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86화 (186/530)

< 천하유람? >

잠시 시곗바늘을 돌려 이 무렵 이형의 행보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해 보자.

"그렇지만…이거 애매하게 되었군. 시기가 안 좋아. 이 시점에서 괜히 확전시켰다가는 우리 혼자서 러시아랑 싸우게 생겼군. 양보를 기대하는 수밖에."

가장 먼저, 오르도스 고원에서 유럽의 휴전 소식 및 종전 협상 개시를 전해 듣고서 캄차카 원정을 단념한 것. 이 무렵이 1872년 말엽, 구체적으로는 12월 무렵이었다. 이때부터 이형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형이 서역의 소식에 밝은 해안가 일대에서 벗어나 내륙 깊숙이 오르도스 고원에 머무르던 있던 까닭에, 한국이 유럽의 휴전 소식에 곧장 대처하지 못하였다고 자책했기 때문이다.

마침 그 무렵에는 아직 휴전 소식을 전해 받지 못한 시베리아 러시아군도 여전히 수세에 일관하고 있던 덕분에, 이형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서 곧장 오르도스 고원을 떠날 수 있었다. 이형은 그대로 오르도스 고원에서 약 천여 명의 기병만 인솔한 채로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바오터우를 거쳐 장안으로 말머리를 잡았고, 이때 바오터우에서 셍게린첸과 헤어졌다.

"그럼 북방의 방비는 경을 신임하고 일임하도록 하겠소. 너무 모험은 하지 말되, 그렇다고 북적에 맞서 너무 기죽지도 마시오. 그것만 잘한다면 그 외에는 별달리 참견하지 않겠소. 그대라면 어련히 잘 알아서 하리라 믿고 있으리다. 물론, 지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하여도 좋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 비루한 게르의 보잘것없는 늙은이를 이토록 신뢰해주시니 어찌 달리 드릴 말씀이 있으시오리까. 그저 공을 세우는 것만이 황은에 보답하는 길인 줄 알고 언제나 황상께서 계신 동녘 땅만을 오매불망 바라보겠나이다."

이형은 셍게린첸에게 북방의 일을 일임하겠다고 하였다. 이전에 몽골의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였던 것을 다시 한번 재약속한 것이었다. 이형은 몽골인들의 자치를 보장하는 대가로서 앞으로도 계속하여 대한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했고, 세우게 리첸과 몽골인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양국의 결합은 러시아에 맞서 공동투쟁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까닭에, 반발은 없었다.

셍게린첸이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감사를 표한 것 또한, 이형이 약속을 끝까지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자 아첨이었다. 당장 이형의 심기가 조금이라도 뒤틀리는 순간 이와 같은 어정쩡한 협력은 쉽게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음, 말만으로도 든든하오. 앞으로도 우리 조선에서 노서아와 다투는 데에 많은 포수를 써야 할 텐데, 그때 의지할 것이라고는 그저 대초원의 백성들뿐이 아니겠소. 그때도 잘 부탁드리리다. 다만 그들은 짐이 특별히 다루고자 하니, 함부로 간섭하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소."

"…여부가 있겠나이까. 그저 황상께서 정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다만 이로써 양국의 지위는 전혀 달라졌다. 그간 조선과 몽골은 실제로는 어찌 되었건 겉으로나마 대등한 지위였으나, 이제는 동군연합이되 겉으로도 조선이 몽골을 속국으로 두고 있는 격이 되었다. 대외적인 명분이야 러시아와 맞서기 위함이라지만, 몽골 영토 내에 조선군이 주둔하는 것이 공인된 것이다. 물론 조선인이 몽골 땅을 밟는 건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당장 몽골 내전 중 활약한 의용군 중 장교들은 모두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형이 이들 몽골 의용군을 전후 한국군에 흡수할 심산을 품고 있던 만큼 이는 당연한 조치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때 몽골 의용군은 셍게린첸의 지휘 아래에 있었고, 애초에 의용군은 의용군일 뿐 진짜 군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조선 정규군이 셍게린첸의 지휘를 받지 않고 별개의 지휘체계를 가지는 걸 용인받은 것이다.

조선군은 러시아에 맞서기 위함이라지만 이제 당연하게 몽골에 주둔하게 되었는데, 반대로 몽골군은 북만주까지라면 몰라도 간도나 조선 8도 같은 조선국의 직할령에는 감히 가까이 갈 수조차 없다. 이와 같은 관계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적어도 대등한 국가 간 관계는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셍게린첸 스스로 자조했다시피, 몽골은 그저 러시아와 조선 중 어떤 주인을 섬길 것인가를 고른 격이었다.

"평안 무탈하신 듯하니 무엇 보다 다행이옵니다. 이 또한 상제께서 황상의 높은 덕을 총애하여 보우하심인 듯하니, 어찌 천하의 천명이 대한에 있음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황상의 치세 아래 우리 조선이 천하를 웅비하게 되었으니 어찌 황상의 무공을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고황제께서 말에 오르시거든 온 천하의 오랑캐들이 그 고매하고도 용감무쌍한 자태에 차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쳐 고황제께서 말을 몰 길이 열리며, 그 모습을 흠모하여 뭇 야인들이 고황제께 앞다투어 복속하였다고 하는데. 오늘날 황상께서 야인을 복속시키시고 더 나아가 중원을 평정하여 해동의 천하를 여시거늘, 이는 곧 해동에 왕기가 서려 구룡이 날아…."

"아니, 그쯤 하면 되었소. 즉, 오늘날 짐의 위업이 고황제께서 이룩하신 그것에 비견될 법하다는 것이구려. 짐에게는 과분한 칭송이요. 고황제께서 옛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짐이 무슨 수로 해동의 왕이 되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천하를 평정할 수 있었겠소? 짐이 오늘날 이룩한 것은 모두 선제들께서 덕이 지극하시던 까닭이지 짐 혼자만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외다."

'에헤이, 이 인간이. 이성계보다 내가 잘났다고 뻐기면 후안무치를 넘어서 패륜이라는 소리가 나올 텐데. 이 녀석 날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막 나가는 경향이 있어.'

이렇게 바오터우에서 셍게린첸과 헤어진 이형은 그대로 장안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전봉준과 재회하였고, 태평천국을 토벌한 이래로 장안에 머물며 이형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한성근으로부터 태평천국 토벌의 후속 조치를 사후보고 받았다. 그 와중 한성근이 이형을 향해 세 차례 절을 올리며 이형의 공이 이성계를 능가한다는 둥 소리를 늘어놓는 통에 이형이 식겁하기도 하였다.

다만 이형에게는 기겁할 일이었으되,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군 내의 여론은 이형에게 호의적이라는 방증도 되었다. 사실 청나라 또한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만큼이나 이후 중원을 평정하여 청나라의 천하를 연 홍타이지도 높이 쳐주니만큼 무리가 없기도 했다. 단지 황제인 이형 본인이 자신의 위업이 이성계에게 버금간다며 젠체했다면 뒷말이 좋지 않을 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이형으로서는 겸손을 보이며 최선의 대처를 보인 셈이었다.

정작 이와 같은 해프닝을 제외하자면, 한성근의 태평천국 토벌 이후의 후속 조치에서는 특별히 흠잡을 것도 그렇다고 특별히 높이 평가할 것도 없이 평범했다. 직접 태평천국에 연관하여 목을 친 이들은 3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그 외 나머지는 고향에서 추방하거나 노역에 동원하여 전후 사천성 재건에 이바지하도록 하거나 하는 식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직 사교를 추종하는 무리가 곳곳에 남아있어, 온전히 그 씨를 말리려면 1년은 더 걸릴 듯싶습니다. 사교의 교주가 죽은 이후로는 뿔뿔이 흩어져 도적 떼와 분간할 수 없게 되어 버렸으니 이 또한 토벌이 어려운 까닭입니다. 섣불리 목을 자른 것이 한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나이다."

"으음…."

'내가 너무 심하게 생각했나. 생각보다 평범하고 온화한 일 처리인데. 아직 사람 목숨이 귀하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이형으로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다소 과격해진 한국군의 내부 기류를 고려하면 적어도 5만 명에서 10만 명이 목이 잘리거라 여긴 까닭이었다. 어쩌면 그나마 목을 자른다고 자른 것이 그 정도일지도 몰랐다. 청나라야 유목제국으로서 반란을 일으킨 정주민족을 벌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지만, 조선은 요즈음 급격히 변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 농업 국가였다. 거리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조선은 농민반란이 그리 흔한 나라도 아니었거니와 그 처벌도 가벼운 편이었다. 조선에서 이와 비교할만한 홍경래의 난을 정벌한 이후 조정에서 직접 목을 친 건 2천여 명 정도. 그나마도 10세 이하의 소년이나 여자들은 제외되었다. 아직은 근대국가라기보다는 구시대의 조선 색채가 짙은 대한제국인만큼, 3만 명도 그나마 독하게 마음먹고 목을 친 것이 그 정도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어느 쪽으로 해석하건 이형으로서는 불행 중 다행인 일이었다. 토벌은 둘째치고 이후 후속 조치에서 보복 수위에 따라 이런저런 뒷말이 나올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태평천국처럼 긴 세월 동안 존속하고 있던 종교반군을 토벌하는데 목이 자른 것이 3만 명이면 교주 일족과 그 휘하 원로급 일족 등 태평천국에 동조한 것이 확실한 이들을 죽이고 거기에서 더 멀리 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태평천국이라는 저 사교 무리가 중원 땅을 어지럽힌 것도 어언 20여 년 째인데, 교주 하나의 목을 베었다고서니 그 추종자 전부가 그리 쉽사리 사라질 수 있겠소.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머무르며 사교도 토벌을 지휘하여 주시오. 짐은 경만 믿고 있으리다."

"비루한 서생을 믿고 이와 같은 중임을 맡겨 주셨으니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각골난망하야 이 비루한 몸뚱어리가 옥과 같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대한의 천하를 위하여 이 한목숨 바치겠나이다! 대한제국 만세! 만만세!"

'옥쇄, 라. 으음….'

마음 한 켠에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이형은 그대로 한성근에게 한동안 계속 사천성에 주둔하며 태평천국 토벌과 치안 안정을 일임하였다. 달리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형은 그길로 전봉준을 대동하고서 다시 남경으로 떠났고, 가는 길에 베를린 종전 협상에 초대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공친왕에게 자금성을 빌려달라 부탁하려 말머리를 북경으로 돌렸다.

이 무렵 이형을 따르는 병사의 숫자는 약 3천여 명으로, 그들 전부가 기병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형으로서는 그저 거추장스러워 몸만 이끌고서 오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될 리가 없었다. 겉으로는 대한제국에 복종하고 있다지만 속으로는 다른 심산을 품었을 군벌이야 널리고 널려있었다. 한성근도 이를 우려해 이형에게 그가 본래 이끌던 흉갑기병대를 붙여주었고, 이형은 거추장스러워하면서도 이것이 옳다고 여겨 순순히 따랐다.

"그럼 머지않아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무렵에는 서역의 공사들과 함께이시겠군요."

"뭐, 그렇게 되겠지. 쩝, 내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또 고량주나 한 병 까고 갔을 텐데…에잉. 안녕히 계시오, 장인어른. 그때 또 뵙시다."

그리고 현재. 이형은 공친왕에게서 허락을 받은 대로 곧장 북경을 떠나 다시 남경으로 말머리를 잡았다. 이하응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지난 암살시도가 이하응의 음모가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지만, 그렇기에라도 이형은 이하응을 한 번쯤 만나볼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다. 그가 지금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속내를 한 번쯤 캐낼 필요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당장 이형부터가 전후 전주 이씨 종친들을 대거 가져다가 아홉 제후국의 왕으로 삼고자 하고 있지 않던가. 그 종친들의 구심점이나 다름없는 이하응이 흑심이라도 품는 순간 당장 천하가 무슨 꼴이 날지는 눈에 훤했다. 이형으로서는 도저히 이하응을 외면할 수가 없던 것이다.

"황상, 조금은 몸을 쉬시지요. 벌써 3개월 넘게 쉴 새 없이 말을 몰고 계시지 않습니까. 인제 그만 한성으로 돌아가 옥체를 쉬게 하시는 편이 어떨는지…."

"아니, 한성에 돌아가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라도 지금은 쉬어서는 안 된다. 작금의 천하는 사상누각이다. 이 몸이 벌써 게으름을 피우기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우선 이하응-아니지. 흥선왕의 속내를 캐내기 전까지는 쉴 수 없다."

남경으로 향하는 길, 전봉준이 이형의 몸을 걱정하여 휴식을 권고하여도 이형은 듣지 않았다. 기실 들을 수 없었다-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했다. 그의 말대로, 아직 대한의 천하는 겉만 그럴싸할 뿐 속은 텅빈 강정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부터 그 속을 채워나가는 것이 바로 이형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하응과 마주하는 일은 비록 당장 속을 채워나가는 것과는 무관하였으되, 구멍 난 풍선처럼 쪼그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도 이형에게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이형에게 있어서 이하응은 그만한 경계를 보일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피만 이어진 아버지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하응에게는 권력욕이 있고, 이형에게는 권력이 있다는 사실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이형은 전봉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급히 말을 몰다가, 다시 청도로 말머리를 틀었다. 박규수가 증기선을 타고서 청도로 건너왔다는 소식을 들은 까닭이었다. 이형에게는 이하응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던 만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간 강녕하셨습-. 음, 황상. 조금은 옥체를 돌보심이 어떨는지요. 피로가 많이 쌓이신 듯합니다. 한양에 돌아가 당분간은 옥체를 쉬게 하심이…."

"아니, 그럴 시간은 없소. 적어도 앞으로 반년간은 해야 할 일이 태산이란 말이오. 아무튼 마침 잘 왔소. 해줘야 할 이야기가 참으로 많소이다. 우선 이미 알고 있겠지만 서역의 열강들 앞에서는 함부로 자존심을 세우지 말고 수그리도록 하시오. 다소 비굴해져도 상관없소. 적어도 향후 10년간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질 때까지 수그려야 할 거요.

그리고 러시아와 종전 협상을 맺는다면, 우선 몽골과 연해주 두 곳만은 확실하게 확보해두시오. 배상금은 필요도 없고 그 치들이 그만한 돈이 있을 리도 없소. 또 가능하다면 캄차카를 할양하도록 요구해보시오. 영길리와 미리견 등은 노서아의 태평양 진출을 마땅치 않아 하니 그들과 사전에 잘 이야기하여 동참시킨다면 충분히 캄차카반도를 양보받을 수도 있을 것이오.

다만 그리 집착할 필요는 없소. 우리에게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곳은 연해주와 몽골 두 곳이지, 캄차카는 어디까지나 덤이오. 덤 때문에 협상을 파토낸다거나 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주시오. 또 구라파로 가면 화란과 서반아, 돌궐과 수교하도록 하시오. 화란과 서반아는 남만에 식민지가 있으니 우리와 수교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니 어려울 것 없고, 돌궐은 옛 고구려 적의 연을 들먹여봅시다.

또…."

박규수를 만난 이형은 한참을 그렇게 주절거렸다. 그만큼 박규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도, 당장 유럽의 열강들과 관계를 맺으며 한국이 취해야 하던 것도 많았던 까닭이다. 이형은 스스로 유럽에 갈필요 없다고 했으나 기실 이는 '갈 수 없었던 것'이지 가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천하 이곳저곳을 바둑이에게 의지해 쏘다니던 이형에게 유럽까지 가면서 허비할 시간은 없던 것이다.

이유는 각기 다양했다. 스페인과 수교하면 필리핀에서 설탕과 마닐라삼 등을 수입할 수 있었고, 네덜란드와 수교하면 인도네시아에서 질 좋은 목재와 더불어 후일 고무를 수입할 수 있었다. 오스만 튀르크의 경우에는 당장은 보잘것없지만 후일 중동에서 석유가 나는 걸 알고 있는 이형에게 중동의 패권국과의 수교는 필수적인 절차였다.

사정이 이러니 무엇 하나 한국의 산업화에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수입해올 수 있겠지만, 수입 길은 언제나 다양할수록 좋은 법이었다. 어느 하나와 사이가 틀어지는 순간 경제가 파탄 난다면 그것보다 끔찍한 일이 없었다. 그러니 이형으로서는 쉴 새 없이 나불거릴 수밖에 없었고, 박규수는 그런 이형을 신기함 반 긴장감 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형의 말에 찬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뭐, 대강 이러하오. 그래서, 뭔가 질문이 있소? 있다면 빨리 말해주시오. 짐은 급하오."

그렇게 얼마간을 떠들었을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이형은 숨을 헐떡이면서 말을 멈췄다. 그런 이형을 유심히 살피던 박규수는, 찬찬히 입을 열었다.

"그럼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자, 무엇이오? 뭐든지 물어보아도 좋소."

"황후 마마께서 말씀하시기를 태자 전하께서 이제 막 말문이 트였는데, 전하께서 첫 마디를 조선말로 하였을지 만주말로 하였을지 황상께 알아맞히어 보라고 여쭈셨습니다."

"…."

이형은 그길로 잠자코 청도에서 증기선에 올라 인천을 거쳐 한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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