천의 중기병들이 연달아 충돌하면서 친위군은 단숨에 황하강 변까지 밀려났다. 진형이 무너진 와중에도 전투를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투지는 분명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이미 전세는 기운 다음이었다. 중화제국군은 무너지고 있었다.

"폐하,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분명 언젠가 다시 태양이 뜰 것입니다! 폐하, 지금은 우선 옥체를 보존하시는 것만…!"

타타앙-.

마지막까지 그의 곁에 남아 그의 옥체를 걱정하던 충신들마저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진형은 완전히 붕괴한 다음이었고, 그런데도 병사들은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전황은 이미 절망적이었다. 퇴로는 없었다. 원통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대도의 칼끝이 점차 목젖을 겨누었다.

"네놈이 그 이홍장이라는 역적 놈이렷다!"

그때였다. 그의 등 뒤에서 어딘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홍장은 그제야 칼끝을 내렸다. 칼끝을 내리고서, 천천히 뒤돌아섰다.

태양을 등져서일까. 눈이 부셨다.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뒈져라-!"

서걱.

그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 하나만큼은, 똑똑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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