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식이 죄 >
망설이던 셍게린첸은 그 길로 이형을 찾아갔다. 만일 자신이 이 일의 전모에 대하여 털어놓게 된다면 그 또한 처벌을 받을지 모르고, 대칸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표출한 이들은 어떤 식으로건 반드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그렇다고 해도 이 일을 입 다물고 입도 방끗하지 않고 있다가 몽골인들 전체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그 무렵에는 미하일 또한 이형의 앞에서 허세를 부리다가 기력을 소진하여 침상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처지가 된 지라, 이형의 주변에는 시종들과 위병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차였다. 그런 와중에 몽고친왕인 셍게린첸이 직접 이형을 만나러 오자 이형은 순순히 셍게린첸에게 자신의 게르에 들어오도록 환영하였고, 그 즉시 셍게린첸은 이형의 앞에 무릎 꿇으며 대성통곡했다.
"폐하, 제가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이 어리석은 자의 목숨을 거두어가시는 대신, 제 식솔들에게만큼은 죗값을 치르지 않도록 배려해주시옵소서!"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짐이 그대를 죽이기는 왜 죽인단 말인가?"
셍게린첸이 돌연 그의 무릎 앞에 엎드려 연달아 이마를 받으면서 대성통곡을 하니, 이형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미하일이 털어놓았던 이야기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느라 머리가 어지럽던 차에, 이제는 조용하던 셍게린첸까지 뭔가 일을 벌이고 있으니 이형으로서는 여간 혼란스운 것이 아니었다. 이형이 당황하며 셍게린첸을 말리자, 그는 그 즉시 바로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형의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져서, 이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셍게린첸이 도중에 호흡이 부족하여 말을 몇 차례 끊으면서도 이야기를 모두 마무리하고 난 다음, 이형은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그래. 이런 목소리가 한 번쯤은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 여기까지 가까운 이야기일 줄은 미처 몰랐지만. 우라질 놈들 같으니라고. 내가 그리 쉽기 쉽게 이기고 또 이기고 있으니 정말로 이 일이 쉬운 줄 착각했나. 제 주제를 알아야지."
이형은 거칠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예상한 이야기이기는 했다. 그가 몽골인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던 까닭도, 그를 따르지 않을 족속들은 진작에 북경으로 떠나고 딱 그를 따를 족속들만 남은 만주족들과 달리 몽골인들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 그를 따르지 않는 자들도 뒤섞여 있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셍게린첸이 몸소 증명했다시피 그의 통치에 순응하고, 그의 지도력에 지지를 보내는 몽골인들도 얼마든지 있다.
사실 이형의 통치에 순응하는 이들이 더욱 많을 수 밖에는 없다. 러시아가 손수 자신들을 믿고 따르던 몽골인들을 내다 버리고 도망치면서 이형에게 무기를 들고서 저항하던 이들은 죽었거나 그 세가 꺾여 대한제국의 구호물자가 아니면 당장 생존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형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이들이 전부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와 같다. 누구나 왕이 되고 싶어 하고, 온갖 부귀영화를 독점하고 싶어 한다... 결국 이건 그런 맥락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형이 너무 주변 세력들을 상대로 쉽게 쉽게 승리를 거두고 있다 보니, 이형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러시아고 청나라고 중화제국이고 전부 다 손쉽게 꺾고도 남는 힘이 있는 줄 착각하고서 엉뚱한 생각을 품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중간마다 의도적으로라도 몽골에도 피해를 떠넘겨야 했어. 나 같은 놈들이야 황제로서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니 앞선 전쟁들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알 수 있지만, 저놈들은 결국 몇 명이 죽었고 몇 명을 죽였으며 얼마나 광활한 영토를 정복했다-이 정도만 보니까 내가 치른 전쟁들이 우습게 보이는 거야.'
이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또한 무리한 이야기였다. 조선이나 만주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은데 몽골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크다면 그건 그것대로 몽골에서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결국 이형이 연달아서 손쉽게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반작용이었다. 또는, 처음부터 러시아에 맞서기 위하여 이뤄진 연합국가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만주라면 조선 초부터 악감정이건 긍정적인 교류에서건 민간차원의 교류가 흔히 이뤄졌으니 비교적 연대 의식을 가지기도 쉬웠지만, 북원마저 망하고 난 이래 몽골과 조선이 어디 서로 교류한 적이 있기는 하던가. 처음부터 연대 의식을 가질 수 없는 이질적인 두 나라가 일시적이나마 공공의 적에 맞서 힘을 합쳤다는 것 자체가 러시아가 그간 얼마나 위협적인 적이었는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마저 치워버리고 나면, 두 나라를 하나로 묶어놓던 공공의 적도 사라진다. 그럼 몽골 또한 다른 마음을 품는 이들이 하나둘씩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이형 또한 예상하는 바였다. 여기까지 가까운 줄은 미처 몰랐을 뿐.
"소신을 죽여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소신에게 저들을 죽이도록 명령을 내려주소서! 그리하여 초원의 백성들이 대칸에 대항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번 똑똑히 보여주소서! 저 극악무도한 역도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아 주소서!"
셍게린첸은 재차 고개를 숙이며 이형에게 자신을 처벌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만이 이형의 분노로부터 몽골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저치기 어린 자들은 러시아를 몰아내고 중앙아시아를 하나로 통일하여 대초원이 재차 하나로 재탄생하고 나면 그때는 구태여 조선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고 여기고 있는 거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몽골 초원의 원로일수록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청나라는 서구열강들의 침략에 이렇다 할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져 북경과 그 일대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반송장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이 어린 시절, 하다못해 젊은 시절만 하여도 청나라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거인이었다. 제아무리 팔기군의 기강이 무너졌다고 한들, 그 누구도 감히 독립을 입에 담을 수 없는 진정한 대초원의 패자였다.
치기 어린 젊은이들은 지금의 대한제국을 고작해봐야 조금 강성해진 조선으로 여기는 모양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금의 대한제국이야말로 이미 쇠락하여 멸망하기 직전의 다이칭 구룬을 계승한, 대초원의 패자였다. 만주와 요동의 주인이었다. 그렇기에 셍게린첸은 스스로 비참할 정도로 비굴하게 이형에게 고개를 박았다. 이형이 마음을 달리 먹는다면, 몽골의 백성들이 어떤 꼴을 당할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으음…."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딱히 셍게린첸의 사죄가 과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계속하여 대칸으로서 군림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상하 위계는 분명하게 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불편한 것은 셍게린첸의 사죄가 아니라, 이를 처벌하기에도 영 상황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당장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린다고 한들, 그들이 순응하지 않고서 대항하는 순간 반란이다.
마침 이미 군사를 일으킨 상황이니, 멀리에서 반란군을 구할 필요도 없다. 곧장 우리는 이형을 대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라고 하며 검을 거꾸로 쥘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이 언제나 속전속결로 끝날 수는 없다. 만에 하나 반란군을 곧장 진압하지 못하고 장기화한다면 극동 러시아도 다른 마음을 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일은 그만 넘어가겠다고 가볍게 웃어넘길 수도 없다. 이는 대칸의 권위와 직결된 일이다. 그걸 가볍게 용서해준다면 그건 대범한 것이 아니라 어리숙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건 처벌은 내려야 했다. 다만, 저들이 순순히 이해할 수 있는 처벌을 내려야만 반란이라는 극단적인 사태까지는 확대되지 않으리라.
'우선 증언에 근거하여 자리에 동석한 부족장 전부의 목을 친다고 하면 십중팔구 반발이 터져 나온다. 어차피 죽는다고 생각하면 이판사판이라면서 일을 터뜨릴 게 뻔해. 가장 좋은 건 적당히 주모자 한 놈을 알아서 지목하게 한 다음 모든 죗값을 그놈에게 떠넘기는 건데…이것도 당장 균열을 일단 막는 수준의 효과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이지.'
이형으로서는 성가신 일이었다. 만일 그가 지금 한성에 있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한국군을 대동하고 온 상황이었다면 소식을 들은 즉시 역도들을 토벌하라고 명령했을 테지만 현지 유목민족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몽골과 만주 연합군만을 대동하고 왔다 보니 그런 즉결처분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다음이었다.
이형은 후자로 마음이 기우는 걸 느꼈다. 여차하면 이형에게 숙청당할 걱정 때문에 괜한 부족장들까지 전부 반역을 일으키거나 이형의 암살을 시도하는 것보다 적당히 희생양을 세우라고 시킨 다음 그 희생양만 처리하고서 사건 자체를 파묻는 것이 당장 사태수습에 편리했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이게 아니지. 꼭 내가 쳐 죽여야지만 숙청이던가? 적당히 남의 손을 빌려서 죽이는 것도 숙청이잖아. 그리고 마침 지금은 전쟁 중이고….'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비로소 어떻게 하면 좋을지 확신이 섰다. 때마침 러시아의 장군이 찾아왔던 것도 이를 도우려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이형은 유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 마땅히 죄를 추궁하여야겠지. 그러나 당장 목을 베거나 하지는 않겠다.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니던가. 전쟁 중에 귀한 전사들의 목숨을 가볍게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더냐."
"하오나, 폐하! 저들은 대칸을 우습게 여기고 감히 소신을 끌어들여 역모를 꾀하려 한 자들이옵니다! 죽음에 버금가는 응당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대칸의 권위가 바로 서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형의 말에, 셍게린첸은 재차 이마를 받으면서 소리쳤다. 그의 안위만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대한제국이라는 조선과 몽골의 연합제국이 앞으로도 계속 존속되기 위한 충언이었다. 다이칭 구룬이 이미 쇠락한 지금, 대한제국이 그들의 천명을 계승하여 대초원을 이끌어주지 못한다면 초원의 백성들은 꼼짝없이 민생이 파탄하거나 러시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형은 그러나 여전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노래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짐 또한 알고 있다. 전사들의 목숨을 가벼이 다룰 수도 없는 것은 사실이나, 저들이 함부로 대칸의 권위를 우습게 알고 극악무도한 역모를 꾀한 것 또한 사실. 그리하여 짐은 명하건데, 역모에 연루되어 그 이름을 더럽힌 전사들이 이번 원정의 선봉을 서도록 함으로써 그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줄 참이다."
"…그것은."
셍게린첸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곧 러시아의 손을 빌려 전사들을 숙청하는 것이라는 걸 이미 열강의 군세와 한번 다투어 본 그로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의 몽골이 러시아와 비등하게 싸우고 있는 것은 조선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또한 이형이 몸소 군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지, 몽골이 강해서가 아니라는 걸 그는 알았다.
그러나 저들은 모른다. 저치기 어린 젊은이들은 그걸 알지 못한다. 열강의 군세와 싸운 경험을 고작 해봐야 나이든 원로들에게 말로 전해 들은 것이 고작인 저들은 열강의 군세와 싸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 몸으로 깨우치지 못했다. 필시 저들은 러시아를 업신여기고, 이형의 처벌을 가볍게 여기리라. 되려 누구보다 용맹하게 앞장서며, 무공을 세워 그 무명을 떨치려 하리라.
돌궐과 위구르를 정벌하고, 자신 또한 칸으로 봉해지거나 스스로 칸의 자리를 꿰차려는 어리석은 야심가들 또한 그중에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그와 같은 침략자로서의 태도가, 러시아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만들 것이라는 것 조차 미처 읽지 못하고서.
"왜 말이 없느냐? 아니면, 이보다 더 좋은 처벌이 떠오르더냐? 어디 말해 보아라. 짐이 몸소 경청하여주겠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연이은 대승에 마음이 들떠 제 주제를 잊은 것이 저들의 죄인 것을. 원로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전쟁을 우습게 여기며 승리를 당연시한 업보인 것을.
이형은 의자에 앉은 채 가만히 셍게린첸을 내려다보았다. 이형의 결정에 순응하건, 아니면 보다 좋은 방침을 내놓건 간에. 어서 빨리 결단을 내리라는 추궁이었다.
"대칸께서 뜻하신 대로 하소서."
셍게린첸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이형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
그리고 이형이 비로소 향후의 방침을 굳혔을 무렵.
"무기를 들어라, 형제들이여! 마침내 때가 왔노라! 태평의 하늘이 돌아왔다! 이 초라한 변방에서 벗어나, 마침내 천경에 돌아갈 날이 돌아왔도다! 우리들은 오늘에야말로 천하의 주인이 된다! 그리하여 천왕 폐하께서 상제의 자손으로서 천하를 올바르게 이끄시니, 마침내 오랑캐들의 천하가 저물게 되리라!"
"""태평천국 만세! 천조전무제도 만세! 천왕 폐하 만만세!"""
멍청이들이 마침내 봉기했다. 이형이 쓰러졌다. 그리고 이후 상처가 악화하여 목숨을 잃었다. 그런 세간에 도는 낭설을 사실 여부조차 명확히 파악하지 않고서 제 좋을 대로 해석한 멍청이들이었다. 하다못해 일을 꾸미는 동안에는 침착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일을 진행하려는 모습이나마 보여줬지만. 이형이 죽었다는 낭설을 듣는 순간 모든 결실을 수확할 날이 왔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마침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태평천국의 한계였다고 할 수 있겠다. 두 차례에 걸친 쇠락과 부흥의 반복은 분명 태평천국 내의 실력가들이 줄줄이 목이 잘리는 계기가 되어 천왕에게 힘을 하나로 모아줄 수 있게 해주었지만, 반대로 천왕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실력가들이 남아나지를 않게 되었다. 군을 이끄는 데에 능력이 있던 이들은 이홍장의 손에 잡혀 죽었고, 행정에 능한 관료나 모략에 능한 자들은 진작에 태평천국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알고 등을 돌렸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종교적 광기에 물든 어중이떠중이들 밖에는 남아나지를 않았다. 천왕인 홍천귀복 또한 그런 태평천국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런데도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태평천국이 쓰촨성까지 밀려나면서 손실한 모든 인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서 상제의 자손, 현인신이라며 멋대로 떠받쳐진 결과물이었다.
"흐흐! 마침내 천하가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구나. 그래, 어차피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조선의 황제라는 작자도 대단한 호걸인듯하나, 어쩌겠느냐. 그 또한 고작 해봐야 인간인 것을. 상제의 자손인 짐과는 처음부터 시작점이 다르니라!"
"실로 그러하옵니다! 어디 감히 평범한 인간이 상제의 자손에 범접할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세상의 이치일 저, 조선의 황제는 그저 같은 시대에 폐하와 함께 선 군웅으로 기록될 것만으로 만족하여야 할 것입니다!"
군사를 일으킨 다음에도 그의 오만은 가실 줄을 몰랐다. 아니, 되려 그 오만은 부풀고만 있었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떠 냉철한 사고능력이 거세되어버린 것이다. 주변에 온통 아첨꾼들만 모아두고서 마음이 들뜨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거병한 태평천국군이 충칭으로 향하는 길.
"감히 옥체를 해치려 한 극악무도한 사교도 역도들이니라.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그들은 지평선을 가득 메운 태극기를 대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