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67화 (167/530)

< 야심가 >

황제가 웃었다.

그 사실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전사는 없었다. 즉위와 동시에 그 조그마한 조선으로 청과 싸워 이기고, 천하무적인 줄만 알았던 서역의 강성한 열강, 노서아를 쓰러트리고 마침내는 이홍장과 중원의 천명을 두고 다투어 마침내 중원을 제패하였다. 만일 그것이 다른 이름난 장수들을 부려 얻어낸 성과였다면 역시나 그 명성은 빛을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달랐다. 즉위 이후로 지난 7년여간 쉴 새도 없이 이어진 수차례의 전쟁에서, 황제는 매번 몸소 전장에 나서 군을 이끌며 그의 적을 패배시켜 왔다. 단 한 차례의 패전도 없었으며, 하다못해 무승부나 아슬아슬한 승리 같은 것도 없었다. 매번 전장에 나설 때마다 대승. 승리에 승리를 거듭한 끝에 제위를 꿰찬, 그야말로 살아 있는 군신이라고 불릴법한 젊은 황제였다.

그런 황제가 웃었다. 눈은 웃지 않은 채, 입꼬리만을 뒤틀어 웃었다. 전사들은 그 사실에 압도되어 차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였다. 죽을지도 모른다-하는 위압감과는 달랐다. 확실하게 죽는다. 저자를 적으로 돌린 순간, 이유야 좌우지간 반드시 죽는다. 그런 기묘한 확신이, 전사들에게는 있었다.

"좋다. 어디 들라 하라.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꾸나."

이형은 한참을 말없이 입꼬리만을 뒤틀고 있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전사들은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마치 그간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 듯했다. 전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노서아에서 왔다는 사관을 부르려 도망치듯 달려나갔다. 전령의 발걸음 소리에 비로소 전사들은 식은땀을 닦으며 다시 한번 황제의 앞에 무릎 꿇었다.

그간 황제에게 섣불리 복수를 외치며 원정을 부추기던 목소리는 어느새 가신 지 오래였다. 그들은 그저 숨을 죽인 채 황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즐거워서는 아니었다. 화가 나서도 아니었다. 그로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감각이었다.

'그래, 이제야 조금 설명이 되는군.'

이형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마치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했던 태평천국의 묘한 행보, 이하응이 권력욕에 눈이 돌아간 것이 아닌 이상 설명하기 어려웠던 어리석은 암살 시도, 그리고 이번 외몽골 청야전술까지. 일련의 흐름이 모두 한 명의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럭저럭 이해가 갔다. 이 일련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시간밖에는 없다.

영토? 외몽골을 불태운 시점에서 공짜로 헌납한 격이다. 설령 러시아가 다시 세를 불린다고 한들 이미 한차례 배신당한 몽골인들이 러시아를 믿으려 할까? 그럴 리가 없다. 자신들을 지원하다가 돌연 태도를 바꾸어 자신들을 배신한 러시아를 몽골인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몽골을 헌납한 시점에서, 그보다 동쪽의 극동 영토도 덩달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통일 몽골을 대한제국에서 점유하게 된다면, 중앙 시베리아 전역이 대한제국의 사정권 아래에 놓이게 된다. 그럼 당연히 본국과 연결이 단절된 동시베리아도 덩달아 위협당할 수밖에는 없다. 러시아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을 저지른 작자는 그런데도 일을 터뜨렸다. 결코 중앙의 인가를 받지 않은, 현지의 독단임이 분명했다.

'놈이 결코 내주고 싶지 않은 것은 극동 영토가 아니라 중앙아시아다. 결국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성되기 전까지, 시베리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려면 필요한 것은 보병이 아니야. 정규군을 함부로 그 동토에 함부로 밀어 넣는 순간 오도 가도 못하고 얼어 죽는다. 당장 적백내전 시절 일본군도 동시베리아를 탐내며 함부로 보병사단을 밀어 넣었다가 동사자만 속출하는 통에 못 견디고 물러나야 했다.

시베리아를 개척하는데 필요한 것은 더욱 많은 사냥꾼들과, 유목민이지. 사냥꾼이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다. 가죽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고 기어가는 게 러시아와 조선의 포수들이니까. 그러나, 유목민이라면-.'

러시아에는 코사크가 있다. 한국에게는 만주와 몽골이 있다. 단순히 보면 한국의 우위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한국이 만주와 몽골을 확보한 것은 어디까지나 최근이며, 그마저도 이형의 권위 하나로 간신히 통합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러시아에 코사크는 지난 수백 년간 로마노프 황조를 위하여 충성을 바쳐온, 러시아 기병의 대들보다. 자연히 그들이 본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코사크인들은 설령 지금의 차르가 죽고 본국의 사정이 급변한다고 해도 여전히 러시아에 충성을 바칠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 정부가 춥디추운 시베리아의 동토를 개척하라 하여도 순순히 따랐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미 러시아의 차르는 대체 불가능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 반면, 만주와 몽골에 있어서 이형은 어떨까. 전쟁에서라면 몰라도, 시베리아 개척에서까지 그들이 순순히 따를까.

그럴 리 없다. 청나라가 존립하던 시절 편안한 지배계층으로서의 삶을 영유하던 그들이다. 이제 와서 시베리아를 개척하라 등을 떠민다면, 그들은 이형에게 크게 실망할 것이며 때에 따라서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형은 그를 따르는 만주와 몽골의 전사들을 그리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저들이 이형을 따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에서 이기고 있기 때문이며, 이런 권위는 전쟁에서 패배하는 순간 눈 씻듯이 사라지기 십상이었다.

'전쟁이라면 몰라도, 본격적으로 개척민 간의 땅따먹기 싸움이 된다면 그때는 온전하게 조선인과 러시아인, 코사크인의 대결이 된다. 지금 내가 중앙아시아를 평정해버린다면 러시아로서도 더는 시베리아로 나올 통로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중앙아시아만 살려두면 러시아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베리아를 두고 우리 한국과 대결할 수 있어. 결국 이걸 생각한 놈은 이번 전쟁에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킬 수 있는 곳만 최대한 지키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러시아가 우랄산맥 동쪽으로 나오는 길이 원천 봉쇄되는 것만은 막아보려고 발악하고 있는 거야. 요컨대, 놈이 보기에 지금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한국이며 열세에 있는 것이 러시아인 셈이다. 설령 일부 영토를 잘라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보다 서쪽으로 쳐들어오지는 못하게 막아야 할 만큼.'

이형은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러시아가, 이형을 진심으로 이겨보려고 제 살을 깎아가며 발버둥 치고 있다. 한때 한국을 쳐다도 보지 않던 러시아가, 한국의 뒤에 숨은 프랑스와 영국만을 노려보던 러시아가 이제는 한국을 똑바로 노려다 보며 자신의 열세를 인정하고 이기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연해주까지 뭉텅 잘라낼 기세로 어떻게든 시베리아만큼은 지켜보려 발버둥 치는데.

물론 이것이 러시아 정부의 총의는 아닐 것이다. 러시아 정부의 총의였다면 그를 대놓고 완전히 무시하는 화친을 청하는 사절단이 설명되지를 않는다. 아마 이는 러시아 극동 사령부에 속한 어느 장군의 계책일 터였다. 이형은 그 작자의 얼굴을 진심으로 보고 싶어졌다. 어떤 상판을 하고 있을지, 한대 걷어차 코를 깨는 것은 깨버리는 것이라도 얼굴은 확인해두고 싶었다.

그래야 비로소 호승심을 태울 보람이 있으니까. 더 그를 아득한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밑에서부터 올려다보며 어떻게든 시베리아를 지키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이름 모를 장군의 모습을 말이다.

"그래, 그놈이 뭐라고 하더냐? 잘못하였다고, 제 목을 바쳐서 사죄하고 싶다고 하더냐? 아니면 사내의 담력이 있다면 제 목을 가져가 보라고 지껄이더냐. 짐에게 볼일이 있다면 둘 중 하나는 지껄였을 터가 아니더냐. 대관절 뭐라고 하더냐. 왜 말이 없느냐. 어디 말해 보아라."

이형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형의 앞까지 끌려온 러시아인 사관은 영락없이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전사들은 하나 같이 침묵하며 곁을 지킬 뿐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를 데려온 전령조차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마당에 이 자리에 유일한 러시아인인 그가 겁에 질리지 말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이형은 사관의 사타구니 쪽에 잠시 얼룩이 지는 듯싶더니 이내 서리가 서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모른 체 했다. 처음부터 그의 관심사는 눈앞의 사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작자가, 그를 밑에서부터 올려다보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시베리아 패권경쟁의 불꽃을 살리려 애쓰고 있는지.

이형은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사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를 조금이나마 만족하게 해주었다.

"예. 그, 그것이…. …폐하께 긴히 드릴 말이 있다고 합니다."

"호오, 긴히 드릴 말이라. 그게 뭐지?"

"시, 시베리아를…반으로 나눠 가지지 않겠느냐고."

거기까지가 이형의 한계였다.

이형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손으로 땅바닥을 두들기며 폭소를 터뜨렸다.

***

한편, 그 무렵 일본 에도.

"아직도 조선의 황제에게는 도통 소식이 없더냐?"

"네, 전하. …아무래도, 조선에서는 우리 일본을 불신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언제나처럼 그의 측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담소라고 할지, 막후회의에 더 가까웠지만 말이다. 덴노는 언제나처럼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그를 비롯한 일부의 권신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지금의 일본에는 이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한가지 일본이 현 대한제국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의회가 미약하게나마 힘을 쥐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 또한 도쿠가와 가문이 승리한 지금의 일본이 한국보다 개화라는 측면에서 앞서가고 있어서가 아닌, 삿초의 난을 진압한 이래로 안정된 통치를 위하여 의회에 대거 교토의 귀족들과 각지의 다이묘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명목상 총리대신인 요시노부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성가신 작자들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이 요시노부의 권력 기반인 만큼 아주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지만, 그들 탓에 내전 이후로 일본의 중앙집권화는 조금도 진행된 바가 없었다. 개화 또한 겉으로만 조금씩 변하고 있을 뿐, 내적으로는 여전히 옛 시대의 권력가들이 고삐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요시노부의 처지는 얼핏 이홍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었다. 중원을 통일하지 못한 이홍장에게는 중화제국 하나 온전히 통치할 권위가 없었으나, 지난 300여 년간 일본을 통치해온 도쿠가와 가문에게는 단지 도쿠가와 가문이라는 것만으로 일본을 통치할 정당한 권위가 있다는 것이었다.

"말이 조금 그렇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불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 경계 당하고 있는 거다. 결국 청이 쇠하고 중화제국이 멸망한 지금, 이 천하에서 감히 조선의 말에 따르지 않을 나라들은 어디에도 없도다. 단지, 우리 일본만이 이견 정도만 나불거릴 수 있을 따름이겠지."

요시노부는 키득키득 웃었다. 카타모리로서는 당혹스러운 노릇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건 전혀 웃을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천하를 제멋대로 쥐락펴락하는 조선에 밉보이다니, 그거야말로 큰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요시노부로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경계 당하고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지금의 일본이 그만큼 조선에 위협적이라는 의미 또한 되었으니까. 그만큼 조선의 천하가 아직은 불안정하다는 증거였다. 일본이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어떻게 뒤틀리거나 뒤집힐 수도 있을 만큼.

졸지에 일본 열도를 넘어 몽골에서 만주, 중원, 조선, 일본, 대만에 이르기까지 그간 그들이 알아 온 천하 전부를 뒤흔들 수 있는 지위에 오른 격이다. 자신이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이들 나라 전부가 줄줄이 끌려갈 걸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건 멍청한 일이다.'

요시노부는 단언했다. 조선에 대적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그가 딱히 조선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조선의 황제에게 개인적인 호감은 어느 정도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조선의 황제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바칠 정도인가 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가 조선을 따르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그것이 일본의 국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당연하다. 강자에게 약자가 복종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아직 내전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한 지금의 일본이, 이미 저 멀리 달려나가 천하를 웅비하고 있는 조선을 뒤따라가기란 어렵다. 이미 조선은 강자가 되어버렸고, 일본은 약자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앞으로 반백 년 간은 이 구도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향후 반백 년 간은 일본이 조선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강자에게 감히 대항하기보다, 강자의 천하에 협력하여 힘을 길러 후일을 기약한다. 그것이 이치에 옳다. 그의 선조이자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러지 않았던가. 비록 그는 자기 선조와는 달리 생전에 이 천하를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천하를 발아래에 두고서 위세를 떨칠 수 없다면 하다못해 천하를 발아래에 두고서 위세를 떨치는 자에게 충성을 바친다. 대적하려 한다면 그자의 세가 크게 기운 다음이라도 늦지 않다. 모험을 멀리하고,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이익만 확실하게 취한다. 그렇게 조금씩 그릇을 넓히다 보면, 언젠가는….'

"각지의 다이묘들은 어떤가? 아직도 순순히 봉토를 내놓을 수는 없다던가."

요시노부는 상념에서 빠져나와 카타모리에게 물었다. 기실, 이것이 이번에 은밀히 카타모리를 불러들인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개화를 진행하기에 앞서 우선 나라를 하나로 통일하여야 할 텐데, 아직도 다이묘들이 봉토를 내놓지 않겠다며 정부에 거역하고 있었다. 지금의 일본에서 유일하게 통일된 것이 있다면 내전 기간 동안 회수한 군권뿐. 그 외에는 세수도, 행정도, 법률도 천차만별인 형국이었다.

카타모리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지방의 군사들을 시켜 위협하여도, 차마 자신들을 내칠 수는 없으리라 여기는 듯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래, 그것이 사실이겠지. 결국 우리 군의 장교직은 순전히 다이묘들과 그 친인척들의 것. 하물며 일선 장교들조차 그들의 심복들이 독점하고 있는 마당에, 지방의 군 따위를 믿을 수 있겠나."

요시노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군은 믿을 수 없었다. 더욱 정확히는, 도쿠가와 가문과 그 심복 가문들의 친위대를 제외한 병사들은 신뢰할 수 없다. 물론 지금 당장이야 명분도 없고 세력에서도 밀리니 침묵하고 있지만, 이미 삿쵸의 선례가 남았다. 요시노부가 함부로 밀어붙인다면 이와 같은 반란이 두 번이라고 없을 까닭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론 가장 편한 건 그냥 외면하는 것이다. 모른 체하고, 겉치레뿐인 개화만으로 만족하고서 썩어 문드러져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도저히 요시노부의 성미에는 맞지 않았다. 모험하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되, 약간의 수고를 들이면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눈앞의 이익까지 놓치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는 부채를 펼치며 물었다.

"신센 구미는?"

"이미 배치가 끝났습니다."

"그런가. 참으로 흉흉한 세상이야. 한 번의 다이묘가 일개 낭인 따위의 검에 베여 죽는 세상이라니."

요시노부는 찰칵, 하고 부채를 다시 접었다.

그 소리는 어쩐지 죄인의 목에 칼을 채우듯 불길하게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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