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영각 >
이튿날, 어전 시합 당일.
"『오늘도 이 무더운 날씨에 함께해주고 계신 한양의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전날과 같은 화창한 날씨입니다. 어제 궁도 대회에서 당당히 여러 제후국에서 온 궁도 명인들을 꺾고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우리 대한의 선수 여러분,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
과연 천하제일의 무예가는 누구일 것인가! 어느 나라의 무예가 천하제일일 것인가! 왜국인가? 조선인가? 유구인가? 지금 막을 올리겠습니다!』"
"""와아아아아-!"""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겠습니까! 찹쌀떡 있어요! 식혜 있어요! 애들이 좋아하는 과자들도 많습니다! 다들 구경이나 한번 해보고 가세요!"
"자, 내기 시작합니다! 모두 판돈은 넉넉히 챙기셨으리라 믿고서! 내 나라가 따로 있나? 판돈 건 나라가 내 조국이다! 자, 어디 조선 8도의 꾼이란 꾼들은 모두 모여봅시다!"
목이 쉬어라 나팔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중계진의 외침과 함께, 어전 시합은 막을 올렸다. 전날에는 경마, 씨름, 택견, 궁도 등 여러 종목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관중들이 한대 우르르 모이니, 경기장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경기를 구경하러 온 백성들로 득시글거렸다.
그뿐일까. 이전 날과는 달리 한국의 황제가 벌이는 묘한 짓에 흥미를 보인 서역의 취재진이나 사르네를 따라서 온 프랑스 장병들, 유구, 일본, 대만 등에서 온 수행원들까지 온통 모이며 경기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고래고래 소리치며 간식거리를 파는 상인들, 판돈을 걸자며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전문 내기꾼까지. 어찌 보면 천박하고, 어찌 보면 활기찬 회장이었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황망하게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미리 윗선에서 내려온 공문을 받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정말로 경희궁을 이런 식으로 민간에 개방하실 줄은…."
"하하하! 황상께서는 참으로 백성을 사랑하시는 분이신 거 같습니다."
옆에서 호탕하게 웃는 황비홍과 달리, 김옥균은 차마 웃을 수는 없었다. 명색이 이름부터 거창한 어전 시합이니 택견 대회처럼 종로 거리에 적당히 나무와 천으로 경기장 만들어 놓는 것보다는 조금 더 거창하게 할 거라 예상은 했었다. 족히 천명 이상의 관중을 감당할 수 있으면서 또 그 나름대로 격식을 차릴 수 있을 만한 공간이 궁궐들 정도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경희궁 일부를 뜯어고쳐서 경기장으로 만들어버리다니. 답다면 답다고 해야 할지,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를 결단이었다. 잠시 경기장으로 개조했다지만 명색이 궁궐에 장사꾼이나 내기꾼까지 출입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다. 그 또한 여기에 한 손 거든 처지에 뭐라 할 처지는 못되었지만 말이다.
김옥균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고 보니, 김 형은 어디 계십니까? 분명 요즈음 같이 머물고 계시던 거 아니었습니까?"
"아무래도 아직도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오늘도 경기나 구경하면서 팔자 좋게 보낼 시간은 없다고 성균관으로 가셨습니다. 조금은 몸을 심려해주셨으면 하지만, 아무리 말씀드려도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시니. 참으로 걱정이 많습니다."
황비홍의 한탄에, 김옥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고 있는 김가진이라면 그럴 터였다. 서자라는 태생 탓인지, 타고난 성정인지, 둘 다인지 김옥균이 어렸을 적부터 남다른 투지를 보여주던 김가진이었다. 서자라는 태생 탓에 빛을 볼 일이 없다가 인제야 겨우 뜻대로 날개를 펼칠 시대를 만났으니, 그간 쌓아온 한이 복받쳐서라도 일에 목매달 수밖에는 없으리라.
김옥균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김 형이 그 불같은 성정을 고치시려면 정말로 다시 태어나거나 하셔야 할 겁니다. 한국에 머무시는 동안 앞으로도 김 형을 잘 보살펴 주십시오. 아무래도 저는 높으신 분들에게 미움받고 있는 듯하니 말입니다. 앞으로도 바깥으로 빙빙 돌게 될 테니 김 형을 도와드리기에는 당장 제 앞가림하기도 바빠서. 황 선생님이 다시 또 수고해주셔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곧 미리견에 가시게 되신다고 하셨지요. 축하드립니다. 항상 미리견에 가고 싶어 하셨잖습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살다 보니 뜻하지 않게 좋은 일이 생기는군요, 하하!"
'아무래도, 김병학 그 작자는 날 좌천 시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말이지…. 뭐.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한 번은 맞는다고,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니까. 그런 거로 넘어갈까.'
황비홍의 축하에, 김옥균은 문득 지금은 절연한 문중의 큰 어른을 떠올렸다가 이내 지웠다. 그는 이번 인사에 김병학이 어떤 식으로건 간섭했음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상적이던 대회 중 위험분자 색출 임무가 어느 날부터인가 묘하게 외지고 엉뚱한 구석만 빙빙 돌게 만들더니, 대뜸 이번 일이 끝나면 주재 무관 자격으로 미국으로 떠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그리고 이 무렵 대한제국의 조정에서, 미국행은 곧 좌천을 의미했다. 성공적으로 영국, 프랑스에서의 공사 생활을 끝마치고 귀국한 김병학, 김병국 형제와는 달리 미국으로 보내진 민치상은 아직도 귀국 명령이 내려오기는커녕 미국에 발이 묶여있는 데다가 더하여 내통혐의나 기밀문건 유포 혐의가 달려 있었다.
본국에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본국의 의심을 받는 직장상사 밑에서 몇 날 며칠을 일해야 하는 꼴이니 그야 좌천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민치상과 한패라고 의심을 받아 한직을 전전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김옥균으로서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러운 일에 엮일 수밖에 없는 입장으로 조정에 출사하였으니 어느 정도 각오하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원. 이럴 바에야 차라리 중원에서 사교도 놈들 뿌리를 캐내던 시절이 낫지, 같은 나라 사람끼리 의심하고 함정에 몰아넣는 꼴이 아닌가.'
당장에 군사정보국에서 김옥균이 주재 무관으로서 미국에 가는 것을 승인한 이유가 주미공사 민치상에게 걸려있는 혐의들을 조사하고 사실일 경우 즉각 구금하여 본국으로 끌고 오라는 이유에서였다. 김병학 또한 그걸 알고 있었지만, 민치상과 현지세력을 보다 높이 쳐서 김옥균이 역으로 당하거나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말이다.
김옥균으로서는 영 입맛이 썼다. 이 또한 나라를 위한 일이라지만, 결과적으로는 김병학에게 밀려 내쫓기는 꼴이었으니 더더욱 그런지도 몰랐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미국은 지금 한국에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른 어느 열강보다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나라였다. 지금이야 이것이 좌천일지도 모르겠으나, 후일에 돌이켜 보면 복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김옥균은 마음을 다잡았다. 서자 출신인 김가진도 그 나름의 방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데, 지금은 절연했다지만 안동 김씨의 적자 중 한 사람으로서 온갖 좋은 호사는 다 누리던 그가 뭐라도 나라에 이바지하지 못한다면 결국 나라에 폐만 끼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만은 결단코 피해야만 했다.
"미리견에 가게 되면 반드시 황 선생님께 편지 드리겠습니다. 미리견은 비록 나라의 역사는 짧으나 돈만 있다면 뭐든지 구할 수 있는 풍요로운 나라라지요. 혹, 기념품 삼아 제게 기대하시는 것이라도 있겠습니까?"
"이런, 이거 김 선생님께 폐만 끼치고 있는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염치 불고하고 한가지 부탁드리자면, 개인 의료기구들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광동에는 못된 상인들이 이래저래 장난을 쳐둔 질 나쁜 물건들만 들어오니 말입니다."
"개인 의료기구라! 과연 황 선생님다운 부탁이십니다. 알겠습니다. 미리견에 가는 대로 찾아보도록 하지요. 이게 다 우리 김 형 보살펴주신 보답 대신이니, 따로 사례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이미 식객으로서 보답은 충분히 받았는데 또 이런 은혜를 무상으로 받을 수는 없습니다. 기필코 사례해 드릴 테니, 계속 편지해주십시오."
"아닙니다, 어찌-."
두 사람은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서로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무언가 보탬이 되려 다투고 있으니 구경꾼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훈훈하기도 하였다.
결국 먼저 뜻을 꺾은 것은 김옥균이었다. 황비홍이 정 뭣하면 주미 한국공사관 주소로라도 답례를 보내겠다고 뻗대니 더 이상 뜻을 꺾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 옹고집에 김옥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기와는 달리 묘하게 억센 구석이 있었다.
"『네, 거기까지! 유구에서 온 가쿠토의 장외승리! 아쉽게 패배하였지만, 모두 최후까지 분투해준 고재윤 선수에게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제4 시합, 시작합니다! 선수분들은 바로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슬슬 차례로군요. 다녀오겠습니다, 김 선생님."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황 선생님. 제가 요즈음 듣자 하니 황상께서 어째서인지 황 선생을 총애하고 계신다는 소문이 윗선에서 자자합니다. 꼭 어전 시합에서 우승하거나 하시지 않아도 운이 좋다면 황상께서 황 선생께 한 번쯤은 발언할 기회를 주실지도 모르지요."
"하하하! 그 말대로라면 다행이지요. 하지만 만백성의 어버이께서 어찌 이런 무명의 권법가 따위를 알아주시겠습니까? 그러나 말씀만으로도 큰마음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선생."
"아니, 그러게 그냥 낭설이 아니래도…."
김옥균의 뒷말을 듣는 듯 마는 듯하며, 황비홍은 성큼성큼 대회장을 향하여 걸음걸이를 옮겼다. 전날에 있었던 택견 대회와는 달리 비교적 규칙이 잘 준수된 씨름 대회 이상으로 신사적이고 승패가 확실한 경기 진행이 이어져서인지, 관중들은 한국 선수가 패하건 승리하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는 전날의 엉터리 대회진행에 위기감을 느낀 황후와 조정의 대신들이 적극적으로 대회진행에 개입한 덕분이었다. 택견 대회까지는 그래도 어차피 한국인만 출전하여 한국인이 패배하고 승리하는 경기였으니 비교적 대회진행이 엉망이어도 용서될 수 있었지만, 어전 시합은 엄연히 국제대회였고 여러 나라에서 온 선수들이 각자의 실력을 겨루는 시합이었다.
그런 대회 진행에서 무언가 부정이 발생하거나 전날과 같은 막가파 반칙과 살수가 난무한다면 그건 황제인 이형은 물론이고 한국의 위신까지 엉망이 될 터였다. 그러니 전날과는 달리 황후와 대신들이 힘을 합쳐 폭주를 최대한 줄이고 신사적이고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이뤄지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던 것이다.
"저기, 제 보호장구가 이상합니다만…."
"네? 아, 그거야 뭐. 앞서 나간 선수들이 한 번씩 써서 그렇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입어요. 오늘 안에 예정된 경기만 십수 번이야!"
그렇기에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유독 황비홍에게 준비된 솜옷만 물에 적셔져 있던 것이다. 담당의 설명에 냄새를 맡아보아도, 땀 냄새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앞서 벌써 3명의 선수가 시합을 치렀음을 고려하면 이는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그뿐일까. 솜옷은 잔뜩 물에 젖어 축축했을뿐더러, 풀이라도 잔뜩 바른 듯 끈적끈적하기까지 했다. 한눈에 봐도 입는 순간 움직임이 둔해지고 굼떠질 것이 뻔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황비홍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실례 드립니다. 보호장구 없이 경기장에 올라가도 괜찮겠습니까?"
"예?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그러다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럼 제4 시합, 시작하겠습니다! 선수 입장!』"
"…휴우우! 아오, 마음대로 해요! 대신 몸 함부로 쓰지 말고, 몸조리 잘해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당의 걱정스러운 한숨을 뒤로한 채, 황비홍은 경기장에 올랐다. 여전히 관중들은 한국 선수는 물론 이국에서 온 선수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나팔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관중의 흥을 돋우는 중계진도 변함없이 활기찬 모습이었고, 황제 부부와 각국의 수뇌진이 착석하고 있는 특석과 특석을 빙 두른 채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위병들도 그대로였다.
다만 한가지. 그의 맞상대를 하러 나온 남만의 무도가가 살의를 숨길 생각이 없다는 것 하나만이 앞선 경기들과의 차이점이었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흥!"
정중히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관중들은 이를 기 싸움이라 생각하였는지 더욱 큰 환호를 보냈지만, 황비홍은 직감했다.
'이거야 원, 살수가 날아오겠구나.'
"『경기 시작합니다! 아앗-! 시작과 동시에 위협적인 돌진! 투지가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의 직감대로, 경기 시작과 동시에 그의 목을 노리고 묵직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곧장 목젖을 노린 것이, 의심할 여지 없는 살수였다. 이를 피해 고개를 뒤로 젖히니, 곧장 팔꿈치로 명치를 노리고서 내리찍었다. 그야말로 영문 모를 살의가 아닐 수 없었다.
'뭔가 좋지 않은 소란에 걸려들었구나.'
"흐읍!"
결국 황비홍은 마음을 다잡았다. 몸을 뒤로 젖힌 허리의 탄력을 그대로 하반신으로 옮겨 복부를 걷어차 멀리 뒤로 물러난 황비홍은, 도중에 자세를 고쳐 한쪽 무릎을 바닥에 더디며 착지하였다. 그러나 상대 선수는 전혀 타격이 없어 보였다. 이유는 명확했다.
'배에 송판을 둘렀나? 발끝의 촉감이 찰지지 않고 단단하다.'
"하앗-!"
황비홍이 고찰한 대로 별 타격이 없었던지, 상대 선수는 곧장 함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어 왼 다리 오른 다리를 번갈아 가며 빠르게 내달리듯이 발차기를 낮게 날려왔다. 단숨에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우선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고자 했는지, 하나 같이 종아리와 허벅지를 노리는 매섭고도 무거운 일격들이었다. 대응하지 않고서 뒤로 피하기만 하는 건 소용 없었다.
계속 뒤로 물러나기만 한다면 장외가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럼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이런 일에 말려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
황비홍은 몸을 앞으로 빠르게 숙이고서는 정면을 향하여 양손을 모아 적 선수의 양어깨를 밀쳤다. 계속 뒤로 피하기만 하던 그가 이 시점에서 반격할 줄은 몰랐는지, 적 선수의 허리가 뒤로 젖혀지며 낮게 발차기를 날리던 다리가 붕 떴다. 그것이 기회였다.
"하앗-!"
허공으로 뜬 적 선수의 다리가 허무하게 황비홍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황비홍은 다시 크게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디며 오른손 손바닥으로 밀듯이 후려쳤다. 투웅-하는 소리에 뒤로 젖혀지던 적 선수의 허리가 복부의 반동으로 다시 앞으로 휘고, 머리가 앞으로 튀어나오니 다시 왼손바닥으로 밀듯이 이마를 후려쳤다.
그러면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마에 강한 충격을 받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 적 선수는, 눈을 다시 뜰 새도 없이 강한 충격이 가슴팍을 수도 없이 강타함을 느껴야만 했다. 태산처럼 묵직하면서도 벌새처럼 재빠른 발차기였다. 무엇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두들겨 맞던 적 선수는 마무리라 선언하듯 강하게 내뻗어진 발바닥에 밀려 뒤로 나뒹굴었다.
장외였다.
"…휴우."
살수를 쓰지 않고서 끝났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황비홍은 나지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간 침묵이 감돌던 회장에는 다시 관중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고, 곧이어 중계진의 목소리가 회장 가득히 울려 퍼졌다.
"『거기까지! 광동에서 온 황비홍의 장외승리! 아쉽게 패배하였지만, 모두 최후까-.』"
"우오오옷!"
그런데 딱히 나팔관을 쓴 것도 아닌 황제의 함성이, 하필이면 그때 회장 가득히 쩌렁쩌렁 울려 퍼졌는지 그들로서는 알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