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92화 (192/530)

< 강철의 도시 >

"정주에서 시작하여 광주와 남경, 북경을 잇고, 그다음 프랑스의 협력을 받아 여순을 추가로 연결. 다시 이를 심양과 부산을 연결하던 기존의 노선과 연결한다. …제가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맞습니까?"

"정확하오. 분명 1, 2년으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장차 10년에서 15년 안팎으로는 완성하려고 하오. 때에 따라 다르겠소만. 프랑스의 협력을 조금 더 일찍 받을 수 있다면 여순에서 북경, 심양을 잇는 노선은 정주에서 북경까지를 잇는 노선과 동시에 착공에 들어가도 좋소."

"흐, 으흐흐! 폐하께서는 정말로 굉장하신 분이십니다. 어찌 이리도 먹음직한 소뼈를 가져와 주셨는지…! 정말이지 놀랍군요. 눈물이 다 나올 지경입니다. 이거야말로 뭇 사나이라면 황홀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장대한 야망이 아니겠습니까. 광주에서 남경까지만 해도 직선거리로 750마일 남짓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또 정주를 잇고, 북경과 여순을 잇겠다니 이 무슨…!"

카네기는 마치 꿈을 꾸듯 황홀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완성되기만 하면 무조건 수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륙종단철도 사업이다. 중원의 추산 인구는 이 무렵 이미 3억을 넘겼다. 3억의 노동력과 소비자가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대륙종단철도를 놓겠다는 것이다. 5명 중 한 사람만 철도를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쳐도 동시기 미국의 전체 인구를 웃도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날 리가 없다. 항구지대는 그동안 이미 어느 정도 개항이 진행되면서 서구의 열강들에 의하여 수탈이 진행되어 왔지만, 내륙지대는 아직 모든 열강들에게 미답의 영역이다. 대한은 지금 그 미답의 영역을 개척하려고 하고 있다. 해안지대를 따라서 광주와 남경, 북경을 연결했다면 훨씬 간단했을 사업을 구태여 중원의 배꼽이라 할 수 있는 정주를 가로지르게 한 것만 봐도 그렇다.

카네기는 한눈에 이형의 심산을 눈치챘다. 정주를 중심으로 대륙 곳곳을 이어버릴 작정인 것이다. 카네기는 코끝에서 옅은 비린내가 감도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뚝뚝하고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나친 흥분에 코의 미세혈관이 터져버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너무 과도하게 열이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3억! 그리고 직접 육로로 연결될 대한을 합하고 향후 인구성장률을 계산에 넣는다면 거의 5억 가까이 되는 인간이 교차하는 초대형 환승역의 탄생이다. 괜히 대한의 황제가 정주만큼은 대한이 직접 가지겠다고 한 게 아니었어. 3억의 중국인들이 오고 다니는 철도교통의 요지 중 요지를 만들 작정인 거다! 황하 같은 큰 강을 끼고 있으니 도시로서의 잠재력도 충분해. 그러면 인구 100만도 우습지. 어쩌면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인구 1000만의 대도시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미쳤다. 이건 미친 짓이야! 1000만, 1000만이 사는 대도시라니. 맙소사,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런던조차 고작 300만이라고! 그러나 그렇게 된다. 어쩌면 1000만조차 중간에 지나칠 통과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도시가 온통 기차역과 기관차와 중국 전역에서 긁어모아 온 화물들로 빼곡해질 거다. 마천루가 도시 곳곳에 세워질 테고, 상수도관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며 온통 도시가 강철로 뒤덮일 거야!

강철, 강철로 뒤덮인 도시라니! 지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저런 작은 도시가 그런 강철의 도시로 변할 거라고? 하,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군. 소뼈를 내놓으라고 했더니 두툼한 등심살을 후추와 소금에 절여서 내놓았어. 이런 맛 좋은 고기를 맛보면 두 번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 이 마음씨 좋은 개 주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

푸슛.

"오, 이런 실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자 카네기는 더는 참지 못하고서 코에서 핏줄기를 뿜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나 황홀해서 도저히 흥분을 가라앉힐 도리가 없었다. 카네기는 멋쩍게 웃으며 손수건을 꺼내어 코끝을 가렸다. 제법 많은 돈을 들여 특제 주문한, 장인의 이름이 새겨진 비단 손수건이었건만 카네기는 아끼던 손수건이 피로 더럽혀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형은 이미 옛 주나라가 있던 하남 땅과 정주를 대한의 직할령으로 삼겠다고 선언했고, 그건 장차 조선인들을 이주시켜 이를 적극 개발할 심산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합병하고서 알제를 비롯한 북부 해안가 도시에 먼저 자국민들을 이주시키며 통제력을 강화했듯이, 이형은 중원의 배꼽인 하남 땅에 조선인들을 이주시키고 철도교통의 요지로 만들어 중원을 제어할 작정인 것이다.

그럼 장기적으로 이를 통해 카네기가 돈을 벌 구석이 한두 구석이 아니다. 일단 당장 정주로 달려가서 땅을 되는대로 사재기하여 후일 정주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무렵까지 묵혀둘 수도 있고, 그렇게 정주가 성장하면서 빨아들일 천문학적인 물량의 강철을 독점 공급하면서 부를 쌓을 수도 있다. 아예 카네기가 직접 새로이 만들어질 정주의 도시 재설계안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한가지 확인하고 싶습니다만, 이걸 처음으로 들은 사람이 제가 맞습니까?"

"반대로 되묻건대. 그대가 알기로 짐이 그대를 제외하고서 달리 이런 사업을 상담할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오?"

"딱히 짚이는 구석이 없군요. 맙소사,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 폐하께서는 정말 저를 가만히 놓아주실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로군요. 이런 낯 뜨거운 러브콜이라니. 맙소사, 이런 맙소사! 이게 꿈은 아니기를 간절히 빌겠습니다. 설마하니 살아생전에 이런 장대한 사업에 뛰어들게 될 줄은…으흐흐!"

그렇기에 카네기로서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강철이 필요할까. 지금 미국 전역에서 생산된 1년 치 강철을 전부 끌어온다고 해도 이 거대한 사업에 필요한 강철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아마 조선 8도 전역을 제철소로 빼곡히 채워야 간신히 충당 가능할 수준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도 부족하다.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어쩌면 요동까지도 몽땅 제철소로 뒤덮어야 간신히 턱걸이나마 가능할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카네기의 평생을 들여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대사업인 셈이다. 그러나 만약 성공시킨다면 카네기의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남지 않을 리가 없다. 중원의 중심지를 화북의 북경과 강남의 남경에서 인위적으로 주나라적 중원의 중심지였던 하남으로 되돌리는 대사업이다. 수억 달러의 자금과 수십만 톤의 강철과 수백만의 인력을 하마처럼 집어삼킬 거대한 강철의 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다.

얼마나 장대할까. 얼마나 우아할까. 상상만으로도 황홀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도시를 자신이 만든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이미 비단 손수건을 온통 피로 적시고서도 모자라 피가 아래로 뚝뚝 흘러 양장을 더럽히고 있었다. 하지만 카네기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간은 막연하게 돈을 벌고 싶다. 더욱 많은 돈을 벌고 싶다-그 정도만 생각해왔지만. 지금은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이 꿈의 끝을 보고 싶다! 강철의 도시다. 강철의 도시를 만드는 거야! 엘도라도? 웃기지도 않는다. 고작해봐야 스페인인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았지. 하지만 이 강철의 도시는 다르다. 내가 만들 거다. 만들고 말 거야! 황금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강철의 시대다. 그리고 그 강철의 시대를 이 손으로 열어젖힌다. 이 대륙 간 종단철도로! 이 강철의 도시로!

나는 역사가 기억하는 인간이 될 거다! 제아무리 나를 싫어하는 인간이라도 죽어도 내 이름을 잊지 못하게 만들겠어!'

"투자하겠습니다. 당연히 투자하고 말고요. 제 전 재산을 걸고서라도 성공하게 하겠습니다. 물론 그조차도 폐하께서 그리시는 이 거대한 사업에는 부족하겠지요. 월가 배불뚝이 놈들의 궁둥이를 걷어차서라도 투자하게 만들겠습니다. 있는 대로 돈을 가져와 꽂아 넣도록 만들지요. 이제 내년이면 포항 제철소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시뻘건 쇳물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세계가 한국을 강철의 나라로 기억하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카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형에게 3차례 연이어 절을 올렸다. 그 뒤에는 이형에게 무릎을 꿇고서 다가와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신하가 군주에게 보일 예법이었다. 그만큼 카네기의 마음은 굳어졌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정착하는 것 또한 아주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형이 이야기한 사업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만일 이형이 계속해서 전쟁을 반복할 작정이었다면 카네기는 이형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전쟁도 물론 돈 벌기에는 좋지만, 전쟁을 반복하다가 끝내 대한제국이 그 빚을 못 이겨 파산하기라도 한다면 카네기도 덩달아 큰 손해를 보아야만 했을 것이다. 이형이 긴축재정을 시도했다면 마찬가지로 카네기는 실망했을 것이다. 정부가 돈을 마구 뿌린 덕분에 돌아가는 지금의 한국 경제에서 정부가 부채를 이유로 긴축재정을 실시한다면 긴 불황에 접어들었을 테니까.

그러나 이형은 보란 듯이 카네기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장대한 야망을 보여주었다. 카네기조차 그 장대한 규모에 매료되어버리고만 장대한 사업이었다. 그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업도 아니다. 값싼 노동력이 있다. 자원도 충분하다. 기술도 제공할 수 있다. 자금도 여차하면 쥐어짤 수 있다.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과 일을 밀어붙일 뚝심뿐.

그리고 이형은 그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카네기는 그의 자식뻘 되는 눈앞의 청년 황제에게 사랑에 빠질 것만 같았다.

"흐음, 각오가 선 모양이구려. 마음을 정해주어 고맙소. 그래서, 다시 해군의 이야기를 하고 싶소만."

"기꺼이 지급하지요! 폐하께서 바라신다면 미국에 남은 제 친구들과 연락하여 조선소를 들여올 수도 있습니다. 듣자 하니 제 조국에서는 이번 전쟁에서 유럽에 물건을 가져다 팔기 위하여 엄청난 양의 상선들을 건조했다더군요. 그러나 전쟁이 이제 끝났으니 조만간 일감이 뚝 끊기겠지요. 선주들은 다들 영국이나 프랑스의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질 좋은 상선을 선호하니 말입니다.

조선업만큼은 목숨을 걸고 사수하려 하는 영국에서 견제도 할 테고요. 아마 다음 해 즈음이면 슬슬 일감이 뚝 끊길 텐데, 한국에서 군함들을 수주한다면 좋다고 하고 받아줄 조선소들이라면야 널리고 널렸습니다. 특히 사정이 궁핍한 이들을 부추기면 미국에서의 자산을 처분하고 한국까지 건너와 시장가에 비하면 헐값에 조선소를 세워줄 사람도 구할 수 있겠지요."

"호오, 과연. 사정이 궁핍한 이들을 이용하자는 건가."

"꺼려지십니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주십시오. 가만히 두면 알아서 말라죽을 이들에게 살길을 마련해주는 격이라고 말입니다. 어차피 지금 이 세상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누군가를 등쳐먹으며 살아가는 겁니다. 이용하는 대신 생계라도 보장해준다면 오히려 기독교 윤리에 충실한 청교도적 인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카네기는 뻔뻔하게 답했다. 그는 아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서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 돕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신의를 배반하거나 타인의 궁핍함을 이용하는 것을 부도덕하게 여기는 향촌 사회의 윤리에 익숙한 조선인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형은 카네기의 말에 진심으로 동감했다. 그는 조선인이 아니라 현대 한국에서 온 인간이었으니까.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등쳐먹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향촌 사회에서야 자신이 먹고살 농작물을 수확하고 나면 이웃에게 선의로 나눠주거나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일해주는 것이 당연했지만, 자본주의로 넘어가면 자신이 먹고살 몫을 벌고 나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동료와 이웃을 짓밟고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조선인들도 차차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너무 과열되어서 착취로 변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관리하는 게 정부의 역할인 거고. 이놈도 결국 제 욕망을 채우려는 거지 이 나라를 위하려는 게 아닌데 함부로 믿어서야 안 되겠지.'

그러니 이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시선을 날카롭게 빛냈다. 카네기를 향한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였다. 카네기 또한 그것을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인간적으로 매료되어 충성을 맹세할지언정, 카네기는 공과 사를 구별 못할 인물도 아니었다. 그리고 카네기 같은 사업가들에게 개인에 대한 충성심은 공이 아니라 사다.

이형 또한 그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할지언정 신뢰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아 참, 그리고 새로운 재정 고문을 구하려고 하오만."

"재정 고문? 아아, 그 뺀질이는 결국 해임된 겁니까? 뭐, 폐하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쫓겨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설마하니 사흘도 못 갈 줄이야. 놀랍군요."

"그놈이 이 나라를 아주 완벽히 집어삼키려고 했소. 월말 복리로 이자율이 2할이라니, 진짜 정도가 있어야지…!"

"…오, 이런. 알겠습니다. 곧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수배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두 사람은 운명공동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이형의 말에서 대강 사태를 파악한 카네기는 단숨에 인상을 찌푸렸다. 모건이 한국을 글자 그대로 돈 주고 사려고 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그건 카네기에게도 안될 말이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는 격이 아닌가. 조러 전쟁 때부터 오랜 세월 공들여 투자해온 성과를 홀라당 날로 먹으려는 금융가의 음모를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그는 성인군자가 못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대강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눈치챘다.

'조선인들이 영어를 거의 전혀 못 하는걸 이용해 홀렸군. run만 해도 운영하다, 제공하다, 작동시키다, 육박하다, 잇다, 유효하다, 밀수하다 등 사업에 쓰일 때는 온갖 뜻으로 쓰일 수 있는데 영어를 못 하는 조선인들은 달리다라는 뜻밖에 모르지. 이쪽에서 작정하고 은어나 동음이의어들로 속이려 들면 그야 손쓸 도리 없이 당하는 수밖에. 이건 무조건 영어를 배워야지만 대처 가능한 수법이니까.

거기에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조선의 관료들이 상대라면 도장 받아내기야 더욱 쉽지.하루 만에 그걸 눈치챈 황제가 이상한 것뿐이야. 영어를 배운 것인지 엉터리로 번역된 서류로도 문맥을 읽어낸 것인지는 몰라도.'

물론 이걸 이형에게서 전해 들은 순간 눈치챘다는 건 카네기도 이런 술수를 한 번쯤은 생각해본 적 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저지른 적은 없어도 말이다. 황제의 신뢰를 깨면서까지 이익을 취할 정도로 그는 근시안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덕분에 강철의 도시를 만들어볼 기회를 얻지 않았던가.

카네기는 입꼬리를 뒤틀었다. 해외로 나가면 제일 무서운 게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이번에도 꼭 들어맞았다. 카네기가 조러 전쟁 때부터 다소 무리하게 도박을 걸어가며 얻어온 성과를 날로 먹으려 하다니, 과연 금융가다웠다. 그렇기에 더욱 배알이 꼴렸다. 만약 그의 눈앞에 있었다면 일단 새하얀 면장갑을 낯짝에 집어 던지고서 결투를 신청했으리라.

"돈이 필요하겠군요. 그것도 아주 많이 말입니다. 혹시 폐하께서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으신지요?"

"글쎄, 영국의 국채라면 어떻소. 마침 조만간 살 수 있는 대로 사들일 작정이오만."

"영국의 국채? 그야 그렇군요. 영국의 국채야말로 장기적으로 보면 가장 확실하게 계속하여 오를 국채일 테니 말입니다."

"아니, 짐은 조만간 급락할 거라고 보고 있소. 그러나 금방 또다시 오르겠지. 그때를 틈타 사들이려고 하오."

이번만큼은 카네기도 영문을 모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형은 따로 그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았다. 따로 이유를 설명할만한 관계도 아니었다.

그냥 그런 줄만 알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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