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55화 (155/530)

< 골칫거리 >

이하응에게는 믿을 수 없게도, 이형은 이하응과 함께 차분하고 끈덕지게 책상 앞에 눌러앉아 정무를 보았다. 따로 이하응이 어디 도망갈 수 없도록 술수를 부린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하응으로서는 그야말로 해가 내일은 서쪽에 뜨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비록 서류와 친하지 못한 성정은 전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인지라 이하응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지만, 그것이 어디던가.

결국 그날만큼은 이형보다 앞서 이하응이 먼저 잠을 청하게 되었다. 사실, 이는 어디까지나 대만 왕국의 실권자로서 정무를 보면 그만인 이하응과 대한제국의 황제이자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맹주로서 이형이 처리해야 할 정무의 양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탓도 있었다. 이하응이야 전후 대만 왕국이 차지할 이권이나 영국의 요구사항들을 따르는 수준의 사후처리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이형은 전후 천하를 조율해야만 했다.

어느 지역이 유독 기근이 심각하며, 또 어떤 지역이 유독 치안이 망가져 있는가. 무관들을 파견해야 할 곳은 어디이고, 관료들을 파견하여야 할 곳은 어디인가. 하나 같이 황제로서 알아두고 정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안들이었다. 장차 통치를 완전히 방폐할 것도 아닌 이상 말이다. 천하를 지금 이대로 난세로 남겨두고 싶다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이형은 작금의 천하를 난세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 없었다.

"성가시구먼."

이형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서는 짜증 어린 어투로 투덜거렸다. 탁상을 가득 메우던, 그의 머리 높이까지 올라오던 서류의 산은 낮 동안 내내, 그리고 새벽잠을 설쳐가면서까지 필사적으로 활자를 탐닉한 끝에 마무리되고 난 다음이었다. 물론 서류의 양을 고려하면 이조차도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딱히 그가 유능하였다기보다는, 중화제국의 관료들이 사전에 이러한 정보들을 모두 정리해둔 다음이라서 이형으로서는 해당 보고서의 사실 여부 정도만 파악하면 그만이었던 까닭이었다. 중화제국은 지주들과 외세의 힘을 빌려 태어났다는 태생적 한계를 이기지 못하여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합당한 해결책을 실시할 수 없었을 뿐, 해법 자체는 이미 내부적으로 내놓은 뒤였다.

무엇보다 이러한 유익한 장계들을 다름 아닌 이홍장이 쟁여두고 있었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했다. 이홍장 또한 해결책도 문제의 심각성도 알고 있었다. 단지, 마지막까지 지주들과 외세들의 눈치를 보느라 실행할 수 없었을 뿐.

"지금쯤 뭐라 움직이려 할 것은 분명한데, 어떻게 움직일지 짐작이 가지를 않는단 말이야."

이형은 가만히 검지로 탁상을 두드렸다. 검지 끝은 쓰촨성에 틀어박힌 태평천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류 작업을 마무리 지은 이형이 이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밤을 새게 만든 원흉들이기도 했다. 세력 그 자체는 티끌만도 못하여 당장 이형이 한번 후-하고 불기라도 하는 순간 모두 날아가 버리겠지만, 그래도 현시점에서는 멋대로 눌러앉은 대한제국을 제외하자면 이 중원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이었다.

그럼 이형의 행보에 실망한 이들이 태평천국에 혹하는 수도 적게나마 있었다. 사실, 이형으로서는 그편이 더 편하기도 했다. 새로운 천하에 반발하는 불온세력들을 한데 모아서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여러 차례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다른 건 몰라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일만큼은 자신감이 붙은 이형이었다. 반란을 일으켜준다면야 기꺼이 깔아뭉갤 의향도 그런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다. 마치 이형이 자신들에게 이렇다 할 대답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로 자신들도 이형이 대답을 주기 전까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좁쌀만도 못한 쥐새끼들이 정말 성가시게 만들고 있군. 토벌하건 왕으로 봉하건 어디 좋을 대로 해보라 이건가? 지금 사정이 급한 건 네 놈들일 텐데."

이형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 이미 방침은 정해두기는 했다. 물론, 이형의 선택은 토벌이었다. 구태여 태평천국 잔당을 살려둠으로써 얻게 될 이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찾자면 공통의 적으로서 범아시아 조약기구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것 정도일 텐데, 이 역할은 더욱 강성한 러시아가 충분히 대신해줄 수 있었다.

그러니 이형은 중간과정이 어떻게 되건 최종적으로는 태평천국을 토벌할 작정이었다. 자살공격에 민간인 학살에 종교재판에 온갖 패악질을 저지른 태평천국을 토벌하고자 한다면 딱히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었다. 그저 그 과정에서 태평천국이 어떤 식으로건 발악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는 궁리를 하던 것뿐. 토벌이라는 최종 목표 자체는 변하지 않을 터였다.

당연히 이형의 마음이 이미 정해진 만큼 급한 곳은 태평천국일 수밖에 없었다. 이형의 상식에 따르자면 당장 이형에게 온갖 아첨을 퍼부어대며 목숨을 구걸해야 옳았다. 하지만 태펴천국은 정반대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이 이형으로서는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믿는 구석이 따로 있는 건가? 하기야, 이쯤 되면 연관이 없는 편이 더 이상하겠지. 어떻게, 어디에서,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저 태평천국 놈들이 강짜를 부릴 정도면 뒤를 봐주는 키다리 아저씨 하나쯤은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야."

이형은 탁상에서 새로운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세계지도였다. 굳이 미터법을 따르지 않고서 야드 파운드법에 따라 마일로 축척이 표시되어있는 점은 영미권에서 만들어졌다는 걸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이형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었다. 이형은 지도의 북쪽을 큼지막하게 차지하고 있는 나라를 빤히 노려다 보았다.

"돌고 돌아서 또 러시아 놈들인가. 정말로 지치지도 않는 놈들이야. 그러고 보니 동치제랑 서태후도 러시아 놈들이 데려갔다고 했지. 하지만 지금 그 마녀를 사용하기에는 당장 유럽에서의 전쟁이 급할 텐데."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형으로서는 뜻하지 않게 적대하게 된 이래로 시도 때도 없이 충돌하고 있는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몽골에서는 서로 맞부딪히고 있는 적국이기도 했다. 대강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다. 러시아가 태평천국의 뒤를 봐주며 강짜를 부리는 그림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함부로 병사들이 흩어지지 못하도록 만들어 중원의 치안 회복이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대한제국이 중원의 혼란 수습에 실패해 허덕이는 동안 유럽에서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은 러시아가 다시 극동에 개입하여 태평천국 내지 동치제 모자를 이용해 세력을 모으는 것이다. 계획의 현실성 여부와는 별개로, 절대 순순히 극동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아집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하다못해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열강을 상대로라면 몰라도, 조선-대한제국 같은 극동의 야만 국가에 패하여 내쫓기는 구도만큼은 결단코 싫다는 러시아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해 이형은 헛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러일전쟁 때도 피의 일요일만 아니었더라면 러시아는 절대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겠지. 우라질, 레닌이나 트로츠키보고 조금만 빠르게 어른이 되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이형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장 쉬운 방법은 러시아에 챔피언을 내세우지 말고 직접 링 위로 올라오라며 도발하던가 아예 먼저 연해주를 침공하면서 억지로라도 링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일이겠지만, 그러자니 당장 청나라는 이미 도적 떼가 되어버린 중화제국군 잔당들을 토벌하는 데만도 바쁘다. 다시 말해 청나라에 중화제국의 수습을 떠맡기는 것도 곤란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당장 한국군도 구 중화제국 영토 곳곳에 우후죽순 자라나고 있는 군벌들이나 도적 떼들을 정리하여 치안을 수습해야 할 병력이 아쉽다. 후방에 남아있는 건 어디까지나 방위선을 지킬 최후의 예비 전력일 뿐, 해외 침공을 전제로 훈련을 받은 정규전력이 아니었다. 그런 반쪽짜리 전력으로 기습공격을 펼치는 건 러시아를 지나치게 얕보는 꼴이었다.

이형의 구상대로라면 적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는 큰 가지들은 모두 쳐내고서 중원의 수습도 대강 마무리 될 테니, 러시아와의 본격적인 승부는 적어도 이듬해가 될 수밖에는 없었다.

"흐음…?"

잠시 산책이라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한 이형은 그의 관저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어느 젊은 병사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 병사가 자신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기골이 장대하거나, 풍채가 위풍당당하다거나 눈빛이 범상치 않았다기보다는.

"아직 학업도 다 마치지 않았을 웬 젖비린내 나는 어린애가 병사 놀이를 하고 있느냐?"

"아, 아닙니다! 소, 소신은 이제 갓 스물이 된…!"

"스물은 무슨. 아직 코밑이 파릇파릇한 놈이 무슨 스물이라는 말이더냐. 만인지상의 황제를 속이려 들다니. 고얀 놈이로고."

그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만큼이나 키도 작았을뿐더러 병사가 되기에는 너무나 어려 보였기 때문이었다.

"징병관이라는 놈이 꾸벅꾸벅 졸면서 병사들을 가려내기라도 했는가, 어쩌다 이런 핏덩이를 그냥 보내주었을꼬. 그래, 고향이 어떻게 되느냐? 이름은 어떻게 되고? 하다못해 집으로 편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마. 너와 같은 어린놈까지 이런 전장에 나설 필요는 없노라."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이형은 눈앞의 병사가 뭐라 변명하건 듣지도 않고서 일방적으로 말했다. 이렇게 나이를 속이고서 자원한 병사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던 만큼, 이형으로서는 굳이 이 병사가 뭐라 변명하건 들어줄 생각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결국 특별할 것 없는,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 시대의 애국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쭈뼛거리며 병사가 자신의 이름을 말한 순간, 이형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고향, 은 아니지만. 전주에서 온 전봉준, 이라고 하옵니다."

"…녹두 장군이었나?"

"네?"

이형의 말에 영문을 몰라, 젊은 병사-전봉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뜸 녹두라는 자신의 별명을 알아맞힌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황제의 입에서 대뜸 장군이라는 말부터 나오니 그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는 없던 것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형은 이형대로 당황스러웠다. 그로서는 그저 흔하디흔한 애국 청년이 제 나이조차 속이고서 군에 자원한 것 정도라 여기고서 집에 돌려보내려 했더니, 눈앞의 청년이 흔하디흔하기는 커녕 유명인 중에서도 유명인이었다.

'어떻게 한다. 원칙대로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 일단 역사적 행보를 보면 장군으로서 크게 될 싹수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한데, 내 곁에 두고서 일찌감치 키워줘? 아니면 나 같은 아마추어가 함부로 건드릴 바에야 일찌감치 군관학교에 꽂아줘 버려? 진짜로 어쩌지?'

이형은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째 무엇 하나 해결되는 것 없이 계속 골칫거리만 늘어나고 있었다.

***

한편, 이형이 전봉준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무렵.

"독일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파리까지도 장군의 무명이 자자하오. 정말로 기대한 이상으로 분투해주었구려. 그대는 우리 프랑스의 영웅이라오."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폐하. 소신에게 그와 같은 거창한 명성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베르사유, 그 베르사유 궁전에, 그것도 전쟁의 방에 홀몸으로 초대되다니. 하하하, 제기랄. 속이 쓰려서 죽을 것 같군. 내 주제에 분수에 맞지 않는 복에 겨웠어.'

지구 반대편의 루이 중장은 공교롭게도 이형과 비슷하게 아직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에 대하여 고심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더욱더 끔찍했던 것은, 이형에게 전봉준은 고작 해봐야 병사 한 사람이었지만 루이에게 있어서 그가 마주하게 된 나폴레옹 4세는 그의 황제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여차하면 뒤돌아서서 갈 길 가면 그만인 이형과는 다르게 루이로서는 멋대로 자리를 떠나거나 도망칠 수도 없었다. 구태여 전장에 나선 그를 따로 이야기하려 불렀다는 것은 절대 심상치 않은 사안에 관하여 상의할 작정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루이로서는 그저 왜 이렇게 전선이 지지부진하냐고 자신을 책망하기 위하여 부른 것이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이미 조금씩 참호전의 실상에 대하여 유럽 전역에 걸쳐 널리 알려진 만큼 루이로서도 변명거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듣자 하니 뮌헨을 포위하였다고 들었소. 정말이지 대단하구려. 그러나, 프로이센인들의 항복은 여전히 받아내지 못한 거요?"

"송구하옵니다, 폐하. 하오나, 프로이센인들의 저항이 원체 거센지라…."

"겁쟁이 감자 놈들 같으니라고."

어린 황제는 분노를 담아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 기저에는 분함과 증오가 깔려있었다.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들을 향한 응당한 분노의 발현이었다. 루이는 차마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넬 생각도 하지 못하고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런 루이를 말없이 내려다보던 어린 황제는, 이내 깊이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영국의 전권대사가 찾아왔소. 그들이 말하기를 차라리 라인란트를 떼어갈지언정 프로이센을 멸하지는 말아달라더군. 계속 프랑스가 프로이센을 멸하고자 한다면 영국 또한 프랑스를 적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 전쟁 배상금이나 군비억제라면 몰라도, 프로이센의 멸망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소."

루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그 상대가 다름 아닌 영국이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프랑스의 군인으로서 루이는 황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또한 프랑스와 싸우고 싶지는 않다고 했소. 자신들은 러시아와 싸우는 것만으로 바쁘다더군. 그렇다면 공연히 프로이센의 사정에 끼어들지 않으면 될 것을, 놈들도 내부적으로 이래저래 복잡한 모양이야."

"그래서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설마, 앞으로는 영국과도 전쟁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것이야말로 혁명 전쟁기의 포위망이 재건되는 격이 아닙니까!"

저도 모르게 외치고서야 루이는 아차 싶었다. 아직 황제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입을 열었다는 자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러나 루이의 우려와는 달리 어린 황제는 그를 책망하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섭정 의회와 같은 말을 하는구려. 내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쫓아내고 싶었으나, 의원들이 어찌나 난리를 피우던지 차마 그러지는 못했소. 그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던 차에, 장군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잠시 불렀소이다. 한데, 장군 또한 섭정 의회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듯하구려."

짜증 섞인 어투였다. 마음 같아서는 섭정 의회가 뭐라고 하건 무시하고서 프로이센을 멸해버리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황제의 권력 기반은 빈약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정말로 믿고 의지할만한 친위세력은 그의 손으로 직접 사령관에 임명한 루이 정도였다.

그리고 루이 또한 우려의 의사를 표한 이상, 어린 황제는 마냥 자기 뜻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어릴지언정, 멍청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영국의 중재를 받아들인다 칩시다. 백성들에게는 뭐라고 설득하겠소? 무슨 명분으로 전쟁을 끝내냐는 말이오."

루이를 흘겨보며, 어린 황제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영 마땅치 않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작 이 정도로 전쟁이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루이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황제는 조금 기분이 풀린 듯 구겨진 인상을 폈다.

통일을 외치던 독일인들의 함성이 신성 로마 제국의 부활로 바뀌어 유럽을 뒤흔들려 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는 결코 카롤루스의 황관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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