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집 >
"아니 뭐, 그야 고맙기는 한 일이지만…."
이형은 말끝을 흐렸다. 분명 영국이 알아서 중원 땅에서 나가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안 그래도 언젠가는 영국을 밀어내야 하던 판국에, 이제 천하를 나누면서 각각의 이권을 분배해야 할 시기에 영국이 알아서 물러나 준다면야 그야말로 하늘이 보살피심이었다. 그러나, 이형으로서는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도대체 무슨 사태가 일어났기에 영국이 알아서 이권 분배까지 이하응에게 떠넘기고서 유럽에 집중해야 하는가 하는 의아함이 들었다.
'뭐지? 런던 코뮨이라도 나왔나? 세포이 잔당이라도 재봉기했나? 아니, 그럴 리가. 그도 아니면 세계대전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확전 되었나? 프랑스가 생각보다 잘 싸워서 영국이 총력을 기울여서라도 오스트리아, 러시아를 지원해야 할 판이 짜였나?
그도 아니면 그 반대?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너무 선전해서 정말로 신성로마제국이 부활할 판도가 완성되었나? 그 정도 사태가 아니면 지금 이 상황에서 조기 총선의 원흉이 되었던 중화제국 사태의 뒷수습조차 포기하고서 물러날 이유가 생각나지를 않는데. 도대체 뭐가 일어난 거지? 그 영국이 차려놓은 잔치까지 고사하고서 유럽에 집중해야 할 만한 사태가 뭐가 있지?'
그러나 이형으로서도 마땅한 대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당장 극동의 사정에 집중하느라 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정보수집에 소홀하다 보니, 이형이 뭐라 결론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것이다. 다만 가벼이 넘길 수는 없었다. 현재 미국이 오보 사태를 시작으로 뜻하지 않게도 영국 보수당과 공조하며 발을 맞추고 있던 것을 고려하면 보수당의 행보는 어떤 식으로건 미국의 영향력이 해외로 투사됨을 의미했다.
그 말인즉슨 아시아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은 반대급부로 지구상의 다른 어딘가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영국과 미국의 협력이 어느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기억하고 있는 이형으로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협력은 그 자체로서 세계정세를 뒤흔들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의 협력이 앞당겨지면 앞당겨질수록 팍스 아메리카건 룰 브리타니아건 영미권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는 공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신흥 강자가 등장하기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의미였고, 이형이 주도하는 범아시아 조약기구 또한 어떤 식으로건 견제를 받게 된다는 의미였다. 이형으로서는 어떻게든 자세한 내막을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아니, 그 영결리가 먼저 발을 빼다니. 그래, 구체적으로 그들이 뭐라고 하였소? 한번 들어나 봅시다."
"이 늙은이에게 그 오랑캐들이 세세한 사정까지 알려주었겠습니까? 소신 또한 이번 일은 아시아인들이 어련히 해결하리라 믿고 기다리겠다는 통보를 들었을 따름입니다. 실제로 영길리가 군사를 보내지는 않았어도 일은 원만히 해결되었으니, 당장은 그런 줄 알고서 넘기시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당황한 이형과는 다르게 이하응은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로서는 대만국으로 건너간 이래로 영국에게 이런저런 참견 밖에는 듣지 않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물론 사태가 수습되어 영길리가 돌아오고 나면 또다시 영국의 간섭에 시달려야겠지만, 이하응은 그전에 이번에야말로 대만국 내에 자신의 세력을 다져 영국 또한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할 구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형은 이하응처럼 속 시원하다고 반응할 수 없었다. 당장 급하게 허둥지둥할 필요는 없더라도, 이형은 한 번쯤 어떤 식으로건 유럽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영국이 극동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야지만 후일 영국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하건 대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 알겠소. 그럼 우선 당장 구호물자를 대거 풀고자 하니 그렇게 알아두시오. 앞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쁠 거요. 당장 굶주려 도적 떼가 된 백성들에게는 구휼미를 베풀고 빈 땅을 나누어주어 정착시키고, 치안을 안정시켜 도적 떼들은 토벌하고 알아서 복속해오는 군벌들은 거두어서 작위를 내리도록 하겠소. 그렇게 당장 질서가 회복되면 그다음에 번왕들을 세울 것이며, 천하를 아홉으로 나누어 각각의 번국을 세우리다. "
물론 그 또한 당장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절실한 것은 당장 중화제국이 멸망하고 난 다음 텅 빈 천하를 수습하여 온전하게 대한제국의 것으로 삼는 일이었다. 그래야지만 천하를 아홉으로 나누건 말건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형이 일부러 한성과 베이징을 떠나 난징에 자리 잡은 까닭이었다. 본래 중화제국의 중심이 난징에 있었던 만큼, 그가 난징에 자리 잡으면 중화제국의 행정망을 수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하응은 이형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형이 서류작업과는 도통 인연이 없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가 홀몸으로 이형을 보필해야 하는 꼴이었으니 알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전주 이씨 종친이 천하를 통치하게 된다면 값싼 대가였다. 이하응은 잠자코서 이형을 도와 중화제국을 수습할 마음을 굳혔다.
"그야 물론이겠지요. 하면, 태평천국을 지칭하는 사교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장은 내버려 두시오. 그들에게는 우선 번왕 작위를 약속해주되, 나중에 꼬투리를 잡아 패하고서 멸할 생각이외다. 우선 시정잡배들부터 정리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큰 도적을 노릴 수 있게 될 것이오. 다만 그 큰 도적 두목 놈은 이리저리 음모를 꾸미는 걸 좋아하는 음습한 놈이니, 국정원을 시켜서 철저히 감시하도록 할 작정이요."
"이치에 맞는 말씀이십니다. 마땅히 그렇게 하여야겠지요. 후일이라도 불란서와 영길리가 이권을 내놓으라 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달라는 대로 내주시오. 그들 또한 이번 전쟁에서 가장 공로가 컸던 것은 우리 대한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영토를 요구하지는 못할 거요. 기껏해야 중원에서의 이권 유지나 광산 개발권, 철도 부설권, 조금 더 나아가면 일부 항구의 조차 정도겠지. 그 정도는 내주어도 간지럽지도 않소. 당장은 저들과 척을 질 이유도 없으니 내주시오. 어차피 장차 중원을 직접 통치할 것도 아니니까."
이형은 담담하게 답하면서 원수복을 벗어버리고서 모던보이들이 흔히 입고 다니는 양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언제나 말 위에서 행패를 부리던 모습만 기억하고 있던 이하응으로서는 낯선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하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모습이 변해봐야 그리 달라진 것도 없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노서아와의 분쟁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직 저들과는 결판이 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그대가 알바가 아니오. 그건 대한제국의 일이니 짐이 알아서 총리대신과 논의하여 처리하리다."
이형은 딱 잘라 답했다. 그건 이하응은 더 이상 대한제국에 속한 인물이 아니라는 통보였다. 이미 대한제국을 등진 이하응에게 다시 대한제국에 돌아올 여지를 줄 수는 없다는 경계의 표시이기도 하였다. 이하응 또한 경계의 기색을 읽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풀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중원의 천명을 거머쥔 것으로도 모자라 그것을 전조가 사용하였듯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제멋대로 사용하고 주무르려 하는 작자가 이렇게 노골적인 경계를 보여준다는 것에 공포를 느껴야 할지, 아니면 감동해야 할지 이하응으로서는 분간이 가지를 않았다.
"…소신이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황상께서는 이 늙은이를 가엽게 여기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여주소서."
"그야 물론 용서하리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소. 이런데에 시간을 낭비할 새도 없단 말이오. 우선 구휼미를 베풀고 유랑민들에게 황폐해진 농지를 나누어주어 이를 다시 개간하도록 하며 민심을 안정시켜야겠지. 자, 어서 시작해봅시다."
이형은 짝짝하고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 모습에 이하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자신이 직접 서류 작업을 보겠다고 말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조선에서 봐온 이형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혹시, 폐하께서 직접 말씀입니까?"
이하응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묻고서 자신도 실수를 깨닫고서 아차 싶은 말이었다. 굳이 따로 답을 구할 것도 없으리라 여기던 탓이었다.
그러나 이형은 그런 이하응을 향하여 태연하게 답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소? 그야 물론이지. 장차 태자에게 평화로운 천하를 물려주려면 지금부터라도 책을 가까이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자, 무엇을 그리 소란 떨고 있는 거요? 어서 시작합시다."
이하응은 한순간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 흉내를 내는 도깨비나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는 없었다.
***
"어림도 없는 말씀입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제아무리 우리 대영제국이 강성하다고 하여도, 이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양국 모두에게 전쟁을 걸겠다는 꼴이 아닙니까!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내놓은 것은 어디에 사는 개뼈다귀입니까!"
한편, 그 무렵 영국.
솔즈베리 후작은 길길이 날뛰며 디즈레일리 수상을 향해 폭언을 퍼붓고 있었다. 무례인 줄 알면서도 솔즈베리 후작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가 전해 들었던 내용이 그의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국은 강대하며, 대영제국이 지배하는 질서는 세계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영국 해군 혼자서 나머지 해군 전부와 싸운다고 해도 이길 수 있는 강대한 힘을 손에 넣었고, 이런 압도적인 해군력을 내세워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세우며 날로 팽창해가는 제국의 국운을 더욱 강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강성한 것은 어디까지나 해군이지, 육군이 아니다. 대영제국의 인구가 수억인 까닭은 어디까지나 영국령 인도 덕분이지, 본국인 영국 열도의 인구는 대한제국보다도 적다. 그런 적은 인구와 협소한 본국 영국 열도만으로 세계 전체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거대한 해군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벅찬 것이다. 당연히 육군에 투자할 여력이 남아나지를 않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오스트리아를 적대하던가, 아니면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어 프랑스를 적대해야 합니다! 두 육군 강국 중 적어도 하나는 아군으로 삼아 나머지 하나를 쳐내지 못하면 유럽 대륙에서의 우리 대영제국의 영향력은 증발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간 우리 해군이 승리를 거두 왔던 것은 어디까지나 무역로를 봉쇄하고 우리 영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일체 저지하는 동안 동맹국의 육군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성한 육군 대군을 아군으로 삼지 못하고서 대뜸 우리 대영제국의 육군력만으로 이번 대전에 함부로 참전하였다가는 식민지에서의 이권이야 아무튼 당장 유럽에서의 영향력이 증발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유럽의 패권을 거머쥔 단일 패권세력의 등장을 낳아 장차 영국 본국마저 사정권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대륙봉쇄의 악몽은 옛 나폴레옹 전쟁 시절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솔즈베리 후작은 숨 한번 고르지 않고서 열변을 토했다. 모든 말을 마친 다음에야 그는 간신히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골랐다. 그제야 솔즈베리 후작은 자신이 흥분했었다는 것을 자각했지만, 그는 자신의 흥분이 과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천생 외교관인 그가 보기에 지금 대영제국의 대외정책은 그만큼 어처구니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솔즈베리 후작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차갑게 식은 홍차를 아무렇게나 들이키는 동안에도, 디즈레일리 수상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침중한 얼굴이었고, 그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솔즈베리 후작으로서는 끔찍한 일이었다. 디즈레일리의 의사가 아직도 굳건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는 점차 이성적인 설득을 포기하고서 감정에 의존하여 간청하기 시작했다.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 대영제국이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장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둘 중 하나가 이를 받아들인다고 한들 그것이 10년이나 가겠습니까? 설령 이 타협안이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고작 해봐야 10년도 안 되는 짧은 평화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각하께서는 총명하신 분이잖습니까. 그동안 우리 대영제국을 위하여 각하께서 얼마나 그 지혜와 열정을 바쳐왔는지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제게 이틀간의 시간만 주십시오. 적어도 이보다는 나은 타협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각하께서는 총명하신 분입니다. 이런 멍청한 일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란 말입니다!"
"그야 물론 나는 총명한 인물이지."
디즈레일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솔즈베리 후작은 잠시 반색했으나, 여전히 디즈레일리의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읽고서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솔즈베리 후작의 절망은 그것이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본관으로서도 달리 수가 없어."
"오, 제발. 하느님, 그러지 마십시오. 언제부터 이렇게 고집불통이 되셨습니까? 아니, 진정으로 의원들이 이를 용납 했습니까? 저처럼 외교무대에서 뛰던 이들이 몇이고 있을 텐데, 어째서 그들까지 이런 무책임한 계획에 동의했단 말입니까!"
"동의하는 수밖에. 이는 여왕 폐하께서 명하신 바이니까."
한순간이었다. 솔즈베리 후작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고가 정지해 버렸다. 그런 솔즈베리 후작의 귓가로, 디즈레일리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차분히 하나둘씩 때려 박아 넣었다.
"지금은 작고하신 앨버트 공께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형제라는 걸 알고 있겠지. 그들이 북독일 연방의 회원국으로, 누구보다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 통일을 지지해왔다는 것 또한 말일세. 그 공작이라는 놈이 여왕 폐하의 마음을 움직였어. 조기 총선에만 신경 쓰느라 멍청하게도 여왕 폐하께 시선을 돌린 내 잘못이네."
"…맙소사."
"여왕 폐하께서는 프로이센을 도와 그들의 독일 통일을 어떻게든 돕고자 하시네. 그것만이 돌아가신 앨버트 공의 넋을 달래는 길이라 여기시는 모양이야. 이를 위하여 프로이센을 발아래에 두어 신성로마제국을 재건 시키려는 오스트리아는 물론, 프로이센을 멸하려 하는 프랑스와 프로이센령 폴란드를 노리는 러시아 모두와 적대할 각오를 굳히고 계시네.
지금 이 협상안은 프로이센을 도와 나머지 유럽 전부와 전쟁을 치르려 하시던 여왕 폐하를 설득하여 가능한 나머지 열강들과의 전쟁 가능성을 줄이고 줄인 결과물이야. 이 이상 프로이센에 불리하게 한다면 여왕 폐하께서 내각의 결정에 따라주지 않으실 테고, 반대로 이 이상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등에 불리해진다면 그들이 우리 대영제국의 협상안에 따르려 하지 않겠지."
우리 모두 여왕 폐하의 투지를 얕보고 있었어.
디즈레일리는 회한에 찬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는 침중한 어조로 솔즈베리 후작에게 말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의 충성스러운 식민지인들은 이번 전쟁에서 제국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했네. 미국인들도 이번만큼은 우리를 돕겠다더군. 중국과 러시아의 유착관계를 슬쩍 찔러줬더니 지난번 조러 전쟁에서의 미국 책임론과 국유화 사건을 비롯해 극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혼란상이 태평양 진출을 노리는 러시아인들의 음모라 여기게 된 모양이야. 멍청한 착각이지만, 구태여 정정해줄 이유는 없지.
러시아와의 전쟁은 이미 확정되었고, 그대의 활약상에 따라 앞으로 프랑스 오스트리아 모두와 적대하거나 둘 중 하나만 적대하거나가 갈리게 되는 셈일세. 자, 어떻게 하겠나?"
솔즈베리 후작은 침울하게 답했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늦었습니다. 저들에게도 이번 기회는 두번 다시 없을 기회인만큼, 결코 물러나지 않을겁니다. 하다못해, 프랑스만큼은 나폴레옹 전쟁의 악몽을 잊지 않았기를 기대하지요."
"그래, 그래야겠지."
디즈레일리는 조용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