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경제 >
'각오 하나는 대단하군.'
입술을 깨문 김가진을 바라보면서 이형이 가장 먼저 떠올린 감상이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전장에서 몸소 말을 몰면서 몇차례 사람을 죽여본 이형도 거의 본 적 없는, 눈에서 안광이라도 뿜어낼 듯한 강한 눈빛이다. 어느 정도는 외부로부터 주입된 사상이겠지만, 괜히 정신론을 운운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랬다. 원 역사에서도 나름의 뜻과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자인 까닭에 갑신정변에서 적서 차별이 철폐되고 난 다음,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관직 생활을 시작한 인물이었다. 만일 이형이 그와 같은 처지였다면 당연히 나라에 울분을 품었을 테고 증오를 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출생이 서자라는 이유로 무엇 하나 뜻대로 할 수 없는 나라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김가진은 자신이 서자인 까닭에 출세가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독립운동의 길을 걸은 인물이다. 조선에서 받은 것보다 조선에 돌려준 것이 더 많은 그의 인생을 떠올려보자면, 이형으로서는 대하기 껄끄러울 정도로 올곧고 강직한 천성을 타고났다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청에, 러시아에, 일본에 각각 포섭을 제의받고도 끝까지 민족을 위하다 죽은 인물이니까.
'나라면 절대로 저렇게는 못 살아. 나한테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걸 쥐여준 적이 없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처자식들까지 독립운동에 참여시키는 건 못해. 그러나 이 사람은 해냈다. 이미 한번 해냈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겠지. …탐이 난다. 가지고 싶군.'
이형은 눈동자를 희번덕거렸다. 욕심이 났다. 전봉준 때와도 또 달랐다. 전봉준과는 처음부터 호의적인 관계에서 만났다. 전봉준은 처음부터 당시 대한에서 유행하던 애국주의 열풍에 힘입어 자원입대를 선택한 열혈애국청년이었고, 이형은 전쟁을 총지휘하던 황제였다. 당연히 이형이 다가가면, 전봉준은 선선히 응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가진은 본인의 노력도 분명히 있겠으나 안동 김씨의 지원을 받아 정계에 진출한 현직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안동 김씨는 두말하면 입 아픈 이형의 옛적. 설령 이형이 호의적으로 다가간다고 한들 안동 김씨의 지원을 받는 김가진이 순순히 응해줄 수는 없다. 반대로 김가진이 이형에게 충성을 맹세한다고 한들 이형은 김가진을 곱게만 봐줄 수도 없다.
요컨대, 이형은 김가진을 안동 김씨에서 빼 오고 싶었다. 딱히 안동 김씨와 의절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문중보다 이형에게 충성을 바치도록 만들고 싶었다. 원 역사에서도 농상공부대신, 법무 대신, 황해도 관찰사, 대한협회 회장 등 적서차별이 철폐된 이후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음에도 격동의 개화기에서 누구 못지않게 화려한 활동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탐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 결코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 라. 흐, 그거 기대하고 있으마. 마음에 들었다. 잠시 시간을 낼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황상."
"좋군. 그럼 따라오거라. 오늘 참관은 이쯤 해두도록 하겠다. 의원들은 앞으로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할 지며, 짐이 또다시 의회에 나왔을 적에도 이번과 같은 추태를 보여준다면 그때는 결코 가벼이 끝나지는 않으리라 알고 있거라."
"""여부가 있겠나이까, 황상."""
이형은 그리 말하며 휙-하고 뒤돌아서서 자리를 나섰다.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하여 이형이 자리를 떠나는 동안 제 자리에서 이형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었으며, 이형이 따로 부른 김가진만이 허리를 숙인 채로 종종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이형은 뒤에서 따갑기 그지없는 시선들이 쏟아지는 걸 느꼈다. 물론 그를 향한 시선은 아니었다.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김가진을 향하는 시선일 터였다.
이형은 경험적으로 매우 손쉽게 그 시선에 담긴 감정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게 어떤 종류의 감정일지 대강 짐작이 갔으니 말이다. 시기, 경악, 분노, 경멸 등 긍정적인 감정이라고는 무엇 하나 없다. 서자라서, 현 의회에서 유일한 대한당 이외의 정당에 속한 의원이라서, 역적 안동 김씨에 속한 인물이라서.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데 별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지만, 이번 경우에는 싫어할 이유가 좋아할 이유보다 훨씬 많았다.
이형 또한 그가 본 역사에서 걸어간 길을 몰랐다면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니 이형은 대수롭지 않게 이를 받아넘겼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멀리 걸어왔을 무렵, 이형은 위병들과 함께 걸으며 뒤따라오는 김가진을 흘끗 돌아보았다.
이를 악물고 눈을 부라리며, 당황한 기색이나 위축된 기색은커녕 어디 두고 보란 듯이 독기가 서린 모습이었다.
"근성 하나는 좋구나. 네 처지를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문중의 젊은 서얼 중 심기가 가장 곧다는 이유로 이 일을 위임받을 수 있었나이다."
"호오, 그런가. 역시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보는 심미안 하나는 얄미울 정도로 날카로운 놈들이로구나. 그 재능을 나라를 위하여 썼다면 좋았을 것을, 쯧. "
이형이 의도적으로 혀를 차는 소리를 키워도 김가진은 답하지 않았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이형은 그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끓는 점이 낮은 모양이었다. 그간 살아온 인생이 순전히 울분을 가슴에 쌓고 쌓는 일의 반복이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몰랐다. 서자인 것만도 서러운데 역적의 자식이라니. 안 그래도 젊은 나이에 피눈물 한 방울 쯤은 흘렸을 법한 뒷배경이다.
이형의 곁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위병들의 시선도 예사롭지 않다. 혹여나 김가진이 이형을 원망하며 무언가 헛된 수작이라도 부린다면 곧장 쏴 죽이려는 듯이 방아쇠에 검지 손가락을 걸고 있다. 이래서야 수갑만 채우지 않았을 뿐 영락없이 죄인을 압송하는 모양새다. 그걸 알고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서 이형의 뒤를 따라 걸음걸이를 옮기는 김가진의 모습은 위풍당당하기까지 하다.
이형은 흘끗 그를 쳐다보고서는, 웃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짐을 원망하고 있느냐?"
"당치도 않습니다. 그와 같은 역적이 문중에 나왔으니 수치스러울 따름입니다."
"흠, 미리 대답을 준비해 왔느냐? 거 참 재빠르기도 하구나. 하나 짐을 속이려는 건 가소롭도다. 짐은 너희 문중과 네 아비를 죽인 원수다. 네 녀석이 진정 하늘을 우러러짐을 원망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노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물론이옵니다, 황상. 믿어주소서. 하늘에 맹세하건대, 소신은 단 한 차례도 황상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이형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김가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김가진은 이미 허리를 숙이며 이형에게 예를 보이었다. 이형은 김가진에게 다가가 그의 턱을 잡고 끌어당겨 강제로 그의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와 시선을 마주 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지금 한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그를 속이기 위하여 한 입바른 말인지 확인하려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형의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김가진은 구태여 이형과 시선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이형이 그에게 묵시적으로 요구한 대로 똑바로 시선을 마주치며,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분노였고, 열의였다. 무엇을 향한 분노이고 무엇을 향한 열의인가. 이형은 거기까지 읽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형은 그제야 김가진의 턱을 놓아주며 히죽 웃었다.
"그래, 그런 거로 해두마. 기실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지. 이제 슬슬 일의 이야기를 해볼까."
이형은 빙글 돌아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향하는 곳은 옛 규장각. 지금은 궁내부에 소속된 중앙도서관으로 전락한 옛 세도 가문의 주구였다. 이형의 치세에 와서는 유럽에서 들어온 신식학문을 담은 서책들이 가장 많이 준비된 곳이기도 했다. 아직은 민간개방이 허용되지 않아, 이따금 시간이 남은 일선 관료들이 일하는 중 서역의 사례를 참고하기 위하여 이용되고 있던 것이다.
오늘도 옛 규장각-현 중앙도서관에는 서역의 서책을 대여하거나 반납하러 온 관료들로 득시글거렸다. 지위의 고저나 젊고 늙음은 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지금 대한의 관료들은 누구나 계속하여 배워나가야만 하는 처지였다. 유럽에서 유학을 끝마치고 돌아온 이들조차 학사 과정을 끝마치고 왔을 뿐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대한제국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화, 황상!"
"모두 엎드리거라! 무엄하도다! 어찌 황상께서 보시는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됐다. 신경 쓰지 말아라. 공연히 시간 낭비할 것 없다. 하던 일이나 마저 끝마치도록 하라."
그들은 하나같이 기별도 없이 위병들과 함께 등장한 이형에게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물론 이형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서, 그렇게만 말하며 손을 휘휘 젓고는 성큼성큼 중앙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형이 자리를 비운 동안 박규수가 이미 몇 차례에 걸쳐 확장공사를 진행했던 듯, 이형이 못 보던 벽돌로 세워진 신식건물이 기존의 규장각 건물 뒤로 들어서 있었다.
그만큼 이형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박규수도 그렇지만 조정의 관료들은 그들 나름대로 익숙하지도 않은 서역의 문물과 제도에 대하여 연구하고 공부해왔다. 책 속에서의 이론만 철석같이 믿고서, 실제 현장과 이론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던 것이 한계였을 뿐.
이형은 위병들에게 잠시 입구에서 대기하라 손짓하고서는, 책 내음이 물씬 풍기는 중앙도서관 안쪽으로 한층 깊숙이 걸음걸이를 옮기며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오던 김가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오늘 짐이 너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무언가 단서라도 내려주기 위함이다. 그래, 우선 간단한 것부터 이야기해볼까. 장차 이 나라를 공업화시킨다면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양회(洋灰:시멘트), 종이, 벽돌, 목판, 가죽, 섬유, 강철, 조폐로 아뢰옵니다."
"유리를 빠트렸구나. 그러나 엇비슷하게 맞추었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그것들만큼은 이 나라 대한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무엇이 되었든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장장 5년간 그것만 할 셈이더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선 조선소를 세워야 합니다. 오늘날 영길리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곧 그들의 해군과 해운이 세계제일인 까닭입니다. 강한 해군을 당장에 만들 수는 없더라도, 필요하면 언제건 막강한 해군을 건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기관차 또한 그러합니다. 설령 부품을 만들 수 없더라도, 하다못해 향후 5년 안에 기관차의 차체만이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관차를 단계적으로 국산화시켜나간다면, 장차 대륙의 모든 길은 해동으로 향할 것이며 우리 대한이 대륙 물류의 중심지로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료 또한 그러합니다. 오늘날 비료를 만들 비료공장은 전시에는 화약공장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화약공장은 다시 비료공장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장차 인구증산과 국방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비료 사업은 필요 불가결할 것입니다."
청산유수 같은 대답이었다. 마치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말이다. 이형으로서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의 예상보다도 깊은 곳까지 알고 있었다. 개항조차 10년 차가 되지 않은 오늘날 어디에서 벌써 이와 같은 정보를 얻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것까지 모두 안동 김씨가 정계에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연구해온 것이라면 무섭다. 중앙 정계에서 내쫓긴 다음에도 누구보다 현 대한제국에 있어서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꿰뚫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이형은 눈살을 찌푸리고서 되물었다.
"생각한 이상으로 해박하구나. 어디에서 그런 지식을 습득했느냐?"
"문중에서 제 공부를 도우려 스승을 붙여주셨습니다."
"오호라. 그래, 필시 김병학인지 김병국인지 두 놈 중 하나가 불러온 거겠지. 영길리더냐, 불란서더냐?"
"…보로서입니다."
이형의 목소리에 경계가 깔려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김가진은 주저하면서 대답했다. 이형이 그를 특별대우하고 있다는 건 진즉에 눈치챘지만, 그게 꼭 총애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김가진이었다. 그간의 생에서 그가 마주해온 무수한 이들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그를 '특별대우'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때문에 김가진은 일말의 두려움을 품고서 이형의 다음 추궁을 기다렸다. 그에 대하여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도 끝없이 머릿속으로 쥐어짜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형에게 돌아온 것은 추궁이 아니었다.
"하, 하하! 보로서, 프로이센이라! 정말이지 이 안동 김씨 놈들은…! 그래, 그럼 덕국말도 할 줄 아느냐?"
"읽고 쓰는 정도라면…네, 할 수 있습니다."
"흐흐흐!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형은 히죽 웃었다. 굴러들어온 복덩이가 따로 없었다. 김가진은 영문을 몰랐지만 말이다. 그저 이형이 스승의 조국과 무언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정도가 김가진이 유추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며 말을 이었다.
"장차 우리 대한이 산업화를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참조하기 좋은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영길리…라면 황상께서 구태여 이런 말을 하지 않으셨겠지요. 그렇다면, 보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 만주가 있으니 말이다. 평야는 드넓고, 하천도 많다. 석탄이 풍부하고, 철강도 풍부하지. 쌀농사는 되는 곳보다 되지 않는 곳이 더 많으나, 밀은 대부분의 토지에서 재배할 수 있고 감자는 어디에서나 재배할 수 있다. 소보다 말이 많고, 장차 금방 불어나 가득 채우겠지만 아직은 드넓은 토지에 비하여 사람도 적다. 본받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아니, 보다 직설적으로 말할까. 냅다 가져다 베끼는 데에 이보다 모범적인 사례가 없다. 즉흥적이었다만-이래서야 원. 이번 사업에서 너보다 적임은 없겠구나."
이형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천박한 웃음이었다. 김가진으로서는 그가 상상하던 근엄한 황제와는 정반대의 모습에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이형은 상관하지 않고서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여기까지 말했으니 대강 알겠지. 네가 장차 가장 먼저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장차 이 나라가 향후 반백 년 간 성장할 밑 기반…아닙니까?"
"네가 총리대신이더냐? 주제를 알 거라. 그리고 너의 스승이 가르친 보로서가 그것부터 생각할 나라도 아닐 터인데. 네가 진정 보로서인에게서 배웠다면 민생보다도, 이 나라의 안위보다도, 이 세상 무엇보다 중한 것이 따로 있지 않으냐."
이형의 말에, 김가진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곧장 짐작 가는 구석이 있던 것이다. 이형은 히죽 웃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배워둔 모양이었다. 저 먼 유럽에서 이곳까지 건너올 가정교사라고 해봐야 그리 대단한 학력을 지녔을 리도 없지만, 선생이 분발해서인지 학생이 우수해서인지 적어도 알아야 할 건 모두 배웠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 입니까."
"그래, 그거다. 이 몸 어르신께서 전쟁을 피하건 받아들이건 이 나라는 언제건 전쟁을 시작하여 승리할 준비가 끝나있어야 한다. 가져가서 눈감고도 암송할 수 있을 때까지 달달 읽어라. 할 수 있으면 너희 문중과 당원들에게도 말이다. 시간이 나면 번역본이라도 만들어서 가져와라. 그럼 장차 이 나라의 군관들과 고관들 모두가 널리 읽도록 만들 테니까."
그리 말하며, 이형은 중앙 도서관에 갖춰진 덕국 서책 중 하나를 능숙하게 골라 김가진에게 냅다 집어 던졌다. 귀중한 서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던진 이형의 행동에 당황하여 허둥지둥하면서도, 김가진은 품에 끌어안듯이 받아 서책의 제목을 읽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작, 전쟁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