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초원의 법칙 >
"저, 절름발이 티무르라니요. 그 무슨 불길한 말씀을…."
미하일의 말을 들은 청년의 말은 가늘게 떨렸다. 절름발이 티무르. 칭기즈칸 사후 몽골 제국의 부활을 주창하였으며, 또 한 거기에 가장 근접했던 정복 군주 중 한 사람.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절름발이. 오스만 제국을 침략하던 티무르의 군세를 잠시나마 구원자라고 착각하던 유럽인들이 그 잔학함에 치를 떨며 철천지원수인 오스만 튀르크를 도왔다고 이야기되는 중앙아시아의 전설.
그런 절름발이 티무르가 돌아왔다니, 그것보다 끔찍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더군다나 몽골의 오랜 지배로 타타르의 멍에라는 악몽이 깊게 드리운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그와 같은 몽골계 정복자의 재등장은 그 자체로 국가적 트라우마를 재발하게 했다. 왜 그들이 그토록 아시아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유럽이기를 갈망했던가. 다름 아닌 몽골의 탓이 아니던가.
조선의 황제를 일컬어 절름발이 티무르라고 부른다는 것은, 곧 그 자체로 러시아가 총력을 다할 이유가 된다. 두 번 다시 타타르의 멍에는 없을 것이라 그의 신민들에게 약속해온 로마노프 황조이기에. 제국주의 열강으로서가 아닌, 몽골의 침략에 맞서던 옛 루스의 대공들이 그러했듯이 총력을 다하여 막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무슨 틀린 말 했던가? 뭐 하는 짓만 봐서는 영락없는 테무진이기는 하네만, 역시 몽골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작자가 그런 거창한 칭호로 부르기는 영 그렇지. 하지만 영 좋지 않게 되었군. 증원군을 받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 군자금이라도 정도는 받아두고 싶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미하일은 그런 청년의 동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는 눈살을 찌푸린 채 연신 수염을 쓰다듬었다. 영락없이 자신만의 세상에 푹 빠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상황이 영 좋지를 않았다. 우선 잔재주를 부려서 잠시간 발을 잡아둔 것은 좋았으나, 정작 시간을 끄는 동안 기대했던 지원은 도착하지 않았고 되려 괜히 성질을 긁은 격이 되었다.
총독은 이미 전의를 잃은 채 어떻게든 화친을 맺어보라고 종용하고 있으나, 일이 그렇게 뜻대로 풀릴릴가 있던가. 적어도 유럽에서의 전쟁이 확전되기 이전이라면 몰라도, 더 이상 조선의 황제가 러시아와의 화친에 응해줄 이유가 없어졌다. 총독이 애원하여 차르의 허락을 받아 화친을 청하러 떠난 외교관은 불과 나흘 전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와서는 수도원에 틀어박혔다.
그게 자의로 수도원에 틀어박힌 것일 리가 없었다. 실패를 추궁당하였으나 그나마 푸른 피로서 고귀한 혈통을 고려하여 수도원에 유폐 당하는 선에서 처벌이 끝났음이 분명했다. 늦어도 이듬해 초엽에는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조선이 러시아의 동방영토를 넘보고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그것이 뭐가 그렇게 대수냐고 업신여기겠지만.
"…으음, 정말로 마땅치가 않군. 정면승부로는 도저히 수가 없는데 말이야. 내 목 하나로 저자가 눈감아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고작 해봐야 천호장 나부랭이의 목으로 이번 원정을 포기할리도 없겠지. 이보게, 총독 각하께 스스로 인질이 되거나 딸아이를 인질로 내보자고 제안한다면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네? 그,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총독 각하께서 들으시면 크게 노하실 겁니다! 아니, 그리고 그것이 무슨 나약하신 말씀입니까! 싸워보기도 전에 항복하실 생각부터 하시다니, 자랑스러운 러시아의 군관답지 않은 언행이십니다!"
"그럼 뭐 어쩌겠는가. 사정이 영 여의치 않게 되었거늘. 에잉, 정말이지 성가시구먼. 내게 조금만 더 재량이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겠지만, 고작 해봐야 시베리아 사단으로 뭘 어쩌라는 건지. 참…."
미하일은 양고기 육포를 질겅거리며 투덜거렸다. 역시나 이번 사태에 위기감을 가지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건 그뿐인 듯했다. 몽골의 지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고 표트르 대제의 통치 이래로 오랜 세월 유럽의 일원이 되기를 갈망해온 끝에 비로소 오늘날의 강성한 러시아가 탄생해, 한때 두려워마지 않던 동방의 유목민족들을 대수롭지 않게 굴복시키고 끝없이 패배시켜온 부작용이었다.
지난 100여 년간 오스만 튀르크 정도라면 몰라도 동방의 유목민족들에 이렇다 할 패배다운 패배 없이 승승장구하다 보니, 막상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던 시절을 잊어버린 것임이 분명했다. 미하일로서는 우스운 노릇이었다. 그들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친 것이 누구였던가.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멍에를 지웠던 것은 누구였던가. 다름 아닌 동방의 유목민족들이 아니던가.
유럽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온 조상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저 조선의 황제조차 유럽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분발하고 있지 않던가. 그러나, 냉정하게 이야기하자. 대관절 지금의 러시아가 저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던가.
'고작 해봐야 영토가 조금 더 서쪽에 붙어있나 보니 유럽의 앞선 문물을 보다 받아들이기 쉬웠다, 그 정도. 현 조선의 황제는 조선의 티무르요, 표트르 대제나 다름없다. 결국 그 강성하던 스웨덴도, 폴란드도. 동방에서 온 표트르 대제의 군세 앞에 무릎 꿇어야 했다. 결코 가볍게 무시해서는 안 되는 노릇인데….'
이 또한 역사의 숙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몰랐다. 한때 북방의 사자라며 유럽의 패권을 논하던 스웨덴이 동방의 야만족에 불과하던 러시아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몰락하였듯이, 북방의 불곰이라며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금의 러시아 또한 동방의 야만족들에게 몰락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던가. 아니, 그전에 정녕 저들이 동방의 야만족인가?
저 동방의 야만족이야말로 그들의 저주스러운 옛 주인이 아니던가. 그들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고, 시베리아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 스승이 아니던가. 그 사실에 감사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그런 전례가 있는데도 경시하는 건 안 될 노릇이다. 그런 저주스러운 옛 주인이, 그들 러시아가 그러했듯이 유럽의 앞선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단숨에 세를 불리고 있다.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대초원의 패자는 러시아로 족했다. 러시아가 될 수 없다면, 대초원의 패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했다. 아프리카니 인도니 아메리카니 마음 내키는 대로 얼마든지 바다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유럽의 열강들과 달리 어디로 뻗어 나갈 구석도 없이 꽁꽁 얼어붙은 저주받을 동토에 갇힌 러시아의 미래는, 대초원일 수밖에는 없다. 적어도 미하일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계속하여 불어날 전사들을 상대할 마땅한 수가 없단 말이지. 멍청한 이교도 놈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지원을 해주어도 바짓가랑이 하나 못 붙잡고 늘어지다니 헛돈이나 날렸어. 그만한 물자가 있었다면 적어도 기병 1개 대대를 추가로 징병할 수 있었을 텐데.".
어쩔 수 없나.하고 투덜거리며 미하일은 양고기 육포를 꿀꺽 삼켰다. 만일 더 좋은 수가 있었다면 그 또한 구태여 이런 잔재주는 부리지 않았겠지만, 이미 적이 코앞까지 닥쳐오고 있는 마당에 수를 아낄 수도 없는 노릇. 미하일은 청년을 힐끗 흘겨보며, 무신경한 어조로 말했다.
"잠시 몽골이나 다녀오게. 대칸을 만나러 왔다면서 말이야. 적어도 한번 이야기 정도는 나눠봐야 하지 않겠나. 유럽에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제국의 장군 된 몸으로서 하다못해 시간이라도 끌어야겠지. 폐하의 존함을 빌릴 까닭도 없어. 그냥 러시아의 천호장 나부랭이가 보냈다고 하면 그걸로 좋아."
"하, 하오나…이미 조선의 황제는 총독 각하께서 보낸 외교관조차 거들떠보지도 않았잖습니까. 저 같은 사관 나부랭이가 다녀온다고 해봐야…."
청년은 힘없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 말대로였다. 이미 총독이 차르의 허락을 받아 그 이름을 빌려 보낸 정식 외교사절조차 얼굴도 보지 못하고서 돌아왔는데, 대관절 일개 장군 나부랭이가 사관을 비공식 사절로 파견한다고 한들 과연 들은 척이나 하겠는가. 목이 잘려서 돌아오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하일은 무신경한 태도로, 가죽 주머니에 담긴 마유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서는 답했다.
"그럼 이렇게 말하게-."
***
한편, 몽골.
"역시나 그랬군."
그 무렵 간신히 몽골 초원에 입성한 이형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당했다. 정말로 뭐라 변명할 여지도 없이 당하고 말았다. 그간 이하응이 해온 전적이 있다 보니 이번 일도 당연히 이하응이 벌인 일이라고 여기고 있던 것이 패착이었다. 냉철함을 유지하면서 시야를 조금 더 넓혔다면 여기까지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전봉준이 당하고 분노에 눈이 멀어 실수하고 말았다.
뒤늦게 당했다는 걸 눈치채고서 서둘러 말을 몰아 몽골로 향했지만, 모든 것은 그의 예상대로였다. 그는 한 발짝 늦어 있었다.
"이 피부 허연 몽골 놈들 같으니라고. 당했다. 완전히 당했어. 허허, 이 깜찍한 놈들 같으니. 이제는 하다 하다 몽골 흉내더냐? 하기야 어울리기는 하다만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이형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그를 뒤따라 온 3만의 전사들도 비슷한 심정이리라. 그만큼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들의 상식을 크게 벗어나고 있었다.
초원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굴곡 하나 없이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초원의 초목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활활 타오르고 있거나 이미 모두 타고서 잿더미만 남은 다음이었다. 가축의 흔적도, 사람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청야전술이었다. 이형이 몽골 내전에 투입된 군세들에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명령했던 걸 역이용해 재빠르게 모든 것을 불태우고서 시베리아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시베리아의 광활한 동토 속에 숨어, 이형과 전사들이 무엇 하나 그들에게서 가져갈 수 없도록 청야전술을 벌이기로 각오한 것이다.
"그것도 한겨울에 이런 짓을 벌이다니."
이형은 혀를 내둘렀다. 겨울이 얼마나 유목민족들에 있어서 끔찍한 계절인지를 알고서도 이와 같은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겨울에 굶어 죽는 거야 정주민족도 매한가지라지만, 하다못해 그들은 땔감이라도 넉넉하고 여차하면 산에 기어들어 가 풀을 캐 먹으며 연명하는 방법이라도 있다. 하지만 유목 민족에게는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땔감이라고 해봐야 고작 가축의 똥을 말린 것이 끝이고, 우유를 제공하여 식수를 대신에 하게 해주는 가축들은 비상식량조차 못 된다. 굶어 죽느냐 목말라 죽느냐를 선택하라는 꼴이다. 유목민족들의 인구가 광활한 영토에 비하여 한 줌도 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초원의 혹독한 생활과 절대 무관하지 않았다.
그런 초원의 삶을 뻔히 알고서도,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외몽골 일대를 모조리 불태우고 시베리아로 물러났다? 그럼 노리는 것은 뻔하다. 가지지 못할 바에야 아예 모조리 파괴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남겨진 몽골인들은 대놓고 굶어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다. 한국의 일부가 되어 시베리아를 노리는 비수가 되도록 남겨둘 바에야 모조리 죽여 없애려는 의도라고 해석해도 절대 과장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초원의 법칙에 누구보다 충실한 녀석이로군. 어떤 놈이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사고방식이 유럽은커녕 나보다도 몽골다운 녀석이야. 도중에 죽어 나갈 놈들은 약한 게 죄였으니 죽어도 어쩔 수 없다 이건가. 허, 그래. 대초원은 그게 당연한 땅이지.'
이형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의도는 뻔했다. 시간을 끄는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에서의 전쟁을 끝내고 다시 극동에 본격적인 국력을 투사할 여력이 생길 때까지 황폐해진 외몽골을 방벽 삼아 시베리아에서 지연전을 펼칠 속셈인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서 중앙아시아를 직접 침공하려 한다면 톈산산맥을 자연방벽으로 삼아 또다시 유격전을 시도하리라.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 해도 열강이 계획할 전략이 아니다. 외부의 침략에 노출된 유목 제국이나 생각하고 시도할 전략이다. 적군에 의하여 점령당해 빼앗긴 백성도 영토도 나중에 되찾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이형의 군세가 러시아 백성들에게 보복한다면 보복하는 대로 선전용으로 활용하며 게릴라 민병들의 궐기를 독촉할 테고, 후하게 대접한다면 있는 대로 떠넘겨 짐 더미로 만들어 보급선을 마르게 할 터였다.
이형으로서는 이쯤 되면 화가 치밀기보다는 탄성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대초원의 칸을 꿈꾸는 멍청이는 그 하나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폐하, 어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감히 초원을 불태워 초원의 백성들을 굶겨 죽인 저 어리석은 오랑캐가 제 주제를 알게 하소서!"
"그러하옵니다, 폐하! 어찌 이와 같은 모독을 당하고서 참을 수 있겠습니까! 소신을 보내주소서. 당장에 저 노서아의 오랑캐 도적 무리에게 감히 주제도 모르고서 이와 같은 우행을 벌인 응당한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하옵니다!"
이형을 뒤따라온, 그리고 내몽골에 주둔 중이다 뒤늦게 합류한 전사들은 격노로 눈이 까뒤집혀 흰자가 훤히 보이는 지경이었다. 이형이야 따지고 보면 러시아가 알아서 물러나 주면서 외몽골을 거저 주운 격이었지만, 초원이 삶의 터전이던 전사들에게는 외부의 침략자가 난데없이 제 고향 땅을 불 지르고서 도망친 격이었다.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편이 더 이상했다.
이대로 두면 괜히 장안에서 시간을 끌면서 러시아가 초원을 불태울 시간을 준 이형에게도 책임론이 불거질지도 몰랐다. 이형은 내심 어쩔 수 없다 자조하며, 중앙아시아를 직접 칠 각오를 다졌다.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니라. 당장 전사들에게 떠날 채비를 하도록 명하도록. 당한 게 있으면 응당 갚아주어야-."
"폐, 폐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였다. 돌연 전령이 헐레벌떡 이형에게 달려온 것이다. 그 즉시 그의 곁에 몰려든 전사들이 함부로 이형에게 다가오려 한 전령을 죽이려 들었지만, 이형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무슨 용무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무슨 일이더냐. 대초원이 불타고 있다. 그보다 대단한 소식이라도 가져왔느냐?"
"그, 노서아의 장군이 전령을 보내어 폐하를 만나 뵙기를 청한다고…."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 소식이란 말인가. 짐에게 이제 와서 자비를 구걸하여도 이미 늦었다고 전해두거라. 그리고 고얀지고. 하다못해 스스로 찾아오는 노력도 없이 만나 뵙고자 한다니 짐을 우습게 여기는 게냐."
그러나 이형으로서는 뒤이은 전령의 말에 실망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냥 전사들이 뜻대로 하도록 두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앞섰다. 이형은 그대로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나고자 했다. 전사들에게 뜻대로 하라는 손짓은 덤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전령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이형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게, 그 전령이 말하기를 지난번 장안에서 폐하의 옥체를 노린 자가 바로 그 자가 섬기던 장군이라고…합니다."
머뭇거리며, 전령은 말했다. 자리는 한순간에 침묵에 잠기고, 분위기는 뼈가 시리도록 차갑게 내려앉았다. 당장에 함부로 허락도 없이 대칸에게 다가가려 한 전령을 베어 죽이려던 전사들도, 그 한마디에 자신이 무엇을 하러 했는지도 잊고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으로 전령을 흘겨보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이형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거 간덩이가 불은 놈이로군."
그는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