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65화 (165/530)

< 말과 함께 태어난 자 >

이형이 쓰러졌다는 소문이 천하에 널리 퍼지고, 이형이 장안에 머물게 된 지 한 달여.

"…거 이상하구먼."

장안성에 머물던 이형은 기이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가 이상했다. 장장 한달 여간을 숨을 죽이고서 전봉준에게 이형의 옷을 입히고 이형 자신은 전봉준의 옷을 입어가면서 다시금 이형을 암살하려는 암살자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도통 소식이 없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최소한 이형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하게 확인해두기 위해서라도 한번 찔러보는 것이 맞을 텐데 말이다. 이하응이 진정으로 이형을 정리하고 자신의 천하를 논하고자 하려 한다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까닭이 없었다. 이형의 군세는 장안에 틀어박혔고, 이형 본인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지금보다 이형의 지도력이 흔들리거나 도전받는 무렵도 없었다.

오죽하면 처음에는 눈치를 보던 군벌들도 하나둘씩 제각각 궐기하기 시작했을까. 물론 그렇게 봉기한 군벌들은 그 즉시 한국군에게 짓밟혀 풍비박산이 나고 있었지만, 이런 사례가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소문이 점점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하응이 정말 이번 일을 주도했다면,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움직여야 옳았다.

그러나 이하응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이하응은 남경에 틀어박힌 채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으며, 그렇다고 그때의 암살시도 이후로 이렇다 할 암살시도가 있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형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아는 이하응이라면 한번 기회를 잡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 보낼 위인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장안성에 숨어든 암살자라고 해봐야 잔챙이들뿐. 어설프기 그지없는 일솜씨를 보면 아마 그 치들은 정말로 태평천국에서 보낸 암살자들일 터다. 그렇다면 막상 천하장안이 그때 한번 움직이고서는 숨을 죽이고 있다는 말인가?"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한번 이형에게 정략을 걸어온 이하응이 바로 그다음 침묵한다? 그건 이상하다. 그래서 좋아질게 뭐가 있다는 말인가. 금방 이하응이 역습해올 것이라 여기고 대비하고 있던 이형만 공연히 장안에서 시간을 질질 끌게 되지 않았던가.

이형이 장안에 오래도록 머무르는 게 이하응에게 있어서 대관절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글자 그대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형이 없는 동안 남경에서 주도권을 거머쥐기에도 수중에 있는 게 얼마 되지 않으니 뭔가 대업을 꾸미기에 부족하다. 한번은 이형이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닐까 고민해보았지만, 그것도 이상하다.

정말로 그게 목적이라면 지금쯤 이미 이형이 쓰러지는 동안 섭정 자리라도 꿰차겠다고 나서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처럼 숨을 죽이면서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드는 건 혐의를 회피하고자 할 때나 유효하지, 이형의 사후 급변할 정세에 대비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슬슬 움직이면서 미리 판을 깔아두는 것이 옳다.

"성가시게 되었구먼."

이형은 툴툴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향하고자 하는 곳은 전봉준이 침상에 누워 간호를 받는 병실이었다. 아니, 엄밀하게는 지금 전봉준은 전봉준이라기보다 가짜 이형이라고 불리는 게 옳지만 말이다. 워낙에 상처가 깊었던 탓인지, 한달여 전 그날 이후로 전봉준은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매일같이 침상에 누워 끙끙 앓고만 있었다.

그날도 이형은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전봉준의 용태나 한번 슬쩍 구경하고서 곧장 처소로 돌아와 병서를 읽거나 사격으로 노기를 억누를 참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매일같이 침상에 누워 잠만 자던 전봉준이 그날따라 벌떡 일어나 침상 위에 주저앉아 있던 것이다.

"폐하…?"

"호오, 기어이 정신이 들었느냐. 녀석, 걱정하게 만들더라니. 그래, 너희 황제 되시는 몸이니라. 뭐, 지금 행색만 봐서는 짐이 시동이고 네가 황제인 듯싶다만."

어리둥절해 하는 전봉준을 바라보며, 이형은 비로소 환히 웃었다. 한달 동안을 의식도 없이 누워있다 보니 얼굴색은 누렇게 뜨고 피부는 거칠거칠한 데다 온통 붕대투성이에 머리는 산발인 등, 그야말로 추레하기 그지없었으나 그게 어디 던다. 여차하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던 한달 전의 사태를 떠올리면 이형으로서는 아직도 이가 절로 갈리는 듯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황제라니요. 그런 당치도 않은-."

이형의 말에 전봉준은 어리둥절해 하며 제 옷을 살피다가, 그제야 질겁을 하면서 발버둥 쳤다. 비록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가 입을 옷이다 보니 입기 편하도록 간소화되어있다지만, 반드르르한 비단에 황금 실로 새겨진 용이 휘감아 승천하려 하고 있는데 이게 본래 누가 입어야 할 옷일지 모를 리가 없었다.

전봉준은 옷을 벗으려고 하다가 뒤늦게 함부로 옷에 손을 대 흠을 내거나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급히 손을 떼었다가 이 옷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 역모로 추궁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서 벗으려 하다가 하며, 그야말로 호들갑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걸 구경하는 이형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때 원체 부상이 심하였다 보니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가 먼저 제의한 일을 두고서 여기까지 호들갑을 떠는 걸 보니 웃음 밖에는 나지 않던 것이다.

"뭘 그렇게 놀라고 있더냐. 그때 신숭겸의 고사를 들먹이며 짐에게 가짜로 세우라 했던 건 너 자신이었잖느냐. 그때 짐을 대신하여 죽겠다던 그 각오와 호걸의 기상은 어디로 가고 요란을 떨고 있는 게냐?"

"소, 소신이 말씀입니까? 하오나, 소신으로서는 전혀 짚이는 구석이…."

"흠, 역시나 그때 상처가 심하였기는 했던가. 하기야, 비몽사몽하고 있었던 처지에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을 테니 기억에 남을 공산도 적겠지. 뭐 됐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짐이 설명해주면 그만일 테니."

이형은 수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그동안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전봉준이 암살자를 막기 위하여 무리하게 익숙하지도 않은 초심자의 기마술로 곡예를 부리다 낙마한 일, 그때 비몽사몽 하던 전봉준이 먼저 신숭겸을 이야기하며 가짜로 내세우라 자처한 일, 그러나 그 이후로 이형이 다쳤다는 소문을 퍼뜨린 이후로도 추가적인 암살자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

전봉준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낯이 어두워졌다. 그 또한 무언가 짐작하게 된 까닭이었다. 이형의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된 다음, 전봉준은 조심스럽게 이형에게 물었다.

"한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나이다, 폐하. 혹시, 폐하께서는 이미 마음속에 염두에 두고 계신 배후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야 물론 있고말고. 태평천국 그 사교도 놈들이 아니더냐. 제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도적 떼 같은 놈들이지. 짐이 자비를 베풀어 적당히 목숨만은 붙여두었더니 이렇게 짐의 기대를 배신하다니, 에잉. 참으로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닌 모양이도다."

"…진정으로 사교도들이 배후라고 여기시나이까."

"그만. 거기까지 해두거라. 짐은 너에게 그 이상의 의문을 품도록 허하지 않았노라."

이형은 짐짓 엄하게 전봉준의 말을 끊었다. 이형 자신도 자각하고 있다시피, 이형의 의심은 근본적으로 한성의 깊은 어둠에 근간해 있었으며 이는 곧 패륜과 직결되어 있었다. 유교 사회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아들이 제 아비를 의심하는 일인 것이다. 대외적으로 퍼져나가서는 곤란한 일이었을뿐더러,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전봉준 또한 정쟁에 말려드며 변고를 당할 위험이 너무 컸다.

그런 이형의 심산을 대강 눈치챘기에, 전봉준은 차마 제 입 밖으로 그 배후를 내뱉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것이 옳았다. 전봉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폐하."

"글쎄. 너도 슬슬 의식이 돌아왔으니, 인제 그만 길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 벌써 한달동안이나 시간을 끌었다. 계략을 겸하는 일이었다고 하나, 너 하나 때문에 3만에 이르는 기병들이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있었으니 이 이상 장안에 눌러앉았다가는 전사들부터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지."

이형은 거칠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 이번 일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형에게 있어서 얻은 것 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은 사태였다. 우선 그가 아끼던 전봉준부터가 평생에 걸쳐 불구가 될지도 모르는 큰 상처를 입었고, 이를 계기로 이형의 목숨을 노리는 작자들의 가면을 벗기고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 하였으나 그 또한 실패하였다.

결국 이번 일로 이형이 얻은 성과가 있다면 '어쩌면 이하응이 암살사건과는 무관할지도 모른다.'라는 미묘한 심증뿐이었다. 이하응이 분명 권력욕이 대단한 인물인 것은 맞으나, 적어도 무턱대고 이형을 죽이려고 들 정도로 이성을 잃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 정도가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이형으로서는 영 못 미더웠지만 말이다.

'…응? 잠깐만 기다려. 이하응이 무관하다고 쳤을 때, 이번 일로 가장 이득을 본 놈은 그럼 누구지?'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돌연 안개가 개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연히 이번 일도 이하응과 연관되었거나 한국 내의 그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자들의 소행이라고 여기고 그 밖의 가능성을 소홀히 다룬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지금 이하응이 이형을 죽인다고 한들 무슨 이득이 있다는 말인가.

하다못해 전쟁이 승전으로 마무리되고 전주 이씨의 천하가 정립된 다음이라면 모를까, 지금 이형을 죽여봐야 전주 이씨가 천하를 거머쥐기 바로 직전에 주저앉는 꼴 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하응이 설령 제아무리 권력욕에 눈이 멀었더라도, 지금은 이형을 죽일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적어도 중원이 대강 정리되고 봉분이 끝난 다음이어야 이하응에게도 바람직하다.

음모란 그 음모를 꾸밈으로써 음모를 꾸민 당사자에게 작게라도 이익이 생겨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법이다. 미우나 고우나 이형 덕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이하응이 아직 제 세력을 다 회복하기도 전에 벌써 이형에게 달려들기에는 그렇게 하면서까지 이하응이 얻게 될 이익이 마땅치 않다. 정말로 권력욕에 눈이 먼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같은 이유로 영국, 미국, 프랑스일리도 없다. 적어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확실하게 승산이 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자. 처음부터 내 생명을 노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암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남방계 선비가 콜트권총을 들었다. 그러니까 한눈에 외부에서 고용한 암살자라고 생각했지. 남방계에서 대만을, 콜트권총에서 바로 한국과 일본을 연상했고. 그렇지만-.'

한눈에 곧바로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연결고리가 강하다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역으로 그 연결고리를 이용해 누명을 씌우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누명을 씌움으로써 얻은 건? 이형이 엉뚱한 이하응을 의심하느라 이하응을 낚기 위하여 괜한 수고를 하게 만든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배후 세력이 얻게 된 것은?

"시간인가…!"

"네?"

이형은 불현듯 깨닫고서 이를 바득 갈았다. 이형의 돌발선언에 전봉준은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형으로서는 전봉준에게 따로 설명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그는 다만 한가지, 전봉준에게 말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앞으로도 한동안 가짜 황제 노릇을 해주어야겠다. 짐은 우선 정병들을 이끌고서 곧장 초원으로 향하겠노라! 바로 한 장군을 시켜 병사들을 보내 지키도록 할 테니, 너는 장안에 남아 몸을 회복하는 것만 생각하거라!"

물론 실제로도 몸만 회복하면 될 리는 없었다. 그간 조용하던 3만의 기병들이 돌연 장안을 빠져나간다면, 전봉준은 가짜 황제가 되었건 반송장 황제가 되었건 이형이 죽었다는 확신을 얻고자 하는 야심가들에게 노려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토사구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봉준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지시하신 대로 하겠나이다, 폐하."

이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그에 응답했다.

그리고 이튿날, 이형은 날이 밝는대로 병사들을 이끌고 장안을 나섰다.

***

"각하, 조금 전 급히 소식이 들어왔나이다. 시안에 머물던 기병 3만이 돌연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옵니다. 아무래도, 조선의 황제는 죽은 듯하노라고…."

그 무렵 사마르칸트.

한때 티무르 유목제국의 도읍이었던 중앙아시아의 심장부에서, 두 명의 러시아인이 만나고 있었다. 현지의 무슬림처럼 옷을 차려입은 젊은 남성과, 위풍당당한 장군의 제복을 걸친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겉으로 보이는 행색과는 달리, 더욱 거리의 풍경에 잘 녹아들고 있는 것은 눈에 띄는 제복을 차려입은 장군이었다.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것이 흡사 고슴도치를 떠올리게 하는 청년과는 달리, 장군은 마치 제집인 양 물담배를 뻑뻑 피워가며 보드카 대신 말젖으로 담근 쿠미스를 가죽가방에 넣어두고서는 입이 칼칼할 때마다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옷만 갈아입으면 그냥 현지인이라고 해도 믿을 모습을 보여주는 장군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파견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는 걸 들으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거리를 지나가는 시민 중 누구도 대놓고 러시아 제국의 군복을 입은 장군의 존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지경이었으니, 참으로 기가 찬 일이었다.

"헛소리. 그랬다면 진즉에 쿠릴타이를 개최하였거나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어왔을 거다. 처음부터 다친 것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급한 대로 측근에게 병사를 맡긴 거겠지. 그래, 놈들의 깃발은?"

"전령들의 보고에 따르면 몽골의 깃발이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의 깃발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어미 자궁에서부터 말과 함께 태어난 놈들이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니 차라리 그놈들이 매일 같이 목욕을 하고 있다는 걸 믿겠다. 아마 진짜 황제는 저 3만 중에 일반 전사 행세를 하며 숨어있을 게야. 놈들의 행로를 예의주시해둬라. 전사만 3만이라면 그 위력은 절대 가볍지 않아. 증원군은 아직인가?"

"네, 그것이…유럽이 워낙에 혼란스러운 모양이라. 총독 각하께서는 계속하여 저들과의 화친을 강구하여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우리 러시아에게나 좋을 이야기가 애초에 될리가 없잖나. 그러게 헛수고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에잉, 그럼 꼼짝없이 시베리아 사단을 쓰게 생겼군. 별수 없지. 하다못해 군마라도 넉넉히 준비해보게. 쓸만한 말만 있다면 기병은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는게 대초원 아니겠나."

담배 연기를 깊이 내뱉으며, 장군은 담담하게 말하였다. 되려 시베리아 태생인 청년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정확한 식견이었다. 그러나 장군으로서는 대단할 것도 없는 사실 나열에 불과했다. 그로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잠시 파견근무를 나갔던 것뿐, 그의 정신적 고향은 그의 군 생활 대부분을 보낸 이곳 중앙아시아 일대였으니 말이다.

되려 그로서는 다소 안타까움이 남기도 하였다. 그가 조금만 더 일찍 돌아왔다면 여기까지 사태가 악화하지는 않았을 텐데-하고. 사실 이건 차르의 명령마저 무시하고서 멋대로 행동한 그의 자업자득이었지만, 그런 문제아 장군마저 전선을 통솔하라고 내보내야 할 지경으로 몰린 러시아 제국도 피장파장이었다.

"지시하신 대로 하겠나이다, 장군. 하나, 진정 여기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 러시아 제국은 충분히 강성하고, 적은 고작 해봐야 극동의 노란 원숭이 놈들이 아닙니까. 각하께서 일부러 극동의 사이비 교주에게 굽신거리시면서까지 일을 꾸미시는 까닭을 저로서는 도통…."

"그게 무슨 얼빠진 소리인가?"

청년의 말에, 장군은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불쾌하다거나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든 점을 문제시 삼기 이전에, 정말로 청년의 발상 그 자체에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당황한 청년이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장군은 냉혹한 어조로 쏘아붙였다.

"절름발이 티무르가 대초원에 돌아왔다. 자네는 절름발이 티무르를 적으로 돌리고서도 그런 태평한 소리가 나오나?"

타슈켄트의 정복자, 미하일 체르나예프 중장은 양고기 육포를 질겅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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