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198화 (198/530)

< 철면피의 시대 >

이형이 이렇게 확신한 까닭은 이러했다.

'나폴레옹 전쟁기가 한창일 무렵 프랑스는 5000명 이상의 직공들을 동원해 하루에만 750정의 소총들을 찍어냈어.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직공 1사람당 1달에 4.5정의 소총을 생산했다는 것. 오늘날의 한양 병기창과 비등한 속도야. 그 시절의 소총은 고작 해봐야 전장식 강선소총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복제한 건 프랑스군의 제식 후장식 소총인 샤스포라는 점을 고려하면 되레 이쪽이 더 빠르다.

이 정도면 증기기관을 사용하지 않고서 수작업만으로 복제한다고 쳤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한곗값이야. 완전히 손에 익지 않았다면 이 정도 속력이 나오기란 불가능해. 유럽인들이 보여준 정답을 곁눈질하면서 흉내 내는 것뿐이라지만,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다.'

이형은 히죽 웃었다. 물론 증기기관이 도입된 지 반백 년이 다 되어가는 시대에 증기기관이 없던 시절의 생산력과 비교되는 것은 다소 비참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현실이 그러했다. 자체적으로 증기기관, 혹은 그 부품조차 생산할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지금의 한국이었다. 수공업 생산품에 의존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좌우지간 장인들이 증기기관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서역에서 만들어진 공산품들을 이리저리 주물러 보면서 작동 공정을 이해하고 가져다 베끼면서라도 기술을 축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동 공정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던 지난 수년간의 치세는 본의 아니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조정에서 아낌없이 병기창에 예산을 투자하고 군부에서도 매번 수만, 수십만 정의 소총을 요구하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소총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그 작동 공정에서부터 제작법까지 베껴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줄곧 박규수가 가져다 바치는 대로 물자를 소모하고만 있었던 이형에게는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그럼 지난 전쟁 기간 줄곧 소총만 복제하였다는 말이렷다?"

"아, 아니오! 당치도 않습니다. 한양에만 다섯 곳의 제조소가 더 있사온데, 단지 이곳은 총포만을 복제할 따름입니다. 각각 가죽 용구, 피복, 화약, 탄환, 군도와 총검 따위의 날붙이를 제작하고 있사온데, 다들 규모에서는 이곳과 유사하오나 유일하게 화약을 제조하는 옛 염초청만큼은 이곳의 2배를 조금 넘기어 500여 명의 기수가 종사하고 있사옵니다."

"호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많이도 불러모았군. 조선 8도의 실력 있는 장인이란 장인들은 죄 한양으로 끌어모아 온 격인가. 하기야 전쟁 중에 50만 대군을 부려댔으니 이마저도 부족했겠지. 그래서 가죽 용구나 피복 같은 건 민간에 하청을 넣고, 총포나 탄약은 자체적으로 우리 한국이 생산한 것보다 영국, 프랑스의 기술을 빌린 무기공장에서 생산해야 했을 테고. 그야말로 전쟁경제가 따로 없구먼. 아니, 사실 이 정도면 전쟁경제가 맞지.'

그뿐일까. 당장에 이형이 중원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동안 우마차가 되었건 마차가 되었건 좌우지간 온 나라의 목공들이 수레를 만들고 말과 소 따위의 가축을 징용하여 전선으로 실어날랐으리라. 제아무리 전근대적 전쟁에서 보급은 현지에서 취하는 것이라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고 결국 일정 부분은 전쟁을 치르는 당사자가 부담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직도 대부분 노선이 공사 중인 마당에 철도가 모든 보급선을 대체했을 리도 없었다. 국내에서 방위전을 펼치는 거라면 몰라도 침공전이었으니 더더욱이 그랬다. 하다못해 황제가 서류작업에 유능하여 이 모든 보급계획이나 생산계획을 짜주었다면 모를까, 황제인 이형이 전선에 나가면서 그 수발은 모조리 박규수에게 떠맡겨 버리기까지 했으니 조정의 관료들로서는 정말 그간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새삼 이형은 멋쩍게 쓴웃음을 지었다. 불행히도, 여전히 이형이 그에게 책임을 추궁하려 한다 겁을 집어먹고 있던 제리는 그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 그럼 지난 수년간 소총만 줄곧 복제해댔으니 지금쯤이면 눈 감고서라도 너 혼자 소총 한 자루 즈음은 만들 수 있겠구나. 그렇지 않으냐?"

"예, 예! …아니오, 사실 그렇지 않사옵니다. 소인은 단지 납기일에 제때 맞추었는지, 또 도중에 무언가 사고는 없었는지, 사기는 어떠한지 살피는 것뿐인지라….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 혼자서 소총을 복제할 수는 없사옵니다."

"흐흐흐! 그래, 그야 그렇겠지. 암, 솔직해서 마음에 들었다. 우두머리라는 녀석이 현장의 일을 도대체 무슨 수로 알겠느냐? 제가 현장의 일까지 속속들이 안다고 한다면 순전히 거짓부렁이지."

이형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손에 쥐고 있던 복제품 샤스포 소총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면서 말이다. 노리쇠를 당겨도 보고, 방아쇠를 당겨보기도 하고, 가늠쇠가 바로 달리었나 확인해보기도 하였다가 분해하여도 보고 다시 조립하기도 하였다. 적어도 그가 이리저리 만져 보기에, 당장 눈에 띄는 하자는 없는 듯했다. 물론, 그가 이렇게 잠시 만져보는 것만으로 이런저런 하자가 발견될 정도였다면 애초에 군납이 이뤄질 수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다만 딱 한 가지 이렇게 손에 쥐고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 확연히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기는 했다. 아니, 차이점이라기보다는 솔직하게 결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았다.

'보아하니 이제 막 만들어진 신품인데도 이리저리 자국이 나 있군. 균열-이라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햇빛에 비추어보니 긁힌 자국 같은 게 많아. 강철을 넉넉히 준비할 수 없으니까 대신에 일단 연철로 만들었나 본데.'

"철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했을 텐데. 이것도 너희 병기창에서 만든 것이냐?"

"그, 아뢰옵기 황송하오나…그렇지 않사옵니다. 지방의 관아에서 고을의 대장장이들을 시켜 철광석을 제련하게 하여 철괴를 만들어 한양으로 보내면 다시 병기창의 기수들이 철괴를 녹여 가공하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여, 병기창에서는 그저 병기만을 생산하였을 뿐입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역시나. 그럼 연철이 대부분일 수밖에는 없겠지. 대장간에서는 일단 납품기한과 물량을 맞추기도 급급했을 테니까. 그나마 한반도나 남만주, 요동 등지에서는 제법 질 좋은 철광석이 나오니 연철로도 소총 정도야 만들 수 있었을 테지만, 연철로 강철 대포를 흉내 내기란 어려운 게 당연해. 내년에 제철소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대로 소재부터 바꿔야겠어. 그래도 정말로 노력할 수 있는 선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군그래.'

이형은 내심 감탄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노력할 수 있는 선 안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퍼부어 최선의 성과를 이뤄낸 격이었다. 물론 나라에서 그만큼 평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천문학적인 지원을 퍼부었던 것도 사실이라지만, 지원을 받았다고 또 그것을 실제 성과로 끌어낼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준 장인들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병기창의 군관들 또한 그만큼 성실히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는 증거였다.

그제야 이형은 병기창의 우두머리를 맡은 제리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이형에게 고분고분 허리를 숙이고 있는 탓에 얼굴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나, 제법 순한 인상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대단한 야망이 있거나 사람을 매료하는 카리스마가 있다기보다는, 탁자 앞에 앉아 서류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 천직인 듯 보였다. 자글자글한 주름도 적당히 있어 보이는 것이, 조선군 시절부터 큰 실수나 흠 없이 조용히 연공을 쌓으며 대령까지 올라온 모양이었다.

'물론 생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병기창을 여기까지 큰 소란 없이 이끌어온 일 처리 능력은 평가해줄 만하다. 이름은 아직 기억해줄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얼굴 정도는 기억해줄 가치가 있군.'

"한번 쏴보아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황상. 곧장 과녁을 준비하겠나이다."

이형은 내심 마음속으로 그리 평가를 내렸다. 제리는 이형의 시선이 변하였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고분고분히 따를 따름이었다. 이미 이형이 시찰을 올 것이라는 기별을 넣어둔 탓인지, 과녁의 준비는 삽시간에 이뤄졌다. 이형이 제리의 안내에 따라 뒤뜰로 나오자 송판으로 만들어진 과녁판들이 저 멀리 준비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과녁판은 총 3개로, 거리는 각각 50m, 100m, 150m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수십, 수백여 차례에 걸쳐 시험사격이 이뤄졌음을 증명하듯 뒤뜰에 준비된 사격장에는 차마 지울 수 없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이형은 내심 그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한지로 만들어진 종이 탄피에 둘러싸인 탄환을 장전한 뒤 한쪽 무릎을 꿇고 과녁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관중이오!"

'조금 위로 치우쳤군.'

이형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일단 관중부터 외칠 준비를 하는 군관을 무시한 채로, 이형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머릿속으로 조준점을 수정해가며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각 과녁당 10발씩, 모두 30발의 사격이었다. 노리쇠는 매끄럽게 돌아갔고, 방아쇠는 다소 저항이 있지만, 사격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면 무심코 방아쇠를 당겨서 오발 사고가 일어나는 등의 사고를 줄일 수 있을 터였다.

소나무를 잘라 만든 탓에 사격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소나무 냄새를 짙게 풍기던 개머리판은 단단하여 안정감을 주었다. 솜씨 좋은 목수가 깎아낸 듯 목제 총신은 매끄럽기 그지없어 손에 쥐고 있으면 꼭 살결을 쓰다듬는 듯하였고, 키가 작은 이형이 다루기에는 다소 길었으나 개머리판에 철심을 박아 무게중심을 맞추었는지 조준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연철을 썼다고 했으나 워낙에 소재가 좋은 덕분인지 여러 번 사격하여도 총신에 균열이 가거나 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30발의 시험사격을 마친 이형의 반응은 이러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훌륭하군."

"화, 황송하옵니다, 황상."

이형은 히죽 입꼬리를 뒤틀었다. 나쁘지 않았다. 수제로 복제한 것치고는, 그럭저럭 훌륭히 공장에서 기계가 만들어낸 공장제 샤스포를 될 수 있는 한 비슷하게 재현시켰다. 물론 이형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그들이 만든 것 중 가장 상등품을 골라 선보였겠으나, 이형이 병기창을 방문하겠다 말한 건 오늘 아침이었다. 언제라도 이형이 시찰할 때를 대비하여 따로 소총을 숨겨두는 용의주도함을 지녔다면 모르겠지만, 보통은 막 제조소에서 만들어진 양산품일 수밖에 없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다. 사실 이형은 기술력 축적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던 차였다. 한국 과학사에 한 획을 그었던 세종대왕 이래로 줄곧 기술 개발과 과학 연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다가 정조 시절 잠깐 다시 빛을 발하고서는 세도정치를 거치며 나락에 처박힌 것이 조선의 과학기술이었으니 말이다. 본 역사에서는 대원군이 그러했듯이 이것저것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고 반쯤 포기하고 있던 게 이형의 속내였다.

하지만 이 정도면 처음부터 시작은 결코 아니다. 최소한 이번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은 서구적 기계공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와 기초적인 분업, 국가에 의한 장인들의 체계적인 관리와 근대적 수공업 공정 노하우 축적에 성공했다. 이형의 손에 쥐어진 복제품 소총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저 복제하였을 뿐이라지만, 그게 어디던가. 당장 막 개항했을 무렵의 조선이라면 샤스포를 쥐어봤자 어쩔 줄 몰라 했을 터였다.

신기술의 개발은 우선 앞서간 이들의 것을 보고 흉내 내 베끼면서 시작되는 법이었다. 지난 수년간의 전쟁경제가 한국에 공업화의 첫걸음을 내디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을 완성해준 셈이다.

'어차피 산업재산권 보호를 위한 파리조약이 체결되려고 해도 10년이 더 남았고, 특허 협력 조약이 체결되어 특허를 국제출원하려면 100년은 더 남았다. 언놈이 특허를 내봐야 국내에서라면 몰라도 국외에서는 태연하게 복제품을 만들고 어떠한 법적 불이익도 당하지 않는 시대야. 나라에서 서역의 기물이란 기물은 되는대로 사들여서 분해하고 복제하게 해보면서 기술력을 축적한들 누가 비난할쏘냐?

이걸로 대강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이 잡혔어. 일단 모조리 복제하고 베낀다. 일본이 미국산 베끼면서 기술력 축적했고 한국이 일본산 베끼면서 기술력 축적했듯이 우린 영국이 되었건 프랑스가 되었건 미국이 되었건 좌우지간 열강에서 만든 건 되는대로 수입해서 복제한다. 새로 만드는 건 할 수 없어도 실물을 보고 주물거리면서 베끼는 수준은 가능하다는 걸 이 샤스포 소총이 증명해줬으니까.'

물론 불법이 아니다뿐이지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물론이었다. 그렇지만 뭐, 열강들은 도의를 지키긴 하던가. 법으로 금지된 아편까지 팔아치워 가며 유럽 바깥의 부를 마구잡이로 빨아 들여가던 열강들을 상대로 이제 와서 법으로 금지된 것도 아닌 일에 도의를 따지는 것도 우스웠다.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신앙과 구시대의 도덕, 과학과 신시대의 이념. 모두 남김없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그들의 것을 빼앗는 데에 이용되던 시대였다. 그리고 이형은 전면적인 근대화를 선택했다. 그건 곧 이 약육강식의 시대에 거스르기는커녕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그들과 같은 열강이 되는 길이었다. 이제 와서 남의 것을 베끼는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거리낌을 느끼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온 다음이다.

그렇다면 더욱 가속할 따름이다. 수치는 잠시 잊어두고서, 체면 따위는 변소에라도 처박아두고서 더욱 후안무치하게 훔치고, 흉내 내고, 빼앗을 뿐이다. 손가락질당하면 좀 어떻던가. 손가락질하고 있는 이들도 온통 오물에 뒤덮인 더러운 시대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피로 범벅을 한 미치광이 살인광이라면 몰라도, 오물로 범벅을 한 철면피 정도는 모두가 마찬가지다.

다만, 단지 베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기에, 이형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름이 뭐라고 했지?"

"최, 최지용이라고 하옵니다, 황상."

"병기청 제리 최지용 대령이라. 그래, 기억해두마. 내 너의 능력을 눈여겨보아 한가지 큰일을 맡기려 한다. 한번 들어보겠느냐?"

순간 이형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 자신을 최지용이라 자칭한 제리는 눈을 껌뻑거리며 이형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뒤늦게 자신이 감히 용안을 올려다보며 무례를 저질렀다는 걸 자각하고서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잔뜩 당황한 어조로 답했다.

"네, 네! 물론입니다, 황상! 맡겨만 주신다면 기꺼이 맡은 바 임무를 다하겠나이다!"

"단옷날 큰 축제를 열고자 한다. 우리 대한에 복속한 열국의 대표들을 초청할 작정이니, 제법 커다란 축제가 되겠지. 그때까지 우리 대한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총을 만들어보아라. 미리견이나 영길리, 불란서의 것에서 이것저것 따와도 상관없다. 단, 완전히 똑같아서는 안 된다.

장차 이 나라의 국방과 직결된 일이다. 설마, 열국의 사신들이 보는 앞에서 대한의 위신을 실추시키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으마."

이형은 평소와 같은 경박하고 비열한 미소 대신, 어딘가 부드럽고 상쾌하기까지 한 미소를 만면 가득히 띄우며 이처럼 말했다. 물론, 그래 봐야 그걸 듣는 입장에서까지 상쾌한 기분이었는가-하면.

"…딸꾹."

"그래, 패기 있는 대답을 들으니 기분이 참으로 좋구나. 하하하하!"

당연하게도, 그럴 리가 없었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최지용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이형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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