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해주 평정 >
다사다난했던 겨울이 지나고, 1872년의 봄이 찾아왔다.
이 무렵 세계대전 아시아 전역은 이미 굵직한 전투는 모두 마무리되고 하나둘씩 수습되고 마무리되는 형국을 보이었다. 일을 터뜨리기에 러시아는 당장 유럽에서의 전쟁으로 바빠 도저히 병력을 돌릴 수가 없었고, 이미 원했던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다음인 한국은 구태여 무리하게 일을 벌일 까닭이 없었다.
그 외 군소국가들은 직간접적으로 한국에 종속되어 있다 보니 한국을 무시하고서 일을 벌일 수 없었고, 그 외 열강들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의 전쟁이 지나치게 심화하여 도저히 발을 뺄 여력이 나오지를 않았다. 결국 태평천국을 끝으로 대한제국의 천하평정이 마무리되고, 몽골에 의한 중앙아시아 원정이 실패한 것을 끝으로 전쟁은 사실상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이었다.
"전군, 신중하게 진격하라! 길잡이가 가자는 대로 갈 것이며, 피하자면 피하고 공격하자면 그때 공격하라. 습격이 있을 시기와 장소만 미리 알고서 우군이 앞서갈 수 있다면 노서아의 민병 따위 가소롭지도 않도다!"
"후퇴! 후퇴하라! 저 빌어먹을 고려 배신자 놈들!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받아들여 준 정도 내던지고서 기어이 우리에게 누런 이를 드러내다니…!"
그러나 그것이 군사 활동이 멈추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시로서, 대한제국군은 봄이 찾아온 다음에야 겨우 북방군을 움직여 연해주를 병탄했다. 이미 중앙아시아를 수호할 병력도 극히 일부만이 남아있던 러시아에 극동 영토를 사수할 병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현지 병력은 전부 민병이거나 2선, 3선급 병력이었고, 아예 이조차 부재하여 무장해제 된 마을도 부지기수였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연해주를 장악하려 대한제국군은 고작 해봐야 1개 여단을 동원했을 뿐이었다. 북방에서 사냥을 생업으로 삼던 모피 사냥꾼들을 중심축으로 구성된 수색대대를 내세운 이들 연해주 원정군은 연해주에 주거하던 조선인들을 길잡이로 고용하여 조심스럽게 연해주를 점령해서, 본국의 증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현지 러시아 민병들은 연해주의 지리에 밝던 현지 조선인들의 협력 아래 유의미한 저항을 보여주지 못했다.
어디로 도망치면 좋을지, 어디에 비축물자를 숨겨 두었는지, 어떻게 싸우는 것을 즐기는지 훤히 꿰고 있던 연해주의 조선인들을 상대로 유격전이 성립할 수가 없던 것이다. 민족주의를 명분 삼아 현지 연해주의 조선인들에게 전폭적인 협력을 받은 연해주 원정군은 이렇다 할 전투 한번 없이 연해주 일대의 민병들을 수월하게 소탕할 수 있었고, 연해주에 들어선 지 불과 1달이 되지 않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제외한 모든 거점을 장악했다.
"앞도, 뒤도, 옆도! 사방이 조선군이다! 본국으로부터의 지원은 아직인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거야!"
"아직, 아직 소식이 들어온 바가 없습니다. 하,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본국에서도 지난 100여 년간의 극동 개척을 무위로 돌릴 생각이 아니라면 필시 무언가 움직임을 보여줄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는…."
"뭐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결국 그건 우리들의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지 않나! 이젠 틀렸어. 해로는 바게트 놈들이 틀어막은 지 오래고 육로는 고려 놈들이 장악했다. 고작 해봐야 덜떨어진 민병 500명으로 이 전황을 어떻게 버텨보라는 건가!"
여기까지 일방적인 전황이 될 수 있었던 건, 글자 그대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민병을 제외하면 정규군이라고는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남아있던 것은 고작 해봐야 민병뿐. 현지의 개척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남녀노소 다양한 각계각층의 인물들로 구성된 비참하기까지 한 군대였다. 그마저도 현지의 조선인들의 폭동을 우려하여 그들 전부를 동원하여 전선에 배치할 수도 없었다.
여순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의 극동함대가 동해를 틀어막은 시점에서 이들에게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르네 제독이 지휘하는 프랑스 함대는 비록 직접 상륙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블라디보스토크의 해로를 끊어 고립시키고 이따금 포격을 퍼부으며 블라디보스토크 방위군의 신경을 벅벅 긁어놓았다.
무엇보다 현지 극동 도독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도대체 언제 프랑스의 해군육전대가 상륙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프랑스 극동함대는 그만한 병력도 없었을뿐더러 블라디보스토크를 함락 시키는 데에 필요한 인명피해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지만, 극동 도독부는 그런 정보를 전혀 듣지 못했다. 당연히 극동 도독부로서는 프랑스의 상륙 시기를 계속하여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실제로 함락시키지 않더라도, 블라디보스토크를 포위한 한국군을 지원하여 조공으로서 참전하는 것만으로 블라디보스토크의 방위에는 치명적이었다. 결국 한국군이 현지 조선인들의 협력 아래 수월하게 현지 민병들의 저항을 진압하는 동안, 러시아 극동 도독부는 프랑스 극동함대와 한국군에게 앞뒤로 포위되어 손도 쓰지 못하는 형국이 되었다.
"보아하니 북적의 사기는 낮고, 전력도 영 시원치 않은 수준인 듯합니다. 이대로 공격한다면 단번에 북적의 요새를 함락시키고 저 노서아라는 북적을 이 북방에서 내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그러고 싶은 마음은 나로서도 굴뚝 같지만, 병력이 부족한 건 우리도 피차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우선 공격에 앞서 본국에 지원을 요청해보도록 하지. 만일 우리가 요청한 대로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공격하도록 하고, 본국의 지원이 영 시원치 않다면-저들이 알아서 항복할 때까지 계속 포위하는 수밖에."
"하오나, 지금은 모내기 철이 아닙니까. 역시 지금 이 연해주까지 나온 우군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지 않을는지요. 마침 다행스럽게도 연해주의 백성들은 우군에게 호의적입니다. 그들을 징병하여 임의로 무장하도록 한 뒤 도시를 공략하게 한다면, 우군만으로 저 가증스러운 북적의 도시를 깨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실패하여 연해주 원정 그 자체가 실패로 돌아가면 자네가 책임을 질 텐가? 지금은 이대로 좋네. 본국의 정병을 받을 수 없다면 그저 포위를 유지하며 느긋하게 말려 죽일 따름이야. 본국에서 결전을 서두르라는 훈령이 도착하지 않는 이상 내 지시를 따르게."
극동 도독부에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현지 한국군이 공세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이었다. 한국군은 섣불리 블라디보스토크를 공격하기보다 우세한 병력을 내세워 블라디보스토크를 포위한 채로 본국의 지원을 기다렸고, 본국에서 마침 모내기가 한창이라 지원군을 보내주기 어렵다는 응답이 돌아오자 그 즉시 진지를 구축하고 포위망을 굳혔다.
다만 이러한 현지 장교의 소극적인 자세를 탓하기는 어려웠다. 이 무렵, 때마침 몽골에 의한 중앙아시아 원정이 참패로 끝났다는 소식이 속속들이 들어오면서 한국군 내부에서 러시아군을 경계하는 시선이 대폭 늘어난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형으로서는 애초부터 그의 통치에 대항하는 이들을 솎아낼 작정으로 벌인 무모한 원정이었으나, 그러한 정보를 듣지 못했던 한국군 장교들에게는 3만의 원정군이 불과 5천도 안되는 러시아군에게 패했다는 소식 밖에는 듣지 못했다.
안 그래도 프랑스의 군사고문단에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나폴레옹 전쟁과 크림 전쟁 시절 러시아군의 끈질김과 강직함에 대하여 익히 들어왔던 한국군이었다. 그들이 신봉해 마지않는 황제가 총사령관으로 내몽골에 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3만에 이르는 몽골 원정군이 대패하여 대초원 평정이 실패로 들어갔다는 소식은 한국군이 자만에서 깨어나 공포를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듯하다』라. …으음, 어떻게 생각하나? 자네가 생각하기에도 이번 연해주 원정이 노서아 북적들이 파놓은 함정이라고 생각하나?"
"그럴 가능성도 아주 부정할 수는 없겠지요. 저기 서역에서도 노서아군이 지나치게 허술하게 이루어진 방위선으로 깊숙이까지 유인한 다음 몽골군을 모조리 말려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노서아군이 구라파에서의 전쟁으로 취약해진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만, 그래도 경계해두어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됩니다."
"흐음, 자네의 뜻이 정 그렇다면…알겠네. 우선 폐하께는 내가 보고를 올리도록 하지. 이 기나긴 전쟁도 겨우 끝을 보여가고 있는데, 이제 와서 헛된 실수로 모든 걸 허사로 돌릴 수는 없겠지."
한국군은 재차 러시아군을 자신들의 주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연해주 원정군은 너무 수월하게 연해주를 차지할 수 있었던 행운이 행운이 아니라 러시아의 함정이 아닌가 의심했고, 이러한 인식은 고스란히 대한제국의 육군 본부에 올리는 보고서에도 반영되었다. 때마침 내몽골로부터 도착한 원정의 실패 과정은 육군 참모본부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중앙아시아와 연해주의 사례가 기막힐 정도로 유사하던 것이다. 현지 러시아군이 한국군과 적극적으로 교전하려 하기보다는 뒤로 물러나면서 보급선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중앙아시아에서와 달리 연해주에서는 이런 후방의 보급선을 현지 조선인들의 협력으로 사수해내고 있었지만, 연해주에서 더욱 깊숙한 곳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현지 조선인들의 협력도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육군 참모본부는 그 무렵까지도 내몽골에 남아 있던 이형에게 보고를 올렸다. 연해주까지는 무리 없이 점령할 수 있겠으나, 그보다 깊숙이까지 진출하는 것은 현지 러시아군에 의한 대대적인 역습에 당하여 중앙아시아에서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였다. 물론, 이형은 그것이 괜한 우려라는 걸 알았다.
이미 미하일이 허세를 부린 것도 어디까지나 다른 모든 영토를 포기하고서 오로지 중앙아시아만 지켜낸다면 얼마든지 몽골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지, 극동 영토의 경우에는 '지킬 수 없다'라며 단언을 들은 다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미하일이 협상에서 우위를 잡기 위해 어느 정도 허세를 부렸음을 고려하면 러시아군의 전력은 현실적으로 그보다 낮았다면 낮았지, 높을 까닭은 없었다.
"상관없다. 어차피 러시아의 차르에게서 항복을 받아낸다고 해봐야 지금의 전황에서 확실하게 받아낼 수 있는 건 몽골과 연해주 정도겠지. 그 이후로는 그저 차차 점령해나가면 그만일 뿐이다. 뭘, 아무튼 시간은 많고 여력도 많도다. 지금은 연해주만으로 마무리 짓도록 하여라."
하지만 이형은 시원스럽게 육군 참모본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이형은 미하일이 떠벌린 허세를 거의 믿지 않고 있었다. 하다못해 총독이라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장군이라는 지위를 고려했을 때 미하일이 약속한 것 중에서 확실하게 지켜질 수 있는 약속은 서태후와 동치제 모자의 목, 그리고 극동에서의 방비를 포기하고 중앙아시아 방비에 전념하겠다는 약속 두 가지 뿐이었다.
시베리아의 절반이라는 예니세이강을 경계로 한 새로운 국경선 또한 그러했다. 미하일이 멋대로 약속한 영토를 미하일과의 합의를 근거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요구해봤자 러시아는 절대로 땅을 내주려고 하지 않을 터였다. 이형은 처음부터 연해주만을 우선 확실하게 할양받은 다음 개척민들을 이주시켜 차근차근 영향력을 늘려가는 방향을 구상하고 있었지, 전쟁 한 번에 시베리아의 절반을 얻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형은 육군 참모본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연해주 원정군이 진격을 멈출 수 있도록 허락했다. 결과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후 포위가 길어지면서 여름이 찾아오자 악명 높은 연해주 원정군이 라스푸티차로 인하여 발이 묶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온통 진흙탕으로 뒤덮인 시베리아는 도저히 군대가 주둔할만한 곳이 못 되었다.
푸 히힝-.
"젠장, 내 말이 또 늪에 빠졌어! 이봐, 단단한 줄 같은 거 가져와! 뭐라도 좋으니까 빨리! 그리고 하는 김에 주변에 뭔가 단단하게 묶을 만한 거 없나!"
"줄은 내가 가져올 테니 나무는 네가 알아서 찾아! 여기 어디 나무가 한둘이냐! 물기 때문에 퍼석퍼석해서 그렇지!"
삽시간에 늪지대로 변모한 시베리아의 환경은 한국군에게 도저히 까지는 아니라도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되려 겨울의 추위는 만주나 한반도에서도 그리 접하기 어렵지 않다 보니 쉽게 적응할 수 있었지만, 온통 늪지대로 돌변한 여름의 시베리아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이었다. 그나마 만주에서 군 생활을 보내던 북방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처음 보는 규모의 거대한 늪지대에도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것뿐.
여름이 되자 연해주 원정군은 라스푸티차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이형의 윤허 아래 북진을 포기하고서 해안선 인근이나 현지 조선인들 대부분이 밀집해 있는 연해주 남쪽, 요컨대 블라디보스토크로 병력을 집중 시켰다. 그나마 연해주 원정군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극동 도독부로서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안 그래도 앞뒤로 포위당하여 수렵도 농사도 어업도 불가능하던 블라디보스토크였다. 날이 갈수록 식량은 줄어들고 있던 와중 갑자기 늘어난 포위군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시민들에게 머지않아 결전이 임박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사기는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본국의 지원도 없이 날로 줄어가는 식량창고를 지켜만 보면서 맞이하는 결전이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개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항복하겠습니다. 부디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만큼은 보장해주십시오. 그조차 보장해주실 수 없다면 하다못해 시민들의 생명만이라도…."
"그야 물론이오.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어서 참으로 고맙소이다."
결국 초여름이 지나기 전에 극동 도독부는 항복을 결심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세워진 이후의 블라디보스토크라면 모를까, 이 시대의 블라디보스토크는 그저 만들어진 지 10년이 되지 않은 작은 개척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자연히 러시아 개척민들의 향토 의식이나 애착심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인들은 한국군이 도시를 불태우고 학살할 것이라 두려워했으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딱히 한국군이 도덕군자였기보다는, 현지 러시아인들을 학살하여 양국의 국민감정이 더욱 악화하였을 경우 현실적으로 눈이 돌아간 러시아의 분노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한국군 장교들의 공통된 인식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불리다 보스토크의 함락 소식은 그 즉시 이형에게도 전달되었다. 이형은 이에 크게 기뻐하며 지시를 내렸다.
"도시의 이름을 해삼위로 돌리고, 장차 연해주의 주도(州都)로 삼겠다. 단, 현지의 노서아인들은 간도로 옮겨두도록 하여라. 접경지대에 그대로 두어봤자 계속하여 분란 거리 밖에는 되지 않을 터이니."
이미 연해주를 대한제국의 영토 일부로 삼았다고 인식한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했으며, 그대로 진행되었다. 연해주의 러시아인들은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정든 도시에 남지도 못하고 한국군에 의하여 간도로 떠나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