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97화 (197/530)

< 문화산업 >

"80년 빠른 아시안 게임 인가. 물론 그것도 잘 풀릴 경우의 이야기가 되겠지마는. 올림픽보다 20년 빠른 아시안 게임이라니, 양놈들이 보고서 무슨 생각을 하려는지."

"올림픽…입니까? 황상, 올림픽이란 도대체…."

"음, 그렇군. 옛 희랍에서 즐기던 무술대회다. 지금은 사라진 지 천년도 넘었지만 말이다. 장차 이를 정착 시키고 정기적으로 행하고자 한다면 참조해볼 만도 하겠지."

'올림픽, 월드컵, NBA,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WWE, UFC. 돈으로 돈을 버는 대표적인 문화 사업들이지. 아직 자동차가 없으니 대신 말로 레이싱대회를 연다면 그게 곧 경마인 거고. 마음 같아서는 K-POP도 한 번쯤 밀어붙이고 싶기는 한데…. 아직 라디오나 축음기조차 발명되지 않은 판국에 그건 역시 어렵겠지. 유럽의 열강들처럼 돈을 있는 대로 처발라서 오페라를 할 수도 없는 거고.'

이형은 내심 아쉬워서 혀를 찼다. 아직 스포츠의 프로리그 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지금 일찌감치 한국에서 먼저 이와 같은 스포츠들을 나라에서 보급하여 공공기관 내지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프로 리그 화 시킨다면 필시 큰돈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놀기 좋아하는 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아직 메이저리그조차 아마추어와 프로가 뒤섞여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태동할 시기이다. 나라 안에서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프로리그조차 아직 낯설 때에, 일찌감치 한국이 동아시아 국가에 한정되었다고는 하나 국제 프로리그를 선점하는 순간 중장기적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되리란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훗날에라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게 될 무렵 한국에서 노하우를 배우고자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마침 단옷날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유교 문화권을 공유하는 나라라면 어디에서나 쇠는 대표적 명절이었다. 추석과 단오처럼 동아시아권에서 보편적인 명절 기간에 황실의 이름 아래 개최되는 대회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리가 없다. 일을 키우기로 작정한 이상, 이형은 일찌감치 스포츠의 보편화와 프로리그의 태동을 위한 밑밥을 깔아두기로 했다.

'그렇지만 뭐-.'

"혹, 야구를 아느냐? 이렇게 주먹만 한 공을 던지고 때리고 하는 놀이다만."

"네?"

"흠, 역시나. 크리켓-은 당연히 모를 테고. 그럼 축구는 아느냐?"

"축구…혹, 축국을 말씀하시는지요? 그거라면 배우지는 못하였으나 곁눈질로나마…."

'역시나, 전혀 모르는군.'

우물쭈물하는 전봉준의 모습에서 이형은 당장 한국이 직면한 문제점을 또 하나 눈치챌 수 있었다. 아직 개항이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여전히 기관차나 증기선, 양쟝과 성경처럼 당장에 눈에 띄는 서역의 문물에 대해서는 이제 대강 익숙해졌어도 막상 깊게 알지는 못하는 것이다. 다만 이형은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제 개항한 지 10년이 될까 말까 하는 판국에 벌써 모든 걸 알라고 기대하는 게 더 무모했다.

지금으로서는 본격적인 프로리그를 만들고자 하기보다는, 우선 이와 같은 스포츠들을 민간에 보급하여 널리 알리는 것에 주력할 필요가 있었다. 다들 축구가 무엇인지 야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판국에 괜히 야구 리그를 만들고 축구 리그를 만들어 봐야 흥미를 끌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물론 구기 종목 특유의 보편성과 흥행성으로 금세 유행하기는 할 테지만.

'어쩔 수 없지. 우선 단옷날의 대회는 씨름과 택견에 초점을 맞추는 수밖에. 국가대항 궁술대회나 경마대회 같은 건 그냥 국가대항전이라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는 정도면 충분하고. 야구나 축구, 농구 같은 건 우선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선교사들이나 사업가들을 모아서 팀을 짜게 해서 시범경기를 보이는 수준이면 충분해. 그걸로 처음 선을 보이고 백성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차차 보급하고 늘려가면 되는 거니까.

작정하고 퍼뜨리려고 하면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부 활동을 이용해 보급하는 게 가장 확실하겠지. 한양의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들을 중심으로 보급해 전국 배 고등학교 축구대회, 야구대회, 농구대회 같은 걸 여는 거다. 그리고 고등학교 선수들이 졸업할 때에 맞추어 본격적으로 프로 리그를 만들어 상설화 시키는 거지. 운영비용은 경마사업에서 끌어오면 되는 거고. 경마는 도박성도 있으니까 금방 큰돈이 벌릴 수밖에 없어.

특히 축구 같은 건 EPL조차 태동하기 전이야. 미리 선점해서 작정하고 보급하는 순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축구 프로리그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격이다. 월드컵이 만들어질 즈음에는 유럽의 축구 종가들도 한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을걸.'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이 또한 미래를 알고 있기에 선점 가능한 분야였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스포츠 산업을 육성할 경우 덩달아 따라올 부산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선 하나는 국가대항전을 유행 시킴으로써 '우리나라'를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국가대항전 보다 효과적인 것이 없다. 함께 응원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그간 바쁜 일상에서 잊고 있던 조국의 존재를 재차 각인시키는 것이다. 만주를 병탄한 이래로 만주인, 한인, 몽골인, 러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들을 떠안게 된 대한제국에 이와 같은 조국의 각인은 필요 불가결했다.

국내 프로리그도 마찬가지다. 국내 프로리그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로 국외와 국내를 구분할 수 있다. 본국의 존재를 느끼기 어려운 만주나 몽골 같은 북방의 오지일수록 이와 같은 국내리그의 존재는 효과적이다. 글을 잘 모르거나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무지렁이라도, 스포츠를 즐긴다면 손쉽게 국내와 국외를 구분할 수 있다. 팀명이나 연고지를 외우는 것만으로 멀리 떨어진 본국의 존재를 각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스포츠 산업의 부산물로서 운동화 산업이나 섬유 산업, 그 외 기타 운동기구들을 생산하는 부차적인 산업들을 육성하고 프로 리그에 스폰서들을 대거 끌어들여 민족자본가들의 육성을 돕는 효과도 있다. 당장에 이렇다 할 브랜드를 형성할만한 역사도 배경도 갖추지 못한 민족자본가들에게, 프로리그에 참여하여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안정적인 납품처를 확보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주류산업과 요식업도 빼놓을 수는 없다. 경기장에서 관중들이 소모할 무지막지한 소비량은 민족자본가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 충분하다. 한국을 시작으로 동아시아 각국에 확산시키면 이와 같은 시장은 확대되면 확대되었지 일시적인 위축이면 몰라도 쇠락하거나 사라질 일은 결단코 없다. 그 대공황 시절에도 프로 리그는 위축되었을지언정 계속 운영되었고 대공황이 끝나자마자 금방 다시 번영하였다.

"일을 키우려고 작정하니 정말로 끝도 없군."

'하지만 키워야 한다. 내정이란 결국 눈덩이를 굴리는 거야. 눈덩이를 키우려면 계속 뒤에서 밀면서 눈을 덕지덕지 발라 부피를 키우는 수밖에.'

이형은 우선 지금 당장에 프로리그를 만들 수 있는 종목들을 머릿속으로 골라냈다. 가장 쉬운 건 역시 씨름이었다. 이미 단옷날 축제에서 마을 간 대항전이 가끔 이뤄지고는 하니, 나라에서 직접 이를 공인하여 판을 키워주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씨름대회가 자리 잡을 수 있을 터였다. 이래저래 판을 깔아주고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줄 필요가 있는 택견보다 씨름의 확산은 한층 간단하다.

궁도나 사격 또한 마찬가지다. 조선 8도에서 활을 다룰 줄 알거나 총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이라면 모으려고만 하면 금방 모을 수 있다. 백성들이 다 함께 즐기고 참여하는 보편적이고 거대한 대회가 되기는 어려워도, 즐기는 사람은 끝도 없이 빠져드는 매니악한 대회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사실, 그간 조정에서 위험성과 도박성을 이유로 막아두고 있던 걸 풀기만 해도 이쪽은 알아서 정착할 공산이 컸다.

경마는 이미 카네기와 연계하여 대회를 열기로 한 상황이고, 축국도 이제부터라도 규칙을 정리하고 대회를 열며 선수들을 모은다면 얼마든지 정식 종목화할 수 있다. 바둑 대회나 장기 대회도 미리 선점해둔다면 동아시아 바깥까지 퍼지기는 어려워도 적어도 동아시아 내에서는 두고두고 인기를 끌고 소비될 것이다. 종목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쓸 수 있었다.

하다못해 공기놀이도 공식 규칙을 제정하여 선수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대회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결국 이와 같은 프로 리그는 얼마나 인기를 끄는가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가가 전부이니까.

"흐음…."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십니까, 황상."

"아니, 타고난 성정이라고는 하지만 나란 놈은 참 놀기 좋아하는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을 뿐이다."

전봉준의 근심 어린 물음에, 이형은 쓴웃음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순 사고 방향이 그쪽으로만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전생에 평생을 매달려 살던 것이 순 이런 것들뿐이었는데 말이다. 적성을 살리는 것이라 포장한다면 적성을 살리고 있는 거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문화산업만으로 나라가 돌아간다면 모두가 문화산업에 종사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문화산업은 문화산업대로 육성해야겠지만, 그것도 기초적인 체급이 따라줘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중원이라는 안정적인 시장 겸 자금 수급처가 있다고 한들, 그대로 현실에 안주하여 썩어 문드러졌다가는 미래가 없었다.

이형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전봉준에게 말했다.

"병기창에 가봐야겠다. 봉준아, 네가 먼저 가서 기별을 넣고 오거라. 병기창처럼 위험한 기물을 다루는 관청에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갔다가는 사고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예. 그럼 먼저 가서 찾아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황상!"

이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봉준은 엎드려 예를 표하고서는 곧장 자리에서 뛰쳐 일어나 달려나갔다. 단지 이형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신세를 벗어나 일다운 일을 맡게 된 것이 여간 기쁜 게 아닌 듯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이형은 잠시간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간은 아무런 기별도 넣지 않고서 기분이 내키는 대로 아무 곳에나 불쑥불쑥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황제다운 격식을 차리고서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그간 평안 무탈 하셨는지요, 황상. 이렇게 무사하신 모습을 뵈니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음, 짐 또한 그러하도다. 오늘 병기창을 시찰하려 하니, 궁내부는 그리 알고서 준비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라."

"하명하신대로 하겠나이다, 황상."

이렇게 이형이 절차대로 움직이자 되려 당황한 것은 이형을 곁에서 섬기던 궁내부의 관료들이었다. 또 뭐라 한마디도 없이 이리저리 쏘다닐 거라 여기고서 태업하고 있던 몇몇 관료들이 본업을 까먹고서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이형이 정해진 규범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던 까닭이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즉위한 이래 열 손가락에 꼽았다.

사전에 일정을 정해두지도 않고서 당일에 대뜸 병기창을 방문하겠다 했으니 갑작스러운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다만 그렇다고 일을 실수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그 정도로 어수룩한 이들이라면 처음부터 궁내부에 속하지도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일에 치일지언정, 관료들은 이형의 변화를 크게 반기었다. 이제야 겨우 망나니 소년 왕이 철이 들었구나-하고 여긴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기대하는 건 자유였다.

"호오,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그럴싸하구나."

그리고 궁내부의 관료들과 함께 느릿느릿 병기창에 다다른 이형이 처음으로 내뱉은 것은 이와 같은 감탄사였다. 그로서는 고작 해봐야 적당히 기와로 세워진 목제 건물에 장인 몇 사람 정도가 일하는 수준을 상상하고 있던 반면에,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병기창은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신식 건물에 얼핏 보아도 제법 많은 수의 장인들을 두고 있었다. 어림잡아 200명 넘게 모여있었다. 수공업 공장이나 다름없는 규모였다.

안으로 들어선 다음에는 그런 인상은 한층 더 강해졌다. 당장에 곳곳에 준비된 공구들부터가 조선에서 사용해온 전통방식의 것이 아니라 이형의 눈에도 익은 스패너나 드라이버, 핸드 드릴 따위의 서구식 공구들이었다. 망치나 끌 같은 건 조선의 것 그대로였으나, 조선에 없었거나보다 개선된 공구들은 모두 서역의 것으로 대체한 모양이었다.

"황상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박 대감께서 개선하라 명하시어 이렇게 바꾸게 되었나이다."

"박 대감이?"

'호오, 국채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하길래 도대체 어디에 돈을 썼나 했더니. 그래도 모두 쓰일만한데에 적절하게 써줬구먼. 하기야 조러 전쟁 이전부터 일단 프랑스에서 무기를 들어오면 병기창에서 가격은 상관하지 않고 되는대로 복제해서 기술을 축적하라 일러뒀으니, 적어도 이 정도 규모는 갖추는 게 맞겠지.'

이형은 내심 박규수에 대한 평가를 고치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반 위에 조심스럽게 전시되어있는 총기를 자세히 살피니, 프랑스에서 들여온 샤스포 소총을 복제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변에 만들다 만 부품들도 온통 샤스포 소총의 부품들뿐이었다. 현 대한제국에서 제식소총으로 도입하여 사용되고 있는 샤스포인만큼, 아무래도 가장 많이, 그리고 손쉽게 복제했을 터였다.

원본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종이 탄피를 한지로 만들고, 개머리판 뒤에 전주 이씨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장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 외에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차이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또한 박 대감이 지시한 것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아직 우리 대한에서 강철을 넉넉히 생산하지 못하는 까닭에 영길리에서 들여온 암스트롱포를 복제하고자 하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여, 당장에 우리 대한의 기술과 자재만으로 복제할 수 있는 불란서의 샤스포 소총만이라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현명한 판단이로구나."

이형은 히죽 웃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아무래도 기계로 만든 것에 비하면 미흡함도 많을 테지만, 이게 어디던가. 미터법을 도입하여 규격을 통일하고 선반을 도입하여 제작공정을 규격화시켜 여럿의 장인이 한대 모여 함께 작업하는 수공업 공장 수준만 되어도 미래가 있다. 되려 기술을 축적하고자 한다면 기계의 도움을 받기보다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이리저리 뜯어보고 살피는 게 확실하다.

아직 제철소조차 완성되기 이전이다. 제철소에서 본격적으로 쇳물을 뽑아내기 시작한다면 이보다 훨씬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지금은 우선 되는대로 서역의 문물을 복제하고 내부를 뜯어보면서 기술을 축적하는 것만으로 성공이었다.

'그래도 유럽이나 미국을 구경하고 오더니, 아무래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야.'

"그래, 지난달 몇 정이나 되는 소총을 복제할 수 있었느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884정이 고작입니다."

"900여정이라. 그럼 작년에 만든 것을 모두 합하면 9천 정, 1만 정 정도가 되겠구나."

이형의 말에 병기창을 관할하던 제리(提理)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이형의 말을 꾸짖고 있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명색이 병기창이고, 모두가 나라의 녹을 받는 처지에 전쟁 기간 중 대한제국이 필요로 하던 총의 절반도 준비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기실 그간 복제해온 소총을 모두 합하여도 5만 정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형의 생각은 달랐다. 이형이 얼핏 눈으로 살피기로, 지금 병기창에는 200여 명 정도의 장인이 일하고 있었다. 그럼 선반이나 핸드드릴을 비롯한 이런저런 신식 공구들의 도움을 받았고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하나 1달에 장인 한 사람당 4~5정을 복제해냈다는 소리다.

증기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 단지 공장에서 만들어진 규격화 된 공구들만으로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완전히 손에 익었어.'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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