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83화 (183/530)

< 종전, 혹은 휴전 >

"…참으로 경하드립니다. 정말로 굉장하시군요. 이렇게도 빠르게 서역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참을 침묵하던 공친왕이 가까스로 입을 열어 내뱉은 한마디였다. 평소와 같은 비꼼이나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 경의와 존경으로 가득 찬 언사였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비유럽권 국가의 지도자로서,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는 공친왕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기본적으로, 백인들은 미대륙과 유럽을 제외한 주변세계를 자신들과 대등하게 여기지 않는다. 같은 인간으로서 대우해주는 때도 극히 드물다. 톨레랑스를 내세운 프랑스조차 백인이 아님은 물론이오 같은 백인이더라도 동유럽계의 슬라브 인들이나 유대인 등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물며 사회진화론의 총본산이던 영미권은 말할 것도 없다.

키가 유별나게 작거나 큰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납치해와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라며 동물원에 전시해두던 것이 영국이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박제 표본을 박물관에 당당하게 전시하던 게 이 무렵의 미국이다. 딱 잘라 말해서, 백인이 아니라면 인간으로서 대우받기도 어려운 시대였던 것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중받지도 못하는데 하물며 국가 대 국가라면 어떨까. 더욱 말할 것 없다. 깔봐지는 것이 당연하고, 핍박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그런 시대에, 하다못해 그간 유럽과 오랜 세월 교류해온 중동의 이슬람 제국도 아니면서 비백인, 비유럽권 국가가 승전국의 한 축으로서 당당하게 초대받은 것이다. 비록 협상의 주도권을 쥐지는 못하더라도, 그 의의는 실로 대단했다. 인간조차 아닌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에서, 이제 비로소 인간으로서 대우받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이 옳게 되었구나.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우리의 것을 지키려던 모든 노력은 결국 허황한 것이었다. 모두 포기하고, 모두 잊어버리고서 서구의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올바른 것이었어.'

때문에, 공친왕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이형의 방식이 이렇게 단기간에 성공을 이룩했다는 것은, 결국 그를 비롯한 청나라 조정의 방식은 처음부터 그릇된 것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러니 언젠가는 실패와 몰락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마침내 그의 눈앞에서 증명되고 만 것이다.

물론 한족들의 민심을 추스르지도 못한 청나라에 그런 과격한 개혁이 가능할 턱이 없었다. 그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다소 느리고 비효율적이더라도, 언젠가는 이를 통해 청이 다시금 부흥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형은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해 보였다. 애초에 방식 그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이라고.

결국 이형처럼 단호하고 과격한 개혁을 추구할 수 없던 청나라는 작금의 시대에 결국 실패하여 몰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형의 성공은 공친왕에게 그리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직 성과를 보이기는커녕 기초적인 개혁조차 답보상태에 놓인 청나라에 비하여, 조선은 이미 저 멀리 달려나가고 있었다.

"어깨를 나란하게, 라."

한편, 이형은 공친왕의 축하에 코웃음을 쳤을 따름이다. 공친왕에게는 분명 놀라운 일이었을 테고, 실제로도 굉장한 위업이었지만. 이형으로서는 이번 초청이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태여 베를린까지 찾아오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하다못해 미국이라면 모를까, 베를린까지라면 가볍게 반년은 걸릴 것임이 분명하다. 꼴이 마치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애완견을 부리는 꼴이 아닌가.

'길을 들여볼 작정이로군. 어디 베를린까지 오는 길에 아시아를 떠나면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놈인지 뼈저리게 느껴보라 이건가.'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물론, 그대로 따라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유럽은 너무 멀고 위험하다. 아시아에서야 한국군의 비호를 받았지만, 유럽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제 어디에서 노려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이형을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널리고 널렸다.

물론 유럽의 외교 거물들과 직접 만나 담화를 나누면서 친분을 쌓고, 아직 미숙하기 그지없는 한국의 외교관들에게 일임하기보다 이형이 직접 나서면서 더욱 많은 대가를 받아챙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수개월 간의 여정에 동반된 그가 받게 될 무수한 모멸과 위기와 맞바꿀만한 것인가 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미 대한은 중화제국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함으로써 모든 것을 얻었다.

이형은 박규수를 전권대사로 파견할 작정이었다. 이미 한차례 유럽을 다녀온 박규수라면 그보다는 못하더라도 열강들에 마냥 휘둘리지만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어차피 이번 전쟁에서 한국은 지금 점령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 받는 것만으로 원하는 것 전부를 얻을 수 있다. 협상 난이도는 결코 높지 않은 만큼, 이형이 구태여 나설 이유도 적었다.

'무엇보다, 이걸 단순히 위신을 드높였다고 좋아할 수만도 없단 말이지.'

이형은 저 멀리 북경성 위로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를 흘끗 쳐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북경성 위로 휘날리는 태극기. 현재 극동에서 대한제국의 지위는 이 하나로 증명 가능했다. 독보적 패권국이자, 현 천하의 정당한 주인. 그것이 대한제국이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이미 열강들에 그것을 공인받은바 있다. 다시 말하여, 대한제국은 이미 동아시아라는 세계 안에서는 그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독보적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베를린 종전협상에 초대받아 승전국의 일각을 차지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한국의 지위는 극동의 지역패권국에서 주요 승전국 말석 즈음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아무튼, 러시아, 신성로마제국과 실제로 사투를 벌인 건 영국과 프랑스지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대전에서 한국의 공헌은 고작 해봐야 중앙아시아 침공과 연해주 침공 정도.

전선 하나를 사실상 홀로 유지하고 있었으니 분명 주요 승전국 중 하나라고 자랑스럽게 떠벌일 수는 있겠으나, 그 지위는 결코 독보적이라고 할 수 없다. 동아시아라는 작은 세계에서 만족했다면 언제까지고 형님 노릇을 할 수 있었을 한국을, 반쯤 억지로 세계라는 거대한 무대로 끌어올려 열강 말석 내지 열강조무사급으로 격하시킨 격이다.

'아마 영국이 원하는 것도 그거겠지. 한국을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억지로라도 유럽의 열국들과 교류할 기회를 계속 늘리면서 한국이 좋든 싫든 유럽을 의식하게 하고, 그렇게 교류를 늘리면서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제멋대로 날뛸 수 없게 만드는 것. 더욱 다양한 나라의 이권이 서로 얽히고설킬 수록, 눈치를 봐야 할 곳도 늘어나고 그만큼 얌전해지는 법이니까.'

"정말이지 독이 든 성배가 따로 없군."

이형은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아무튼 거절할 수는 없다. 지금 시대에 국제외교 무대의 중심은 유럽이다. 한국이 제아무리 동아시아에서 젠체를 해봐야, 유럽의 외교가와 어떤 식으로건 얽히지 못한다면 결국 우물 안 개구리로 끝날 뿐이다. 그러나 너무 이르다. 분명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져야만 했을 일이지만, 지금은 아직 너무 일렀다.

벌써 동아시아라는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오대양과 육대주로 나아가려면 한국은 끝도 없이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아직은 동아시아 바깥의 진짜 열강들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까닭이다. 쉴 새 없이 유럽의 열강들에 고개를 숙이며, 비굴하게나마 긍정적인 외교관계를 구축해야만 한다. 이제 막 동아시아를 평정하고 주변국들 앞에서 무게를 잡아야 할 시기에 벌써 다른 열강들 앞에서 고분고분해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보고서 주변국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건 그리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보나 마나 약한 나라들에만 강하고 강한 나라들에는 약하다는 인상을 품기 십상이다. 한국에는 체면을 구기는 격이다. 분명 국제외교 무대로 데뷔하게 된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고 대단한 일이지만, 그 대가로 한국은 아직 동아시아의 패자로서 인상을 굳히기도 전에 고분거리는 모습부터 보여줘야만 한다. 뭐든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라지만, 이형에게는 영 마땅치 않았다.

물론 이미 여러 차례 서역의 열강들을 상대로 비굴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었지만, 그건 아직 대한제국이 천하를 평정하기 이전이다. 지역강국 중 하나로서 다른 지역국들과 함께 열강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과, 천하를 평정하고 천명을 거머쥔 패자가 서역에 고개를 숙이는 건 아무래도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형이 이번 초청을 그리 마땅치 않아 하는 까닭이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엿을 까 잡수라고 내밀다니. 하여간 영길리 놈들이란.'

이형은 거칠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거절할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받아들이기에는 예상되는 불이익이 상당하다. 그럼 별수 없이 받아들이되 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잡는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북경에서 공식적인 종전을 선언하려는 것도, 이에 대비하여 조금이나마 위세를 세우려는 시도 중 하나였다. 이후 한국군을 대거 동원하여 한성에서 승전 기념 군사 행진을 벌이고, 그 이후로도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 군사 행진을 일상화시키는 계획 또한 있었다. 아무래도, 당장 군대만 비대해진 한국에게 있어서 위신을 드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무력시위일 수밖에는 없었다.

"독…입으니까?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이번 백림에서의 만남으로 구라파에서 조선을 보는 시선 또한 크게 달라질 터인데, 어찌 조선에 있어서 독이 되는지요?."

"…아차, 이건 성서에서 비롯된 관용구이니 장인어른이 이해하기는 어려웠겠군. 흠, 그럼 표현을 달리 바꿔볼까. 그래. 계륵이라고 하지. 이건 계륵이야."

"계륵? 계륵이라…."

물론 공친왕으로서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서역의 열강들과 대등한 관계를 수립한다, 그들과 공정한 대우를 받는다. 작금의 시대에 그 두 개를 끝내 이룩하지 못하고서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나라가 망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당장 청나라 또한 그런 무수한 나라 중 하나이지 않던가. 그런데 막상 비유럽권 국가로서, 이제 갓 수교한 지 10년도 되지 않은 새내기가 이와 같은 쾌거를 이룩하고서도 계륵이라고 불평하고 있으니, 그로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걸물은 그 시야부터가 범인과는 다른 법이라지만, 이는 다소 지나쳤다. 공친왕으로서는 너무 먼 곳을 보는 것이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마 이형을 제외한 대다수가 그리 생각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서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고 있는 이형만이 홀로 이를 불평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범인과는 확연히 다른 시야를 가지고 있기에, 조선을 단기간에 이곳까지 끌어올렸으리라.

공친왕은 새삼 그의 눈앞에 있는 자가 천하를 거머쥐기에 적합한 걸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작금의 시대가, 오로지 조선의 황제 한 사람을 위하여 준비된 것만 같았다.

"그조차 계륵이라면, 폐하께서는 도대체 어디까지를 노리고 계시는지요?"

그렇기에 공친왕은 궁금해졌다. 작금의 시대를 온전히 수중에 넣고서 제멋대로 쥐락펴락하고 있는 이 조선의 황제가 어디까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진정으로 아시아 전역을 정복하여 통일제국을 세우려는 건지, 아니면 구시대적인 천주질서를 개편하여 다시금 재건하려는 건지, 그조차 아니면 그가 한때 의심했다시피 전화가 끊이지를 않는 불지옥으로 만들려는 건지.

이미 대한이 식민지로 전락할 단계는 진작에 남았다. 덩달아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속한 국가들 또한 그리되었다. 그들은 번 국으로서 계속하여 대한을 섬기게 될지언정, 식민지로 전락할 운명은 명백하게 회피한 다음이다. 그렇기에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이다음,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하고.

그에 대한 이형의 대답은 참으로 성의 없는 것이었다.

"글쎄? 뭐, 내 죽기 전까지 손에 들어오는 것들은 일단 몽땅 바리바리 싸들고 가려 하오만."

"…허."

그 광오한 탐욕스러움에, 공친왕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무렵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선보여진 세계대전에서, 이익을 본 나라는 극동의 대한제국뿐이라는걸 말이다.

대한제국은 세계대전을 틈타 중원을 손에 넣었다. 유럽에서 전쟁을 벌이느라 허약해진 러시아를 공격하여 연해주에서 내쫓았고, 이를 통하여 동아시아에서 대한제국의 패권은 그 누구도 뒤흔들 수 없는 굳건한 지위에 올랐다. 이제 다시 그들을 끌어내리려면, 그야말로 세계대전에 준하는 거대한 사건이 필요하리라.

그리고 그 사건은 이미 차근차근 쌓아올려 지고 있었다.

"또다시 무슬림 놈들의 지배 아래로 돌아가라고? 웃기지 마라! 누구 멋대로 우리가 패배하였다고 말하는 거냐! 세르비아 민족의 위대한 웅비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신앙의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침략자 터키인들의 야욕을 분쇄하라!"

"가증스러운 기독교 반역자들에게 제국이 건재함을 보여라! 알라께서 우리를 보유하시매, 알라의 검에 패배는 없을지어다! 알라 후 아크바르!"

가장 먼저, 발칸. 발칸의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이 패배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들은 종전협상이 시작되어 모든 전선에 걸쳐 휴전이 이뤄진 이후로도 계속하여 투쟁했고, 신성로마제국과 러시아는 이를 은근히 지원하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영국과 프랑스는 이에 맞서 발칸의 소수민족들 반란을 진압하려는 오스만 튀르크를 은근히 지원하였다.

결과, 이미 독일과 폴란드 일대를 비롯한 주요전선에서는 총성이 멎은 뒤에도 발칸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끊이지를 않았다. 소수민족들은 독립을 요구했고, 튀르크인들은 제국의 존속을 요구했다. 둘의 요구는 양립될 수 없었기에, 전쟁은 계속되었다.

"독일 민족에게 영광 있으라! 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 만세! 배신자 프로이센인들을 처단하고, 위대한 독일 민족의 통일을 재현하자!"

"압제자 카이저를 타도하라! 자유 독일 만세! 공화국에 영광 있을지어다! 낡은 봉건잔재를 타파하고, 자유로운 독일 시민의 독일 연방 건국하세!"

한편 독일 일대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신성로마제국은 끝까지 프랑스와 영국의 지원만 없었더라면 언제든지 멸망시킬 수 있었을 프로이센 공화국이라는 역도들의 존재를 부정했고, 마찬가지로 프로이센 공화국은 신성로마제국을 타파해야 할 구시대의 잔재로 규정했다.

양국은 태생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다. 독일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계몽주의의 이름으로, 양국은 어느 한 쪽이 사라져야만 하는 천적이었다. 이에 따라, 휴전기간 동안 양국 사이에서는 같은 독일어권이라는 핑계로 대이주가 이뤄지게 되었다. 독일의 빠른 재통일을 원했던 이들은 신성로마제국을 그들의 새로운 조국으로 삼았고, 독일의 자유화를 원했던 이들은 프로이센 공화국을 새로운 조국으로 삼았다.

프랑스군의 통제 아래에 놓여있던 라인란트, 하노버를 비롯한 구 북독일 연방령이 보불동맹에 따라 프로이센 공화국에 양도 되고 휴전 기간 중 치러진 총선을 계기로 프로이센 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독일 연방 공화국이 형성되자, 이러한 양측의 대립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은 독일민족의 통일을 방해하는 프랑스를 증오했고, 독일 연방은 독일의 통일을 방해하는 러시아를 증오했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달마티아와 쥐트티롤을 갈망했고, 러시아는 폴란드를 상실한 데에서 앙심을 품었다. 이미 유럽의 외교가가 종전을 결의한 이후로도, 유럽 전역에서는 전운이 감돌았으며 시민 여론은 복수를 갈망했다.

"이건 종전협정이 아니야. 고작 해봐야 10년짜리 휴전협정일 뿐이지."

식견있는 이들은, 누구나 그렇게 한탄하고는 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예측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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