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227화 (227/530)

< 세대교체 수순 >

"민치상 그놈이 기어이 덜미가 잡혔다고?"

이형은 한쪽 눈을 치켜뜨고서 되물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까닭이다. 김옥균을 보내놨으니 조만간 덜미가 잡히리라는 것까지는 예상했으나, 이렇게 빠르게 결말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다. 당장 모건이 끼고 돌 것임에 자명한데 무슨 수로 김옥균이 이리도 빠르게 덜미를 잡았단 말인가.

'설마, 김옥균 그 녀석 힘으로 뚫고 들어가서 깽판이라도 쳐놨나? 아니, 그럴 리가. 무슨 액션 영화도 아니고···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한국 군인이 미국 시가지 한복판에서 총질했다는 이야기인데.'

오죽했으면 이형의 머릿속으로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가는 가능성이 이런 가당치도 않은 가정이었다. 그만큼 이형에게 있어서 이번 검거가 급작스러웠던 까닭이다. 그러나 박규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예측을 부정하고서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황상. 모건이라고 하는 미리견의 사업가가 검거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미 단 꿀은 모두 빨았으니, 이 이상 데리고 있어 봐야 쓸모가 없다고 여긴 것이 아닐는지요."

"허, 토사구팽이라는 건가. 그건 그것대로 어처구니가 없군. 솥에 집어넣고 삶아도 그건 내 역할이지 한나라의 외교관이라는 놈이 미리견의 사업가 손에 토사구팽을 당해? 에라, 이 모자란 놈이."

이형은 쯧하고 혀를 찼다. 그로서는 황당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나름 한나라의 공사라는 작자가 다른 나라의 사업가와 작당한 끝에 그 사업가에게 손절을 당해서 보직에서 해임되는 꼴을 당하다니 말이다. 그가 한국에서 봐온 민치상이라는 인물이 여기까지 추한 결말을 맞이할만한 인물도 아니었으니만큼 의아함은 더했다.

아마 자신이 미국에 좌천이나 다름없이 처박았던 것이 큰 충격을 줬을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리고 이형에게 그가 뭐라고 변명하건 별달리 중요한 사안도 아니었다. 이미 일을 저질러 버린 이상 무슨 이유가 있었건 간에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 그래서 그놈은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지금쯤 태평양을 건너오고 있는 건가? 오는 길에 변고는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려. 그래야 뜻대로 벌해줄 수 있을 테니까."

"아니오, 그것이···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니, 문제라니?"

"···미리견에 체류하는 동안 미리견 국적의 여인을 첩으로 삼아 딸 아이를 얻었던 모양입니다. 그 여인이 미리견 경찰을 끌어들여 우리 한국에서 아이의 아버지를 데려가지 않게 해달라며 애걸복걸하고 있습니다."

그건 또 그것대로 기가 찬 이야기였다. 이형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음을 깨달았다. 미국인 첩이 있는 것만 해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애까지 딸렸다니. 한국에서도 엄연히 가정이 있고 집에서 기다리는 처자식이 있는 나잇살도 먹을 대로 먹은 양반이 말이다.

"대단한 놈이야. 정말로 대단한 놈이구먼. 이쯤 되면 역사에 길이 남겠어. 아니, 한동안 외신에서 신나게 우려먹게 생겼군. 세기의 로맨스라면서 말이야. 화류계 여인과 동양의 신비한 나라에서 온 외교관과의 불꽃 튀는 불륜극이라. ···허허허!"

이형은 일부러 소리 내 웃었다. 웃음이 나와서 웃는 것이 아닌, 억지로 내는 웃음소리였다. 박규수도 뭐라고 달리 할 말이 없었던 듯 뭐라 더 이상 왈가왈부하기보다 그저 어깨를 늘어뜨리며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형의 말대로였던 까닭이다.

이미 뉴욕 타임스를 위시한 미국의 신문들은 칙칙한 소식투성이던 요즈음 가장 화끈하고 낭만이 있는 핑크빛 불륜극이라며 대대적인 취재와 보도에 나서고 있었다. 물론 절반쯤은 비꼬는 표현이었다. 온통 칙칙한 소식투성이이던 현실 속에서 그나마 배꼽이 빠지라 웃을 수 있는 소식이니 이리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도대체 뭔 수를 부렸기에 그 나이에 화류계를 그리 매혹 시킨 건지 놀라울 따름이구먼. 나 몰래 기적의 산삼이라도 캐 먹은 건가."

이형은 지끈지끈해오는 머리를 싸매고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는 한 차례 더 깊이 한숨을 내쉬고서,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박규수에게 말했다.

"신경 쓸 거 없소. 우리가 미리견 정부도 아니고 화류계 첩 하나 때문에 죄질이 명명백백한 죄인을 압송하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 미리견인들도 그냥 마침 적적하던 차에 비웃기 좋은 소재가 생겼으니 관심을 보이는 거지, 진지하게 애첩과 민치상 그놈의 관계를 응원하는 것이겠소? 무시하고 데려오시오."

"알겠습니다, 황상. 그럼 그 빈자리는···."

"김옥균, 그 사람에게 임시로 대행하도록 맡겨두시오. 후임이 정해지고 나면 그때 본국으로 불러와 내 따로 포상하리다. 모건 놈이 자발적으로 나섰건 어떻건 간에, 공을 세운 건 공을 세운 것이니 말이오."

그저 나라 망신을 당한 것뿐이지. 이형은 그리 덧붙였다. 박규수 또한 피차 동감이었던지 뭐라 답하지 못하고서 헛웃음만 흘렸다. 이형은 새삼 모건이 왜 그토록 한국을 무시했던지 이해가 가는 듯했다. 그야 곁에서 보아온 한국의 고관이라는 인물이 저런데 얕보이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본디 끼리끼리 노는 법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이형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부터 좌천이랍시고 아직 서역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인물을 대뜸 미리견의 공사라는 중책에 임명한 그 자신의 책임 또한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지만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해외에 파견할 공사들은 서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돌아온 젊은 인재들을 중심으로 파견해야겠어. 어차피 한국 내의 고관들이 경험한 외교는 청과의 외교 정도가 전부다. 어차피 국제외교에서는 모두가 손을 더듬거리며 하나하나 배워가야 하는 상황에서 조공질서에 익숙한 이들을 파견할 바에야, 차라리 서역에서 몇 년이라도 생활하면서 서양 물을 먹은 녀석들을 중히 쓰는 게 낫겠지.'

다행히도 막 나라의 문호를 열었던 개항 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김홍집을 비롯하여 해외유학파 청년 관료들이 하나둘씩 귀국하고,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본격적인 세대교체의 시간이었다. 조선조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관료들은 하나둘씩 뒤로 밀려나고 근대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젊은 인재들이 나서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형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참, 그러고 보니까 김홍집이라고 했던가?"

"네, 그렇사옵니다. 황상."

"그자는 어떤 인물이요? 과연 태자의 교육계로서 적절한지, 사람됨은 어떠한지, 경의 솔직한 인물평을 듣고 싶구려."

이형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현시점에서는 그가 모르는 것이 이치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이형이 김홍집과 처음으로 만났던 것은 김홍집이 막 유럽으로 유학을 하러 가던 무렵이었고,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다. 요즈음에 와서 황후가 박규수와 짜고서 김홍집을 태자의 교육계로 임명하도록 판을 짰을 때 이름을 다시 들었던 게 김홍집이 한국에 돌아온 이래 유일한 접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래서는 곤란했다. 김홍집은 철저한 문관 체질이었고, 그건 곧 장차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때 새롭게 조정을 주도할 핵심 관료라는 이야기였다. 김가진은 태생적 한계상 선거를 통해서라면 몰라도 조정의 행정관료로서 출세노선을 밟기는 어려웠고, 김옥균은 군인으로 출사한 이상 민간인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중히 쓰기 어려웠다.

이형이 김홍집을 입에 담자, 박규수는 눈에 띄게 기꺼워하는 얼굴을 하였다. 안 그래도 이형에게 은퇴를 허락받고서 슬슬 그의 애제자의 자리를 굳히기 위한 밑 작업이 필요하던 차에, 이형이 먼저 나서준 것이다. 박규수는 잔뜩 들뜬 모습으로 설명하였다.

"의기 있는 청년입니다. 서역에 유학 생활을 하고 돌아온 만큼 식견도 넓고, 머리도 총명할 뿐 아니라 자신도 배움에 뜻이 있습니다. 장차 황상께서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인재 중 인재입니다."

"과연, 과연."

'···고슴도치 스승이 따로 없구먼. 뭐, 그만큼 아끼는 것이겠지만.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대뜸 이런 설명만 들으면 되레 수상쩍었겠지.'

이형은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의외의 일면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박규수를 기용하고서 오랜 세월 그의 곁에 두고서도 정치인, 관료로서의 박규수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박규수에 그만큼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야기 또한 되었다. 이형은 새삼 그간 자신의 안하무인이나 다름없던 행보를 돌아보고서 씁쓸히 고개를 저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허계를 보낼 때 또한 그렇지 않았던가. 그를 아꼈다고 하나, 이형은 끝내 그를 충신으로서, 장군으로서만 알았을 뿐 인간으로서 알게 된 적은 없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정은 화목한지, 그런 소소한 인간적 면모들을 알아보려 한 바는 없던 것이다.

그럼 이제라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알아보려 해야 할까. 그것 또한 난처한 이야기였다. 이형에게 그런 재주는 없었다. 그런 경험도 부족했다. 천성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제 와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봐야 공연히 불편함만 줄 터였다. 그러니 이형은 그리 캐묻지 않고서, 다만 사무적으로만 이야기하였다.

"경이 그렇게 말하니 과연 흥미가 가는구려. 경이 여기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니. 내 제법 긴 세월을 경을 알아 왔으나 이런 적은 처음이오."

"허허허, 송구하옵니다. 그저 늙은이의 주책이라고만 생각하소서. 다만···."

"다만?"

그리 말하고서는, 박규수는 돌연 말을 끌었다. 무언가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형이 되물으니, 박규수는 주저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영길리에서 좋은 것만을 배워올 수는 없었는지, 조금 안 좋은 물이 들었사옵니다."

"안 좋은 물이라? 그건 또 무슨 말이요. 뭐 요상한 사교나 주술이라도 익혀서 돌아온 것이오?"

"아니오, 그런 것이 아니라···장차 백성들이 정치를 알도록 교육하여 백성들을 귀찮게 만들어야 한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스승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는 듯이, 박규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박규수로서는 진심이었다. 유학이 목표로 하는 정치가 백성들이 나라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태평성대인 까닭이다. 서역을 둘러보면서 사고가 다소 깼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유학자였던 박규수로서는 백성들이 정치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기가 막힐 수밖에는 없었다.

소위 위정자나 목민관이라는 작자들이 정치를 잘 못 하니까 백성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불만을 표하는 것일 터인데, 백성들에게 일부러 정치를 가르치겠다는 건 위정자들과 목민관들의 재량 부족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극단적인 주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형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그러니까 장차 백성들이 더욱 정치를 깊이 알고, 백성들이 참여할 길을 크게 늘려야 한다 주장한다는 말이구려?"

'좋지 않은 물이라길래 뭐 아편굴에서 좋지 않은 공기를 쐬었나 했더니, 민주주의를 배워왔다는 거잖아. ···최고인데?'

이형은 히죽 웃었다. 그거야말로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차피 그는 대략적인 방향을 지정해 줄 수는 있어도 세세한 사항을 지정해줄 수는 없는 인물이었고, 더 나아가 전장에서라면 모를까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는 두각을 드러내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장차 공부하고 경험이 쌓인다면 그럭저럭 범군 노릇 정도는 가능하겠으나,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이형이 파악하고 있는 그 자신의 그릇이었다.

폭군인 까닭이다. 동물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게르에서 말이나 몰아야 할 천성적인 초원의 칸에게 진득하니 탁상 앞에 앉아 정무를 보고 경전을 읽어 새로운 것을 익혀가며 이름난 학자들과 토론을 하여 나라를 다스려가는 조선의 문민정치가 가능할 턱이 없다. 그러니 이형은 나라가 반석에 오르는 대로 입헌군주정으로 이행할 구상을 품고 있었다.

정복 군주가 될 수는 있어도 명군은 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 이형의 구상을 알지 못하는 박규수만이 거듭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을 따름이었다.

"부끄럽사옵니다, 황상."

"아니, 부끄러워할 것 없소. 경이 그리 말하니 내 흥미가 생기는구려. 그 김홍집이라는 청년을 지금 당장 불러올 수 있겠소? 내 그를 직접 마주 보고서 담소를 나눠보고 싶구려."

"화, 황상. 너무 염두에 두지 마소서.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혈기왕성한 청년의 일탈일 뿐이옵니다. 결코 황권에 도전하거나 할 생각은-."

"알고 있소. 내 경을 잘 알고 있소. 경은 그런 파렴치한 역도를 길러낼 스승이 아니고, 그와 같은 파렴치한 제자를 그토록 아낄 인물도 아니오. 그러니 안심하고, 김홍집이라는 청년을 데려와 주시오."

이형은 사뭇 진지하게 말하였다. 박규수로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감개무량하기도 한 모습이었다. 그가 잠시 한국을 비운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토록 철도 없고 안하무인에 사람을 부리는 법도 모르던 망나니 황제가 이리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법을 배우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까 싶었다.

절로 울컥하고 무언가 올라오는 듯했다. 박규수는 애써 동요를 감추며 이형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였다.

"···하명하신대로 하겠나이다."

"음, 내 기다리고 있으리다."

이형은 기다리겠다고 말하였으나, 기실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김홍집 또한 명색이 교육부 차관보였던 만큼 일과나 동선 정도는 쉽게 파악되었던 까닭이다.

심부름에 나선 궁인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김홍집은 피로가 역력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교육부의 책임과 직무가 막중하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늘어진 기색은 없었다. 어전이었다. 제아무리 과로에 시달린다고 한들 늘어진 모습이 용인될 수는 없었다. 김홍집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이형에게 엎드려 절을 올렸다.

"찾으셨다고 하여 대령하였나이다, 황상."

"고개를 들 거라. 그리 굳어있을 이유도 없느니라. 오늘 짐이 널 찾도록 한 것은 여기 박규수 총리가 널 후임으로 지목하였기 때문이니까."

이형은 정말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물론 이형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고 서니 듣는 입장에서까지 대수롭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결국 달리 말하면 그 자리에 합당한 인재인지 시험하겠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이형의 말에 김홍집은 긴장이 풀어지기는커녕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리며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지켜보는 박규수 또한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듣자 하니 영길리에서 좋지 않은 물이 들었다지. 백성들에게 정치를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던가. 아마 영길리에서는 그를 두고 민주정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만."

"···그러합니다."

이형의 추궁에도 김홍집은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박규수는 고개를 돌리고서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 언질을 줘두었는데도 애제자가 황제가 보는 앞에서 당당히 결점을 인정하고 있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형은 불편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되려 입가에 더욱더 짙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호오, 아무래도 너에게는 영길리의 정치체제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로구나."

"그러하옵니다, 황상."

"허, 그리도 당당하니 내 더더욱 흥미가 생기는구나. 그래, 어떻더냐? 네가 보기에, 영길리의 체제가 우리 대한의 실정에 그리도 어울려 보이더냐?"

김홍집은 잠시 답하지 않고서 박규수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박규수라고 한들 도움을 줄 길은 없었다. 그로서는 이런 화두가 나온 것 자체가 실패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박규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결국 잠시 망설이던 김홍집은 찬찬히 입을 열었다.

"···아마도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흐음, 그건 또 뚱딴지같은 소리로구나. 어찌 그리 생각하였더냐?"

"아직 백성들이 무지몽매한 까닭입니다."

이형은 배를 부여잡고 깔깔거리며 폭소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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