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중 >
"『1번 흑표 안쪽 깊숙이 파고듭니다! 다시 1번 흑표가 선두를 지켜내고 있는 가운데 3번, 5번의 3위권 경쟁을 뚫고 7번 화랑 바깥쪽으로 돌파! 당당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200m! 과연 역전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휘이익, 휙! 달려라, 달려! 너에게 우리 아들내미 이번 학기 등록금이 걸려있다고!"
"야 이 자식아! 당장 냅다 엎드리지 못해! 안보이잖아!"
구리 나팔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중계에 열중하는 해설진과, 서역에서 들여온 승마복이나 유목민들이 입던 전통복장을 입은 채 달리고 있는 말 위에서 마구 고삐를 당기는 기수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배경으로 한 채 손에 쥔 마권을 흔들어대는 관객들. 황실에서 처음 경마를 선보인 이래로 삽시간에 유행을 끈 과천의 경마장에서는 이미 흔하디흔한 풍경이었다.
본래는 택견 등과 함께 단옷날 선보이려던 경마였지만, 이미 진즉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두고서 이형의 허가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카네기와 만주 귀족들의 전폭적인 협력을 끌어온 황후의 지원 아래 이형이 카네기와 경마사업을 논한 지 불과 일주일도 안 되어 처음 선보여진 경마는 보름 만에 한양과 경기권의 명물이 되어 한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전쟁이 사실상 끝나 군마와 기마병들이 대거 한국에 돌아오면서 이미 나이가 들어서 전장에 쓸 수 없는 군마와 전역 후 실업자 신세가 된 기수들을 대거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에 톡톡한 역할을 하였다. 헐값에 말과 기수를 준비하고 적당히 울타리만 세워두면 그만이니, 너도 나도 경마사업에 뛰어들던 것이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정부의 허가라는 최후의 벽을 돌파하지 못하고서 무너져내렸지만, 그들 중 일부는 어떻게든 인맥을 살려 돌파하고 또 일부는 불법으로라도 경마장을 세우면서 이 무렵 경기권의 경마 열풍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확산하고 있었다. 황후의 말대로, 그만큼 백성들은 놀 거리에 고파 있던 것이다.
"『아앗-! 말씀드리는 순간 7번 화랑, 바람과 같이 달려나갑니다! 1번 흑표가 서둘러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7번 화랑, 앞서갑니다! 최후의 대역전극! 1번 흑표, 아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아아아악!"""
"어떠십니까, 폐하? 분명 크게 흥하게 될 거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모든 것이 황상께서 혜안을 발휘하시어 허가를 내려주신 덕분입니다.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흐음, 확실히 그렇구려. 하기야, 흥하지 않을 리도 없는 사업이었지."
최후의 대역전극에 누군가는 탄성을,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는 와중. 그들 모두를 뒤로 한 채 귀빈석에 앉아있던 카네기는 히죽 웃으며 그의 곁에 앉아 경마경기를 구경하던 이형에게 말하였다. 자신의 말대로 하기 잘하지 않았느냐며 은근히 으스대면서 말이다. 입으로는 아첨을 쏟아내고 있지만, 어깨를 으쓱이면서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본심을 어찌 숨길 도리도 없이 뻔히 드러내고 있었다.
한편 그에 반하여 카네기 옆에서 경마를 구경하던 이형으로서는 다소 시큰둥한 심정이었다. 분명 구경꾼들에게는 그간 왜소한 동양의 말들만 보다가 카네기가 미국에서 들여온 우락부락하고 우람한 경주마들의 경주를 구경하게 되었으니 열광할 수밖에 없겠지만, 막상 이형은 이보다 더한 구경도 해보았다. 전장에서 흉갑기병대를 몰면서 말이다.
되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카네기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그보도다도 뭐요, 그 곰방대는? 보아하니 대나무로 만든 물건인데. 저잣거리에서 구매하기라도 한 거요?"
"음, 바로 맞추셨습니다. 마침 제가 아끼던 점토 파이프가 망가져서 말입니다. 매번 따로 공수해오기에도 번거롭고, 이참에 기념품 삼아 하나 수집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어 사들였지요. 어떻습니까?"
"장죽으로 바꾸는 편이 낫지 않겠소? 곰방대보다야 훨씬 화려하고 값도 나갈 것이오만."
"흐흐흐! 담뱃불을 피우려면 번번이 시종에게 시켜야 하는 건 저로서는 영 번거로워서 말입니다. 천것의 고집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카네기는 성냥갑에서 붉은 성냥 하나를 꺼내어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대수로울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딱 한 가지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성냥갑에 손으로 그려 넣은 흔적이 역력한 오얏꽃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건 즉 대한제국 조정에 공인을 받은 민족자본가가 납품한 제품이라는 이야기였다. 비록 이형은 이름도 모르는 제품이었지만 말이다.
이형은 손가락을 까딱여 카네기에게 성냥갑을 내놓으라 명했다. 카네기는 순순히 이를 건네주었고, 이형은 성냥갑에 적힌 상표명을 읽다가 피식 웃었다.
"향초 성냥이라. 흐, 한글로 적혀진 상표가 이렇게 반가운 줄은 몰랐군. 진짜로 이 나라에서 만든 물건이야. 한데, 자네라면 요 앞에 홍콩이나 나가사키에서 미제를 구해올 수도 있었을 텐데."
"폐하께서 제 사업을 도와주고 계시니 저도 제게 손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폐하께서 진행하시는 사업을 도와야겠지요. 그것이 도리에도 맞지 않습니까? 완성도는 대단할 것 없지만, 아무튼 불은 붙더군요. 어차피 성냥은 불만 잘 붙으면 그만이지요. 제 지인들에게도 10갑씩 선물해 두었습니다."
"흐흐흐! 그래, 그 정도는 해주어야 끌어들인 보람이 있지. 나 대신 홍보해주어서 고맙네. 따로 사례라도 해주었으면 하나?"
"사례라고 할 것도 없지요. 어차피 앞으로도 신세를 지게 될 테니. 그저 폐하께서 저를 어여삐 봐주셨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카네기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이형에게 다시금 예를 표했다. 사실 카네기가 그간 쓸어모은 돈에 비하면 고작 이 정도 일을 두고서 따로 사례를 받을 필요도 없는 소소한 일이 맞았다. 그러니 이형 또한 반쯤 장난스레 사례를 제안한 것이었고, 카네기는 대수롭지 않게 이를 거절했다. 카네기로서는 그의 말대로 이 일로 이형이 자신을 더욱 총애하게 되었다면 그만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형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카네기가 그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 한 한국의 산업화를 돕겠다 한 것이다. 물론 자본가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카네기는 앞으로도 사업을 위해서 계속하여 한국에 머무를 몸이다. 어떤 식으로건 협력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와중에, 카네기 쪽에서 먼저 협력을 암시하였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조만간 정말로 아주 정착할지도 모르겠어.'
"그럼 짐은 이만 자리를 비워보겠소."
"어이쿠, 벌써 가십니까?"
"요즈음 하도 벌여둔 일이 많다 보니 눈코 뜰새 없이 바쁘오. 슬슬 또 보챌 구석이 있는지라. 이만 가봐야겠소."
이형은 그리 말하며 지팡이에 의지하여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실 그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었다. 산업화 계획에, 신형 소총 개발, 단옷날 축제까지 돌아온 뒤로 되는대로 일을 벌이다 보니 그걸 최종적으로 관리해줘야 할 본인까지 덩달아 바빠진 것이다. 물론 가장 바쁜 건 이형이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 일선 관료들이었지만 말이다.
뒤늦게 한 번에 너무 일을 벌였다고 끙끙거리며 후회해봐도 별수가 없었다. 이미 일은 진즉에 시작되었고, 그 일을 시작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이형 자신이다. 시작해버린 이상 최종결정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안녕히 가시기를. 시간이 나시거든 언제건 방문하시어 좌중을 빛내주십시오. 저 또한 요즈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지라.. 부득이하게 대리인이 마중하여도 양해해 주시기를."
"음, 그럼 다음에 또 만납시다. 그때에는 곰방대에 갓이라도 쓰고서 만나보는 건 어떻겠소? 분명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오만."
"하하하!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이형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며, 카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형을 향하여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마침 시상식이 한창이라 미처 이형이 자리를 떠난 지도 모른 듯, 경기장을 등지고 떠나는 이형의 등 뒤로는 귀따가운 관중의 함성과 야유소리가 한데 뒤얽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기대한 대로의 풍경이었다. 기대대로 되기를 바란 적은 없지만 말이다.
경기장을 나온 이형은 앞서 모건이 그에게 선물한 황실 전용 마차를 지키고 있던 전봉준을 흘끗 쳐다보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 다음 일과는 어디지? 소금공장 시찰이었던가? 분명 일전에 태백에서 나는 무연탄으로 삼척부에 자염 공장을 만들어보라고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아니오, 황상. 이 길로 한성으로 돌아가 명동성당에서 베르뇌 대주교 예하를 만나기로 하셨습니다."
"명동?"
전봉준의 대답에, 이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무슨 일인가 기억나지를 않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한 다음에야, 이형은 짝하고 손바닥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차, 그렇군. 파리외방전교회의 인맥으로 언어학자들을 모아서 우리 말에 대하여 연구해달라 했었지. 그래, 내가 전쟁 이전에 주문했었으니 슬슬 결과물이 나올 때도 되었군. 이거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겠군. 어서 가볼까."
"네, 황상.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전봉준은 이형을 마차 안으로 안내하였다. 여전히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차였다. 여러 번 타면서 익숙해졌지마는, 눈부시다 못해 거추장스럽기 까지 한 내부장식은 볼 때마다 이형의 눈에 밟혔다. 정말로 의도적으로 기를 죽이려고 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마차였다.
그런 기분은 위병 자격으로 동석한 전봉준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창밖을 내다보던 그는 어딘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이는 이형의 지레짐작이었다. 이형과 전봉준이 똑같이 기분이 별로라고 한들 두 사람이 같은 이유로 기분이 언짢을 이유는 없었다.
전봉준은 나지막이 이형에게 물었다.
"황상. 저 경마대회 말입니다만…."
"음? 무슨 일 있느냐?"
"그, 역시 재고해보시는 게 어떨는지요. 황상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대로 이와 같은 사업이 장차 대한의 국방과도 직결되고 있음은 알겠으나, 저래서야 노름판이랑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제아무리 수익이 높다고 하여도, 저것은 역시…."
"아니, 안된다. 장차 저 경마사업을 시작으로 뻗어 나갈 사업이 한둘이 아니다. 저건 단지 시작일 뿐이야. 장차 이 나라의 문화산업을 위해서라도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다."
이형의 대답은 결연한 것이었다. 사실, 이미 멈추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황후가 만주의 귀족들과 목장들을 이미 끌어들였고, 카네기는 카네기대로 적지 않은 자본과 준비를 쏟아부었다. 이제 와서 전봉준의 우려 한마디에 멈출 수도 없었다.
그에 위축된 듯 전봉준은
"…그렇습니까."
하고 작게 답하고서는 고개를 숙였다. 수긍하는 대답이었으나, 수긍하는 어조는 아니었다. 이형 또한 그것을 알았지만, 가타부타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경마사업에 대하여서는 이미 전봉준에게 한차례 설명한 바 있었고, 이제 와서 한 번 더 설명해봤자 거추장스러울 뿐이라 생각한 까닭이다.
두 사람은 거북하게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차는 목표로 하였던 명동성당에 도착하였다. 전봉준이 먼저 내려 문을 열고서 뒤이어 마차에서 내린 이형은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명동성당을 돌아보았다.
아직 공사를 시작한 지 4년여밖에는 되지 않았으나, 겉으로 보이는 외관은 상당 부분 완성된 다음이었다. 한국에서 구하기도 어려운 대리석 대신 붉은 벽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성당인 까닭이다. 당장에 한국 내에 신자들이 모여 기도할 이렇다 할 공간이 없다 보니, 우선 재빠르게 공간을 준비하는 데에 모든 여력을 투자했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거고. 이제 내관과 장식만 제대로 만들면 되겠군. …하. 뭐, 필요한 지출이기는 했지만. 저걸 세울 돈이었으면 기차역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어서 오십시오, 폐하. 무사하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니, 그저 감개무량하기만 합니다."
이형이 신을 섬기는 신성한 장소에서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로, 성당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환영인파 중 맨 앞줄에서 베르뇌 대주교는 환하게 웃으며 이형을 향하여 꾸벅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마주쳤을 때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은 선량한 모습이었다. 이형으로서는 절로 기분이 거북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형은 거의 내색하지 않은 채로, 뻔뻔히 웃으며 답하였다.
"뭐, 그 또한 그대가 짐을 위하여 주께 기도해준 덕분이 아니겠소. 이리 만나게 되어 짐 또한 기쁘기 그지없소."
"과분하신 칭찬이십니다. 폐하께서 이 나라의 형제자매들을 구원하셨으니, 그 은덕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 노력할 따름입니다."
'쓰-읍…. 저게 아첨이 아니라는 게 가장 성가시단 말이지.'
이형의 불편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베르뇌 대주교는 엄숙한 모습으로 이형에게 두 권의 책을 건넸다. 한 권은 단어를 집대성한 국어사전이었고, 다른 한 권은 국문법을 집대성한 초등국문법 책이었다. 모두 아직 시작 단계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듯 각각 150장, 100장 정도의 두께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작에서는 외국인의 도움을 받았으되, 이제부터 계속하여 채워 나가는 것이 이 나라의 학자들에게 주어진 과업이 되리라.
그러나 그보다도 중요한 역할은 따로 있었다.
'좋아, 이제 드디어 앞으로 자라나는 새싹들에 체계적이고 근대적인 국어교육을 해줄 수 있겠군. 한족이건 만주족이건 몽골족이건 간에 말이야. …흐흐흐. 다른 건 몰라도, 언어 하나만큼은 한국어로 깡그리 통일시켜주마.'
이형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사실, 만주와 몽골을 수중에 넣으면서 반강제적으로 소수민족들이 대거 늘어난 오늘날의 한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 부분이었다. 설령 조선 8도에서 태어나지도 조선계 혈통이 섞이지 않은 인물이라도 적어도 한국말 정도는 자연스럽게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문화를 하나로 통일시킬 수는 없더라도, 말 정도는 확실하게 통일시켜놔야 후일 분란의 싹이 조금이라도 줄었다.
이미 군에 입대하면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우도록 교육을 강제하고 있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데에 가장 적합한 나이대는 20대가 아니라 10대 이하다. 현 한국 국내의 소수민족들에는 기초 교육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국어를 교육해야지만 제2의 모국어 내지는 아예 제1 모국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유감이지만, 이형은 먼 훗날에라도 소수민족들이 분리독립을 외칠 요소들을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
'우선 국어교육으로 물꼬를 열고, 그다음 이제 슬슬 신식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모이면 역사연구에 들어간다. 고조선 때부터 시작해서 만주인과 조선인은 본래 같은 민족이었다. 기본 전제를 깔고, 요, 금, 후금, 청 깡그리 국사에 편입 시켜버리는 거야. 고조선, 부여, 고려, 이성계 전부 동원해서 엮어버리면 그걸로 끝장이다. 어차피 머릿수는 이쪽이 수배 이상이고 만주족 정도는 너끈히 흡수해버릴 수 있어.
그다음에 명나라 계승 소중화 운운하면서 한족-하다못해 화북계 연인(燕人)만이라도 녹여버리고, 청나라 계승 유목제국 운운하면서 몽골인까지 마저 녹여버리면 된다. 러시아인은 한 줌도 안되니 신경 쓸 것 없고. 아마 반백 년은 너끈히 걸리겠지만-여기까지는 끝내줘야 비로소 요동, 만주가 확고부동한 우리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아 참, 축하드리옵니다. 폐하."
"음? 무엇을 말이오?"
한참 딴생각에 빠져들어 음흉한 미소를 띠는 이형을 향해, 베르뇌 대주교는 상쾌하게 미소지으며 이형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도대체 무엇을 축하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이형을 향해, 베르뇌 대주교는 여전히 방긋 웃는 낯으로 말하였다.
"마마께 들었나이다. 황후마마께서 태기가 있으시다고요. 축하드립니다, 폐하. 이제 이걸로 후사를 걱정할 일은 없겠군요, 허허!"
"하하하하…."
'…또 일발필중이여?'
이형은 식은땀 한줄기가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