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208화 (208/530)

< 임협 >

이형은 힐끔힐끔 황후의 눈치를 보면서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어 마음을 달래고서, 가능한 한 차분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떤가. 어땠는가? 어땠는가?"

"그, 황송하옵니다만. 무엇이 말씀이신지요…?"

"아니 당연히 그 무련 아니겠나! 그래, 어땠나? 무영각은 나왔나? 옥균이 그 녀석은 붕-날아가 나가떨어지고? 가슴팍을 걷어차였을 테니 죽거나 한 것은 아니겠지? 응?"

이형이 쏜살같이 쏟아내는 말에, 위병은 뭐라 답할 생각도 못 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그로서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니 필연이었다. 당장 곁에 있던 궁인들이나 황후도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눈만 껌뻑거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갑자기 난데없이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모양새가 무슨 귀신이라도 들린 모양새였다.

그러나 답답하기로는 이형이 더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눈을 깜빡이는 위병을 바라보면서 이놈이 나를 놀리나-하고 만 생각하고 있다가 뒤늦게 그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고서도, 뭐라 설명을 해줄지를 몰라 그저 가슴 한쪽이 근질거리기만 했다. 본래는 모르는 것이 당연한 지식이고, 자신이 이걸 알고 있는 경위를 설명할 방법도 딱히 없었다.

'남아당자강…이야기 꺼내 봐야 당연히 쥐뿔도 모를 테고! 혼란스러운 광서제 시대…라고 하면 내가 이미 광서제고 나발이고 청나라 날려버린 마당에 어떻게 알아! 지금은 이미 광서제가 제위에 오른 것부터가 가상역사의 영역인데! 이연걸 대협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홍가권…은 이제부터 황비홍이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하는 무술이고! 아오!'

"그, 왜. 제자리에 서서 빠르게 가슴팍을 발로 여러 차례 걷어차서 뒤로 날려버리는…."

"…."

"…아니, 됐다. 내 입만 아프지, 그래."

이형은 제풀에 지쳐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혹시나-하고 자세히 설명해보려 했더니, 위병의 상판부터가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낯짝이었다. 세간에 유행하는 너무 야사나 홍길동전 같은 소설에 빠져든 거 아니냐고 어딘가 불쌍히 여기는 것 같기도 하여 되려 비참 하까지 했다. 실제로 무협지 속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맞기도 했다.

그리 제풀에 입을 다무니 되려 더욱더 안쓰러운 것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이형에게 꽂혔다. 그들은 이 젊은 황제가 그런 소설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이제는 현실과 소설을 착각하고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명색이 황제가 상대다 보니 드러내 놓고서 그런 기척을 풍기지는 않았지만, 이형은 알음알음 그런 묘한 시선이 꽂히고 있는 것이 절로 느껴지는 듯했다.

황후에 이르러서는 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간 무도대회를 열고자 했던 것이 그가 설명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간 비밀로 해왔던 무예나 무협지에 대한 애정 탓에 시작한 것이 아닌가 의혹을 품은 것이다. 당장에 조금 전 보여준 꼴이 꼴이다 보니, 이형은 차마 부정도 못 하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주,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황상! 꼭 다시 조사해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아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1시진 이내에라도…!"

"아니, 됐다. 되었어. 벌줄 생각일랑 없으니까 그만둬라. 그래, 모르는 게 당연하고 알고 있는 게 이상한 거지. 쓰읍, 그래. 그런 거지."

뒤늦게 이형의 기분이 안 좋아졌음을 눈치챈 위병이 제자리에 부복하며 다급히 말을 이었지만, 이형은 이미 꽁해져서는 퉁명스럽게 대꾸할 따름이었다. 그에 더욱 기겁해서는 안색이 새하얗게 물든 위병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무지가 황제의 기분을 안 좋게 만들었음을 직감한 것이다. 설령 황제가 직접 벌을 내리지는 않을지라도, 뒤에서 다른 위병들에게 무슨 보복을 당할지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했다.

한편 이형은 새삼스럽게 미래에서 온 자신과 이 시대의 인물들 사이의 묘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걸 다른 사람이 모르는 거야 그동안 흔히 해왔던 경험이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은 전혀 몰라주는 경험은 또 새로웠다. 입술이 절로 비죽 튀어나오는 듯했다.

'나랏일에 관련된 부분이야 후일에라도 다른 녀석들이 하나둘 알게 되겠지만, 역사가 여기까지 뒤틀렸는데 내가 알던 황비홍 영화가 나오고 또 그게 극장에서 흥행할 가능성은…거의 없구먼 그래. 쓰읍-. 이연걸, 관지림 주연 황비홍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 되는 건가?'

뒤늦게 가슴이 아려오는 듯했다. 그가 제아무리 장수해봐야 무성영화에서 흑백영화 정도가 한계일테니, 그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기도 어려웠다. 물론 그가 무술대회를 열면서 황비홍은 그 나름대로 명성을 쌓을 테고 이를 두고서 후일 또 영화가 나와 흥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가 아는 황비홍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리라.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어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어차피 엎어진 물이었다. 그리고 영화 하나를 위하여 그 지옥 같던 근대사를 반복하는 것도 우스운 꼴이었다. 이형은 제 머리를 세게 쥐어박아 마음을 다잡았다.

"그, 황상. 외람되오나, 김옥균과 그 황비홍이라는 중국인의 밀회에 대하여 말입니다만…."

"음? 아, 그건 이제 되었다. 짐이 알기로 그자는 의롭지 못한 일을 할 만한 사파는 아니야. 이번에 무술대회에 참가하러 온 것도 그저 호승심에 불타서겠지. 더 이상 조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해두거라. 공연히 해코지라도 당하면 안 되니까."

"하오나 황상…."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상대가 황제인 만큼 실제로 거기까지 험한 표현은 아니겠으나, 뉘앙스는 확실히 그러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형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도 없었다. 사실 설명하고자 한다면 종일이라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일개 위병을 상대로 종일 붙잡아 놓고서 황비홍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는 것도 꼴이 퍽 우스웠다.

그러니 이형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고서, 언제나처럼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어허,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거라. 그자가 짐이 아는 그자라면 이번 축제에서도 분명 큰 활약을 하겠지. 흐음, 사실 이번에 빛을 보게 해주려 했던 건 택견뿐이고. 다른 나라의 무술가들은 겉절이였지만…. 한 번 정도는 괜찮겠지. 그래, 네가 미리 가서 초청해두거라. 축제 마지막 날 어전 시합을 열고자 하니, 그 자리를 빛내주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예? 어전 시합, 말씀입니까? 하오나 황상. 그건…."

위병의 머릿속으로는 너무 위험하다, 는 우려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분명 그런 시합이 열리게 된다면 당연히 사전에 흉기가 될만한 것들은 압류될 테고, 중무장한 위병들이 경계를 서겠지만, 어디 사람이 무기가 있어야지만 사람을 죽일 수 있던가. 잘 단련된 무도가에게 암습을 당한다면 꼭 죽거나 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다치게 될 위험은 충분했다.

무엇보다 황제의 성미로 보아 보나마나 대련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대련장과의 안전거리를 그리 준수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럼 제아무리 위병들이 많아도 아차 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암습을 가한 암살자를 처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황제가 티끌만큼이라도 다치는 순간 한국은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는 격이다.

그러나 이형의 대답은 강고했다.

"어허, 그러니까 그자는 그런 살수를 쓸만한 사파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더냐. 걱정할 것 없다. 짐이 알기로 작금의 천하에서 천하에 제일가는 임협(任俠)은 바로 그 황비홍뿐이니라."

'이서문이라면 뭐, 대련하는 족족 사람을 죽여대는 사파라서 원한을 많이 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황비홍은 그런 원한을 살만한 일은 하지 않고 깨끗이 살다간 정파잖아. 내가 떳떳한데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어?'

어느 정도는 영화 속 캐릭터에 근거한 호감이었지만, 동시에 황비홍이라는 실제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지식에 기반한 평가이기도 했다. 실제 역사 속 황비홍은 대단한 무용담은 없으되, 빈민들에게 무료 내지 저렴한 진료비만 받고서 치료해준 의인이었다. 그러니 이형은 황비홍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뛰어난 무예를 익혔을 뿐인 의료봉사자를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이형의 대꾸에 위병으로서는 묘한 위화감에 더욱 등골이 섬뜩해지는 듯했다.

"임협…."

글자 그대로, 협에 살고 협에 죽는 참된 협객. 이미 한국은 그와 같은 협객을 한차례 경험한 바 있다. 아니, 이형 본인이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증국번.

그 또한 청 말의 의인이었으며, 마지막까지 청조와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참된 유자이자 협객이었다.

"그래, 임협이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도다. 뭐얼. 진검 대련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 해봐야 맨손 주먹으로 행하는 무련이니라. 너희가 소총을 쥐고서 경비를 설 텐데 그까짓 맨손 발 주먹이 대수겠느냐?"

"…알겠습니다, 황상."

'제국을 위해서라도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나를 위해서라도.'

이형의 말에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면서도, 위병의 머릿속으로는 이미 다른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포도 공포였지만, 그 이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 어린 나이에 황제를 위하여 큰 공을 세워 출세하는 길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대단한 근거는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황제가 그를 임협이라고 확신하고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임협이라면 뭔가 또다시 황제에게 위해를 끼치리라 판단한 것뿐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의 판단이 옳았다면.

'이건 기회다. 아니라면 기회로 만들면 그만이지. 언제까지고 병졸로 살다 죽을소냐.'

황제의 허락을 받아 자리에서 슬그머니 물러나면서, 위병-원새개는 눈알을 휘 번뜩거리며 빛냈다.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음력 5월 5일 수릿날 전야.

퍼퍼펑-.

축제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그 막을 올렸다. 하늘 높이 하나둘 치솟아 오르는 폭죽은, 남미에서 수입해온 구아노를 이용해 병기창의 화약공장에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간은 수입해오는 족족 모두 화약을 만들어내는데 사용되었던 구아노는 이해 들어서는 이 폭죽을 제외하면 전량 비료생산에 사용되어, 아직 단오밖에 되지 않았으나 가을에는 조선 8도와 간도 곳곳에 오곡이 풍성할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황후가 아이신기오로 황실의 인연을 이용하여 화북에서 데려온 폭죽 장인들은 총천연색의 화려한 불꽃으로 한양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흡사 검은 도화지에 총천연색의 물감을 엎지른 듯한 광경이었다. 가냘프게 솟아올라 어지러이 화려한 꽃을 피우며 하나둘 낙화하는 폭죽의 모습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하였다.

이미 밤이 저물었음에도 한양 곳곳에서는 빛이 사라질 줄을 몰랐다. 백성들은 다 같이 남산에 올라 불꽃놀이를 구경하거나, 문전성시를 이루던 거리의 상가를 들락거리며 먹고 마시고 즐기었다. 거리를 오가는 행인 중 근심 걱정에 찌들어 있는 사람은 누구 한 사람 없었다. 승전 축제를 겸하는, 한국이 온 천하의 우두머리로 우뚝 섰음을 만천하에 자랑하는 축제였다. 근심 따위는 진즉에 날려 버리는 게 당연했다.

"달은 높고, 하늘은 청명하구나. 이보다 좋은 안주가 달리 어디 있을꼬? 자, 오늘은 모두 근심·걱정 잊고 마시자꾸나!"

"으흐흐! 이 사람이 답지 않게 양반 나으리 행세하기는! 에라, 그래 어디 같이 죽어보자꾸나! 늴리리야, 늴리리 맘보!"

"엄마! 다음은 남대문으로 가요. 곧 탈춤이 있을 거래요!"

"에구, 잠시만 쉬어가자꾸나. 아니, 얘! 거기 서지 못하겠니! 얘가!"

"오늘날에도 불야성이 있다면 바로 이 한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무렵 김병학의 눈초리를 피하여 김가진이 준비해준 가옥에서 머물며 창밖을 내다보던 황비홍은 나지막이 말하였다. 부러움과 씁쓸함이 뒤섞인 말이었다. 광동에 있을 적에는 백성들에게서 이와 같은 활달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들 온통 찌들고, 피로해 보이고, 두려움을 품은 모습들뿐이었다.

지금은 어두운 시대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리 보면 또 본래 광동인들이 가져야 할 활달함을 몽땅 한양에서 가져가 버린 듯하여 샘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또 동시에, 작금에는 이 한양이야말로 황도가 머무르는 천하의 중심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담아, 황비홍은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축제 철에 한양에 왔으니 그런 것이오. 축제가 끝나고 나면 뭐, 다 사람 사는 곳인데 그대의 고향과도 별 다를 바 없어지겠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서는, 김가진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황비홍과 담소를 나누면서도, 그는 낡은 나무 의자에 걸터앉은 채 독서에 여념이 없었다. 이 무렵에는 연초보다 눈에 띄게 시력이 나빠져 그가 평소에 만나던 독일인 선교사들에게 동테 안경을 받아 쓰고 있었으나, 안경을 쓴 이후에도 그 안광이 뿜어져 나올 듯한 서슬 퍼런 눈빛은 감출 길이 없었다.

김가진의 대답에 황비홍은 쓰게 웃었다. 교제한 지는 제법 되었지만, 여전히 저 별 감흥 없다는 듯한 태도에는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꼭 사람을 사귀기를 거부하는 고슴도치를 보는 듯했다. 어쩌면, 그만큼 경계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황비홍은 담담하게 되물었다.

"그렇습니까? 하오나, 제가 요즈음 보기로 이처럼 거대한 도시는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도 저 멀리 외곽까지 산보를 하는데 온통 공사 중인 벽돌 건물들뿐이었습니다. 이마저 장차 모두 완성된다면, 어쩌면 북경을 넘어서는 천하의 배꼽이 되지 않겠습니까."

"과찬이시오. 그러나 그건 서역의 도시들을 보지 못하였기에 그대가 착각하고 있는 것뿐이오. …뭐, 피차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인 것은 같사오만."

김가진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책을 덮었다. 슬슬 수련 시간이었다. 한곳에 머물며 황비홍을 돌봐줄 수 없는 김옥균 대신, 황비홍에게 한양에 있는 동안 머물 처소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그에게 몸을 단련 받기로 한 것이다. 황비홍의 무예에 관심을 보여서라기보다는, 그러다 요절할지도 모른다면서 걱정하는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체력을 키우려는 의도였다.

김가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며, 황비홍은 포권을 하고 자세를 잡았다. 김가진은 한양에서 갈 곳 없는 그를 받아준 은인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몸을 마구 혹사하는 환자이기도 했다. 허투루 상대할 수는 없었다.

"모래는 어전 시합이오. 황상께서 보시는 앞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면 오늘은 적당히 봐주어도 좋을 거라 생각되오만."

"그럴 수는 없지요. 대인께서는 함부로 몸을 쓰지 말라 그리 말씀드려도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시는 못된 환자이시니 마땅히 매를 들어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 옥균이 도련님께서 호랑이를 물고 오셨군그래."

빙긋이 웃는 황비홍의 모습에, 김가진은 투덜거리면서도 양장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황비홍의 부탁으로 김옥균이 가져다준 대련복이었다. 묘한 팔각 향이 감도는 것이 광동에서 직수입해 왔는지도 몰랐다.

자세를 잡다 말고, 김가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황비홍에게 물었다.

"참, 어전 시합에서 이긴다면 황상께서 한가지 즈음은 소원을 들어주실 텐데. 무엇을 부탁드릴지 생각은 해뒀소?"

"황상께 한가지 진언을 올릴까 합니다."

"진언이라."

그 내용이 무엇일까. 그걸 고민할 여유는 김가진에게 없었다.

다음 순간 김가진은 번개같이 날아든 발차기에 가슴팍을 걷어차여 뒤로 붕-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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